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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46화 (246/818)

제246화. 진화

“아……아니, 여왕폐하, 오랜만이네요. 그, 식사는…… 아니지……”

갑작스런 메두사의 등장에 너무나 놀란 준이 횡설수설하자, 메두사 여왕의 입꼬리가 기묘하게 비틀렸다.

“그래. 오랜만이군. 네가 투왕급 마수와 싸움을 붙여준 덕에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쐴 수 있게 됐어. 고맙군.”

메두사가 입을 열 때 마다 준의 이마에서는 끊임없이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영혼의 결정 약재는 다 모았겠지?”

여왕이 ‘영혼의 결정’에 대해 묻자, 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그간 영혼의 결정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모으는 데는 관심조차 없었던 그였기에, 일에 진척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여왕에게 그 말을 했다가는 당장 사단이 날 것이 분명했다.

결국 이준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자, 메두사 여왕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어렸다.

“호오…너, 감히 이 메두사 여왕에게 거짓말을 한 거니?”

곧이어 분노한 메두사 여왕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급격하게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손짓 하나로 공간을 응고시키다니…… 으아아!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는거야.’

메두사 여왕은 자신의 공간동결로 인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준을 향해 서서히 걸어오며 손바닥 위로 흉흉한 기운을 내뿜는 칠색의 장검을 소환해냈다. 정말로 준을 죽이기라도 할 기세였다.

그러나 준이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순간, 약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투종 강자답게 공간을 굳힐 수 있군. 역시 메두사 여왕다워. 하지만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내 제자를 마음대로 죽이려 들다니……!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약로가 반지에서 나와 자신의 앞을 막아섰지만 메두사 여왕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마치 약로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느낌이 드는 태도였다.

“네놈에게서 느껴지던 그 힘의 정체가 이거였군. 하지만 영혼체 주제에 무슨 배짱으로 내 앞을 막아서는지 모르겠군.”

메두사는 흥미롭다는 듯 반투명 상태의 노인을 바라봤다.

“허허, 괜한 협박이군. 당신도 멀쩡한 상태는 아닐텐데? 이무기에게 몸을 내주지 않으면서 나를 상대할 자신이 있나보지?”

“그래? 한번 시험해볼까?”

메두사 여왕은 불쾌한 듯 싸늘하게 상대를 노려보면서도 선뜻 손을 쓰지 못 했다. 약로의 지적대로, 이무기에게 몸을 내주지 않기 위해 이미 상당한 영혼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 지금의 그녀에게 약로를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도 당신과 부딪히고 싶지 않네. 다만 내 제자가 당신 손에 죽어버리면 너무 슬프지 않겠나. 그러니 이렇게 부득불 손을 쓸 수 밖에.”

약로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살기 어린 표정으로 칠색 장검을 만지작거리던 메두사 여왕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흥, 내 덕에 운산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 대가로 나는 영혼의 결정을 받기로 했지. 하지만 일 년이나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진척이 없는데, 내가 저 놈을 죽일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감히 이 메두사 여왕을 상대로 사기를 쳤는데 말이지.”

메두사 여왕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약로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그녀의 말을 맞받아쳤다.

“하하, 영혼의 결정을 만들어주는 날이 내 제자놈 제삿날이 될 것 같은데? 약속을 지키는 날이 제삿날이 되는데 약을 만들어주는 미친놈이 어디있겠나?”

메두사 여왕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딱히 약로의 말을 반박하지는 않았다. 약로의 말대로, 이준이 영혼의 결정을 만들어주면 곧바로 그를 죽이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할 말이 없었던 것 이다.

“허허, 정말 영혼의 결정이 필요하긴 한건가?”

약로가 빙긋이 웃으며 슬쩍 운을 띄우자, 메두사 여왕의 표정이 한결 험악해졌다.

“쓸데 없는 소리. 본론을 얘기해. 괜히 성미 긁지 말고.”

“허허허, 좋아. 필요하긴 한 모양이군. 그럼 이건 어떤가? 만일 당신이 일 년 동안 내 제자의 목숨을 지켜준다면, 내가 책임지고 일 년 안에 영혼의 결정을 만들어주지.”

“흥, 감히 이 메두사 여왕에게 저딴 꼬맹이의 보모 역할을 부탁하는건가?”

“할 수 없지.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가 영혼의 결정을 만들어달라고 하게.”

약로가 그렇게 말하며 팩 하고 몸을 돌리자, 참다 못한 메두사 여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닥쳐! 당장 영혼의 결정의 조합표를 내놔!”

하지만 메두사 여왕이 뭐라고 말하든 약로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비록 영혼체가 되어 힘을 잃었다고는 해도, 과거 투기대륙을 주름잡던 그에게 있어 메두사 정도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허허, 그건 안 되지. 내 제자가 천신만고 끝에 얻은 귀한 조합표를 날로 먹으려 하다니, 천하의 메두사 여왕이 너무 뻔뻔하군.”

그 때, 메두사 여왕의 몸에서 살기와 함께 무시무시한 염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투종급 강자의 에너지가 퍼져 나오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허공에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약로 역시 지지 않고 온 몸에서 영혼 에너지를 뿜어냈고, 이내 두 강자의 에너지가 뒤엉키며 천둥소리와도 같은 굉음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영혼체에 불과한 상대의 힘이 자신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자, 메두사 여왕이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져 갔다.

하지만 살기로 눈을 빛내며 한껏 기운을 끌어올리던 메두사가 갑자기 파랗게 질리며 세차가 뿜어내던 기운을 거두어 들이기 시작했다.

“젠장!”

메두사는 분에 겨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칠색 이무기가 그녀의 힘을 끌어내는 것을 계속해서 방해했기 때문이다. 천하의 메두사 여왕이라 해도 그런 상태로 눈 앞의 영혼체에게 맞선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이자식들이……!”

분노로 몸을 사시나무 떨 듯 하던 메두사는 이를 악물고 약로와 준을 번갈아가며 노려봤다.

“좋아. 그럼 일 년, 딱 일 년이야! 만일 이번에도 다시 나를 속인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네 제자의 사지를 찢어주지!”

“허허, 잘 생각했네. 일 년 안에 반드시 영혼의 결정을 넘기지. 단, 만일 그 물건을 손에 넣고 내 제자의 몸에 손을 댄다면 내가 자네의 몸을 책임지고 무로 돌려줄게야.”

그 순간, 약로의 몸에서 새하얀 불꽃이 치솟았다.

“천지의 불꽃?”

아름답게 일렁이는 백색 불꽃의 등장에 메두사 여왕의 표정이 더욱 심하게 구겨졌다. 아마도 대지의 불꽃으로 인해 겪었던 고통이 떠오른 듯 했다.

“닥쳐라! 다음번에 깨어날 땐 반드시 내게 영혼의 결정을 넘겨야 할 거야.”

메두사 여왕은 그 말을 끝으로 일곱 색깔의 빛을 내뿜으며 사라졌고, 이내 다시 뱀의 형태를 되찾은 칠색이무기가 꼬리를 살랑대며 잽싸게 준의 손바닥 위에 올라탔다.

“하하, 난 괜찮아.”

준은 자신에게 애교를 부려대는 칠색이무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활짝 웃음을 지었다. 약로와 칠색 이무기가 아니었다면 그는 오늘 메두사 여왕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 분명했으니, 눈 앞의 작은 마수가 그렇게도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덕분에 끔찍한 상황을 면할 수 있었어.”

“앞으로 메두사 여왕이 갑자기 널 살해하려 들진 않을 게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메두사 여왕의 이야기가 나오자 준은 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스승과 칠색 이무기덕에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매번 이런식으로 문제를 넘길 수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지하의 유액을 꺼내들었다.

“투령 급에 들어갈 수 있게 이걸 써봐야겠어요.”

* * *

달이 온 산을 환하게 비출 무렵, 준은 동굴 안에서 맑고 투명한 물이 한가득 담겨 있는 커다란 나무 대야를 앞에 놓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곁에는 나무로 된 간이 시렁이 있었고, 그 위에는 각종 약재들이 가득했다. 시렁 위에 있는 수 십 개의 약재를 찾기 위해 준은 꼬박 3일을 소비해야 했다.

약로는 필요한 약재들이 다 있는지 확인한 뒤 제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약로는 이준이 건네주는 지하의 유액을 받아든 뒤 몇 번을 흔들고는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열자, 그 즉시 농염한 비취색 안개가 서서히 퍼지더니 입구에 응집됐고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신비한 안개를 깊게 들이마신 약로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대지의 힘을 모으는 영물임이 틀림없군! 이렇게 깨끗하고 그윽하다니!”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신비한 액체의 향취를 만끽한 뒤 천천히 옥병을 기울였다.

지하의 유액이 떨어지자, 대야 속 맑은 물이 곧바로 농염한 비취색으로 물들었고, 물 위로 은은히 안개가 피어올랐다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참으로 신기하고 기이한 현상이었다.

“이 안에서 훈련을 하는 건가요?”

“당연하지. 지하의 유액의 에너지가 너무 커 너의 지금 실력으로는 바로 마실 수가 없으니 이런 방식으로 수련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데도 나머지 약물과의 조화가 필요하지. 만일 이렇게 희석해서 수련을 하지 않고 억지로 원액으로 수련을 강행한다면 목숨을 잃고 말게다.”

약로는 비취색으로 변한 대야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손을 들어 약초 더미를 가리켰다.

“그 향초 풀도 가져 와 보거라.”

스승의 지시에 따라 준은 나무 시렁 위에 놓인 빨간 색 풀을 집어 들었다. 약로는 한 손에 향초 풀을 잡고 다른 한 손에서 백색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하얀 불꽃이 너울너울 춤을 추자 이내 하얀색 연기가 피어오르며 새빨간 약초가 순식간에 붉은 액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자신의 백색 화염으로 빨간 액체를 몇 분 정도 더 가열한 뒤 녹색 물이 가득한 나무 대야 속에 떨어뜨렸다. 붉은 색의 액체가 떨어지자, 대야 속의 물이 서서히 암홍색으로 물들었다.

“청색 연꽃, 화염초의 뿌리.”

약로가 지시를 내릴 때 마다 준이 약초를 건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시렁 위에 놓인 약재들이 눈에 띄게 줄어갔다. 한 시간쯤 지나자, 몇 십 종이나 되는 약재들이 모두 영롱한 빛을 내는 액체로 변해 나무 대야 안에 떨어졌다.

“옷을 벗거라. 빨리 저 안에 들어가 저 암홍색의 물이 다시 맑아질 때까지 수련을 해야 한다.”

밑작업이 끝나자, 약로가 곧바로 대야를 가리키며 제자를 재촉했다.

준은 수 십 가지의 약재가 녹아든 오색 빛의 액체를 바라보며 감동받은 듯 눈을 반짝였다. 풍부한 지식과 셀 수 없이 많은 경험, 그리고 완벽한 제련 실력까지, 자신의 제련 실력이 올라갈수록 스승이 얼마나 뛰어난 연금술사인지가 새삼 실감이 났다. 대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어야, 또 얼마나 대단한 재능이 있고 얼마나 대단한 운이 따라야 저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들어간 후에도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비록 지하의 유액이 이 약재들과 중화되어 효력이 조금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에너지는 결코 만만히 볼 수준이 아니니, 아마도 이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고생을 좀 해야 할게다.”

준은 잽싸게 옷을 벗고 기대에 부푼 눈빛으로 대야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오색 빛깔의 액체가 몸으로 스며드는 순간 덮쳐온 끔찍한 통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다.

결국 고통을 견디다 못한 준이 반사적으로 염력을 끌어올리자, 곧바로 약로가 그를 제지했다.

“염력으로 몸을 보호하려고 하지 말거라. 그렇게 되면 약이 체내에 들어갈 수 없어.”

스승의 지시에 준은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염력을 거두어 들였다.

한 때의 고통을 참지 못 해 이 귀한 지하의 유액과 약재들을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평생 한번 찾아올까 말까한 엄청난 행운을 발로 걷어차 버리는 바보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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