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7화. 폭발
휴식 공간을 지나자, 수십 개의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수련실에서는 티 없이 맑고 농밀한 에너지가 은은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20여 개의 수련실을 지나 가장 구석진 곳에 도착하니 드넓은 1호 수련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1호 수련실에서는 다른 수련실과 달리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놀랄 거 없어. 1호 수련실은 특수제작 됐거든. 안에 있는 에너지가 너무 강해서 일반 재질로는 감당이 안 되거든. 그래서 에너지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재료를 쓴 거야.”
준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을 발견한 보람이 1호 수련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잠시 후 준이 1호 수련실 곁에 있던 새까만 철문을 바라보자, 보람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거긴 가면 안 돼. 출입이 금지된 곳이야. 저기 가까이 가기만 해도 영감탱이들이 게거품을 물걸?”
하지만 준은 못 박힌 듯 자리에 멈춰선 채 한참 동안 검은 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몸속에 있던 푸른 화염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준이 검은 철문에서 시선을 거두고, 1호 수련실의 문을 여는 순간, 곧바로 옅은 빨간색 불빛이 그의 눈을 찔러댔다.
수련실 내부는 꽤나 넓었지만 붉은 안개가 자욱하게 방 안을 메운 통에 고작 2, 3미터 앞까지 밖에 볼 수 없었다.
손을 뻗어 공중에 떠 있는 붉은 안개를 만지자, 뜨끈한 열기와 함께 붉은 색의 수증기가 몸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도 높은 에너지는 준의 몸에 스며들자마자 곧바로 혈관을 타고 온 몸을 질주했다.
“엄청난 에너지야!”
5층 고급수련실의 거의 10배에 달하는 에너지에 준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곳에서 수련을 할 수만 있다면 20일 이내에도 엄청난 진보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때? 대단하지?”
등 뒤에 있던 보람이 우쭐거리며 말했다.
준은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수련실 중앙에 위치한 석판으로 향했다.
“아참, 너 불 에너지 카드는 갖고 있겠지? 그리고 이 1호 수련실은 다른 곳보다 좋은 곳이라 꽤 많은 불 에너지를 써야 해. 하루에 30개야.”
“뭐? 30개?”
상상 이상의 비용에 준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한 달에 1000개에 가까운 불의 힘이 필요하다니……
만일 연금비약을 판매하며 불의 힘을 벌어들이지 못했다면 이곳에서의 수련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너 설마 ‘불의 힘’이 없는 건 아니지? 그건 나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멍하니 서 있는 이준의 모습을 보고 보람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은 뒤 곧장 석판 앞에 다가가 자리를 잡았다.
“이제 저는 수련을 시작할거예요. 수련할 동안은 절대로 방해하면 안돼, 알았지?”
“흥, 알았어! 그럼 난 갈게! 대신 꼭 약속 지켜야해!”
“그럼, 걱정하지 마.”
준이 또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보람은 입을 한번 삐죽 내밀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수련실을 빠져나갔다.
* * *
1호 수련실에서 수련을 시작하자, 지금까지와는 달리 한 덩어리의 불꽃이 나타나며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고, 심장의 불꽃이 타오르며 놀라운 속도로 담금질이 이루어졌다.
열기가 강한만큼 통증도 강렬했지만, 지하의 유액을 흡수한 탓인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그 사이 성게 모양의 힘의 수정에 돋아났던 가시는 아홉 개에서 일곱 개로 줄어들어 있었다.
기묘하게도 투령 계급에 진입한 이후로는 한 단계를 뛰어넘을 때마다 가시가 줄어들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염력 회오리에 일어났던 변화가 주로 ‘증가’나 ‘팽창’을 연상시키는 것에 비하면, 이는 아주 대조적인 현상이었다.
준은 언젠가 그 가시가 모두 사라지고 투왕 계급에 들어설 것을 상상하며 조용히 눈을 감고 수련에 집중했다.
* * *
몸속의 염력이 하루가 다르게 점차 강해지고 순수해져 가는 걸 느끼고 있자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느낄 틈도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1호 수련실에 들어간지 5일 뒤, 마침내 준이 문 밖으로 나왔다.
불과 5일 사이, 준은 자신의 염력이 놀라울 정도로 늘어났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힘의 수정에 나있던 일곱 번째 가시는 이미 반이나 줄어 있었다.
……
그리고 다시 이틀이 지났을 때, 보람이 약재 더미를 들고 뾰로통한 표정으로 준을 찾아왔다. 아마도 준이 지난 일주일 동안 자신의 식량 사정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준이 민망한 표정으로 웃으며 ‘약재 경단’을 만들어주자, 보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히 웃으며 먹을 것을 들고 수련실 밖으로 나갔고, 준은 곧바로 다시 석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준은 본원의 ‘순위 쟁탈전’이 열리기 전까지 1호 수련실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요량이었다.
지금 대회에 대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확실한 전략은, 1호 수련실에서 최대한 염력을 늘리는 것이었다.
……
펑!
그렇게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작스레 들려온 거대한 폭발음이 준을 강제로 수련 상태에서 끄집어냈다.
눈을 뜨자 온 수련실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이 보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서 에너지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탑 안에 있는 모든 학생 여러분! 10분 안에 즉시 천계의 탑을 떠나십시오!”
그 때, 노인의 고함소리가 온 탑 안에 울려 퍼졌다.
“탑 내부의 에너지가 폭발하고 있다. 틀림없이 구름불꽃 때문일 게야.”
약로의 설명에 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재빠르게 홈에서 불 에너지 카드를 뽑아냈다.
정말로 구름불꽃이 폭발했다면 앉아서 수련이나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구름 불꽃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최소 몇 개월 정도는 남지 않았었나요?”
“아직 완전히 폭발한 것 같지는 않다. 허나 지금 기세로 보아서는 길면 반년이고, 짧으면 2-3개월 내에 놈이 완전히 폭발하고 말게다. 우선 지금은 밖으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서두르거라.”
준은 스승의 지시에 따라 곧바로 1호 수련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방문을 나서자 타오를 듯이 뜨거운 기운이 그를 덮쳤다.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열기였다.
곧이어 하나 둘 수련실의 문이 열리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한 학생들이 뛰쳐나왔다.
“이준! 괜찮은 거야?”
9호 수련실에서 뛰쳐나온 임동수가 준에게 달려오며 말했다.
“괜찮아요.”
“대체 무슨 일이지?”
동수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사이, 준이 고개를 돌려 복도 끝에 있는 검은 철문을 바라봤다.
순간 그의 몸속에 있던 ‘대지의 불꽃’이 폭발하듯 일렁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푸른 불꽃은 살아있는 생명처럼 스스로 준의 혈관을 타고 올랐고, 준의 눈동자를 푸른색으로 물들였다.
다음 순간, 준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 * *
천계의 탑 중심에 위치한 공간 결계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꽃이 미쳐 날뛰는 야수마냥 울부짖으며 사방으로 불꽃을 뿌려대고 있었다.
“봉인!”
그 순간 낮고 묵직한 몇 마디 고함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고, 농밀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며 공간 결계 위를 덮었다.
곧이어 일그러진 공간 위에서 눈부신 빛과 보이지 않는 불꽃이 충돌을 일으키고, 살을 벨 듯한 날카로운 기운이 터져 나오며 천계의 탑을 뒤흔들었다.
……
“이놈들! 대장로님께서 서둘러 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는데, 어찌 아직까지 꾸물대고 있는 거냐?”
6층을 담당하던 교사의 호통소리에 준의 눈동자에서 푸른 불꽃이 사라지고, 손에 잡힐 듯이 보이던 벽 너머의 풍경 역시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췄다.
* * *
인파를 따라 천계의 탑 바깥으로 나오자, 탑 주위에 구름처럼 학생들이 몰려있는 것이 보였다.
입구에 있는 사람들 역시 이준처럼 안에서 수련을 하다가 황급히 밖으로 나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천계의 탑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준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나와 땅 위로 뚫고 나온 거대한 탑의 꼭대기를 조용히 바라봤다.
‘흐음… 부디 잘 막아줘야 할 텐데.아직 구름 불꽃을 흡수할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어.’
만일 지금 구름 불꽃이 천계의 탑을 벗어나 달아난다면 손쓸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구름 불꽃을 흡수하려 했다가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일 이었다.
“걱정 말거라, 장로들의 봉인을 깨뜨리기에는 폭발이 약하다.”
그 때, 약로의 온화한 목소리가 준의 머리에 울려 퍼졌다. 스승의 말에 준의 입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가자, 이준. 여기에 있어봤자 소용없어, 이번 일은 장로님들께서 해결하실 거야.”
옆에 있던 임동수가 어깨를 두드리며 재촉했지만, 준은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약로의 부활이 걸려있는 구름 불꽃이 달아나 버릴지도 모르는 판국에 그렇게 쉽게 발이 떨어질 리가 없었다.
준이 꼼짝도 하지 않자, 몇 번인가 더 준의 어깨를 두드리던 임동수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기 머물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난 먼저 돌아가도록 하지. 그리고 4일 뒤에 본원 순위 쟁탈전이 열린다는 거 잊지 말고.”
임동수는 그 말을 끝으로 인파를 헤치고 광장에서 사라졌고, 준은 다시 고개를 돌려 천계의 탑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탑 주변에 머물던 사람들 역시 빠르게 줄더니, 오래지 않아 인산인해였던 곳이 순식간에 텅 비었다.
오직 이준 한 사람만이 여전히 탑 주변에 있는 나무 위에 서서 눈을 감고 탑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대지의 불꽃’ 덕에 탑 내부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긴 했지만, 탑 안에서처럼 구름 불꽃과 장로들의 염력이 대결을 벌이는 것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을 무렵, 마침내 구름 불꽃의 기세가 눈에 띄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준은 그제서야 비로소 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그러나 준이 막 몸을 돌리려는 찰나, 갑자기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준의 앞을 막아섰다.
자신을 막아선 자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든 준은 순간 온몸의 털이 거꾸로 서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앞에는 지난 번 6레벨 연금비약인 ‘땅의 정령단’을 만들 때 그 먼 숲까지 자신을 찾아왔던 바로 그 검은 옷의 노인이었다.
“자…장로님. 무, 무슨 일로…?”
준이 더듬거리며 시선을 피하자, 노인이 싸늘한 표정으로 준을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탑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게로구나. 그렇지?”
노인의 질문에 당황한 준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눈동자를 굴려댔다.
구름 불꽃은 본원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으니,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자신을 이 자리에서 죽여 입을 막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생각이 머리에 스치자, 순간 온 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노인은 옷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식은땀을 흘려대는 준을 빤히 바라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노인네…차라리 뭐라도 말을 하라고…’
달아나야 할까, 스승님께 도움을 청해야 할까, 거짓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사실대로 이실직고해야 하는 걸까…준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앞에 있는 사내는 얼핏 보기에도 운남종의 전 종주인 운산과 맞먹는 기운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말 한 마디에 목숨이 걸려있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