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239화 (239/818)

제239화. 결착

치익—

또 다시 무언가가 불타는 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움직였다. 한솔은 황금빛 약솥 앞에서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왜? 왜 또 실패한 거지……?”

한솔은 새파래진 얼굴로 약 솥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모든 재료의 제련을 성공적으로 끝냈고, 이제 융합 과정만 거치면 되는 단계였다. 그러나 그 결정적인 순간에 억제되어 있던 불꽃이 폭발하며 온도가 급상승해 간신히 제련해 놓은 약재가 모두 잿더미가 되어버리고 만 것 이다.

“후우……!”

그리고 한솔의 얼굴이 파랗다 못 해 새하얗게 질립 무렵, 긴 한숨소리와 함께 드디어 준이 눈을 떴다.

그는 상대의 성패나 상태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천천히 푸른 화염을 피워내더니 한쪽 손으로 천천히 약재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이준이 과감하게 제련을 시작하자 한솔도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그에게는 마지막 기회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제련을 시작하지 못 하고 이준을 바라보며 악의 섞인 웃음을 지었다.

‘잘난 체 하긴. 네 녀석도 분명 실패할 거다.’

한솔의 저주가 통했는지, 이준이 몇 가지 약재를 약 솥에 넣을 무렵 즈음 빨간색 액체가 격렬하게 들끓더니 강한 충격을 받은 듯 약 솥 위로 튀어 올랐고, 약이 아래로 떨어지며 사방으로 튀어버렸다.

“아아…….”

관중들은 안타까움에 나지막이 탄식을 내질렀다.

“킥킥……!”

이준의 실패를 지켜본 한솔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용의 힘은 애초에 제조가 불가능 할 것 같으니 나도 성공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겠어. 실패작이라도 이준보다 더 나은 걸 만들어 놓으면 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한솔은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이거였군.’

하지만 이준은 타오르는 푸른 화염을 보며 조용히 웃음을 짓고 있었다.

* * *

한솔이 마지막 세 번째 제련에 들어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준 역시 세 번째 제련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실패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불을 피워내고 있었지만, 준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렇게 십여 분이나 지났을까. 한솔의 솥에서 은은한 약 향이 피어올랐다.

슉!

그렇게 3분이 지나자 한솔이 손을 휘저었고, 약 솥에 있던 약이 튀어 오르며 그의 손아귀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연금비약은 색깔이 울긋불긋 했을 뿐만 아니라 모양도 불규칙했다. 어떻게 보면 반은 성공, 반은 실패인 셈이었다.

한솔이 연금비약을 내밀자, 혁 장로는 무심한 표정으로 연금비약을 받아들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솔이 연금비약 제조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듯 보이자, 광장이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

“성공한건가?”

한솔이 탁자를 지나 손에 들고 있던 연금비약을 혁 장로에게 넘기자, 오하늘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은에게 물었다.

“아닌 것 같아. 5레벨 연금비약은 형태부터 아주 특이하다고 들었어. 그런데 저건 약 향도 평범하고 모양도 별 다를 게 없잖아. 장로님 표정을 봐도 5레벨 연금비약 제조에 성공한 것 같지 않고 말이야.”

이은의 답변에 오하늘은 조금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며 준을 바라봤다.

* * *

광장 곳곳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과 웅성거리는 소리가 준의 정신을 흩어 놓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준은 미동조차 않고 조용히 푸른색 불꽃을 조종했다.

준은 한 번에 영혼 에너지를 쏟지 않고 두 번으로 나눠 천천히 융합 작업에 들어갔다. 조금 전 시도에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불꽃의 온도를 억제한 뒤 재빨리 약을 에너지를 이용해 감싸 안았다.

그러자 약에서 격렬한 파동이 일어나며 강렬한 에너지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펑!

곧이어 약 솥 안에서 경쾌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약 솥이 한 차례 진동 하자 준의 표정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는 빠르게 손바닥을 약 솥 앞으로 뻗어 공기를 아래로 압축시켰다.

이에 약 솥 안에서 들끓던 액체가 공기의 압력을 받으며 점점 탁구공만한 크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준이 손바닥을 펴고 힘을 쏟아내자 탁구공 크기였던 액체 형태의 약이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작아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액체는 온데간데없이 엄지 손가란 한 마디 크기의 연금비약이 약 솥 안에 덩그러니 남았다.

준은 한바탕 큰 싸움이라도 치른 사람마냥 온 몸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약 솥안을 바라봤다. 그가 만들어낸 연금비약은 한솔의 것과 달리 다이아몬드와 비슷한 마름모꼴 형태를 띄고 있었는데, 연금비약의 표면은 한솔의 것과 똑같이 불규칙했지만, 색깔은 얼룩 없이 균일했다.

그리고 노인이 수염을 매만지며 창백한 얼굴을 한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한솔의 가슴에 서늘한 냉기가 스쳐갔다.

* * *

약 솥의 푸른 불꽃이 튀어 오르고, 뜨거운 온도로 인해 약 솥이 점점 더 붉게 달아올랐다. 그 사이 불규칙하던 다이아몬드 형태의 연금비약은 한층 더 가열되며 점점 매끄럽게 변한 상태였다.

준은 땀을 비 오듯이 쏟아내면서도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연금비약을 완성해 갔다.

마침내 검붉은 연금비약이 반짝거리며 솥 안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 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탕!

그 때, 연금비약에서 에너지가 폭발하며 약 솥에 부딪혀 경쾌한 울림 소리를 만들어냈다.

파직—

그러나 그 울림이 퍼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소음이 이준의 고막을 자극했다. 약 솥이 갈라지는 소리였다. 연금비약이 강하게 부딪히며 표면에 작은 틈이 생긴 것이었다.

탕!

이윽고 또 다시 연금비약에서 에너지가 터져 나오며 약 솥에 부딪혔다.

치익-

결국 약 솥이 폭발하고, 검붉은 연금비약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런……!”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성공을 목전에 두고 실패한 준의 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장탄식을 내뱉었다.

약 솥이 터지는 바람에 준의 망토에는 군데 군데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의 손바닥이 찢어져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준의 모습에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한솔은 이준의 모습에 놀란 듯 했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그를 향해 어깨를 한번 으쓱한 뒤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이준 후배, 연금비약 제조에 실패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니 너무 상심하지 말게, 그 세 가지 처방전은……”

그러나 준은 실실 웃는 한솔에게 대꾸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연금비약을 손에 든 채 혁 장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피 묻은 손으로 노인에게 연금비약을 건네는 그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내려 앉아 있었다.

검은 망토를 입고 있는 청년의 손에 들린 검붉은 연금비약 하나에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말도 안 돼. 분명 뭔가 속임수가 있을 거라고! 저 녀석 분명 연기가 피어오를 때 몰래 속임수를 쓴 거야!”

이어지는 한솔의 고함에 사람들은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혁 장로마저도 불쾌한 표정을 했다. 이는 자신의 판단을 무시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한솔, 언행에 주의해라. 공정성에 대한 것은 네가 판단할 바가 아니야.”

혁 장로의 싸늘한 한마디에 한솔은 번쩍 정신이 든 듯 곧바로 고개를 숙여 자신의 언행이 잘못됐음을 시인했다.

한솔이 바로 잘못을 인정하자 혁 장로는 그를 위 아래로 한번 훑어본 뒤 다시 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장로님께서 한 번 더 확인해주시죠.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준의 자신만만한 말투에 노인은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럽게 그의 손에 들린 5레벨 연금비약을 받아들었다.

그는 잠시 동안 다이아몬드 모양의 연금비약을 이리 저리 훑어보더니 그것을 앞으로 내밀어 관객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음. 절대 가짜일 리가 없습니다. 과거 화 장로가 저 물건을 제조했을 때도 딱 저런 모양과 색깔이었지요.”

“본원에 들어 온지 석 달도 안 된 친구가 용의 힘을 만들어 내다니. 연금술 학과에서도 만들 수 있는 이들이 몇 되지 않을 텐데 말이야.”

승부가 확정된 듯 하자, 광장 구석에 서 있던 장로들 사이에서 준의 실력에 대한 품평이 오갔다.

심지어 장로 중 몇 명은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와 이준의 어깨를 두드리기 까지 했다.

4레벨 연금비약 제조는 그들에게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니었지만 5레벨이라면 이야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준이 5레벨 연금비약 제조에 성공하자 장로들은 하나 같이 준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노인들은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들다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고, 개 중 몇 몇은 앞으로 준에게 연금비약의 제조를 부탁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까지 남기고 떠났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두 떠나고 나자, 준은 혁 장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장로님도 만일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 해주세요. 힘이 닿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하하. 그거 말이라도 고맙군.”

혁 장로는 몹시 기분이 좋은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한솔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솔 학생. 방금 여러 장로들의 평가를 다 들었을 줄로 아는데. 이견 있나?”

혁 장로의 한마디에 한솔은 완전히 낯빛이 흙빛이 되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습니다…….”

한솔이 패배를 시인하자, 노인이 곧바로 광장에 모여든 학생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준의 승리를 선언했다.

“대결은 여기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이번 연금술 대결은 이준의 승리입니다!”

“와아아!”

혁 장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비석의 조직원들은 흥분에 휩싸여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워댔다. 그들에게 감염되기라도 한 듯 주변에 몰려들 관중들도 하나 둘씩 이준을 향해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네가 패배를 인정했으니 3일 안에 약속한 다섯 개의 자리를 비석에게 넘겨 주거라. 그리고 뒤에서 비석을 괴롭히는 일도 중지한다. 나를 심판으로 세워놓고 한 경기이니, 부디 약속을 지켜주길 권고하지. 약속을 어긴다면 나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겠다.”

노인의 말에 한솔은 이를 악문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시 후, 한솔이 분노와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히며 연금술사 연합의 조직원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준이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혁 장로가 다가와 준의 어깨를 토닥였다.

“걱정할 거 없다. 내가 증인이 되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한 것들을 받아낼 수 있게 보증해주마.”

“감사합니다.”

곧이어 노인은 인자하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검붉은 연금 비약을 이준에게 넘겨주었다.

“전리품이다. 잘 챙기거라.”

“아닙니다. 혁 장로님께서 주신 ‘용의 힘’ 처방전은 이 연금비약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귀중하죠. 이건 장로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준은 고개를 저으며 그 연금비약을 다시 혁 장로에게 넘겼다. 하지만 혁 장로는 끝끝내 그것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다. 과제는 내가 정한 것이니 이 물건을 받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노인의 단호한 태도에 이준은 잠시 망설이다 결국 용의 힘을 받아 자신의 저장반지 안으로 넣었다.

“아참, 그리고 시간이 난다면 본원의 약재 창고를 한번 둘러보는 것도 좋겠구나.”

준은 장로가 창고를 ‘둘러보라’고 제안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고는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유명한 가람 아카데미의 약재 창고이니만큼 귀한 약재도 많을 것 이고, 그 중 몇 가지만 손에 넣는다 해도 준으로써는 아주 큰 수확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