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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61화 (261/818)

제261화. 피의 화살

준이 검은 송곳을 움켜잡고 염력을 불어놓자 옅은 푸른색의 불꽃이 일렁이며 열기를 뿜어댔고, 불꽃이 내뿜는 무시무시한 열기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공간이 일그러졌다.

쉬익!

곧이어 웅장한 염력으로 뒤덮인 두 그림자가 거의 동시에 몸을 날렸다.

쾅—

마침내 광장의 정중앙에서 흑백의 두 형상이 교차하고, 뾰족한 장창이 허공에 흔적을 남기며 준의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준은 두툼한 방패 같은 거대한 쇳덩이를 들어 가볍게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두 병기가 맞부딪히자 순간 불똥이 튀며 날카로운 금속성이 귀를 때렸다.

다음 순간, 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시커먼 쇳덩이를 휘두르자, 또 다시 돌풍이 일며 사방에 먼지가 흩날렸다.

챙! 챙! 챙!

이준이 검은 송곳을 휘두르는 순간, 백청의 창끝이 흔들리며 순식간에 수십 번의 공격을 찔러 넣었다.

……

“이런, 백청이 지난번보다 훨씬 강해진 거 같은데?”

경기장 밖에서 두 사람의 대결을 바라보던 임수혁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자, 엄호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많이 강해졌군, 아마 승급을 한 것 같은데?”

“저번에 이준에게 지고 나서 이를 갈았나보네.”

한율이 부드러운 손길로 자신의 긴 머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러게, 지난 번 일이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야. 단기간동안 이 정도로 발전하다니…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또 다시 패배하면 충격이 크겠군. 어쩌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겠어.”

임수혁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 *

한편, 경기장 안에서 백청과 맞부딪히고 있는 준 역시 상대의 성장을 감지하고 있었다.

‘어쩐지 자신감이 있더라니, 승급했군.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되지.’

하지만 준은 기가 죽기는커녕 여유로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막 투령에 진입했을 때조차 ‘천계의 불꽃’으로 백청과 대등하게 맞섰던 그였다.

상대가 승급을 했다고는 하나 고작 한계단을 뛰어올랐을 뿐이고, 자신은 이미 3성 투령을 넘어 4성 투령의 벽을 넘보고 있었으니 전혀 두려울 것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의 그에게는 2격 무투기인 ‘번개의 춤’이 있었다.

곧이어 준이 정신을 집중하며 손에 있던 무거운 검을 휘두르자, 몇 개의 그림자가 허공에 생겨났고, 갑자기 굵고 두꺼운 검은 송곳이 긴창처럼 형상을 바꾸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상대를 덮쳤다.

이런 갑작스런 변화에 백청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염력이나 힘이라면 모를까 정교함과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자신이 상대를 압도하고 있다고 믿었던 터라 더욱 충격이 컸던 것이다.

상대에게 모든 면에서 밀리고 있다는 생각에 순간 백청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아무리 천재라고는 하나, 몇 달 전 본원에 들어온 신입생에게 한 조직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 모든 면에서 완패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다음 순간, 백청의 손에 들린 창이 독사처럼 사방으로 날뛰며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검은 송곳은 마치 상대의 창에 들러붙기라도 한 듯 완벽하게 그의 창술을 봉쇄했고, 아무리 떨쳐내려 애를 써보아도 떨어지기는커녕 더욱 찰싹 붙어 은색 창대를 휘감아 왔다.

본래 창이 검을 상대로 위력을 발휘하려면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했건만, 이렇게 상대의 검에 붙잡혀 있으니 백청은 자신이 가진 기술을 보여줄 기회조차 없었다.

그렇게 검은 송곳에 붙잡혀 공격다운 공격 한번 해보지 못 하기를 수 분, 돌연 기합소리와 함께 백청이 손바닥으로 사납게 창의 손잡이를 때렸고, 은백색의 장창이 살아있기라도 한 듯 거칠게 튀어 올라 그대로 준의 심장으로 향했다.

“쳇…!”

상대의 창에 실린 무시무시한 에너지에 준은 저도 모르게 두어 걸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보니, 백청의 얼굴이 기이한 붉은 색을 띠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만 성장한 게 아니야! 건방진 자식…!”

변한 것은 얼굴색뿐이 아니었다. 영혼 탐지능력을 사용해 상대의 염력이 몇 배나 흉폭하고 거칠어진 것을 발견한 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비술이군…하지만 천계의 불꽃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 게다가 얼굴색이 저렇게 눈에 띄게 변할 정도면 상당히 하급 비술이군.’

준의 예상대로, 백청이 익힌 것은 그다지 대단한 비술이 아니었다. 특히 혈관에 흐르는 에너지를 강제로 증가시키는 이런 종류의 비술은 부작용이 심해 자칫 잘못하면 사용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종류의 것이었다.

다만 천계의 불꽃같은 상급 비술이든, 지금 백청이 사용한 것 같은 하급 비술이든, 이렇게 급격하게 실력을 끌어올려주는 비술들은 한 순간에 생사가 갈리는 전투에서는 상당히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백청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준을 노려봤다. 이미 비술의 힘이 전신에 미친 듯, 그의 눈동자도 붉은색을 띠기 시작하고 있었고, 곧이어 그의 창끝에도 작은 뱀 같은 형상의 붉은 기운이 깃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준비를 마친 그가 창을 휘둘러보기도 전에 상대의 형상이 눈앞에서 사라지며 허공에 은빛 잔영을 남겼다.

그러나 이준의 형체가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 붉은 색의 창이 번개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가 수십 개의 그림자를 남겼다.

관객석에 있는 학생들 중 대다수가 은빛 섬광과 붉은 빛이 어지러이 교차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탄식을 내뱉었다.

지금 그들의 눈에는 두 사람의 형상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서로 다른 색을 가진 두 개의 빛이 남긴 잔영뿐이었다.

쾅!

그리고 새빨간 창이 곧게 뻗어나가며 바닥을 때려 부수는 순간, 준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번개의 춤’이 아니었다면 목숨을 잃을만한 일격이었다. 준은 순간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백청은 상대에게 숨고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노도와도 같은 기세로 다시 창을 들었다.

그러자 창끝이 기이하게 회전하며 창 주변에 있는 돌덩이들을 휘감기 시작했고, 준 역시 이에 맞서 검은 송곳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쾅!

또 다시 굉음이 터져 나오며 돌가루가 흩날렸다. 상황이 이쯤 되자 준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가기 시작했다. 상대가 자신이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격돌로 인해 생겨난 흙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시 새빨간 창끝이 꽃잎처럼 흩날리며 준의 급소를 향해 날아들었다.

챙! 챙!

차가운 금속성이 울리며 불꽃이 튀었다. 창이 자신의 검과 접촉할 때마다 준은 연신 뒤로 몸을 물렸고, 그 때 마다 딱딱한 바닥이 갈라지고 부서지며 돌조각이 튀어 올랐다.

쾅—

다시 한 번 창이 검은 송곳을 내리치는 순간, 준이 세차게 바닥을 밟았다. 그러자 그 곳의 지반은 완전히 박살나며 검은 송곳 위로 푸른 불꽃이 번쩍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아름답게 흔들리는 푸른 불꽃이 해일처럼 창끝에 어린 붉은 빛을 집어삼켰다.

푸른 불꽃은 이내 창대 전체를 휘감으며 새빨간 창을 산산이 때려 부쉈다. 하지만 창대가 부러지는 순간, 그 뒤에 숨어있던 형상이 귀신처럼 준의 눈앞에 나타났다.

“피의 화살!”

곧이어 무시무시한 고함 소리와 함께 새빨갛게 달아올랐던 백청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역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무시무시한 에너지는 여덟 갈래의 붉은 화살이 되어 준을 덮쳤다.

깜짝 놀란 준의 뒤로 몸을 날리자, 여덟 갈래의 붉은 화살이 또 다시 갈라지며 하늘을 뒤덮었다.

쾅!

……

“백청 놈의 피의 화살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군. 끝났어.”

관람석에서 둘의 대결을 바라보던 성치윤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를 피어올랐다.

“성치윤, 이준을 너무 얕보는군. 아마 이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류지안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 진짜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임수혁 역시 류지안과 같은 생각이었다. 백청의 공격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지금의 이준을 꺾기에는 무리였다.

그리고 임수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경기장을 가득 뒤덮은 먼지가 서서히 걷히며 검은 그림자가 그 속에서 걸어 나왔다.

“빌어먹을…!”

이 광경을 바라보던 백청의 핏기 없는 얼굴이 더욱 새하얗게 질려갔다.

그의 비술은 지속 시간 면에서도, 위력 면에서도 준의 ‘천계의 불꽃’에 비할 바가 못 됐다.

그렇기에 모든 염력을 쏟아 부어 필사의 일격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그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고, 이미 그의 몸에는 털끝만큼의 염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자욱한 먼지가 걷히고, 마침내 푸른색의 화염에 휩싸인 준의 모습이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먼지 속에서 등장한 그는 꼭 몸 전체가 푸른색 화염에 불타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푸른 불꽃은 지금껏 만들어 냈던 그 어떤 불꽃보다도 짙고 맹렬했다.

날카로운 눈을 가진 강자들은 지금 이준을 휩싸고 있는 푸른 불꽃이 마치 푸른색 갑옷처럼 보인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어떤 공격도 그에게 닿는 순간 뜨겁게 녹아 버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화염 갑옷을 입은 사내가 발걸음을 옮기자, 그를 둘러싼 공간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푸른 불꽃 앞에 광장 안에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지금 이준의 기세가 이전보다 엄청나게 강해졌다는 사실만은 모두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거리가 먼 곳에 있는 관중들까지도 이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 실제로 저 불꽃을 마주하고 있는 이는 얼마나 뜨거운 고온과 마주하고 있을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이게 바로 저 아이의 천지의 불꽃이로군… 하지만 저 나이에 저렇게까지 순수한 불꽃을 불러낼 수 있는 경지에 달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정말 불가사의한 일이군.”

준의 몸을 감싼 푸른 불꽃에 관객석에 있던 서천우 대장로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천지의 불꽃을 손에 넣는 것도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것을 길들여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그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준이 지금 만들어 낸 것은 그 불꽃을 극한까지 압축시킨 것뿐만 아니라 압축시켜낸 화염을 실제 갑옷의 형태로까지 만들어 낸 것이었다. 이는 준이 천지의 불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견문이 넓기로는 천하에 둘째가라면 서럽다고 자부하고 있는 대장로였지만, 저 나이 또래의 소년이 천지의 불꽃을 이 정도 경지까지 통제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고명한 연금술사들을 수도 없이 만나왔고, 그 중 신비한 불꽃을 다루는 연금술사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고, 천지의 불꽃보다 다루기 쉬운 불꽃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준 만큼 완벽하게 불꽃을 조종하지는 못 하고 있었다.

특히 화염갑옷은 연금술사 고유의 ‘불꽃 제어 능력’중에서도 가장 상급의 기술로, 웬만한 연금술사들은 천지의 불꽃이 아니라 다른 불꽃으로도 화염갑옷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사실 화염갑옷이라 해도 원리는 무투사들의 염력 갑옷과 똑같았다. 다만, 화염을 응축시켜 만든 갑옷이기에 그 견고함의 정도가 화염에 대한 통제력과 화염 자체의 강도와 직결된다는 점이 염력 갑옷과는 달랐다.

그리고 화염 자체의 강도로 치자면, 천지의 불꽃보다 더 사납고 강한 불꽃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니, 대지의 불꽃을 굳혀내 만든 화염 갑옷의 방어력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일 것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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