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화. 6성 투령과의 대전
한편, 경기장 한 구석에서는 아카데미 최고의 강자인 임수혁과 엄호가 오하늘과 백청의 대결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색과 흰색의 그림자가 맞부딪히고, 이내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려 퍼지며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곧이어 두 그림자가 다시 한 번 격렬하게 맞붙었다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하얀 색 그림자는 겨우 두어 걸음 정도 물러섰다 금세 중심을 잡은 반면, 붉은색 그림자는 십 여 걸음이나 뒤로 밀려난 것도 모자라 마지막에는 시뻘건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냈다.
“흥, 9성 대투사가 감히 투령인 나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오하늘은 비틀거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지만, 그런다고해서 달라질 것은 없어 보였다. 투지로 어떻게 해보기에는 두 사람의 실력차가 너무나 역력했다.
그 때, 경기장 밖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대결을 바라보고 있던 수혁의 입가에 갑자기 미소가 번졌다. 그는 경기장 반대편의 입구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생각보다 재미있겠는데.”
그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검은 망토를 두른 청년 하나가 성큼성큼 경기장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색 망토를 두른 청년의 모습에 경기장에 잠시 정적이 내려 앉았다.
“대장……?”
“이준?
“이준이라고?”
이준을 알아본 비석의 구성원들이 자리에서 하나 둘 일어나자, 이내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따라 경기장 입구 쪽을 바라봤다.
얼마 전 연금술 대결에서 준의 실력을 확인한 학생들은 하나 같이 연금술사 협회의 수장을 꺾은 연금술사의 전투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하며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호오, 이놈과 함께 개망신을 당하려고 나타났나?”
백청이 피식 웃으며 시비를 걸어오자, 준 역시 여유로운 표정으로 맞받아쳤다.
“건방을 떨다 개망신을 당하는 건 백의가 전문 아니던가요? 벌써 몇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이준의 독설에 백청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이미 두 번이나 비석에 의해 망신을 당한 터라 심기가 불편했던 백청은 곧바로 살기를 피우며 염력을 끌어 올렸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한번 경기장 위로 올라와봐. 지금까지는 쥐새끼처럼 빠져나갔지만 오늘은 다를 거다.”
하지만 준의 몸에서 푸른 염력이 솟구치는 순간, 백청의 표정이 더욱 크게 일그러졌다.
“투령?”
……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투령이 됐다고?”
수혁과 강자 목록에 이름을 올린 나머지 강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단하긴 하지만…그래도 백청은 6성 투령이야. 이제 막 투령을 돌파한 이준에게는 버거운 상대 아니겠어?”
엄호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차자, 임수혁이 빙긋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재미있게 됐네. 구경할 만 하겠어.”
……
“흥, 제법 짧은 시간 안에 투령이 됐다만, 아직 내 상대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 같은데 말이지.”
백청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비웃었지만, 준은 관심조차 없다는 듯 염력을 뿜어내며 팔 다리를 한 번씩 가볍게 휘두르며 몸을 풀었다.
곧이어 준이 이미 그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검은 송곳을 붙잡고 걸음을 옮기자, 백청 역시 장창을 붙잡고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의 거리가 약 10보 정도로 좁혀지는 순간, 백청이 번개처럼 몸을 날려 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6성 투령의 힘이 응집된 장창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허공을 가르자, 이내 천둥과도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백색 인영은 경기장 위에 새하얀 빛줄기를 남기며 망설임 없이 사냥감을 향해 질주했다.
하지만 준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바람처럼 가볍게 몸을 날려 그 공격을 피해냈고,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사라지듯 움직이는 상대의 속도에 백청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날카로운 장창이 다시 한 번 허공을 가르자,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려 퍼지며 불똥이 튀었다.
새하얀 장창은 시커먼 송곳에 가로 막혀 크게 요동치다 다시 방향을 잡았고, 이내 검은 송곳이 가볍게 허공을 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신들린 듯 수중에 들린 무기를 휘둘러대며 눈 깜짝할 새에 수 십번 이상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공격이 거듭될수록 미세하나마 백청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쾅!
상대와 계속해서 정면으로 맞붙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준은 손에 들린 검은 송곳을 크게 휘둘러 적을 떼어내고는, 곧바로 검은 송곳을 바닥에 내리꽂은 뒤 온 몸에서 새파란 불꽃을 뿜어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청색 불꽃은 크게 치솟았다가 전신을 한번 휘감고는 이내 거짓말처럼 잦아들어 몸속으로 흡수되었고, 다음 순간 그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세로 염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준의 염력이 갑자기 폭증하자, 수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흠. 비술인가? 저런 걸 감추고 있어서 자심감이 넘쳤던 거였군. 상당히 고급 비술인가본데 염력의 상승 폭이 커.”
천계의 불꽃을 사용한 준의 실력은 6성 투령인 백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엄호나 임수혁과 달리 백청은 갑작스런 상대의 실력 상승에도 조금도 놀라지 않은 듯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상대가 갑자기 실력을 끌어올리는 비술을 사용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그런 류의 비술은 위력이 클수록 반동 역시 대단해 얼마 지나지 않아 비술의 효과가 사라지고 몸에 무리가 가기 마련이었다.
백청은 잠시 상대의 상태를 살핀 뒤 다시 한 번 장창을 부여잡고 염력을 내뿜었다. 곧이어 황금색 염력이 그의 몸을 뒤덮고, 새하얀 장창에 금빛이 녹아들며 텅 빈 허공을 노을빛으로 물들였다.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황금색으로 변화한 장창이 허공을 가르자, 시커먼 그림자가 몸을 날렸다.
다음 순간, 황금빛으로 물든 장창이 수 십 개의 잔영을 남기며 검은 그림자를 난폭하게 찔러댔지만 검은 그림자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힘껏 손에 들린 송곳을 휘둘러댔다.
검은 송곳은 허공에서 묵직한 호를 그리며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화려하게 허공을 수놓은 장창의 그림자와 간결하고 육중한 검은 송곳의 칼 끝이 맞부딪히자, 귀를 째는 듯한 날카로운 소음이 경기장 안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수 십 번의 격돌 끝에 ‘쨍’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송곳이 주인의 손을 떠나고, 허공에서 빙글 빙글 돌던 시커먼 송곳은 이내 바닥에 꽂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상대가 무기를 놓치는 순간, 백청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승리를 확신한 그는 장창을 꼭 붙잡은 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봐 달라고 빌면 여기서 끝낼 수도 있어. 아니면 계속해도 좋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천재라고 칭송받는 신입생을 짓밟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거든.”
하지만 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피식 웃음을 지을 뿐 이었다.
더욱 무기를 놓친 준의 표정이 여유로운 것 이상으로 이상한 점은 대장의 패배를 목전에 두고도 비석의 구성원들이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다는 점 이었다. 아니, 심지어 이은이나 이윤영을 비롯해 준을 잘 아는 이들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까지 어려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백청이 장창을 다시 부여잡은 순간, 또 다시 이준의 몸에서 화산 같은 염력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백청이 창끝을 움직이기도 전에 이준의 발목 아래가 은빛으로 빛나며 그의 몸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이내 시퍼런 불꽃에 뒤덮인 그의 주먹이 백청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헉…!”
백청은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주먹이 남긴 열기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가 자세를 바로 고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상대의 팔꿈치가 매섭게 내리 꽂혔고, 백청은 황급히 장창을 땅 끝에 가져다대어 몸의 균형을 회복하는 동시에 곧바로 왼손을 들어 이준의 팔꿈치를 막아냈다.
우드드득.
그러나 팔꿈치가 맞닿는 순간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백청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으윽……!”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자신의 공격이 적중했음을 확인한 준은 잽싸게 푸른 불꽃을 두른 다리로 적의 머리를 노렸다.
백청은 순간 식은땀을 흘리며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날렸고,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며 간신히 상대의 공격을 피해냈다.
“호오! 뭐지? 원래 검술이 아니라 격투술이 주무기인가? 검을 놓치고 나서가 움직임이 훨씬 좋잖아?”
경기장 높은 곳에서 둘의 대결을 바라보던 엄호가 놀란 듯 눈을 깜빡이며 나지막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렇다고 치기엔 속도도, 염력도 너무 강해졌어. 저 무기에 뭔가 장치가 되어있는 모양이군.”
수혁의 말에 엄호와 나머지 사람들도 무언가 감을 잡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런 물건을 왜 들고 다니는 거야?”
“글쎄…뭐, 제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싸움이 절정에 오르자 관람석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지금부터는 그야말로 칼 끝 승부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둘의 실력 차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고,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도 승부가 결정될 터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백청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곤혹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백의’의 수장이자 본원 강자 목록내에 이름을 올린 자신이 풋내기들이 만든 조직의 수장에게 꺾인다면 이는 단순히 망신을 당하는 차원을 넘어 급격하게 ‘백의’의 세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 자명했다.
“빌어먹을…”
백청은 이를 악물고 잠시 고민하다 준과 거리를 벌린 뒤 왼손으로 보라색 연금비약 한 알을 꺼내 들었다.
기이한 빛깔이 도는 연금비약을 입에 넣는 순간, 그의 얼굴에 기묘한 보라색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챈 준이 맹수처럼 몸을 날려 상대를 덮쳤지만, 갑자기 백청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염력이 터져 나오며 금색의 장창이 그의 주먹을 막아냈다.
“연금비약이군.”
상대의 반격에 두 세 걸음 정도 뒤로 밀려난 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흥, 네 놈의 비술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물건도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거든.”
백청이 삼킨 것은 ‘마수의 힘’이라는 4레벨 연금비약으로, 짧은 시간 동안 복용자의 힘과 염력을 현격하게 증가시켜주는 보물이었다.
다만 얼마 전 준이 만든 5레벨 연금비약 ‘용의 힘’에 비하면 다소 효과가 떨어졌다.
상대가 연금비약을 복용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준 역시 피식 웃으며 얼마 전 자신이 직접 만든 다이아몬드 모양의 연금비약을 꺼내들었다.
“어이, 저거 5레벨 연금비약 아니야?”
“이야! 연금술사는 다르구만. 5레벨 연금비약을 먹겠다고? 지금? 아깝지도 않나?”
경기장에 몰려든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5레벨 연금비약은 웬만한 강자나 재력가라도 평생 한번 구경이나 할까 말까한 보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준은 곧바로 용의 힘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고,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가 그의 온 몸을 관통하며 전신에서 힘이 용솟음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5레벨 연금비약을 집어삼킨 준의 몸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평범하고 다소 마른 편이었던 준의 체격이 엄호와 비슷한 정도의 거구로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