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1화. 두 개의 연금비약
준은 동수의 제안에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수시로 분노를 폭발시키며 이성을 잃을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제 이득은 다 챙기려고 하니, 왠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글쎄요. 제 거래에 응하든 말든 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필요한 물건이긴 하지만 영영 얻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요. 제 조건이 마음에 안 든다면 관두죠.”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동수는 또 다시 눈을 붉게 빛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여유가 있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은 듯 한데요. 저야 그냥 오늘 재수가 좀 나빴다 생각하면 되지만 그쪽은 목숨이 위험한 상황입니다. 알아서 판단하세요.”
조금만 제 맘대로 되지 않으면 성을 냈다가 조금만 마음에 드는 이야기만 나오면 태도가 바뀌는 상대의 언행에 준의 마음속에서는 서서히 거래를 할 마음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너 이 자식…”
결국 임동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승낙하지. 내 몸 속에 있는 독을 다 제거해주면 이 넝쿨을 네게 넘기겠다. 하지만 독이 남아있으면 넝쿨을 넘겨주는 대신 네놈 면상을 박살내주지.”
준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탁자 위에 놓인 물건들을 쓰레기 버리듯 아무렇게나 저장반지에 쑤셔넣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몸속에 독이 축적된 지는 얼마나 됐죠?”
자리를 옮겨 조용한 곳으로 이동한 준은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사내에게 질문을 던졌다.
“일년 반 정도. 그리고, 임동수라고 불러라.”
사내는 또 다시 짜증이 치미는지 연신 인상을 써댔다.
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그의 붉은 눈동자를 한참동안이나 관찰하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몸 속 아주 깊은 곳까지 독성이 침투되어 있어요. 제 상상 이상으로요.”
“뭐…!”
동수가 또 다시 충동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결국 준이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다.
“죽기 싫으면 그 입 좀 다물어요! 치료할 수 없다는 소리는 안 했어요. 다만…단기간에 해독하는건 무리예요. 이건 천천히 독소를 빼내는 것 밖에 답이 없어요.”
“천천히라면 얼마나?”
“여기, 일단 이걸 마셔요. 몸속의 불 독소를 억제하는 효능이 있으니 이걸 복용하면 우선 이성까지 침식당하진 않을 거예요. 기억하세요. 하루에 한 알씩입니다. 여기 총 열 다섯 알이 있으니 보름은 먹을 수 있어요…”
준은 그렇게 말하며 저장반지에서 옥병을 하나 꺼냈다.
사내는 곧바로 옥병을 낚아챈 뒤 이리저리 살펴봤다. 새하얀 얼음 결정처럼 생긴 연금비약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자, 임동수는 환히 웃으며 잽싸게 그것을 입속으로 털어넣었다.
“하지만 얼음 정령단은 해독제가 아니에요. 고작해야 화기를 억누르는 역할 밖에는 못 합니다. 그러니 일단 밖에 나가서 문을 좀 지켜주시죠. 지금 약을 하나 제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도 방해하지 못 하도록 잘 지켜야 합니다. 당신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임동수는 순간 멈칫하며 준을 노려보다가 이를 악물고 벌떡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아마도 준이 자신에게 명령조로 말을 한 것이 성미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준은 상대가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곧바로 약솥을 꺼내 푸른 불꽃을 피워냈다.
곧이어 열 가지가 넘는 약재가 솥 안으로 던져지고, 한기가 폴폴 풍기는 마정석 하나가 그 뒤를 따라 약솥 안으로 들어갔다.
‘청나무 넝쿨 하나 얻겠다고 투자하는 게 이만 저만이 아니군…….’
지금 사용하는 약재만 해도 15만 골드는 가볍게 뛰어넘었을 것이다. 그러나 청나무 넝쿨을 위해서이니 아까워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솥에 눈처럼 하얀 액체가 고였고, 준은 잠시 기다리다가 그 액체를 꺼내 옥병 안으로 집어넣었다.
작업을 마친 준은 약 솥과 재료들을 모두 정리한 뒤 임동수를 불렀다.
“들어오세요.”
이준의 목소리에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임동수가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만연해 있었다.
“다 된 건가?”
“네.”
준이 옥병을 내밀자, 그는 또 다시 낚아채듯 옥병을 받아들었다.
“눈꽃세정액이에요. 매일 한번 씩 깨끗한 물을 받아 놓은 욕조에 한 방울 떨어뜨린 뒤 그 안에 들어가 30분간 수련을 하세요. 그럼 독소가 어느 정도 빠질 겁니다. 나머지는 제가 직접 제거합니다. 그리고 독소가 빠질 동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천계의 탑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 때는 거래고 뭐고 저는 곧바로 치료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좋아. 정말 독을 다 씻어낼 수 있다면 내가 아주 큰 빚을 지는 셈이군.”
연금비약 탓인지 희망이 보이기 때문인지, 그 사이 임동수의 태도는 한결 차분해져 있었다. 하지만 준은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냉정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됐습니다. 나중에 그 초록색 넝쿨이나 제대로 넘겨주시죠. 저는 오늘 천계의 탑에 들어가서 꽤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무를 테니, 그 때까지 제가 말씀드린 사항을 지켜주기나 하세요.”
“그래.”
그는 이준을 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좋아. 그럼 네가 수련하는 동안 너희 비석을 내가 지켜주도록 하지. 내가 있으면 ‘백의 ’놈들이든, ‘늑대 이빨’이든 감히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할거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 * *
임동수와 헤어진 뒤 이준은 그대로 본원 북쪽에 있는 천계의 탑으로 향했다. 탑 문은 이미 개방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준은 탑으로 들어가자마자 1층을 지나 곧바로 2층으로 향했다. 그는 3층으로 들어갈지를 잠시 고민하다가 발걸음을 옮겨 가장 작은 단칸 하급 수련실로 발을 돌렸다.
이준이 들어간 수련실의 크기는 너무 작아 한 사람도 겨우 수용이 가능한 수준이었고, 곳곳에 먼지가 굴러다녔다. 사람들에 눈에 띄지 않는 종류의 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이곳은 1층의 중급 수련실만도 못한 곳이었기에 이곳에 발을 들일 이유가 크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이곳을 찾은 것은 수련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준은 독립된 수련실을 찾아 들어간 뒤 검은 돌판 위로 올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주저앉아 저장반지에서 약솥을 다시 소환했다.
그는 약솥을 앞에 두고 약로가 그에게 준 조합표를 천천히 되새긴 뒤 5분쯤 후에야 비로소 두 눈을 뜨고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불정령의 연고 제조에 필요한 재료는 세잎풀, 화연과, 천령초, 불 속성 마정석……”
“바람의 알약 제조에 필요한 재료는 용의 타액, 야밤풀, 바람 속성 마정석……”
두 종류의 연금비약 모두 등급 자체는 높지 않았지만 특수 효과를 갖고 있는 희귀종으로 조합표를 구하기가 몹시 힘든 것들이다.
첫 번째, 불의 정령의 연고는 수련할 때 몸에 바르면 불 속성에 대한 피부의 민감도를 높여주며, 흡입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이 약을 바르고 나면 굳이 수련법을 통해 에너지를 흡수하지 않아도 불 속성 에너지를 몸에서 자동으로 끌어당겨 몸속으로 주입해주는 식이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몸에 바르고 나면 일종의 간지러우면서도 얼얼한 느낌이 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실 이 정도의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두 번째, 바람의 알약은 약효가 다소 특이한 편에 속했는데, 이 연금비약을 복용하고 난 뒤면 몸속에 있는 염력 운행에 속도가 붙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약을 복용하면 마치 돌풍이 불 듯 에너지를 운송해 체내 순환을 도울 수 있으니 에너지를 사용할 때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이 두 동류의 연금비약의 약효가 특이했기 때문에 일반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이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보조 약품이었다.
천계의 탑 안에는 놀라운 정도의 불 속성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흡수 속도와 운행 속도를 높이면 훨씬 뛰어난 수련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준은 마음속으로 각종 약재의 융합 방법, 시간, 불의 크기 등에 대해 복습을 해본 다음 손을 뻗어 약 솥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가뜩이나 후끈하던 수련실의 온도가 더욱 더 높아졌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바닥에 줄지어 놓여있는 약재를 하나 둘씩 약 솥 안으로 투척하며 정련과 융합을 시작했다.
* * *
불의 정령의 연고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이준은 곧바로 두 번째 연금비약인 바람의 알약을 만들지 않고 우선 기력의 조각 한 알을 복용했다.
방금 전 불의 정령의 연고를 만들며 제법 많은 염력을 소모했으니, 어느 정도 염력을 회복해주지 않으면 실패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휴식을 취한 뒤 10분, 준은 다시 약솥 앞에 앉아 정신을 집중했다.
약재를 쏟아 넣고, 약솥에 불을 붙이고, 심혈을 기울여 불을 조절하기를 한 시간, 불꽃 사이에서 연금 비약 몇 알이 조금씩 윤곽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준이 한숨을 쉬며 손가락을 튕기자, 약 솥에서부터 연금비약 몇 알이 튀어 나오며 이준의 손바닥 위에 안착했다.
“준비물도 다 챙겼겠다, 이제 3층으로 들어가 수련에 집중 좀 해볼까나…”
그는 복도로 나가 다른 재학생들을 붙잡고 3층으로 내려가는 길을 물었다.
이준이 말을 걸어오자 그들은 하나 같이 귀찮은 표정을 드러냈지만, 3층으로 가는 길을 알고 싶다고 묻자 다소 누그러진 태도로 그를 오른쪽에 난 작은 길로 안내해주었다.
3층로 가는 입구에는 교사 두 명이 서 있었다.
“3층으로 들어가고 싶으면 파란 불 수정카드 이상으로 높은 등급의 카드를 갖고 있거나 3성 대투사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검문까지 하는 군.’
생각보다 삼엄한 경계에 속으로 놀란 준은 말 없이 자신의 불 수정 카드를 내밀었다.
“이제 들어가도 될까요?”
“초록색 불 수정 카드면 6층까지도 내려갈 수 있단다. 3층은 당연한 이야기겠지.”
교사 한 명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길을 비켜주자 이준은 감사의 의미로 허리를 살짝 굽혀 인사를 올린 뒤 등 뒤에서 쏟아지는 다른 학생들의 부러움 가득한 눈길을 애써 무시하며 나선형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이준의 모습이 사라지자, 교사 한 명이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저 어린 나이에 초록색 카드를 갖고 있는 사람은 또 처음 보는 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기운으로 보면 대투사 수준인 듯 한데요, 어떻게 녹색 불 수정 카드를 갖고 있는 걸까요?”
“이번 회차에 들어온 신입생 대표들이 소 장로의 상으로 초록 불 수정 카드를 받지 않았던가요?”
“아아…그럼 아까 지나간 그 친구가 장로님께서 잘 챙겨달라 분부하셨던…이준?”
“아마도 그런 것 같죠…?”
* * *
제 3층의 분위기는 2층과는 확연히 달랐다. 2층에 비하면 3층은 한적하다 못해 넓은 공간이 아까울 정도로 텅텅 비어 있었다.
1, 2층에서 수련하는 학생들이 본원의 기본 실력을 가진 자들이라면 3, 4층은 중간 정도의 힘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곳에 있는 학생들의 상당수는 잠재력이 몹시 커서 언제든지 상위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고, 5, 6층은 이미 상위계급인 학생들이 수련하는 곳이었다.
5,6 층은 사실상 본원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 수련을 하는 장소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3층의 생김새는 2층과 다를 게 없었다. 준은 중급 수련실 하나를 찾아 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가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걸음을 옮겨 고급 수련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