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244화 (244/818)

제244화. 마수대전

“이 친구도 본원 학생이야? 왜 처음 보는 것 같지?”

이준이 있는 곳에 도착한 엄호는 곧바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검은 옷의 청년을 바라봤다.

속도로 보아 본원 강자목록에 이름을 올리고도 남을 인물임에 틀림이 없었지만, 그 정도의 실력자를 자신이 모른다는 것이 이상했던 것 이다.

“이 친구 이름은 이준이야. 몇 달 전에 막 본원에 들어온 신입생이지.”

한율이 웃으며 소개했다.

“신입생?”

엄호를 비롯한 본원의 강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검은 옷의 청년을 바라봤다. 강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에게로 향하자, 준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준? 비석?”

새까만 눈에 밝은 노란 옷을 걸친 남자가 한참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에 엄호도 화들짝 놀라며 눈 앞에선 사내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아아, 그 이준이 바로 너였구나. 이름은 정말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지……하나 같이 믿을 수 없는 소문뿐이라 과장된 건 아닐까 반신반의했는데, 정말로 이런 실력자가 신입생 중에 있을 줄이야……백사자와 흑사자를 모두 꺾었다지?”

상대의 호의적인 태도에 준은 겸손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라면 놀라지도 않지……거기다 겸손하기까지……하하!”

“이 사람은 누구지?”

그 때, 임수혁이 창백해진 얼굴로 그들 근처에 나타났다. 그의 옷은 이미 다 찢어져 넝마가 되어 있었고, 기운도 한결 약해져 있었다.

“너 괜찮아?”

엄호는 그의 상태를 한 번 묻더니 곧바로 그에게 이준을 소개했다.

“아아, 이준…… 소문의 그 후배님이군.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한율이 목숨을 건졌군요.”

“아닙니다 선배님……. 마침 산 속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가 거대한 기운이 느껴져 와 본 것인데…… 위험한 상황이길래 저도 모르게 끼어들고 말았습니다. 멋대로 끼어들어 폐를 끼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임수혁의 예의 바른 태도에 이준 역시 곧바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본원에 온 이후 백청이나 한솔 같은 사람들만 보다가 이렇게 실력도 좋고 예의 까지 바른 선배들을 만나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미안하다니. 이쪽이 고개를 숙여도 모자랄 판에. 기왕 일이 이렇게 됐으니 솔직히 말하죠. 지금 우리는 저 녀석이 지키고 있는 귀한 물건을 얻기 위해 팀을 짰어요. 만일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후배님 몫도 챙겨주도록 하죠. 어때요, 도와줄 수 있겠어요?”

임수혁이 예의 바른 태도로 거래를 제안하자, 엄호를 비롯한 다른 인원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한율을 구할 때 이준이 보여준 속도로 보아 그를 팀으로 넣는다면 투왕급 마수를 상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으니 이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귀가 솔깃할만한 제안이었지만, 준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호의는 너무 감사하지만 물러서는게 현명할 것 같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저 놈의 몸 안에는 흉폭한 피가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힘이 각성하면 단숨에 5성 투왕을 웃돌 정도의 힘을 갖게 된다고 하더군요. 물론 저도 직접 눈으로 본적은 없지만…… 지금 놈의 상태로 보아 각성 직전 인 것 같은데, 일단 각성하고 나면 선배님들과 힘을 합쳐도 놈을 제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흉폭한 피?”

처음 듣는 정보에 임수혁을 포함한 이들이 화들짝 놀라 얼굴을 굳혔다. 사실 그들은 마수의 종류만 알고 있었지 구체적인 정보는 전혀 갖고 있기 않았기 때문이다.

“포기해야 하나?

엄호가 미간을 좁힌 채 임수혁을 향해 물었다. 그는 지하의 유액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아니, 우선 이준 후배님 말을 믿어보지. 아무리 귀한 보물이라도 목숨보다 귀하지는 않지. 무리해서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정말 5성 투왕급이라면 이 인원으로는 개죽음을 당할 뿐이야. 아직 완전히 각성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미 힘에 부치고 있잖아.”

임수혁의 결정에 다른 사람들도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철수하자. 상처를 회복한 다음 방법을 생각해보는게 좋겠어.”

그는 결정을 내리자마자 곧바로 이준을 향해 고개를 숙여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이준 후배님, 정말 고맙군.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요. 우리랑 같이 본원으로 돌아가는건 어떻습니까?”

하지만 이번에도 이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산에서 무투기 연습을 해야 할 것 같군요. 아직 기술을 완성하지 못해서요.”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돌아가죠. 그리고 혹시…… 오늘 본 것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걱정 마세요.”

“정말 고맙군요. 앞으로 본원에서 어려운 일이 있다면 저를 찾아오세요. 오늘 여러모로 은혜를 입었으니 이 빚을 꼭 갚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나중에 뵙겠습니다.”

임수혁은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뒤 곧바로 엄호를 비롯한 다른 강자들을 이끌고 방향을 돌렸다.

“가자.”

이준은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뒤를 돌아 씩씩대는 하얀 마수를 바라봤다. 그 때, 준의 소매에서 칠색의 예쁜 뱀 한 마리가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준은 칠색 이무기와 하얀 하늘 침팬지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렸다.

‘조금만 기다려라……. 그 지하의 유액은 조만간 내가 받아가도록 하지.’

* * *

별이 수놓인 하늘에서는 차가운 달빛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달빛이 산을 은은한 은빛으로 감싸 안아주며 몽롱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깊은 밤, 산 속에서는 사냥감을 찾아 나서는 몇 몇 마수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마수들이 각자의 보금자리로 들어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달이 중천을 지나 산을 넘어갈 무렵, 꽤 먼 곳으로부터 긴 울음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쉬익!

산골짜기 밖에 서 있던 나무 꼭대기에 그림자가 나타나 칠흑 같은 산골짜기 내부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대낮에 펼쳐진 험한 전투 덕에 산골짜기 입구는 이미 쑥대밭이 되어있었고, 여기저기에 깊은 구멍이 패여있었다.

준은 조용한 산골짜기를 돌아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은 뒤 소매를 걷어 올렸다.

“정말 먹성 좋은 녀석이라니까.”

그는 자신의 저장반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무기를 보고는 고개를 한번 절레절레 젓고는 손바닥을 흔들어 하늘 사자의 정수를 꺼내들었다.

먹이가 나타나자 이무기가 눈을 반짝이며 주인의 손을 타고 기어 올라가 탐욕스럽게 보라색 액체를 핥아댔다.

이무기는 뜨끈한 열기가 감도는 액체를 몇 모금 들이킨 뒤 만족스러운 듯 몸을 떨며 눈을 빛냈다.

자수정원을 챙겨 넣은 뒤 고개를 숙여 칠색 이무기의 눈을 바라보던 준은 문득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어째갈수록 이무기에게서 메두사 여왕의 기운이 새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메두사 여왕의 모습을 떠올리자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투종 강자와 잘못 엮이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꼬이는데, 하필이면 그 대상이 인간을 잡초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메두사 여왕이라니……. 생각할수록 골치가 아파왔다.

“휴……! 어차피 다 나중 일이니 일단 너도 배불리 먹어둬. 대신 밥 값 좀 해달라고. 혹시라도 놀고먹으려는 생각이면 다신 이 귀한 하늘 사자의 수정을 못 먹을 줄 알아!”

준은 그렇게 말하며 이무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민해봤자 뾰족한 수가 나오는 문제도 아니었으니 일단은 이놈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협박이 제법 효과가 있었는지 녀석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꼬리를 흔들었다.

이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날개를 펼친 뒤 공중으로 몸을 날려 다시 산골짜기 중앙으로 향했다.

산골짜기의 입구에서는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무서우리만치 조용한 분위기였다.

구덩이에 다가서자, 새빨간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곁에 있는 이무기를 노려보는 것 같기도 했다.

곧이어 칠색 이무기와 하얀 하늘 침팬지가 각자 살벌한 기운을 내뿜으며 기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때 준의 손가락에 끼워진 까만 반지로부터 형태 없는 영혼의 힘이 쏟아지며 그를 감싸 안았다.

“칠색 이무기더러 저 하얀 하늘침팬지를 붙잡고 있게 한 다음, 네가 산골짜기로 진입해 지하의 유액을 가져 오는 게 좋겠구나.”

“네.”

준은 스승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뒤 침팬지와 동굴을 번갈아가며 바라본 뒤 조용히 숨을 골랐다.

“짜식, 가자.”

“쉬익-!”

준의 명령에 칠색이무기가 우렁차게 대답하며 온 몸에서 형형한 무지갯빛을 뿜어냈고, 다음 순간 빛이 번쩍이며 그 몸집이 눈에 띌 정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준의 소매에서 꾸물거리던 작은 이무기는 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대물이 되어 하얀 하늘 침팬지를 노려보았다.

“오랫동안 자더니 더 강해진 것 같네.”

준은 지난 번 운남종에서보다 한층 더 비대해진 이무기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칠색이무기는 상급 마수에 속하니 그럴 만도 하지. 보통 이정도 수준에 도달하려면 최소 백 년은 지나야 할 텐데 아무래도 저 녀석이 메두사 여왕의 영혼을 품고 있어 그 변화가 더 빠른 듯하구나. 아마도 정말 강해졌다기보다 메두사 여왕의 힘을 사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스승의 말에 준은 또 다시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무기가 강해지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메두사를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왔다.

그는 긴 호흡을 내뱉고는 공중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돌연 날갯짓과 함께 빠르게 산골짜기 중앙으로 날아갔다.

준의 움직임을 포착한 하얀 하늘침팬지가 포효를 내지르며 세차게 발을 구르자, 그의 몸이 탄성 있는 포탄처럼 이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마수가 허공을 가르며 만들어내는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산골짜기 곳곳에 울려 퍼졌다.

하얀 하늘침팬지의 속도도 보통이 아니었지만, 칠색이무기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칠색 이무기는 하늘침팬지가 준을 덮치기 전에 거대한 꼬리를 휘둘러 백색 마수의 몸뚱아리를 강하게 내리쳤고, 그 순간 방대한 에너지가 터져 나오며 상대를 산 절벽까지 날려버렸다.

“쿠와아악!”

갑자기 자신의 몸을 덮쳐온 강렬한 일격에 새하얀 마수의 눈이 더욱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가 충혈되자, 몸 밖으로 차가운 얼음 에너지가 쏟아져 나왔고, 새하얀 공기가 빠르게 응집되며 거대한 얼음 공을 만들어냈다.

이에 맞서 공중에 떠 있던 칠색이무기는 자신을 향해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오는 얼음 공을 향해 곧바로 꼬리를 휘둘렀다.

* * *

칠색이무기가 시간을 끌어준 덕에 준은 순조롭게 산골짜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두 마수가 싸움을 벌이며 일어난 소음에 깜짝 놀란 준이 고개를 돌리자, 공중에서 일곱 빛깔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이 그의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걱정 말거라. 하얀 하늘침팬지를 죽이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잠시 붙잡고 있는 정도는 일도 아닐 테니까, 너는 빨리 지하의 유액을 찾아야지.”

제자가 걱정스런 표정을 짓자, 약로가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말을 걸어왔다.

“네.”

스승의 말에 조금 마음을 놓은 준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삐 발을 놀려 칠흑 같은 골짜기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눈앞이 점점 어두워졌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치 앞조차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준은 곧바로 대지의 불꽃을 꺼내 시야를 밝힌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되게 복잡하게 생겼네. 지하의 유액을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어.’

시야가 밝아지자, 그의 눈앞에는 끝도 없는 수림이 펼쳐졌다. 그는 다시 날개를 펼친 뒤 푸른 불꽃을 손에 든 채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