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화. 마지막 한 가지 재료
제련에도 큰 집중력이 필요하지 않았고, 모처럼 인간화된 마수를 만났으니 준은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것들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저, 내가 뭐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뭔데?”
“마수가 인간이 되려면 투황 정도는 되어야 하는거 아니야?”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그저 우연히 귀한 마수의 풀잎(化形草)이라는 약재를 먹어서 지금 이 모습이 된 거지. 게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 이 약재들을 먹어서 빨리 성장해야 마수와 인간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거든.”
“마수의 풀잎? 어쩐지….”
마수의 풀잎은 마수의 구슬을 조제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재료로, 마수의 구슬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
만약 투황급의 마수가 그것을 먹었다면 쉽게 성인 인간으로 변화할 수 있지만, 실력이 낮은 단계 상태에서 먹었다면 지금 이 소녀처럼 변화된 뒤 실력이 투황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어린 아이의 모습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앞으로는 사람을 먹어치우겠다는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너도 이젠 인간이잖아.”
“그냥 말하는 거지. 내가 뭐 진짜로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거야…”
준은 소녀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바쁘게 손을 놀려 제련을 계속했다.
끈적한 액체로 변한 주황색 액체에 새하얀 약가루를 쏟아 넣자, 얼마 지나지 않아 주황색 액체가 단단하게 굳어지며 작은 알약 형태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연금비약도 이렇게 쉽게 만들어진다면 좋겠네…”
경단처럼 생긴 알약이 완성되자, 준은 그것을 옥병 안에 넣어 소녀에게 건넸다.
“자, 먹어 봐. 생으로 먹던 것보다는 훨씬 나을거야.”
옥병을 받은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안에서 주황색 알약을 꺼내어 입으로 가져갔다.
“음…맛있어.”
“대신 이 알약은 너 혼자만 먹어야 해.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줘선 안돼.”
소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흥, 내 먹을 것도 부족해. 걱정하지마. 그나저나, 돌팔이인 줄 알았는데 제법이네? 혹시 너에게 시비를 거는 놈이 있다면 나한테 일러. 내가 해결해 주지.”
자그마한 소녀의 당돌한 언행에 준은 피식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허허, 알겠어. 그렇게 할게.”
“대신, 오늘 만든 것들을 다 먹으면 또 맛있는 걸 만들어 줘야해! 어때?”
“알았어. 다 먹으면 나를 찾아와. 내 이름은 이준이야. 신입생 구역에 와서 비석이라는 세력의 아이들을 찾으면 내가 있는 곳을 알고 있을 거야.”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어. 아까 영감탱이가 널 이준이라고 불렀으니까.”
“좋아, 그럼 네 이름도 알려줘.”
“나는 보람이라고 해. 사람이 되고 나서 붙은 이름이야. 근데 본원에 있는 놈들은 나를 ‘마귀’라고 불러. 망할 것들. 내가 모를 줄 알고? 흥, 어찌됐든. 오늘 네가 만든 요리를 다 먹으면 찾아갈 테니까, 혼내줄 놈이 있다면 미리 명단이라도 만들어두라고.”
보람이 자신 만만한 표정으로 주먹을 들어 올리자, 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입을 여는 순간, 준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참, 참고로 아카데미의 강자목록 1위가 바로 나야. 그러니까 급한 일이 있으면 내 이름을 대. 아마 웬만한 건 그냥 넘어갈 수 있을걸?”
……
보람이 사라지자, 준은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가 혁 장로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혁 장로님, 저 녀석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대단하지.”
“보람이 본래 무슨 마수였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마수의 풀잎을 먹었으니 스스로 본체를 보이지 않는 이상 어떤 마수였는지는 모르지. 허나 그 꼬맹이의 무시무시한 힘으로 봤을 때는 아마도 아주 희소하고 보기 드문 상고시대의 이수(異獸)가 아닌가 싶구나. 일반적으로 평범한 마수가 투왕 단계까지 도달하려면 백 년이라는 시간으로도 턱없이 부족해. 근데 아무리 보아도 백 년 이상 수련한 마수 같아 보이지는 않으니… 아마 내력도 평범한 것 같지 않구나.”
“흐음…”
노인의 설명에 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약솥을 꺼내들었다. 본원의 장로조차 내력을 알지 못 하는 마수라니. 참으로 그 내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람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자 혁 장로가 아카데미의 규정에 따라 ‘용의 얼음’에 걸맞는 연금비약을 준에게 제시했다.
그가 약재의 대가로 준에게 제시한 것은 바로 얼마 전 만들었던 ‘용의 힘’ 한 알 이었다.
준은 곧바로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한 뒤 다시 청색 화염을 약솥에 불어넣었다.
보람에게 만들어 준 ‘약재 경단’은 단순히 불로 가열하고 약간의 조미료 정도만 넣은 정도이니 대화를 나누면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지만, 5레벨 연금비약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비록 투령이 되면서 실력이 향상되어 전보다 더 쉽게 제련에 성공할 것 같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5레벨 연금비약을 그렇게 뚝딱 만들어낼 수는 없었기에 준은 혁 장로에게 양해를 구한 뒤 약재를 받아들고 창고내의 작은 방으로 향했다.
* * *
준이 밀실에 들어가 틀어박힌 뒤 어언 7시간. 마침내 ‘용의 힘’의 제련 작업도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이번에는 한 번의 실패 끝에 다이아몬드 모양의 5레벨 연금비약을 만드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두 번의 실패 끝에 간신히 제조에 만들었으니, 제법 성공률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완성된 ‘용의 힘’을 옥병에 넣은 뒤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아 기력의 조각 한 알을 꺼내 삼키고 조용히 염력을 회복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염력을 회복한지 꼬박 두 시간, 마침내 준이 눈을 떴다.
“이제 물속성의 마정석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스승님, 물속성의 마정석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방법을 생각해야지. 요 며칠 사이 구름 불꽃의 파동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 같으니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네, 최선을 다해 볼게요.”
“허허, 너무 부담 갖지 말거라. 이렇게 큰 산에 6레벨 마수 하나가 없겠느냐. 정 급하면 직접 6레벨 마수를 잡으면 될 일이다. 다만, 거래를 통해 구하는 편이 좋겠지. 6레벨 마수를 잡는다는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잡는다고해도 마정석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스승의 말대로였다. 최악의 경우에는 직접 6레벨 마수를 잡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 혼자 6레벨 마수를 잡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었고, 결국 약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는 현재 영혼의 궁전의 추격을 받고 있는 약로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위험한 일 이었으니, 준은 스승에게 그런 부담을 안기고 싶지 않았다.
준은 일단 고개를 끄덕인 뒤 속으로 어떻게든 거래를 통해 물속성의 마정석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밀실을 나가 혁 장로가 있던 방으로 들어가자, 서류 뭉치를 들여다보고 있던 혁 장로가 고개를 돌려 준을 바라봤다.
“성공했느냐?”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성공은 했습니다.”
준은 웃으면서 품안에서 옥병 하나를 꺼내어 탁자위에 올려두었다. 혁 장로가 그 옥병을 건네받아 뚜껑을 열자, 암홍색의 알약에서 진한 약향이 풍겨나왔다.
“훌륭하구나. 그럼 규정대로 용의 얼음을 가져가거라. 그나저나, 그 귀한 약재는 어디다 쓰려고 하느냐? 그 물건은 본원의 약재 창고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는 보물인데…여튼 5레벨 연금비약을 제조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본원 창고에 있는 웬만한 약재는 다 내어줄 수 있겠구나. 필요한게 있다면 언제든지 들르거라. 다만, 다음에도 약재 수준에 맞는 연금비약을 만들어 아카데미측에 제공해야 약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은 알아두고.”
노인의 말에 준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장로님,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6레벨의 물 속성 마정석도 가지고 있습니까?”
“6레벨이라… 아쉽게도 6레벨 마정석은 없구나. 투황급 마수를 잡아야 얻을 수 있는 물건이니 본원 내에서도 상당히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거든.”
“으음, 알겠습니다.”
마정석을 구하는데 실패한 준이 아쉬운 표정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혁 장로가 입을 열었다.
“잠깐, 하지만 다른 장로 중에 6레벨의 물 속성 마정석을 가진 자가 있을게다. 다만 아카데미 물품이 아닌 개인 재산이니 아마도 개인적으로 거래를 해야 할게야.”
“정말입니까?”
“그래. 헌데 그 사람이 너에게 6레벨 마정석 대신 뭘 요구할지 모르겠구나. 꽤나 까다로운 양반이라 말이지. 일단 따라 오거라.”
“6레벨 마정석을 가진 장로는 유대영이라는 자다. 본래 천계의 탑 5층을 관리하는 사람이지만, 오늘은 쉬는 날이니 그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면 될게다. 유대영을 만나면 말을 돌리지 말고 용건만 간단히 하거라. 빙빙 돌려 말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 그리고 성격이 조금 괴팍하니 그것도 감안하고. 가급적이면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편이 좋을 게다. 기분이 틀어지면 무슨 조건을 내걸어도 물건을 내놓지 않을게야. 반대로 기분이 좋다면 제법 저렴하게 교환이 가능할지도 모르고.”
“그런데…6레벨 마정석이면 투황급 마수에게서나 나오는 물건 아닌가요? 유 장로님은 어떻게 그런 물건을 가지고 계신 거죠? 본원 약재 창고에도 없는 물건을…”
“으음…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까지는 모르겠구나. 개인적으로 구한 것 같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흐음…. 유 장로님은 무슨 속성의 염력을 가지고 계신가요?”
이준의 질문에 혁 장로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장난스레 답했다.
“불속성. 그래서 성격이 지랄 같은 거지….허허허.”
그렇게 담소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 새 조용한 숲 길 사이로 작은 오두막 하나가 보였다.
혁 장로가 문을 두드리려하자, 오두막 안에서 짜증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들어와. 무슨 노크야 노크는.”
첫마디부터 준은 왜 혁 장로가 빙빙 돌리지 말고 바로 용건을 말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하나가 혁장로와 준을 훑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용건이 뭐야.”
“자네에게 사람 하나를 소개해주려고 왔네.”
“누군데?”
“이준이라고 합니다.”
“이준? 들어 본 이름인데. 혹시 네가 5레벨 연금비약을 제조한 그 이준이냐? 좋아. 용건부터 말해봐.”
“이 친구가 급히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말이야. 만일…”
“됐어. 그래서 뭐가 필요한데. 나에게 필요한 게 있다면 내주도록 하지. 귀한 게 아니라면 재능이 뛰어난 학생 같으니 그냥 내줄 수도 있고.”
또 다시 유 장로가 혁 장로의 말을 자르자, 준이 곧바로 본론을 말했다. 동수 이상으로 성격이 불같은 인물이니 이 이상 말을 돌려서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6레벨 물 속성 마정석입니다.”
‘6레벨 마정석’이라는 말에 유대영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저었다.
“흥, 학생이 그런 물건은 뭐에 쓰게, 됐어. 돌아가 봐.”
“자네가 수련하는 비급이 불속성이니 그 물건은 어차피 자네한테는 아무런 쓸모가 없지 않나. 하지만 이렇게 얘기조차 들어보지 않는건 이 아이가 자네에게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어서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얘기라도 해보지 그래?”
혁 장로의 말에 유대영은 더 이상 듣기도 싫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흥, 그럼 영혼의 정수를 가져와.”
‘영혼의 정수’라는 말에 혁 장로는 기가 차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자네 너무 하는구만. 영혼의 정수면 6레벨 마정석 두 세 개는 구할 수 있는 물건이라고.”
“그래서 줄 수 있어 없어. 그것만 말해. 짜증나게 하지 말고.”
유 장로가 또 다시 성을 내자, 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장로님, 영혼의 정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돌아가거라.”
“대신…”
하지만 준이 저장반지에서 무언가를 꺼내드는 순간, 유 장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준이 꺼내든 것은 엄지손가락 굵기 만한 청색의 씨앗 몇 개로, 씨앗을 꺼내들자마자 뜨끈한 열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워나갔다.
“이 정도 물건이면 6레벨 마정석과 교환이 가능할 듯 한데…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