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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56화 (256/818)

제256화. 성치윤

“이준?”

그 때, 누군가가 준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으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동수 선배, 여기 계실지 몰랐네요.”

“본원에서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나보군. 2성 투령이 6층이라니. 다른 애들이 알면 엄청 부러워하겠어.”

임동수가 웃으며 말했다. 준은 민망한 듯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15연승 중이라고 들었다! 대단하던데? 하지만 방심 하지 말라고. 아직 본원 내에는 강한 놈들이 줄을 섰으니까! 그 놈들을 줄줄이 꺾으면 도전이 조금 줄어들 거야. 그 때 부터는 조금 편해지지. 뭐… 심심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두 사람이 친밀한 태도로 대화를 주고받자,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동수는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는 듯 신이 나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너에게 도전할 진정한 강자들 중 대부분이 여기 있으니까 조심하는게 좋을 거야. 아, 누군가가 귀찮게 군다면 날 찾아와. 나도 한동안 여기서 나가지 않을 생각이니까 말이야. 마침 실전 감각도 많이 떨어져 있으니까 몸도 풀겸 대신 해결해줄게.”

임동수는 사람들이 준과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끼고는 은연중에 그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동수는 이미 강자목록에서 오랜 기간 10위권 이내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투사였으니 그의 이런 발언에 모두가 슬슬 눈을 피했다.

“고맙습니다.”

준은 임동수의 언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 채고는 곧바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몸이 근질거리면 류지안 형님을 찾아가서 좀 놀아 달라고 해보지 그래. 마침 여기서 수련 중이시거든.”

그러나 임동수가 막 돌아서려는 찰나, 부드러운 사내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임동수는 고개 돌려 상대를 확인하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어차피 류지안과는 대회에서 붙게 될 테니까. 그 때 누가 위인지 확실히 보여주지.”

임동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세 사람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셋 중 가장 앞에 있는 빨간 망토를 가진 사내는 얼핏 보면 여자로 착각할 만큼 여성스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여리여리하고 나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온 몸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 놈이 강자 목록 17위의 성치윤이라는 놈이다. 류지안 쪽 사람이야. 류헤이를 쫓아다니는 얼간이지. 실력은 7성 투령 정도야.”

임동수가 고개를 돌려 준에게 상대에 대해 설명했다.

“흥…기대하지. 무슨 자신감으로 류지안 형님보다 네가 위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정작 형님에게는 도전장도 내밀지 못 하고 꼬리를 말고 있는 놈이 허접한 놈들을 상대로 몇 번 이겼다고 기고만장하기는…그리고 그런 임동수를 믿고 뭐라도 되는 냥 숨어 있는 네놈 실력도 알만하군.”

임동수의 말을 맞받아치던 성치윤은 갑자기 준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그의 의도는 명백했다.

류헤이와 마찰이 있었던 이준을 혼내주고 싶지만, 자신보다 한 수 위인 임동수가 그를 싸고도니 준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다.

그 때, 성치윤의 속내를 알아차린 이준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머리를 쓰려면 제대로 쓰시죠. 동수 선배가 저를 싸고도는데 동수 선배와 붙을 자신은 없으니 저를 도발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유치하군요.”

이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치윤의 몸 전체에서 살기등등한 기세로 염력이 뿜어져 나왔고, 준 역시 곧바로 염력을 폭발시키며 상대를 노려봤다.

두 사람이 금방이라도 맞붙을 것 같은 분위기로 대치하자,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모여들어 둘을 에워쌌다.

탑 안에 있으면 수련은 빠르게 할 수 있었지만 굉장히 무료하고 메마른 나날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이준과 성치윤의 싸움이 학생들의 흥미를 끄는 것이 당연했다.

“너 이자식…”

다음 순간, 위기를 감지한 임동수가 반사적으로 염력을 끌어올리자, 준이 조용히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이번 기회에 20위권 이내의 강자의 실력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준의 손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동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서자, 눈 깜짝할 새에 준의 손에 시커먼 송곳이 나타났다.

곧이어 준의 몸에서 진하고 묵직한 기운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성치윤이 두 손을 짝 돌리자, 새파란 염력이 쏟아져 나오며 그의 몸을 감쌌다. 그의 몸을 감싼 푸른색 보호막은 바람이 무는 잔잔한 호수의 표면처럼 미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상대의 몸 주위를 감싼 잔잔하고도 농밀한 물속성의 염력 앞에 준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과연 17위에 오를만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불속성의 투사들과 달리, 준은 강력한 물속성의 염력을 가진 투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불꽃 속성의 투사라면 물속성의 투사와 싸울 때 반쯤은 지고 들어가는 것이었지만, 천지의 불꽃을 가진 준에게 물속성의 투사는 오히려 손쉬운 상대였다.

‘대지의 불꽃’이 가진 미칠듯한 열기가 물 속성 염력의 위력을 2,3할을 깎아주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갑자기 가느다란 번개 소리가 울리며 준의 형상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펑!

다음 순간 검은 송곳이 방대한 에너지를 쏟아내며 촘촘하게 밀집된 염력 보호막을 가격했고, 순식간에 눈으로도 보일 정도의 기운이 파동을 일으키며 물결처럼 요동쳤다.

양측이 서로 부딪히는 순간, 준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평범한 물 속성의 보호막처럼 보이던 성치윤의 염력이 묘하게 점성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물처럼 촘촘하게 형성된 보호막의 재생속도가 너무 빨라 아무리 송곳을 휘둘러보아도 상대에게 타격을 입힐 수가 없었다.

준이 상대의 보호막에 막혀 이렇다 할 공격을 하지 못 하고 있는 사이, 성치윤의 손끝이 짙푸른 염력으로 뒤덮이며 칼날처럼 날카로운 손톱이 만들어졌다.

쉬익!

곧이어 성치윤의 손톱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갑자기 물로 된 보호막이 거미줄처럼 변하며 준의 송곳을 옭아맸다.

“이…이런!”

쾅!

두 사람 사이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자, 학생들 중 몇 몇이 준의 패배를 확신했다. 성치윤의 장기인 ‘생명의 수벽’에 맞선 상대들 중 대부분은 방금 전 준이 당한 것과 똑같은 방식에 무릎을 꿇곤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뜻 밖에도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안개 밖으로 튕겨나왔고, 또 다시 번개처럼 몸을 날려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준의 손에 들린 검은 송곳에는 어느 새 옅은 푸른색 화염이 일렁이고 있었다.

“오, 이준 후배!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임동수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주위에 있던 학생들도 약속이나 한 듯 탄식을 내뱉었다. 강자목록에서 제법 상위권에 있는 학생들도 애를 먹곤 하는 ‘생명의 수벽’을 준이 너무도 간단하게 파해했기 때문이다.

“다들 그만둬!”

하지만 이준이 다시 공격을 개시하려던 찰나, 날카로운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지안 형님!”

자신을 불러 세운 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곧바로 알아차린 성치윤은 곧바로 몸을 돌려 상대를 바라봤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류지안은 그를 편들어 주기는커녕 노기어린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성치윤! 내가 분명히 지금은 수련에 집중하는 시기이니 어떤 감정이든 대회에서 풀라고 하지 않았었나!”

류지안의 호통에 성치윤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이준을 노려보며 염력을 거두어들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하지만 대회에서는 이렇게 끝나지 않을거야.”

성치윤이 염력을 거두어들이고 몸을 돌리자, 준을 천천히 훑어보던 류지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재미있는 후배군. 대회에서 보자. 그 때 네놈 버릇을 고쳐주지. 본래 목표는 임수혁이었지만, 네놈을 밟아주는 것도 빼놓아서는 안 되겠어.”

“누구 마음대로?”

그 때, 티 없이 맑은 목소리 하나가 사람들의 귓등을 때렸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돌아본 구경꾼들의 얼굴이 순간 사색이 되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그마한 여자 아이 하나가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채 류지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하, 보, 보람 선배…”

보람은 새파랗게 질린 류지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주변에 모여든 구경꾼들이 황급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보람이 다시 입을 여는 순간,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야! 너! 내가 말하지 않았어? 누가 괴롭히면 날 찾아오라고? 너도 같이 맞을래? 내가 너 괴롭히는 놈들 다 두들겨 패준다고 했지?”

“작은 다툼 정도예요. 제가 해결할 수 있고요.”

이준이 웃으며 고개를 젓자, 새파랗게 질려있던 학생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만일 보람이 한번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무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 설마 요리하기 싫어서 내 도움을 거절하는 건 아니겠지!”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는 보람의 모습에 귀여움을 느낀 준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마.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만들어줄게.”

마치 귀여운 여동생이라도 대하는 듯 괴물의 머리를 쓰다듬는 준의 모습에 학생들은 완전히 넋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

혹시라도 이준이 자신을 지목할까봐 조마조마해하며 눈치를 살피던 류지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보람 앞에서 더 이상 한마디라도 말실수를 했다가는 대회에 나가기도 전에 반병신이 될지도 몰랐다.

“조…좋아. 이준 후배. 오해가 있었다면 미안하군. 시비는 아니었어. 대회에서 공정하게 실력을 겨뤄보자는 의미야.”

류지안은 그 말을 남기고 슬금슬금 자리에서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 모여든 구경꾼들도 보람의 눈치를 살피며 각자 갈 길을 찾아 흩어졌다.

“어쩐지…무슨 배짱으로 성치윤과 싸움을 벌이나 했더니…믿는 구석이 있었군?”

동수가 자신의 등을 찌르며 장난스레 말하자, 준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는지 곧바로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여기 수련실은 전부 사용 가능한 건가요? 출입조건 같은 건 없고요?”

“당연히 있지. 6층에는 고급, 중급, 하급 같은 구분이 없어. 전부 강자 목록에 이름을 올린 고수들을 위해 준비해둔 곳이니까. 그래서 수련실은 네 순위에 따라 들어가면 돼. 지금 네 순위가 31위니까 31호 수련실로 들어가면 된다는 소리야. 등수가 올라갈수록 더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여기서 수련하려고?”

준이 수련실로 향하려 하자, 보람이 대뜸 물었다.

“네.”

“그럼 내 수련실을 써. 1호야. 9호실보다 두 세배는 좋을 걸.”

보람은 아이 같이 천진난만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1호실은 그녀의 전용 수련실로, 본원의 그 누구도 그곳을 탐내지 못 하는 곳 이었다.

“수련실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도 있어?”

이준이 깜짝 놀라 물었다.

“수련실 주인이 허락하면 안 될 것도 없지.”

보람의 제안에 임동수가 허탈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갑자기 찾아온 뜻밖의 행운에 준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렸다. 대회까지 20일 남짓 남아 있는 시점에 이런 행운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좋아. 고마워, 대신 다음에는 더 신경써서 맛있는 걸 만들어줄게.”

이준이 자신의 제안에 응하자 보람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좋아! 대신 네가 수련하는 동안에도 내 식량이 떨어지면 먹을 걸 만들어 줘야해?”

“알았어. 약속할게.”

“히히! 좋아! 따라와!”

이준의 깔끔한 대답에 보람은 더욱 신이 난 듯 빠르게 준의 손목을 잡아끌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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