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화. 보물찾기
그렇게 푸른 불꽃에 의지해 앞으로 이동한지 수 분…바닥을 내려다 본 준은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칠흑 같이 어두운 수림의 바닥에는 무수히 많은 백골이 깔려있었다.
“사람뿐 아니라 마수들도 지하의 유액을 노렸나보군…”
준은 사람의 것이라 보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뼈를 보며 긴장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주위를 살폈다.
“지하의 유액은 마수들도 탐내는 물건이지. 오히려 마수들이 사람보다 훨씬 유용하게 쓸 수 있단다. 마수가 지하의 유액을 손에 넣으면 사람의 모습을 할 수 있게 되니까.”
스승의 말에 준은 문득 예전에 보았던 하늘 사자를 떠올렸다. 그 때 하늘 사자가 가장 원한 것 역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게 해주는 보물이었다.
“여긴가?”
숲속에서 동굴 하나를 발견한 준은 곧장 날개를 움직여 아래로 내려간 뒤 민첩하게 산 동굴과 조금 떨어진 돌 위에 자리를 잡았다.
동굴 안에서는 마수 특유의 코를 찌르는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여기가 하얀 하늘 침팬지가 모여 있는 동굴인 것 같군. 녀석들이 분명 이 근처를 지키고 있겠지.’
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불꽃을 쏘아 전방을 확인해 본 뒤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제서야 천천히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산 동굴의 넓이는 하얀 하늘침팬지가 모여 살 수 있을 정도였으며, 천장도 십 미터 정도로 굉장히 높았다. 동굴 바닥에는 돌이 널려 있었고, 하얀 털들이 곳곳에 널려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이 끝나자, 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여기에 지하의 유액이 없다는 소리야?”
예상밖의 상황에 당황한 준은 시선을 돌려 동굴 이곳저곳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벽과 이어진 바닥 한 곳에 하얀 털이 수북하게 쌓인 큰 구멍을 발견한 준은 곧바로 그곳으로 다가가 몸을 숙였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아마도 하늘 침팬지들이 그곳에 앉아 휴식을 취한 듯 무게로 인해 바닥 이곳저곳이 움푹 패여 있었다.
크게 특이한 점을 찾지 못한 준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혹시나 하는 바람에 팔을 휘둘러 하얀 털들을 치워내 보았다.
그러자 하얀 털에 가려져있던 장소에서 미묘하게 색이 다른 부분이 그의 눈을 잡아끌었다. 마치한번 구덩이를 팠다가 흙으로 덮은 듯, 흙바닥의 일부만 색이 달랐던 것 이다.
준은 실눈을 뜨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선 뒤 그 앞으로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엄청난 흡입력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와 흙더미를 빨아들였다.
“응……?”
……
잠시 후 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하로 향하는 또 다른 동굴이었다.
처음에는 자그마했던 구멍이 진흙을 빨아들일 때마다 점점 커져 어느 새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그는 곧바로 대지의 불꽃을 꺼내 앞을 밝힌 뒤 곧바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먼발치에 하얀 빛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출구인가…?’
그 빛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풍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산벼랑 끝에서부터 유액이 떨어져 폭포수를 이루고 있었던 것 이다.
“여기가 지하 세계구나!”
준은 잠시 동안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체 지하의 유액은 어디 있는 거지?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액체라 구분을 못 하겠어…….”
“에너지가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으로 가면 될 게다.”
그 때, 약로가 저장반지에서 나와 손가락으로 왼편을 가리켰다.
“이쪽이구나.”
사방에서 하얀 석회수가 흐르는 길을 가로질러 한참을 걷자, 두 사람의 눈앞에 우유빛깔의 거대한 기둥이 나타났다. 산꼭대기와 이어져 있는 우유빛 물기둥은 두께만 해도 두 사람이 겨우 끌어안을 수 있을 정도였다.
석회수로 이루어진 물기둥 아래쪽에는 거대한 돌이 자리하고 있었고, 돌의 표면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 위로는 흰색 안개가 피어오르며 기이한 광경을 연출했다.
준이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도 거대한 석회수는 계속해서 옅은 흰 안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곧이어 석회수의 빛이 점점 강해지더니 순식간에 하얀 액체 한 줄기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져 푸른 돌덩이의 움푹 들어간 틈 사이로 흘러들었다.
석회수가 떨어지자 그 주변으로 물이 튀며 하얀 액체가 또 한 차례 튀어 올랐다.
준은 그 아래에서 작은 그릇처럼 움푹 파인 녹색의 돌을 발견하고는 반사적으로 그 돌 위를 손으로 훑어보았다.
돌은 상상 이상으로 단단했고, 물 한 방울이 떨어져 그만한 홈을 만들려면 적어도 수십 년 이상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 석회수는 일 년에 한 방울만이 나오는 것이 분명할게다. 결국 저 작은 구멍을 채우는 데만도 몇 년은 필요한 것이지.”
“스승님, 여기에 들어 있는 게 ‘지하의 유액’이겠죠?”
준은 살짝 미소를 띤 채 약로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래.”
약로가 기이한 하얀 안개가 피어 오르는 액체를 보며 답했다.
하지만 준이 저장반지에서 옥병을 꺼내 들어 그 ‘지하의 유액’을 안에 담으려 하는 순간, 약로가 황급히 그를 뜯어말렸다.
“이것도 귀중한 보물이지만 이보다 더 희귀한 보물이 있단다.”
“더 희귀한 보물이 있다고요?”
“보통은 지하의 유액이 여기에 고여 있는 액체라고 생각하기 쉽지.”
이준은 민망한 듯 웃음을 지었다. 약로의 말대로, 그 역시 작은 홈에 들어간 흰색 유액이 보물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이다.
“따라 오거라.”
말을 마친 약로는 고개를 들어 산 끝에 걸쳐져 있는 거대한 유액을 바라보고는 곧바로 유액이 떨어지는 곳 위로 날아올랐다.
준 역시 스승의 뒤를 따라 재빨리 날개를 펼치고 그 위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1~2분 정도가 지나자, 드디어 벼랑의 끝이 보였다.
절벽 위에 오른 두 사람은 곧바로 아래를 내려다 봤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여러 갈래의 물기둥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고, 거대했던 물줄기가 개미처럼 작아 보여 여러 개의 물줄기 중 어느 것이 더 크고 작은지를 구분할 수 있었다.
약로는 잠시 그 물줄기들을 바라보다가 그 중 어느 하나를 가리키고는 곧바로 그쪽으로 몸을 날렸고, 준 역시 스승의 뒤를 따라 날아갔다.
“옥 조각이 있다면 그것으로 이것을 갈라보아라. 아니면 만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귀한 보물이 망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스승의 지시에 따라 준은 곧바로 저장반지에서 가장 맑은 옥 하나를 꺼내 그 표면을 염력으로 감싼 뒤 조심스럽게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기둥 앞에 들이밀었다.
파앗—
마침내 날카로운 옥 조각이 물줄기를 가르는 순간, 눈을 찌르는 강한 불빛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갑작스레 뿜어져 나온 빛에 준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뒤로 몸을 날렸다.
“하하, 걱정할 거 없다.”
약로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자, 준이 멋쩍게 웃으며 눈을 떴다.
물줄기 사이로는 비취색 액체 한 덩이가 살아있는 듯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저게 뭐죠?”
이준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눈앞에 나타난 기묘한 액체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 신비한 비취색의 액체에서는 끝을 알 수 없는 농밀한 에너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게 바로 진짜 지하의 유액이란다.”
“그럼 아래에 있는 거는요?”
“아래에 있는 것 또한 지하의 유액이 맞긴 하지. 다만 저것들은 본체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떨어져 나온 것이니 희석된 유액이라 보는 게 맞겠구나. 대부분 지하의 유액이 뭔지는 알지만 자세한 내용은 몰라 지하의 유액이 희석된 액체를 보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만 가져가거든.”
스승의 설명에 준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약로가 없었다면 자신 역시 진짜 보물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 했을 것이다.
“지하의 유액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특히 옥이 아닌 다른 물질과 접촉하면 바로 썩어버리지. 아무 것도 모르고 손을 댄다면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단다.”
“그럼 어쩌죠?”
“옥으로 만든 물건들을 꺼내 보거라. 절대 손으로 만져선 안 돼.”
이준은 재빨리 끄덕이고는 저장반지를 뒤적여 옥으로 만든 숟가락과 그릇을 비롯한 각종 식기들을 꺼냈다.
“연금술사들에게는 불문율이 하나 있지. 바로 귀한 보물을 만나도 그것을 몽땅 가져가선 안 된다는 것이야. 씨가 말라버릴 우려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지하의 유액도 조금은 남겨 두거라.”
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조심스럽게 비취색 액체를 떠서 가장 좋은 옥병안에 조심스레 따라 넣었다.
* * *
지하의 유액을 손에 넣은 뒤, 약로는 제자를 데리고 처음 발견한 홈 속에 있던 액체 쪽으로 향했다.
“이것도 조금 가져가는 게 좋을 거다. 나중에 연금술 재료로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준은 이번에도 스승의 말에 따라 저장반지에서 옥병을 꺼낸 뒤 조심스레 우유빛깔의 액체를 채워 넣었다. 두 병을 가득 채우자, 고여 있던 유액이 반으로 줄어 있었다.
준은 그 액체마저 모두 담아갈까하다가 임수혁 일행을 떠올리고는 욕심을 접었다.
만에 하나 그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발견한다면 가장 먼저 자신을 의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이 알려준 정보덕에 귀한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그들 몫을 남기지 않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원하던 것을 모두 얻은 준은 흡족한 표정으로 밖으로 향했다.
* * *
한편 산골짜기 입구에서는 여전히 강한 폭발음이 울리며 사방으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칠색 이무기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잽싸게 몸을 날렸다.
산골짜기 입구는 치열한 싸움의 흔적으로 문자 그대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평탄했던 땅은 여기저기 패여 있었고, 거대한 돌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주변의 나무들은 맥을 못 추리고 엎어져 있었고, 근처 숲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허공에 떠있는 칠색 이무기와 땅 위에서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는 새하얀 마수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칠색이무기의 몸에 하얀 하늘침팬지가 남긴 깊고 가느다란 손톱자국이 가득했다.
하지만 하얀 하늘 침팬지 역시 무사하지 못 했다. 투왕급 마수의 새하얀 털은 칠색 이무기의 강력한 산으로 녹아내려 몸 곳곳에 맨살이 드러나 있었고, 놈의 머리 위에서는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와아……! 투왕급 마수에게 밀리기는커녕 언제 저렇게 강해졌지?”
준이 나타나자, 칠색 이무기가 기쁜 듯 꼬리를 흔들며 그를 반겼다. 반면 하얀 하늘 침팬지는 사색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녀석, 가자!”
이준은 하얀 하늘침팬지를 무시하고 칠색이무기를 향해 날아간 뒤 곧바로 방향을 틀어 산 속으로 몸을 날렸다.
칠색이무기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거대한 꼬리를 흔들며 급격하게 다시 작은 뱀으로 변했고, 이준을 따라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백색의 마수는 자신의 거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사라지는 마수와 그 주인을 바라보며 허탈한 듯 발을 굴러댔다.
* * *
준과 칠색 이무기는 한참을 날아 어느 산봉우리에 멈춰 섰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준은 곧바로 저장반지에서 하늘 사자의 정수가 담긴 약병을 꺼내들었다.
“이리와. 녀석. 오늘 진짜 잘 했어. 배불리 먹게 해줄게.”
하지만 보라색 액체가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무기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준을 쏘아볼 뿐 이었다.
“왜 그래? 이거 네가 제일 좋아하……”
“여왕을 애완동물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겐가?”
“헉……!”
메두사 여왕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준은 거의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메두사 여왕……!”
다음 순간, 칠색 이무기의 몸에서 눈을 찌를 듯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순식간에 요염한 자태를 한 메두사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