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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27화 (227/818)

제227화. 회담

신비한 푸른색 불꽃이 일렁이는 눈동자를 마주한 황호연은 홀린 듯 그 불꽃을 바라보다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탑 내부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일해온 그였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좋다. 네가 독성에 면역을 가졌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래도 이건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란다…”

그러나 준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조용히 황호연에게 다가가더니 몰래 무언가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형님, 탑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일 하시다 보면 몸속에 불의 독이 계속해서 쌓이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 연금비약은 ‘얼음 정령단’이라고 불리는 것으로…불꽃으로 인해 다친 혈관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준의 말대로였다. 사실 그는 항상 불꽃으로 인해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매일 같이 탑 안에서 근무를 하면서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 했던 터라, 그는 온종일 온 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생활해야 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준이 건넨 물건을 받아쥐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달콤한 유혹이었다.

“자꾸 이런 저런 물건을 꺼내서 거절하기도 민망하게 만드는군. 좋아, 그럼 딱 오늘만이다. 이쪽으로 따라오거라.”

황호연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앞장서서 빠르게 이동했다.

마침내 2층으로 갈 수 있게 되자, 준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음 정령단은 제조가 어려울 뿐이지 재료가 귀한 것은 아니니 그다지 큰 손해도 아니었다.

그렇게 호연을 따라 5분 가량을 걷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조심하거라. 이쪽에 공간 결계가 설치되어 있어 잘못 건드리면 중상을 입게 되니까.”

황호연은 그렇게 말하며 가슴 단 휘장을 빼 벽에 있는 작은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휘장이 구멍 안에 끼워넣자, 그들 눈앞에 있는 공간이 일렁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 변형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금 들어가도 되는 건가요?”

이준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 공간 결계가 다 깨졌으니 혼자 내려가거라. 네가 들어가고 난 뒤 내가 다시 잠가 놓을 생각이다. 내일 탑 문이 개방될 때 같이 열릴 거다.”

“감사합니다.”

준은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인 뒤 전방을 향해 팔을 뻗어 결계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기억하거라. 만일 2층에서 수련하다 심장에 열감이 너무 심하다면 꼭 자리를 찾아 쉬어야 한다. 내일 탑이 개방되고 다시 수련해도 늦지 않아.”

“하하. 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의 조언에 이준은 끄덕거리며 나선형의 계단을 내려가 이내 모습을 감췄다.

황호연은 손에 쥔 옥병을 조심스레 챙겨 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푸른 불꽃은 대체 뭐지?”

나선형 계단을 어림잡아 5분 정도 걸어가자, 갑자기 시야가 갑자기 트이며 또 다른 드넓은 공간이 눈 앞에 펼쳐졌다.

천계의 탑 2층은 1층과 비슷한 크기였다. 다만 1층보다 확연히 조용하고 쾌적한 분위기로, 1층처럼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았다.

몇 몇 소수의 학생들이 여기저기 걸어 다니긴 했지만, 적어도 사람들에 끼어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이준의 출현에 수련실에게 나와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던 다른 학생들이 의문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결국 누구도 말을 걸거나 시비를 걸지는 않고 각자의 수련실로 들어갔다.

2층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바로 후끈한 것을 넘어 뜨거울 정도의 온도였다.

2층의 공기에는 1층보다 월등히 많은 불 에너지가 함유되어 있었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열기가 더해졌다. 2층이 이정도이니, 가장 마지막 층은 도대체 얼마나 뜨거울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상급 수련실은 더 안쪽에 위치했는데, 그곳은 온통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벽 아래에 설치된 철문 입구에는 세 명의 교사 휘장을 단 중년이 묵묵히 서서 맞은편 입구에 있는 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저건 안되겠어.’

준은 교사들의 눈빛을 보고는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괜히 문제라도 일으켰다가는 2층에서 쫓겨날지도 모를 일 이었다.

‘대체 탑 중앙엔 뭐가 있는 거야.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는 게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까지 지키고 서 있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 망할 구름의 불꽃 같으니라고. 번거로워 죽겠군.’

준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 들어 왼편에 있는 작은 수련실을 바라봤다. 작은 수련실은 3명 내지 5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1층의 수련 공간에 비하면 상당히 아담했다.

준은 그렇게 한참동안 탑 내부를 둘러보다가 마침내 명패가 걸려있지 않은 곳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문을 열어젖혔다.

수련실 안에는 1층과 마찬가지로 온화한 등불이 자리하고 있었고, 수련실의 중앙 부분에는 간격이 2미터 정도 되는 5개의 검은 대리석대가 배치 되어 있었다.

그 중 네 곳에는 이미 누군가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준은 남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여는 소리 때문인지 수련실에 있던 네 학생은 하나 둘씩 눈을 뜨고 누가 들어왔는지를 확인했다.

‘음?’

준은 그들의 가슴에 아무런 휘장도 달리지 않은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2층에 올 정도라면 선배들이 분명한데, 아직까지 어떤 세력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니…

‘네 명의 대투사라. 기운이 불안정한 걸 보니 대투사 계급에 진입한지 얼마 안 된 것 같군.’

준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불 수정카드를 꺼넸다.

그 때, 네 사람 중 하나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초록 불 수정 카드잖아?”

그들은 놀라움과 부러움이 담긴 표정으로 카드에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하지만 준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으로 미루어보아 자신들보다 상대가 훨씬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감히 준에게 달려들거나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준은 피식 웃으며 수련대에 카드를 꽂았다. 그러자 카드의 숫자가 147에서 145로 줄어들었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불 에너지도 더 많이 가져가는 거였어? 이런…’

그는 한번에 ‘2’라는 숫자가 차감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쩔 도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에휴…됐다 됐어, 불의 힘에 대한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수련에 집중해야지.’

* * *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그것’의 파동이 훨씬 격렬해졌다는 게 느껴집니다. 녀석이 풍기는 기운과 드러내는 감정 또한 점점 난폭해지고 있고요…지금 상태로 보아는 보아 반 년 안에 반란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제대로 잡지 못하면 아주 큰 골칫거리가 될 것 같군요.”

“함께 힘을 합쳐 방어를 더 공고히 해보는 건 어떨까요? 정 안되면 본원의 원장님께 알립시다. 이 일이 알려지면 검은 뿔 구역의 녀석들이 모두 눈이 뒤집어져 빼앗으려 들 겁니다. 본원이 잘 숨겨져 있다고는 해도, 어찌됐건 북쪽으로는 흑각성과 맞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기게 된다면 본원을 주시하고 있던 녀석들이 바로 소식을 듣고 결계를 깨부수려 들 게 분명합니다.”

“방어는 당연히 공고히 해야지요. 아 그렇지, 유 장로님, 이화를 가진 그 녀석은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 2층 수련실에 있는 것으로 압니다. 천지의 불꽃을 갖고 있는 덕분인지 불의 독성에 침식될 걸 두려워하지 않더군요. 대장로님의 분부대로 충분히 배려해주었습니다.”

“그래요.”

유장로의 말에 검은 망토를 걸친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우리 본원이 간신히 손에 넣은 구름 불꽃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20살도 되지 않은 녀석이라니. 정말 부럽군요.”

“각 장로들은 이 소년은 만나면 반드시 편의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훗날 만에 하나 구름 불꽃이 폭동을 일으켜 날뛰게 된다면 그 친구의 힘을 빌려야 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대장로가 안타깝다는 듯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네!”

아래에 있던 십 여명의 장로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습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요. 흑각성의 큰 세력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봐주시길 바랍니다. 피의 종족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하니 각별히 주의하시고요.”

대 장로의 말을 끝으로 장로들은 일제히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모든 장로가 다 돌아가자 검은 두루마기를 걸친 대장로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방에서 사라졌다.

무형의 불꽃이 가슴에서 타오르고, 대하와도 같이 막힘없이 흐르는 염력이 부단하게 혈관을 타고 돌았다. 혈관을 빠져나온 염력은 불꽃으로 들어가 담금질 과정을 거친 뒤 다시 염력 회오리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이 완벽한 순환 과정의 반복을 통해 엄지손톱만큼 작았던 힘의 수정은 어느 새 오리알만하게 불어 있었고, 수정을 감싸고 있던 빛은 더 밝고 맑아져 있었다.

준은 힘의 수정이 커지든 말든 관심조차 없다는 듯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수련을 계속해 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순환의 과정은 점점 유려하고 빨라져 이제는 의식적인 통제 없이도 스스로 담금질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고요한 시간 속에 무던히도 많은 담금질이 반복되고, 어느 순간 준의 체내에 자리한 힘의 수정이 요동치며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승급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준은 끓어오르는 기쁨을 애써 억누르며 힘의 수정을 가만히 지켜봤다.

마름모 꼴의 수정은 염력 회오리 안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며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고, 이내 주인의 혈관 곳곳에 흐르고 있던 염력들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변화는 몸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체외에서도 적지 않은 움직임이 보였다. 힘의 수정이 요동치는 찰나, 준의 주변에 퍼져 있던 에너지들이 급속도로 일렁이며 자그마한 소용돌이가 생성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이들 모두 부러움 가득한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나흘을 수련하다니. 괴물이야…”

한 학생이 미친 듯이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는 이준을 보며 도저히 못 당하겠다는 듯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오늘 들은 건데, 저 녀석이 올해 신입생들의 우두머리래. 이름이 이준이랬던가. 방주빈이 저 아이한테 박살났다더군…”

준과 같은 수련실을 쓰던 사람들 중 하나가 먼저 말을 꺼내자, 다른 하나가 흠칫 놀라며 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뭐? 정말? 저 애가 그 애란 말이야? 햐아…대단하군…헛소문이라고 생각했는데…눈 앞에서 이걸 보니 당연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마음 참 복잡하구만.”

“쉿. 목소리 좀 낮춰. 승급하려고 하잖아.”

그러자 가장 먼저 말을 꺼낸 여자가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말했다.

나머지 세 사람은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 * *

힘의 수정은 끝을 모르고 주인의 몸 속에 있는 에너지와 공중에 떠 다니는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그렇게 준의 체내에 자리한 힘의 수정은 20분 가까이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힘들을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나서야 배가 부르다는 듯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지막 남은 염력이 주입 되자, 빠르게 떨리던 힘의 수정이 아예 움직임을 멈췄다. 수정의 표면은 밝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고, 찬란한 빛이 방의 곳곳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탐지 능력을 통해 몸 안을 살피자, 이전보다 두 배는 커진 힘의 수정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준은 흡족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감겨 있던 눈을 뜨는 순간, 준의 눈앞에 얼빠진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네 명의 선배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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