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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42화 (242/818)

제242화. 지하의 유액

우뚝 솟아 오른 산봉우리 위, 검은 망토를 입은 청년 하나가 조용히 앉아 천천히 호흡을 내뱉자, 주변의 공기가 미세하게 떨리며 뜨거운 기운이 그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 한마디 없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돌처럼 굳은 채 조용히 수련하기를 2시간…마침내 에너지의 흐름이 멈추고 청년이 눈을 떴다.

“두 달 동안 산 속에서 수련을 했더니 얻은 게 많네…”

지난 두 달간의 수련을 통해 이준은 ‘번개의 춤’의 첫 번째 단계인 ‘번개의 반짝임’을 익히는데 성공했고, 무투기를 익히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염력 이 향상되며 어느 새 8성 대투사 최고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물론 천계의 탑에 들어가서 수련을 했다면 단순히 염력이라는 면에서는 훨씬 더 큰 성취를 이루었을지도 모르겠지만, 2격 무투기를 익히는 것은 9성 대투사가 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 이었다.

준이 염력을 갈무리 하고 보라색 날개를 펼치자, 순식간에 그의 몸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광대한 숲을 가로질러 저만치 멀어졌다.

‘매의 날개’를 거둬들이자, 어느 새 숲 한가운데였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온통 초록으로 가득했다.

다음 순간, 준이 먹이를 문 독수리 발톱처럼 나무기둥을 두 발로 단단히 잡자 순간 세찬 바람이 불어오며 나뭇잎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뭇잎은 파도처럼 바람을 따라 끊임없이 출렁였다. 준은 검은 송곳을 꺼내든 채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만일 공격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몰아치면 어떨까…?”

그는 상념에 젖어 검은 송곳을 움켜잡은 채 바위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고 가만히 눈 앞에 펼쳐진 푸른 숲을 바라봤다.

바람을 따라 푸른 물결이 일렁이기를 수 백 번…준은 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멍하니 그 아름다운 풍경을 가만히 감상했다.

“이 녀석…”

제자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듯, 무언가에 푹 빠진듯한 기묘한 상태에 빠져들어 한참동안을 빠져나오지 못 하자, 약로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중얼댔다.

하지만 약로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듯, 준은 그저 멍한 시선으로 끝없이 펼쳐진 수림을 바라볼 뿐 이었다.

……

준이 숲속에 덩그러니 놓인 석상이 되어버린지 장장 3시간…마침내 그의 손에 들린 검은 송곳이 미묘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칠흑 같은 송곳에서 미묘한 울림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마침내 준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오른손으로 검을 붙잡은 채 온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천천히 팔을 휘둘러보았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사선으로, 또 앞에서 뒤로…준은 마치 검이 그릴 수 있는 모든 곡선과 직선을 그려보려는 듯 천천히 검을 움직였다.

검의 움직임이 서서히 빨라지고, 그 움직임에 미묘한 진동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검의 움직임이 정점에 달하자, 마치 준의 몸 주위로 검은 구체가 생긴 듯 보일 지경이었다.

준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방금 전 자신이 보았던 숲의 모습을 상상하며 정신없이 몸을 움직였다.

바람에 날리던 나뭇잎들이 어느 새 자신의 검에 맞아 잘리고 또 잘려 가루가 되어 가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 하고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몸을 움직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검의 움직임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광풍처럼 몰아치며 허공에 획을 그어대던 검신은 어느 새 산들바람처럼 가벼워져 있었고, 또 돌풍처럼 갑자기 빨라졌다 다시 부드럽게 흐르기를 반복했다.

쉬이익!

잠시 후…준이 부드럽게 검을 휘두르자, 순간적으로 검 끝에서 발생한 세찬 원기가 바람을 타고 폭발적으로 뻗어 나가 수 십 미터 거리에 있는 나무들을 몽땅 베어냈다.

준은 자신이 펼친 검술의 위력에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스스로도 몹시 놀란 모양이었다.

“이건 대체…”

“놀랄 거 없다. 수련 과정에서 종종 생각지 못한 수확을 얻곤 하지.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고 너는 그걸 놓치지 않았으니, 엄청난 행운인 셈이다.”

그제서야 몇 시간 동안 마수들이 준의 집중 상태를 깨뜨리지 못 하게 하며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던 약로가 입을 열었다.

“이런 기회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것이지. 다만 그 기회를 잡는 자가 드물 뿐 이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분명히 새로운 경지에 올랐을게다. 이제 힘에만 의존해 싸우던 때와는 또 다른 것이 보이겠지.”

스승의 칭찬에 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검은 송곳을 등 뒤에 꽂아 넣고는 기력의 조각 하나를 입안에 밀어넣었다.

그러나 준이 막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려는 찰나, 무시무시한 기운이 실린 마수의 흉포한 울음소리가 수림을 꿰뚫고 날아들었다.

“엄청난 울음소리네요. 투왕급은 되겠어요!”

“그래. 투왕급 마수가 확실하구나. 아마도…전투 중인 듯 하다.”

“투왕급 마수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요? 가서 한 번 볼까요?”

제자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이자, 약로의 입가에 인자한 웃음이 번졌다.

“마음대로 하거라.”

준은 보라색 날개를 펄럭이며 마수의 기운이 풍겨오는 곳을 향해 질풍같이 내달렸다. 10분 정도를 날아가자, 마수의 울음 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그의 귓등을 때렸다.

영혼 탐지 능력을 활용하자, 투왕급의 마수 한 마리와 그와 동등한, 아니 그 이상으로 강력한 기운 하나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예상을 뛰어넘는 두 강자의 힘 앞에 준은 숨을 죽이고 염력을 거두어들인 뒤 잽싸게 숲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는 혹여나 발각될까 조용히 다람쥐처럼 가볍게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계속해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5분 정도를 더 이동하자, 갑자기 숲이 끝나고 시야가 탁 트이며 아득한 산골짜기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숲 인근에는 작은 산골짜기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산골짜기의 입구는 꼭 조롱박을 닮아 있었고, 산 입구에는 몸채가 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하얀색 침팬지가 꼿꼿이 서 있었다.

침팬지는 온 몸에서 냉기 섞인 기운을 내뿜으며 코로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침팬지의 두 팔은 마치 두 개의 기다란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마냥 몸 양 옆으로 길게 축 늘어져 있었다.

손은 사람 머리 두 개만한 크기에, 눈은 충혈된 듯 새빨간 색으로 광기와 살기가 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는 여섯 개의 인영이 보였다.

‘저건 하얀 하늘 침팬지잖아…저 녀석들 겁도 없군. 하얀 하늘침팬지 성체는 산을 가를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데…이제 막 성체가 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3성 투왕 계급은 될 텐데…’

“저 친구들도 결코 약하진 않은 듯 하구나.”

그 때, 약로의 목소리가 준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이에 준은 하얀 하늘침팬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 하나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은 가장 왼편에 위치한 여자였다. 차가운 느낌의 은색 치마에 가느다란 은색 머리칼…한율이었다.

‘한율…?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나머지 다섯은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휘장으로 보아 아마도 한율과 같은 세력의 조직원들인 듯 싶었다.

“한율! 이 안에 네가 말한 물건이 있다는 거지? 너 나중에 혼자 입 닦을 생각 하면 안 된다? 하얀 하늘침팬지는 장로님도 혼자 상대 못할 정도인 거 알잖아.”

그 때 기골이 장대한 사내 하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내는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두 개만큼은 덩치가 컸는데, 목소리 역시 덩치만큼이나 그 기세가 대단했고, 손에는 커다란 검은 망치를 들고 있었다.

“하하. 엄호. 내가 언제 이런 일로 서운하게 하는 거 봤어? 너무 걱정할 거 없어. 만일 산골짜기에 정말 그 물건이 있다면 이 정도 수고는 열 번이라도 더 할 수 있다고! 네 달 뒤면 대회잖아. 그때 우리 실력을 보여주면 장로가 되는 것도 시간 문제야.”

‘엄호’라는 말에 준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임수혁…말은 잘하는구나. 아무리 그래도 투왕급 마수라고. 사실 우리 실력으로 는 한 마리도 힘들어.”

‘임수혁까지…?’

“큭큭. 그래도 가람아카데미의 강자 순위에서 10위 안에 든 사람들이 모였는데 다들 비장의 무기가 하나쯤은 있겠지. 안 그래?”

“저기 여러분? 떠들 시간 있으면 빨리 저놈을 어떻게 할 생각이나 하라구. 혹시라도 정보가 새어 나가면 흑각성 놈들이 몰려올텐데, 그래도 괜찮겠어?”

엄호와 임수혁이 시덥잖은 소리를 늘어놓자, 한율이 두 사람의 말 허리를 끊어버렸다.

한율의 일침에 사람들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 하더니 곧바로 염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우리 네 명이서 붙잡아 놓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이 빈틈을 노려서 끝장을 내줘. 한율 너는 약하니까 싸움에 끼진 말고 옆에서 동태를 좀 살펴주고.”

“응.”

‘약하다.’는 말에 한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가볍게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시야를 확보했다.

“하하. 다들 이렇게 오랜만에 연합해보니까 어때?”

하지만 임수혁은 한율이 나무 위로 올라가자마자 또 다시 장난스런 말투로 엄호를 도발했다.

“네가 투왕 계급에 발을 걸칠 수 있을지는 몰랐는데 말이야.”

“그러게, 나도 네가 투왕 계급에 발을 걸칠 줄을 몰랐는데 말이야.”

엄호가 임수혁의 말을 맞받아치며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자,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기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상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하얀 마수는 새빨간 눈을 더욱 새빨갛게 빛내며 가슴을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인간들! 감히 ‘지하의 유액’에 손을 댈 생각을 해!?”

‘뭐? 지하의 유액?’

마수의 한마디에 이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아니 그러니까, 저 안에 지하의 유액이 있단 말이지?’

지하의 유액은 대지 밑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본래 순도 높은 대지 에너지가 세월이 흐르며 압축 되어 안개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다시 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 액체가 되는 것 이었다.

순도 높은 대지 에너지는 액체가 되면서 훨씬 더 농밀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하의 유액은 뼈를 씻고 단련하는 신비로운 효능이 있었다.

그리고 방대한 대지의 힘이 축적 되어 만들어졌기 때문에 최고 단계에 이른 사람들이 승급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게 도와주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지하의 유액은 생성 과정 자체가 까다롭기 때문에 좀처럼 사람들의 눈에 띄는 법이 없었다. 준도 약로를 통해 이야기만 한 번 들어본 정도가 다였다.

상상도 못한 곳에서 보물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된 준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잡고 최대한 기척을 감춘 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주위를 둘러봤다.

“왜? 탐나느냐?”

준이 눈을 반짝이자, 약로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지하의 유액을 조금만 얻을 수 있다면 한두 달 내로 투령 계급이 될 수도 있는데 저 물건이 탐나지 않는게 이상하죠! 게다가 스승님도 그러셨잖아요. 지하의 유액은 뼈를 씻고 단련하는 효과가 있다고. 저 물건을 손에 넣으면 투왕이 되는데에도 도움이 될 거구요.’

“하하, 물론 그렇지. 하지만 이런 곳에 지하의 유액이 있다니…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구나. 다만 저 앞에 있는 하얀 하늘침팬지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란다. 보통 투왕 계급 마수가 지능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사람 말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 그러니 저들이 지하의 유액을 지키는 데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듯 하구나.”

‘이제 어떡하죠? 저들이 싸우고 있을 때 몰래 들어가볼까요?’

“산골짜기 입구로 들어가는 건 무리일 듯 하구나. 하지만 날아가자니 그것도 어려울 듯 하고…”

‘그럼 어쩌죠?’

“기다리거라. 어부지리가 가능한지 한 번 보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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