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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33화 (233/818)

제233화. 또 한 번의 승급

잠시 후, 준이 천천히 두 개의 불꽃을 분리하자, 딱딱하게 굳어있던 허 장로의 얼굴이 조금은 평정을 되찾았다.

“네 이름이 이준이냐?”

그는 살짝 숨을 돌린 뒤 이준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

“네. 이준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그래.”

그는 상대가 ‘그’ 이준이라는 것을 확인하더니 이내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장로님, 이 수련실은 저 류헤이가 항상 사용하던 공간입니다. 오늘 보니 누군가 제 자리를 빼앗아 세원 오라버니가 절 대신해서 신입에게 예의 를 가르쳐주려 하던 참이었을 뿐입니다.”

헤이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장로에게 고자질하듯 조금 전 상황을 낱낱이 토로했다.

그녀는 이곳 3층 수련실에서 꽤나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허 장로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허 장로는 그녀의 대답을 무시하고 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준, 네가 말해보거라.”

장로의 질문에 준은 더하거나 빼는 것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준의 이야기를 듣던 허 장로의 안색이 점점 험악하게 구겨졌다.

“박세원. 선배로서 탑의 규정을 어기다니, 벌점으로 30일치의 불의 힘을 차감하겠다. 3일 내에 반납하도록. 그렇지 않으면 한달 동안 이 탑에 발 들이는 걸 금지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허 장로의 말은 더욱 예상 밖의 것 이었다.

“류헤이, 너는 주범은 아니지만 공범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너도 열흘치 불의 힘을 차감하겠다. 너도 3일 내로 불의 힘을 반납하도록. 이준 너는 5일치의 불의 힘을 반납하거라.”

허 장로의 강경한 태도에 학생들은 어찌할바를 모르고 서로 눈치를 살폈다. 대련 도중에 상대에게 지나치게 큰 상처를 입히거나 죽을 정도의 상처를 입힌자는 보통 한달에서 두 달 정도 천계의 탑에 들어오지 못 하게 된다. 규정대로라면, 이준에 대한 처벌은 너무 가벼웠고, 류헤이와 세원에 대한 처벌은 너무 무거웠다.

“허 장로님, 이준에게만 너무 가벼운 처벌을 내린 게 아닌가요?”

장로의 판결에 헤이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날카로운 표정으로 반박했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대장로님이나 원장님을 찾아가거라…”

하지만 허 장로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볼 뿐이었고, 결국 류헤이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됐다. 오늘 일은 여기서 마무리 짓자. 앞으로 또 다시 탑의 규정을 어기는 녀석이 있다면 그 때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 이다.”

노인은 그렇게 상황을 일단락시키고는 다시 이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네, 앞으로 힘 조절이 필요할 것 같군.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아까 저 녀석은 목숨을 잃었을게다. 그럼 자네도 본원에서 쫓겨나게 됐을거야.”

허 장로의 조언에 이준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

마침내 장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준은 조용히 다시 수련실로 향했다. 자리에 있던 학생들 중 대부분이 허장로의 판결에 의문을 품고 있었었지만, 탑의 장로가 이렇게 대놓고 그를 감싸는 것을 보았으니, 감히 누구도 준에게 시비를 걸지 못 하고 그가 수련실로 돌아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 *

수련실에 돌아가자마자 준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벽에 몸을 기댔다. 언제나 그랬듯이, 두 개의 불꽃을 결합시키는 것은 그에게도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그는 온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곧바로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수련 상태에 돌입했다.

* * *

그리고 세원과의 다툼이 있은지 5일 뒤…천계의 탑 곳곳에는 이준이라는 신입생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소문의 내용은 신입생이 4성 투령인 세원을 일격에 죽일 뻔 했다는 것, 그리고 엄하기로 유명한 허 장로가 그를 대놓고 편애하며 편을 들어주었다는 것 이었다.

이 소문은 준을 고깝게 여기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를 존경하는 무리의 수도 늘어났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적어도 3층에서는 그를 건드리는 자가 없게 되었다.

……

고급 수련실 구역을 들어가는 학생들마다 수련실 앞에 걸린 이준의 명패를 확인하고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일부 학생들은 이준의 얼굴을 보기 위해 수련실 앞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나오지 않자, 하나 둘 포기하고 자신의 수련실을 찾아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

준이 수련실에 다시 틀어 박힌지 5일 뒤…마침내 준의 수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복도에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한곳으로 쏠렸다.

준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시선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는 곧바로 4층 입구로 향했다.

천계의 탑이 가진 불꽃의 힘에 연금비약이 더해진 덕에 그는 이미 지난 일주일 만에 8성 대투사의 문턱까지 닿아 있었다.

하지만 막상 8성 대투사로 승급을 하려는 순간, 그는 3층의 에너지는 자신이 안정적으로 승급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결국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잠시 수련을 멈출 수 밖에 없었던 것 이다.

“지금 4층 가려는 것 같지?”

“4층은 투령 계급 이상의 실력자만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니야?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누가 알겠어…박세원도 상대가 안 된다는데…4층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준이 막 4층으로 이어진 계단에 발을 내딛는 순간, 교사 하나가 그를 막아섰다.

“잠깐. 4층은 투령 실력이 되어야 진입 가능하다. 그 전까지는 어림 없어!”

“네?”

준은 걸음을 멈추고 교사에게 되물었다. 4층으로 가려면 투령이 되어야 한다니…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너…설마 이준이라는 아이가 너냐? 며칠 전에 박세원과 대련을 했다는…”

교사의 질문에 준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네…죄송합니다. 그런 규칙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다시 3층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아아, 기다리거라!”

그 때 그 교사가 다급하게 이준을 붙잡더니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니다, 허 장로님께 이미 네 얘기를 들었다. 물론 규정대로라면 아직 이르지만,이 정도는 융통성을 발휘해도 되겠지. 들어가보렴.”

“정말입니까?”

준이 이 뜻 밖의 행운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되물었다.

“그래, 어서 가보거라.”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하. 아니다. 아직 등급은 낮지만 이미 충분한 실력을 갖고 있어. 일단 내려가거라. 그리고, 4층에 가서는 뭐라도 좀 먹는 게 좋을 게다.”

“정말 감사합니다.”

준은 또 다시 공손하게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놀란 토끼눈이 된 선배들을 뒤로 하고 곧바로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준은 4층에 도착하자마자 배를 채울만한 요리를 간단히 만들어 먹은 뒤 중급 수련실 한 곳을 골라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4층에 있는 중급 수련실의 수련 효과는 당연히 고급 수련실보다는 조금 떨어졌지만, 심장의 불꽃이 타오르는 정도를 놓고 보자면, 3층 고급 수련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게다가 누군가가 와서 방을 빼앗으려 들 일도 없으니 승급을 앞둔 지금의 준에게는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비어있는 수련실을 찾아 들어간 뒤 다시금 약 솥을 꺼내 불의 정령 의 연고와 바람의 알약을 제조했다. 장장 일주일 동안 수련을 이어가는 통에 가지고 있던 비약들은 진작에 다 떨어진지 오래였다.

이미 한 번 제조해본 경험이 있던 탓에 그는 더욱 순조롭게 필요한 비약들을 만드는데 필요한시간도 대폭 줄어 들어 있었고, 제조된 연금비약의 품질도 지난 번보다 훨씬 뛰어났다.

두 종류의 연금비약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내자, 준은 곧바로 다시금 오랜 시간 수련에 들어가기 위해 눈을 감았다.

* * *

준은 장장 보름에 걸쳐 수련실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수련실을 나갈 때라고는 더 이상 배고픔을 견딜 수 없어 식사를 할 때와 아주 잠깐씩 쪽잠을 잘 때 뿐 이었고, 그 외의 시간은 거의 죽은 사람처럼 수련실에서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잊은 채 고행을 이어 나간지 보름 하고도 이틀…마침내 그의 염력 회오리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조용한 수련실 안, 마침내 거대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준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준의 신체가 감전된 사람처럼 파르르 떨리고, 온 몸이 불덩이처럼 붉어지며 폭발적인 염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무시무시한 소용돌이가 야생마처럼 미쳐 날뛰며 그의 몸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

그렇게 수련실 안에 가득 찬 염력을 물 먹은 솜처럼 빨아들인지 장장 10분…마침내 준이 눈을 떴다.

그의 동공에는 여느 때처럼 푸른 불꽃이 스쳤고, 그 불꽃이 사라지자 그의 입에서 까만 연기가 섞여 나왔다.

준은 자신이 토해낸 새까만 연기를 발견하자마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각인 독’이 아직도 그의 몸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 이다.

‘승급할 때가 되서야 겨우 이 정도 양의 각인 독을 배출해낼 줄이야. 후…’

비록 대지의 불꽃이 각인 독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그 독을 품고 살 수는 없었다. 투왕인 나원승조차 각인 독의 독성 앞에 목숨이 위태롭지 않았던가.

“후…그래도 일단은 8성 대투사가 된 것에 기뻐해도 되겠지?”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목에 매달려 잠들어 있는 칠색 이무기를 바라봤다.

“이 녀석은 잠이 점점 더 많아진단 말이지.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한 번을 안 깨네.”

이무기가 이렇게 오랫동안 잠에 빠져 있는 것은 결코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원래 같으면 진작 팔팔하게 날뛰었어야 한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가만히 잠들어 있는 칠색 이무기를 바라보던 준의 머릿속에 각인 독 못지 않은, 아니 그보다 수 십배는 더 위험한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후…메두사 여왕이 이무기의 몸을 점점 더 침식해가고 있다는 소리겠지?빌어먹을…다시 깨어날 때면 투종이 되어있을텐데…’

그 때, 스승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걱정 말거라. 영혼의 결정을 얻기 전까지는 메두사도 널 어쩌지 못할게다.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려면 반드시 영혼의 결정이 필요하니, 그녀도 널 어쩌지는 못해.”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럼 그 물건을 만들어서 넘기기 전에 뭐라도 거래를 해야겠군요.”

“그래. 게다가 진화 후의 메두사여왕은 더 이상 칠색이무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게다. 아마도 ‘일곱 날개 뱀’이 되어있겠지.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투 존 셋이 달려들어야 겨우 상대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더구나.”

“투존 강자 세 명이요?”

준은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정말…괜찮을까요 스승님?”

* * *

거의 한 달 만에 탑 밖으로 나오자, 준의 눈에는 세상이 온통 푸르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쏟아지는 햇살은 온 몸을 녹이는 듯 따스하고 보드라웠다.

준은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킨 뒤 검은 송곳을 둘러 메고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걸어 신입생 기숙사가 보이기 시작하자, 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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