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화. 고통의 대가
몸을 뒤덮고 있던 얇은 염력막이 사라지자, 물속에 가득 차 있던 에너지가 천천히 그의 몸 곳곳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온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다가 이내 바늘로 몸속 곳곳을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준은 염력을 끌어올리지 않고 이를 악문 채 그 고통을 견뎌냈다.
“허물벗이…… 영액의 힘으로 뼈를 씻어내고 뼈와 근육은 물론이고 피부까지 모두 새로이 만드는 과정이다. 평생 한 번 찾아올까 말까한 기회이긴 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순간을 이겨내기만 한다면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게 될 것이니 반드시 참아내야 한다.”
그렇게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대야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수련을 거듭하자, 영롱한 빛을 발하던 액체에서 조금씩 기포가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그 안에 있는 준은 마치 얼음물에 푹 잡긴 듯 온 몸이 덜덜 떨릴 정도의 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준이 대야에 앉아 수련을 시작한지 약 30분 정도가 흐르자, 준의 뼈 위로 오색의 영액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이 영혼 탐지 능력으로 자신의 뼈가 오색으로 물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갑자기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작열감이 느껴졌다. 뼈째로 불태워지는 듯한 고통은 순식간에 전신을 관통하며 준의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었다.
몇 번 정도 눈앞이 아찔해지는 통증을 견뎌내자, 대야에 가득한 오색 빛깔의 물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준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곧이어 그의 뼈가 대야에서 찰랑이는 액체와 같은 색으로 변했다가 점차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사이,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사그라들기는커녕 점점 더 맹렬한 기세로 불어나갔다.
약로는 혈관이 불뚝 불뚝 솟은 채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꿋꿋하게 고통을 견뎌내는 제자를 바라보며 두 주먹을 꼭 쥐고 그의 곁을 지켰다. 참으로 대견한 제자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버텼을까? 서서히 온 몸이 마비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침내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준의 의식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약로는 동굴 안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않은 채 제자를 바라봤다. 준이 나무 대야 안에 들어간 지도 벌써 3일째였다. 하지만 약로는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됐구나.”
마침내 불덩이에 쑤셔 박은 쇠꼬챙이처럼 달아올랐던 준의 뼈가 서서히 식어가자, 약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져갔다.
통증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하며 흐릿했던 준의 의식도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의식이 돌아오자,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이 단단해진 골격과 혈관 사이로 염력이 대하처럼 흐르며 온 몸에서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강대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의식이 돌아온 준은 길게 심호흡을 한 뒤 영혼 탐지 능력을 통해 자신의 신체 내부를 관찰했다. 불과 3일만에 그는 8성 대투사를 넘어 투령의 문턱에 닿아 있었다.
지금 그의 체내에 위치한 힘의 수정은 마치 밑빠진 독처럼 끝없이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투령까지 한걸음 밖에 남지 않은 것이 느껴졌건만, 그 한걸음이 너무나도 멀었다.
“후…대투사와 투령 사이에 이 정도로 큰 벽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준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 순간, 갑자기 그의 몸이 소용돌이처럼 주위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제자의 몸에서 한 차례 격렬한 에너지가 터져 나왔다가 이내 소용돌이의 중심처럼 주위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기 시작하자, 약로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 대야 속의 에너지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어느 새 준의 몸은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를 탐욕스럽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수 십 종의 약초와 지하의 유액이 녹아든 액체속 에너지는 어느 새 티 없이 맑은 물로 돌아가고 있었고, 이에 약로는 곧바로 손바닥을 흔들어 지하의 유액 몇 방울을 나무 대야 위로 떨어뜨렸다. 투령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하의 유액의 효과로 맑디맑던 물이 다시 농염한 비취색으로 물들며 짙은 안개를 뿜어냈다.
적시에 필요한 에너지가 공급되자, 이준의 몸이 또 다시 탐욕스러운 괴물처럼 게걸스럽게 그 힘을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에 떨어뜨린 지하의 유액은 다른 약재가 곁들여지지 않았으니 자칫 목숨을 잃을만큼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한차례의 세수를 거친 준의 몸이라면, 그 힘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것 이라는 것이 약로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지하의 유액이라도 8성 대투사에서 단숨에 투령의 벽을 뚫으려면 더욱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또 다시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비취색의 액체가 점차 투명하게 변해갔다. 이 모든 변화를 지켜보던 약로는 고개를 흔들더니 약간의 고민 끝에 재차 두 방울의 지하의 유액을 떨어뜨렸다.
사실 보통 사람이 투령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돌파 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준에게는 대지의 기운이 가득 담긴 지하의 유액이 있었으니, 어쩌면 정말 오늘 밤 투령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세 번째 지하의 유액이 투여되자, 마침내 준의 염력 회오리 안에 위치한 주먹만한 힘의 수정이 번쩍번쩍 광을 냈다.
마침내 마지막 남은 에너지까지 모두 주입되자, 힘의 수정이 갑자기 미묘한 진동을 하면서 ‘윙윙’ 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펑, 펑.
곧이어 리듬감 있는 소리가 회오리바람 안에서 터져 나왔다. 자세히 들으면 심장이 뛰는 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힘의 수정이 점점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진주처럼 매끈한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원형으로 변화하던 힘의 수정에서 아홉 개의 침이 솟아나며 성게처럼 모습을 바꿨다.
뾰족한 침이 돋아나고 몇 분 정도가 흐르자, 리듬감 있는 소리에 맞추어 힘의 수정이 깜빡이며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힘의 수정에서 울리는 소리가 준의 심장 소리와 완벽하게 일치되고, 성게 같은 형상의 염력의 결정체가 막대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그대로 염력의 회오리를 뚫고 나가 순식간에 준의 혈관과 뼈를 관통했다.
마침내 체내 가장 깊숙한 곳에서 출발한 에너지가 살갗에 닿는 순간, 준의 온 몸에서 눈부신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우르릉!
곧이어 바다와도 같은 에너지가 일렁이며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이준의 몸 주위로 옅은 물안개가 일었다.
준의 체내에서 발산된 거대한 에너지는 방금 전까지 몸을 담그고 있던 나무대야를 산산조각내고 질주해 동굴 밖까지 뻗어나갔다.
서서히 광채가 잦아들고 물안개가 사라지자, 준이 번쩍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스승님! 성공한 거죠!?”
* * *
산봉우리 정상에서는 검은 그림자 하나가 은색 섬광과 함께 질주하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는 검은 송곳을 가볍게 휘두르며 춤이라도 추듯 연신 허공을 갈랐고, 갑자기 짐승처럼 사나운 기세로 날뛰며 앞에 있던 커다란 바위의 뺨을 후려갈겼다.
갑작스런 일격에 커다란 바위가 ‘우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수 백개의 돌멩이가 되어 사방으로 튀어나가자, 검은 그림자는 만족하며 천천히 숨을 고르며 가볍게 땅위로 안착했다.
이내 거칠었던 호흡이 서서히 본래의 리듬을 되찾아가고, 팔뚝 위로 선명하게 불거졌던 파란 핏줄이 사라지며 팽팽하게 당겨졌던 근육들도 느슨하게 풀어지기 시작했다.
불과 며칠 사이 딴 사람인 것처럼 강해진 제자를 바라보던 약로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흡족함이 가득했다.
“투령이 된 느낌이 어떠하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어떻게 이 정도까지 차이가 날 수 있죠?”
이준은 투령이 된 이후로도 놀랍도록 변화한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는 입꼬리가 귀에 걸린 채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여기서 수련한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으니 본원에 돌아가봐야겠어요.”
“그래, 이제 돌아가서 구름불꽃을 손에 넣을 방도를 찾아봐야겠구나. 우선은 강자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더 높은 층까지 올라갈 자격을 손에 넣어야 할게다.”
“후! 넘어야 할 산이 많군요.”
“별 다른 방법이 없구나. 가람 아카데미에서 구름 불꽃을 힘으로 빼앗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짓은 투기세력의 그 누구라도 감히 꿈꾸지 못할게야.”
구름 불꽃은 스승의 부활을 위해서도,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고, 준이 가람아카데미에 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으니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
이준은 머리를 돌려 본인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는 날개를 펼쳐 새처럼 날아올랐다.
……
두 시간 정도를 날아 본원이 보이는 위치까지 이동하자, 준은 곧바로 날개를 거두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다시 한 시간 이상을 달리니 본원의 입구를 지날 수 있었고, 그는 본원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자신의 동료들이 있는 신입생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가자, 무언가 평소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와 달리 경비도, 인사하는 동료들도 보이지 않았던 것 이다.
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간을 찌푸린 채 바쁘게 발을 놀려 숙소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가 조금 더 걸어가자,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보였다.
“하태준!”
“대장! 돌아온 거야?”
“은이는 어디 갔어?”
“은이도, 윤영이도 모두 경기장에 있어.”
“경기장이라니? 그게 무슨…….”
“후, 썩을……! 오늘 아침 윤영이 비석 아이들과 함께 천계의 탑에 갔었어. 그런데 자리를 잡고 수련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의 놈들이 강제로 문을 열고는 우리 애들을 다 쫓아냈다더군. 그 과정에서 윤영이가 투령 두 놈과 맞서는 통에 윤영이가 다쳤고, 나중에 오하늘이 아이들과 함께 백의놈들에게 따지러 갔지. 결국 오하늘이 놈들 중 하나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왔어. 오늘이 그 놈과 오하늘의 대결이 있는 날이고…… 지금 은이하고 윤영이가 아이들과 함께 경기장에 가있어.”
하태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준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가자.”
* * *
경기장은 내원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구역에 위치해 있었고, 언제나 불의 힘을 얻으려는 학생들과 강자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하는 학생들, 그리고 오하늘처럼 전투를 좋아하는 학생, 실전 경험을 쌓고 싶어하는 학생 등으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리고 오늘…경기장을 찾은 학생들 중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이준’이 만든 신입생 조직의 간부가 백의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에 와 있었다.
……
그리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인 무대 중 한 곳에서는 ‘백의’의 구성원들과 이윤영, 이은, 오하늘 세 사람을 필두로 한 비석의 구성원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이미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눈을 빛내며 두 세력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은이 언니, 역시 오하늘은 백청의 상대가 안 될 것 같아.”
“9성 대투사 정도로는 백청의 상대가 될 리가 없지…최근 오하늘의 실력이 엄청나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경솔했어. 차라리 내가…”
“언니가 직접?”
“곧 오라버니가 돌아오잖아. 두 달 정도 자리를 비운 사이 비석이 백의에게 망신을 당하면 앞으로 어떻게 마음 놓고 수련을 하겠어. 게다가 지난 번 연금술사 연합과의 대결 이후로 한창 주가가 올랐는데 오라버니가 없는 사이에 조직이 흔들리면 비석은 이준 하나 밖에 없는 조직처럼 보이게 될 거야. 아무래도…… 내가 직접 손을 써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