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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60화 (260/818)

제260화. 대결의 시작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 속에 드디어 첫 번째 대전이 시작됐다.

강력한 염력이 공중에서 서로 부딪히고, 두 개의 그림자가 어지러이 뒤엉키며 끊임없이 날카로운 소음을 만들어냈다.

둘 중 한 명은 불 속성 염력을, 나머지 한 명은 나무 속성 염력을 사용했는데, 실력 면에서는 나무 속성의 염력을 사용하는 학생이 더 나아보였지만, 서로의 속성이 상극인 탓에 연신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반면 불의 염력을 사용하는 참가자는 기지를 발휘해 자신의 염력을 한 데 끌어 모아 상대를 향해 강력한 불기둥을 만들어 쏘아대고 있었다.

그 때, 준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불속성의 염력을 사용하는 자가 졌어.”

“엥?”

그 말에 윤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준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누가 봐도 저 사람이 승기를 잡고 있잖아.”

“저 자가 공격을 매섭게 퍼붓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분명 오래 못 갈 거야. 상대 쪽이 전투 경험이 훨씬 많아. 상대의 진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나무의 염력이 비록 불의 염력보다 공격력은 좀 약할 수 있지만, 지속력은 훨씬 길잖아. 게다가 치유능력도 가지고 있고. 그런 것도 모르고 불 속성 염력을 쓰는 사람은 신이 나서 염력을 써대고 있지. 곧 뒤집힐 거야. 길어야 10분이야.”

옆에 있던 이은이 웃으며 대신 답했다. 그녀의 안목 역시 결코 준에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어떤 면에서는 준 이상으로 정확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이은의 설명을 들은 하늘과 윤영은 다시 경기에 집중한 채로 두 사람의 전술을 살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맞아.”

그 때 준이 살짝 고개를 틀어 제 옆에 선 이은을 바라보았다. 사실 준은 두 사람이 10분 안에 경기를 끝내게 될 것이라는 것까지 예측할 만한 능력은 없었다.

……

과연 결과는 은의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약 8분정도가 흘렀을 무렵, 팽팽하게 보이던 형국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방어만 하고 있었던 쪽에서 순간 무시무시한 기세로 상대에게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곧이어 그의 손에서 피어난 녹색 염력이 엄청난 힘으로 뻗어 나가 번개 같은 속도로 상대의 방어막을 뚫고 곧장 상대의 가슴에 닿았고, 불 속성 염력을 쓰던 참가자가 순간 창백해진 얼굴로 붉은 선혈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첫 번째 경기, 허윤 승!”

곧이어 대장로가 담담하게 대결의 결과를 선포했다. 그에게 이정도 경기는 아이들 장난 수준의 대결일 뿐 크게 흥분할 일도, 칭찬할 일도 아니었다.

경기장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자 대장로는 다시 자리로 가 등을 기대고 앉아 다음 패를 뽑아 들었다.

하지만 방금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패를 뽑아 든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화했다.

“재미있는 경기가 되겠습니다.”

“두 번째 경기, 28번.”

대장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한 사내가 싱글벙글 웃으며 경기장 위로 뛰어 올라왔다.

그가 무대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담한 체구의 여자가 폴짝하고 무대 위로 뛰어 올랐다.

“어이, 꼬맹이.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살살 할게!”

그리고 사내가 조롱 섞인 말로 보람을 도발하는 순간, 이준과 임수혁, 류지안의 이마에 동시에 식은땀이 흘렀다.

임수혁은 도저히 못 보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으며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저 불쌍한 자식… 아이고 모르겠다! 난 저 대결 못 볼 것 같아.”

경기장 위에 서있던 사내는 임수혁을 비롯한 강자들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끌끌차는 것을 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조그마한 소녀의 몸에 흐르는 염력은 한 눈에 보기에도 그리 대단치 않았고, 팔 다리 역시 가느다랗고 나약해 보여 도저히 임수혁이나 엄호가 두려워할만한 상대로는 보이지 않았다. 보람의 정체를 아는 몇 몇 강자들을 제외한 관중들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보람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관심조차 없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경기장 한 가운데로 이동해 몸을 풀다가 대장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기, 할아버지! 나 시작해도 되죠?”

천하의 대장로를 옆집 할아버지 대하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관객석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보람의 천진난만한 태도에 대장로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젓더니 이내 손을 들어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래, 시작하거라. 단, 절대로 사람의 목숨을 해쳐서는 안 된다!”

노인의 말에 소녀가 귀엽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야 모르죠. 나는 살살 한다고 했는데 저 놈 맷집이 너무 약하면…그래도 죽지는 않겠죠 뭐.”

“뭐라고!? 이 건방진게…”

자신의 반쪽만한 여자 아이가 자신을 무시하자, 사내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흥, 꼬마라고 해서 봐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 네가 자초한 일이니 날 원망하지 마라!”

사내는 얼굴이 시뻘개져 고함을 쳐댔지만, 보람은 짜증스런 표정으로 그 말을 무시하며 자신의 머리칼을 매만질 뿐이었다.

“이게…내가 누군 줄…!”

그리고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보람의 태도에 화가 난 사내가 다시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쾅’하는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보람의 발이 바닥을 내리찍자, 경기장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 거대한 진동과 함께 땅이 산산이 부서지며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소녀의 발밑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이 순식간에 사내의 발치까지 도달했다.

펑!

거대한 균열에 담긴 무시무시한 기운을 느낀 사내는 황급히 회백색의 염력으로 자신의 몸을 뒤덮었다.

회백색의 염력 갑옷이 형성되는 속도로 보아 사내 역시 상당한 실력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상대가 너무 나빴다.

갈라진 땅 틈새에 담긴 강렬한 에너지에 사내의 갑옷은 썩은 나무가 꺾이듯 힘없이 부서져 버리고 말았고, 이내 사내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으아아악!”

사내가 자신의 다리를 붙잡은 채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질러대는 광경에 관객석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금 전 보람이 보여준 공격은 그저 발구르기일 뿐 무투기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발구르기 한 번에 대투사급 강자가 무릎 꿇고 만 것이다.

“말도 안 돼… 심지어 염력도 사용하지 않았어. 저게 그냥 육체의 힘으로 만들어낸 위력이라고…?”

이은이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리자, 곁에 서있던 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마수들은 그 염력보다 강인한 육체를 바탕으로 전투를 하니, 보람의 힘이 이토록 강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정체는 보기 드문 상고 시대의 마수라고 했으니,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결국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대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보람의 승리를 선언했고, 보람은 싱겁다는 듯 입을 한번 삐죽 내밀고는 무대 밖으로 몸을 날렸다.

……

“쳇, 재미없어.”

경기장에서 빠져나온 보람은 그대로 허공을 가로질러 이준 곁에 착지했다.

“저 놈이 사람들 앞에서 다음 상대는 너라고 말하더라고. 그래서 혼 좀 내줬지.”

보람이 자신의 말총머리를 붙잡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준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그녀는 또 다시 장난스럽게 웃은 뒤 입을 삐죽였다.

“널 도와주지 않았다간 나중에 그 핑계로 요리를 해주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보람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아마도 이준에게 계속 빚을 지게해서 자신을 위한 연금비약을 제련하게 만들 요량인 듯했다.

“지금 나는 너 대신 저 녀석을 때려준 거고, 너는 나한테 은혜를 빚진 거야. 기억해둬.”

“하하, 그래. 내가 빚진 걸로 하지 뭐.”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신이 난 보람은 귀여운 덧니를 드러내며 연신 입이 찢어져라 웃어댔다.

“걱정 마. 내가 뒤에서 받쳐줄게. 무조건 네가 10위 안에 들 수 있게 할 거야. 누가 감히 네 자리를 빼앗으려 들면, 내가 바로 그 자식을 때려 반 죽여놓을게!”

곧이어 그녀는 자리에 있는 모든 참가자들에게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외쳐댔다. 이는 거의 협박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준은 그 철없는 작은 괴물의 협박에 귀여움을 느껴 가볍게 보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할게. 만약 누구 도움을 받게 된다면 10위권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거야.”

“이놈이…”

보람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 토라진 표정으로 고개를 휙하고 돌려버렸다.

“하하, 보람 선배와 이렇게 친한 줄은 몰랐는걸요.”

그 때, 갑자기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임수혁 일행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선배…”

“오! 너였군! 짜식! 오랜만이야! 어때? 좀 강해졌어?”

보람의 한마디에 임수혁은 기가 질린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대면한 것은 작년 순위 쟁탈전이었고, 그 날 임수혁은 다시는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처참하게 패배했었다.

“이번 대회 정말 재미없다. 너희끼리 놀아. 난 그만하고 싶어.”

“네…?”

보람은 그 말을 끝으로 하품을 한번 하더니 곧바로 몸을 날려 광장에서 사라졌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간 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임수혁이 준을 바라보며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준 후배님, 보람 선배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죠?”

“하하…그게 좀…”

준이 머쓱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임수혁이 잠시 망설이다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하하, 그럼 선배에게 만약 대회에서 만나게 되면 조금 살살해 달라고 부탁 좀 해줘요. 지는건 어쩔 수 없는데…그래도 체면이라는 게 있으니…”

‘뭐라고…?’

임수혁의 발언에 준은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강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임수혁 정도의 강자가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오는 것을 보니 대체 그녀의 진짜 힘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임수혁은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네 번째 대결, 15번!”

이준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임수혁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재판석에서 갑자기 준과 백청의 번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내 차례인가……”

검은 색 형상과 이에 대비되는 새하얀 형상이 무대 위에 마주서자, 관객석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준이랑 백청?”

“크크. 재밌겠네. 백청이 이준에게 패배한 뒤 내내 연금비약 탓을 했으니까. 그 말이 정말인지 알 수 있겠네.”

“내가 보기엔 어려울 거 같은데.”

“에이, 그래도 설마 백청이 신입생에게 질까봐? 지난번에 이준이 백청을 꺾은 건 순전히 연금비약 때문이라니까.”

준은 사람들의 대화를 무시한 채 곧바로 검은 송곳을 붙잡고 가볍게 팔을 휘둘렀다. 검은 송곳이 허공을 가르자, 강렬한 돌풍이 일어나며 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백청은 자신의 은색 창을 붙잡고 철전치 원수라도 만난 듯 싸늘한 표정으로 말없이 준을 노려봤다.

오늘 이 자리에서 준을 꺾지 못 한다면 자신과 ‘백의’의 위신은 땅에 떨어질 것이 분명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를 꺾어야만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자세를 잡자, 곧바로 대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결의 시작을 알렸다.

“대결을 시작하거라!

노인의 목소리가 사라지기 무섭게 푸른색과 노란색의 염력이 폭발하며 살벌한 기운이 온 광장을 뒤덮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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