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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58화 (258/818)

제258화. 대치

눈앞의 노인이 돌연 담담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네가 이준이구나? 내가 알기로는 천지의 불꽃끼리는 기묘한 끌림이 있다고 들었다. 어떠냐 정말로 네가 가진 불꽃으로 저 불꽃을 느낄 수 있느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려대던 준의 눈앞에 순간 광명이 비추는 듯했다. 자신이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장로들 사이에서는 제법 알려진 일 이었고, 앞의 노인 역시 이를 알고 있는 듯하니 여기서 사실대로 수긍한다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확실히 느꼈습니다. 하지만 탑 밖으로 나오니 기운이 모호해지는군요…뭔가 특수한 봉인이 설치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이준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답하자, 노인이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너를 나무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니 너무 긴장할 것 없다. 단지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해주기 위해서 온 것뿐이다.”

“네. 결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살아날 구멍이 보이자, 준은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준의 약속을 받아낸 노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수염을 쓰다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너를 굉장히 잘 알고 있다. 그 나이에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니, 실로 놀랍구나.”

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민망한 듯 뒤통수를 긁적인 뒤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장로님 존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흠흠…나는 서천우라고 한다.”

“아…설마 서천우 대장로님이십니까?”

본원 내에서 서천우 대장로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준은 상대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짐짓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 감탄하는 시늉을 했다.

“흠…그래. 그보다, 자네에게 부탁할게 하나 있네.”

대장로는 감탄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준을 향해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자네는 이미 탑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테니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네. 장로들의 힘만으로는 언제까지 저 불꽃을 억누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그러니 자네가 우리를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장로님들의 실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을 제가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네. 다 필요가 있으니 하는 말이야. 자네가 싫다고 하면 강요하지는 않겠네. 다만 본원의 대장로로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강구해보는 것이야. 어때,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나를 좀 도와줄 수 있겠나?”

대장로의 제안에 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때가 되면, 반드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허허, 그래. 자네 대답을 들으니, 조금 마음이 놓이는군. 만일 자네가 정말로 구름 불꽃을 진압하는데 도움을 준다면 본원에 있는 보물 중 그 어떤 것이라도 내어주지. 수련법, 무투기, 연금비약의 조합표, 약재, 뭐든지 말이야.”

준은 ‘구름불꽃을 줄 수 있습니까?’ 하고 묻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으며 예의바른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사흘 뒤면 본원의 순위 쟁탈전이 열리니 거기서도 최선을 다해보게. 10위 안에 들면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겠지?”

“하하, 장로님, 죄송하지만 저를 너무 높게 보신 것 같습니다. 제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준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레를 치자 대장로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허허…날 바보 취급하는 게냐. 물론 류지안이나 임수혁 같은 아이들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 실력을 발휘한다면 10위권은 문제가 없을텐데? 게다가 두 달 사이에 투령이 되고, 그 사이 다시 3성 투령을 목전에 둔걸 보아도 지금 자네의 말은 지나친 겸손 같은데 말이야.”

준은 자신의 행적은 물론이고 현재의 실력까지 모든 것을 손바닥 꿰듯 꿰고 있는 노인의 언행에 적잖은 공포감을 느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빌어먹을…설마 스승님의 존재나 6레벨 연금비약의 존재도 알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서천우는 준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자, 피식 웃으며 허공을 바라봤다.

“그래, 더 이상 캐묻지 않으마. 하지만 난 네가 10위 내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방금 전 나와 한 약속, 잊지 말거라.”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준의 어깨를 두드린 뒤 곧바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

대장로의 모습이 저만치 사라지자, 준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온 몸에서 한숨과 함께 기력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손바닥 뿐 아니라 전신에 땀이 흥건해 마치 비라도 맞은 기분이 들었다.

‘빌어먹을…! 가람 아카데미가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설마 운산급의 괴물이 있을 줄이야… 그보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알면서도 날 이용하기 위해 눈감아 주고 있는 건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가?’

준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힘없이 발걸음을 움직였다. 어느 새 해가 서산 너머로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 * *

본원의 ‘순위 쟁탈전’은 가람아카데미 내 최대의 행사이자 최강자들의 진정한 실력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동시에 ‘순위 쟁탈전’은 실로 투기대륙의 미래를 점칠만한 대회이기도 했다.

실제로 역대 순위 쟁탈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들 중 투기대륙에서 이름을 날리지 못한 자는 없었으며, 대회에서 그다지 뛰어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자라해도 가한제국 정도를 호령하는 강자가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대회가 다가오자, 본원 어디에 가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모든 학생들이 순위 쟁탈전의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 누가 더 강하니 약하니 하는 이야기로 갑론을박을 주고받고 있었다.

쟁탈전이 가까워질수록 30위에서 50위까지의 순위가 바뀌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심지어 최근 며칠간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명단에 든 강자들의 이름이 새겨지고 지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 * *

중앙 광장은 본원에서 제일 큰 장소로,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원의 가장 큰 행사인 ‘순위 쟁탈전’이 열리는 날은 모든 학생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그들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서는 중앙 광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순위 쟁탈전’이 열리는 당일이 되자 한 눈에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광장이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다행히도 참가자에겐 전용 통로가 있었고, 참가자인 이준 덕분에 이은과 다른 일행들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고생하지 않고 전용통로를 통해 이동할 수 있었다.

전용 통로를 통해 도착한 관람석에서 아래를 훑어보니, 넓디넓은 중앙 광장이 반듯하게 5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라버니, 몸 상태는 좀 어때요?”

준이 긴장한 표정으로 무대를 내려다보자, 곁에 있던 이은이 다정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글쎄…몸 상태는 좋은데…워낙 난다긴다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좀 기가 죽는걸.”

이은의 다정한 표정에 준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피이…괜히 약한 소리는! 그래서, 어느 정도나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보기에는 10위 내에는 들 것 같은데요?”

“글쎄…자신이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만만한 사람이 없으니까. 방심은 금물이겠지.”

“너무 겸손하군.”

그 때, 관람석에 앉아 가만히 둘을 바라보고 있던 오하늘이 짤막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얼마 전 그 역시 강자목록에 이름을 올렸으니, 그 역시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었다.

“너도 순위권 안에 들었다며?”

“41위. 너보다 한참 낮지. 부디 1차전에서 안 마주치길 바랄 뿐이야.”

“하하,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준은 오하늘의 무시무시한 재능 앞에 속으로 많이 감탄하고 있었다. 등수가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신입생이 강자목록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에게는 약로도 있고 , 연금비약과 천지의 불꽃이 있었다. 하지만 오하늘은 오로지 자신의 재능만으로 41위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오하늘의 재능이 자신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하늘과 대화를 나누다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무대 위로 하나 둘 참가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임수혁, 한율…”

무대 위에서 임수혁 일행을 발견한 준이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오늘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강자 중의 강자였다. 준이 임수혁 일행을 발견했을 때, 마침 임수혁도 이준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웃음을 지었다.

“하하. 이준 후배님, 부디 대회 시작하자마자 부딪히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요.”

“하하,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선배님과 붙으면 바로 탈락이니까요.”

“겸손하군요. 저는 이준 후배님이 꽤 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죠.”

준이 겸손을 떨자, 임수혁이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지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번개 같은 속도로 달려와 한율을 구하던 준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준이 오하늘과 함께 무대로 내려가자 임수혁이 다가와 친근한 태도로 손을 내밀었다.

“그보다, 탑에서 류지안 녀석과 또 붙을 뻔 했다고 하던데…오늘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류지안도 류지안이지만, 그 밑에 있는 녀석들도 하나 같이 만만치 않은 놈들이니까.”

두 사람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이, 갑자기 광장안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다.

무대 위에 서서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던 참가자들이 어느 새 하나 둘 입을 다물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양반은 못되는 놈이군.”

시선을 돌리자 건장한 체격의 사내를 필두로 몇 명의 남녀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류지안의 뒤에는 류헤이와 성치윤이 보였다. 둘은 준을 발견하자마자 살기 어린 눈으로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류지안 일행과 준을 비롯한 임수혁 일행이 마주서는 순간, 관객석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드디어 만났군. 오늘 너와 나, 둘 중에 누가 위인지 모두의 눈 앞에서 똑똑히 가려보자.”

“얼마든지.”

류지안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자, 임수혁이 피식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비록 덩치는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지만, 기세면에서는 오히려 임수혁이 더 앞서 보였다.

류지안은 그간 한 번도 임수혁을 이겨본 적이 없었다. 둘의 실력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언제나 간발의 차로 임수혁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 인해 류지안은 언제나 임수혁을 이기기 위해 칼을 갈았고, 이는 본원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얘기였으니 두 사람이 마주하자마자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두 사람은 모두 본원 내에서도 손에 꼽는 천재였고, 임수혁은 류지안에게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류지안은 임수혁을 꺾기 위해 단련에 단련을 거듭해 왔으니 둘의 대결이야말로 오늘 대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대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성치윤과 류헤이는 이준에게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류지안이 임수혁을 벼르고 있는 것 이상으로 그들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준에게 망신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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