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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32화 (232/818)

제232화. 불청객

고급 수련실 구역으로 이동하자, 몇 몇 학생들이 고까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3층의 고급 수련실의 수는 총 38개로 각각의 수련실마다 20명 정도 수용 가능했다. 물론 1인실도 여럿 있었다.

이준은 고급 수련실의 입구 쪽을 쭉 둘러봤다. 대부분은 입구에 이름패가 걸려 있었고, 몇 개의 수련실을 서성이다보니 빈자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기 전에 문을 가볍게 두드려보자,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고, 곧이어 쇠를 두드리는 듯한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2층과는 달리 3층부터는 문도 금속으로 이루어진 듯 했다.

‘누가 갑자기 들어와서 수련을 방해할 까봐 이런 설계를 해놓았나 보군.’

그는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문을 열고 3층의 수련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준이 들어간 수련실에는 딱 두 사람을 겨우 수용 할 수 있는 크기의 검은 돌 판이 마련되어 있었다. 다른 곳에는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었고, 한 켠에는 이부자리까지 깔려 있었다. 2층과는 차원이 다른 설비였다.

석판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마자 따뜻한 기운이 그의 몸속을 파고들어 뼈속까지 나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준은 자신의 불 수정 카드를 꺼내 그 위에 쓰인 숫자를 확인했다. 103. 일주일도 안되는 사이 어느 새 충분하다고 느꼈던 불의 힘이 3분의 1이나 사라져 있었다.

손바닥을 뒤집자 초록 불 에너지 카드가 그의 손바닥 위에 나타났다.

‘이 속도라면 남은 불 에너지로도 얼마 못 버티겠는 걸.’

그는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카드를 눈앞에 보이는 작은 투입구에 밀어 넣는 순간, 반짝 하는 불빛이 나며 103이었던 숫자가 100이 되었다.

‘역시 한 층씩 내려갈 때마다 소모되는 불 에너지가 하나씩 늘어가는구나.’

3층에서 하루 수련하는 비용이 3일치의 불의 힘이라니! 조금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뭐라고 생각하든, 본원의 시스템이 바뀔 리는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시간을 살뜰히 쓰는 것 뿐 이었다.

준은 어깨를 한번 으쓱한 뒤 곧바로 빨간색의 연고를 꺼내 온 몸 구석구석에 바르기 시작했다.

‘한 번 해보자고. 가자…’

연고의 약효가 퍼지자 영혼 탐지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눈을 감으면 수련실 주위에 떠다니는 붉은 색 에너지가 눈에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신에서 가렵고 따가운 느낌이 전해지자, 이준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몇 번의 심호흡 끝에 손에 들고 있던 연고를 내려놓은 뒤 청색의 동그란 연금비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바람의 알약이 입안에서 녹아내리자, 순도 높은 에너지가 온 몸을 타고 흐르며 혈관을 타고 흐르던 염력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마침내 준이 눈을 감고 수련 상태에 들어가는 순간, 격렬한 에너지가 휘몰아치며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준의 혈관 곳곳에서는 푸른색 염력이 범람하는 강물처럼 기세 좋게 흘러넘치며 막힘없이 이동해 담금질을 마친 뒤 또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수련은 무려 이틀간 쉬지 않고 지속됐다. 준은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죽은 사람처럼 눈을 뜨지 않았다.

* * *

그리고 준의 수련이 3일째에 접어드는 날…가만히 있어도 뜨거운 천계의 탑 안에 북극 여우 모피를 걸친 여자 하나가 나타났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의 옷차림이었다.

그녀는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것만 같은 모피를 걸친 채 거만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이한 것은, 그녀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온도의 천계의 탑 안에서 모피까지 걸치고 있는데도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태연하게 걸어 다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피를 걸친 여자는 사내 하나와 인사를 나눈 뒤 그와 함께 익숙한 발걸음으로 3층의 한 수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그녀의 뒤에 있던 사내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런…감히 어떤 놈이…”

“세원, 살살해.”

여인의 여유로운 한마디에 사내는 피식 웃으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알았어. 하지만 류지안 형님께서 아끼는 사촌동생을 지켜달라 부탁하셨으니 나도 최선을 다 해야지.”

하지만 몇 번이나 문을 두드렸음에도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고, 결국 세원은 잔뜩 성이 난 표정으로 문을 열어제꼈다.

그 순간, 검은 망토를 입은 사내 하나가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천천히 문가로 걸어왔다.

“뭐 하자는 거죠?”

“네 놈, 새로 온 놈이냐?”

세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준을 내려다봤다.

“이 수련실은 다른 사람이 쓰면 안 된다는 걸 몰랐나 보군.”

“본원에 그런 규정이 있다는 건 처음 듣는데.”

상대의 당돌한 대답에 세원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아주 겁대가리 없는 놈이군. 나랑 해보자는 건가?”

“그럴 시간 없어. 할 일 없으면 꺼져. 괜히 남의 수련 방해하지 말고.”

준이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리려는 순간, 마침내 북극 여우 모피를 걸치고 있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저기요, 잠시만요.”

고개를 돌리자, 어느 새 싸움을 기대하는 듯한 눈빛을 한 본원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모피를 걸친 여자 하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준은 순간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인가 싶었다. 어지간히 정신 나간 여자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이었다. 천계의 탑에서 모피라니…

“무슨 일이죠?”

“너무 죄송하지만, 여기가 사실 제 개인 수련실이라서요…”

이어지는 여자의 말에 준은 순간 짜증이 치밀어오는 것을 느꼈다. 수련을 방해받은 것만으로도 불쾌한데, ‘개인 수련실’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본원에서 특별대우라도 해주는 건가요? 무슨 근거로? 만일 이곳이 정말로 본원에서 그쪽을 위해 특별히 만든 공간이라면 제가 사과를 드리죠. 그런데 저는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네요.”

이준의 짜증 섞인 한 마디에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준의 당돌한 언행에 여인의 뒤에 있던 사내가 핏대를 세우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내 냉정하고 예의바른 표정을 짓고 있던 여인의 표정 역시 눈에 띄게 일그러져 있었다.

“저 싸가지 없는 새끼가!”

“싸우고 싶으면 가서 도전 종을 울리고 와라.”

하지만 준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검은 종을 가리킬 뿐 이었다.

본원의 다른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천계의 탑 역시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 이었다. 다만, 이곳에서는 허가 없는 결투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결투를 벌이고 싶거나 상대의 수련실을 빼앗고 싶다면 먼저 검은 종을 울려야 했다. 그리고 검은 종을 울리기 위해서는 하루치의 불의 힘을 지불해야 했다.

“좋아…실력에 제법 자신이 있나보군.”

세원은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온 몸에서 염력을 뿜어냈고, 그 강렬한 기세에 주변에 있던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좀 봐주면서 해. 아니면 오라버니한테 내가 혼나니까.”

그 때,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여인이 짐짓 말리는 ‘척’하며 세원을 다독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나 눈빛은 누가 봐도 준이 묵사발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크크. 알았어.”

“진짜 싸우자는 거지?”

이준은 귀찮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나 상대는 준의 한숨이 무슨 의미인지를 완전히 오해한 듯 했다.

“무섭냐? 싸우기 싫으면 당장 여기서 꺼져. 헤이에게 사과하고 앞으로 다시는 이쪽 구역에 발을 들이지 마. 그럼 보내주지.”

준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보라색 알약을 하나 꺼내 입 안에 넣고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연금비약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힘을 얻을 생각인 모양이군?”

세원은 코웃음을 치며 준을 비웃었다. 그는 이미 준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대투사 정도는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 물론…평범한 대투사를 기준으로.

하지만 준의 입에서 보라색 화염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거만하기 짝이 없던 세원의 표정이 다소 진지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호오…제법 실력 있는 녀석인가 보군.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그러나 준은 이번에도 그의 말을 무시하고 조용히 반대쪽 손에서 푸른 색 화염을 끌어냈다.

두 개의 불꽃이 나타나자, 주위의 공기가 뜨겁게 끌어 오르며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비 오듯이 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세원의 입가에서는 완전히 웃음기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노란색 염력을 끌어올리며 발을 구른 뒤 쏜살같이 앞으로 몸을 날렸다.

곧이어 거대한 돌풍과 함께 노란색 염력에 휩싸인 사내가 검은 망토를 입은 준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두 개의 불꽃이 결합되기 시작했다.

준은 두 개의 불꽃을 결합시키는 것과 거의 동시에 뒤로 몸을 물렸다.

목표를 놓친 세원은 야수처럼 미쳐 날뛰며 다시 한 번 준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준은 재차 뒤로 몸을 빼며 거리를 벌렸다.

불과 1, 2각 사이, 두 사람은 열 번 이상 쫓고 쫓기며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촥!

마침내 세원이 준의 옷자락을 잡아 찢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준의 몸은 아직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상태였다.

“쥐새끼 같은 자식. 검은 종은 왜 울리라고 한거냐! 그냥 쫓겨나기는 억울하니 내 불의 힘이라도 축내고 싶었나보지?”

상대가 계속해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자, 흥분한 세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때, 여태 도망치느라 바빴던 준이 우뚝 멈춰 서서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제야 할 마음이 생겼구나!”

세원은 상대가 자신의 도발에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더욱 흥분해 염력을 폭발시켰다.

하지만 준의 손에 들린 기묘한 불꽃을 보는 순간, 그는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내딛으려던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멈춰!”

이준의 손을 떠난 청보랏빛 불꽃이 막 세원을 향해 날아드는 순간, 노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인의 고함 소리에 준이 급히 손을 위로 들어 올리자 청보랏빛 불꽃이 급격하게 방향을 틀며 세원의 머리 위를 지나 다시 준의 손바닥 위로 안착했다.

“허 장로님? 갑자기 왜 여기까지 오셨지?”

갑작스런 노인의 등장에 주위에 구름처럼 몰려들어 있던 학생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허 장로는 탑을 지키는 장로 중에서도 상당히 지위가 높은 자로, 그가 학생들의 싸움에 관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이었다.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게냐!”

허리가 굽은 노인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학생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고, 학생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허 장로님, 왜 이러십니까? 본원에서 학생들 사이의 대련은 흔히 있는 일 아닌가요?”

그 때, 학생들 틈에서 헤이가 걸어 나오며 장로에게 되물었다. 그녀의 말에 허장로는 더욱 언성을 높였다.

“대련? 허! 조금만 더 늦었다면 저 녀석은 죽었어!”

허 장로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이준을 훑어보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일단 손에 든 그 불꽃을 끄거라. 이곳의 일은 내가 정리해보겠다.”

“네. 장로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준은 허 장로의 분부에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사소한 다툼으로 인해 장로의 눈 밖에 나는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손해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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