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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26화 (226/818)

제226화. 담금질

다른 수련실에 비해 확연히 낡아빠진 수련실을 보고 이준과 그의 무리들을 어안이 벙벙했다. 중년은 그들의 허탈한 표정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문을 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대리석 바닥에서부터 옅은 한기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고, 금세 청량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실내의 은은한 등불은 딱 적당한 정도로 온화해 눈을 찌르는 듯한 느낌도 아니고, 침침한 느낌도 아니었다.

수련실의 크기는 적당히 넓은 편이었는데, 얼추 4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중앙 부분에는 커다란 검정색의 암석으로 만들어진 평상이 놓여 있었다.

“중앙에 있는 검정색 지대가 수련 장소란다.”

사내는 웃으며 검정 돌판 위를 가리켰다.

“모두가 수련하기에 충분한 공간이란다. 이 옆쪽에 있는 일자 모양의 구멍에 너희의 카드를 넣고 사용하면 된다. 그럼 불의 힘이 끊임없이 너희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 염력을 강화시키고 근육과 뼈를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야.”

이준 일행은 눈을 반짝이며 잰 걸음으로 검정색 평상으로 향했다.

과연 사내의 말대로 그 곳에는 각자가 수련할 수 있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고, 옆에 카드를 꼽을 수 있는 삽입구가 하나씩 있었다.

“천계의 탑에서 수련하는 것이 처음일 테니 주의사항 몇 가지를 일러주도록 하마.”

아이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사내가 설명을 시작했다.

“심장에 불꽃을 모아 수련하는 방법은 너희들의 실력을 단시간에 빠르게 끌어올려줄 수 있긴 하지만, 먹고 자는 것도 잊을 정도로 수련에만 매진하게 되면 과열이 되어 불의 에너지가 몸속으로 들어올 때 불꽃이 함께 섞여 들어오게 되지. 이런 실체를 가진 불꽃은 너희들의 염력으로 없앨 수 없어. 오직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사라지기를 기다려야지. 그러니 하루를 꼬박 채우지 말고 반나절만 수련하되, 반나절의 수련이 끝나면 하룻밤 동안 휴식을 취하거라.”

이준 일행은 사내의 설명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으로 수련을 하다보면 능력에 따라 수련 시간도 점차 늘어나게 될게다. 투령 계급에 진입하면 한번에 4일에서 5일 정도를 보내도 될 정도가 되지. 하지만 지금은 권장 시간에 맞춰서 천천히 수련을 진행하거라. 성급한 욕심은 되려 화를 부르니까.”

자신의 설명에 모두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의 얼굴에 또 다시 미소가 어렸다.

“다들 잘 알아들은 것 같으니 어서 수련을 시작하거라. 처음 수련실에 들어오게 되면 효과가 훨씬 확연하게 드러날 게다. 재능 있는 학생들은 첫 수련부터 승급에 성공하곤 했지. 너희도 그럴 수 있길 바란다.”

그는 다시 등을 돌려 문고리를 잡았다.

“잠시만요, 선생님.”

그 때, 이준이 부리나케 뛰어가 그를 붙잡고는 빠르게 작은 옥병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데 효과가 있는 약입니다. 그리 비싼 건 아닙니다…”

이준의 갑작스러운 선물공세에 그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옥병을 품안에 집어 넣었다.

“녀석, 듣던 이야기와는 달리 제법 애교가 있는 놈이구나. 고맙게 받으마.”

“헤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앞으로는 황호연 선생님이라고 부르거라.”

중년의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잠시 후, 문이 단단히 닫히자, 황호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 거참 재미있는 녀석이 들어왔군.”

* * *

준은 조심스레 상판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손끝으로 따뜻한 기운이 전해졌고, 그 기운에 몸속에 있던 염력의 회전에 속도가 붙었다.

“역시 신기해. 하하. 우리 중에 몇 명이나 첫 수련에서 승급을 달성할지 한 번 보자고요!”

이준은 등 뒤에 있던 커다란 무기를 뽑아 저장반지에 집어넣고는 왼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장이 자리를 잡자 나머지 팀원들도 하나 하나 수련할 자리를 찾아 자세를 잡았다.

앉은 다리를 하고 숨을 깊게 들이쉬자, 짙은 열기가 몸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준이 불 수정 카드를 삽입구에 끼워 넣자 불이 번쩍 들어오며 녹색 불 수정 카드 위에 적힌 숫자 ‘148’에서 1이 빠졌다. 잇달아 은과 다른 사람들도 불 수정 카드를 꼽아 넣자, 방 곳곳에서 불이 반짝였다.

드디어 본격적인 수련이 시작되고, 이내 실내에는 적막이 내려 앉았다.

적막한 공간속에서 네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이 수련실에 가득한 농밀한 화염 에너지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다름 아닌 준이었다. 그는 화염 속성의 투기를 가지고 있으니, 이런 불속성의 에너지는 그에게 질 좋은 비료와도 같은 것 이었다.

치익…

고요한 정적속에서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준의 가슴 팍에서 형태없이 흔들리는 불꽃이 나타났다.

‘이런…’

준은 자신의 탐지능력을 통해 무형의 불꽃을 확인하고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 타오르는 불은 어제 이준이 만났던 불씨보다 훨씬 컸다. 중급 수련실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구름불꽃의 투사체가 나타나자 어제 느꼈던 통증이 또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의 수련 방식에 따르면, 신체를 구성하는 혈관, 골격, 근육 심지어 세포들까지 타는 고통 속에서 천천히 성장하고 진화하니, 그것을 억지로 끌 필요는 없었다. 아니, 그 불을 끄려하면 고통도 줄어들지만, 수행의 성과 역시 그만큼 늦게 나타나게 되니, 절대로 그 불을 꺼서는 안됐다.

따라서 이준은 이를 악물고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견뎌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씨는 더욱 신나게 타올랐다. 마치 몸속에 난로 하나가 생겨난 듯했다.

마침내 고온에 의한 타는 듯한 고통에 이준의 몸이 살짝 떨리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그의 염력 회오리 속에 자리한 마름모꼴의 수정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준의 염력이 분주히 혈관을 오가며 푸른 색의 불꽃이 무형의 불꽃을 감쌌고, 그 순간 갑자기 온도가 치솟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끓는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염력은 성공적으로 불꽃에서 다시 빠져 나왔고, 빠져 나온 염력은 이전보다 부피가 반 정도 줄었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은 농축되고 또 농축되어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충만했다.

담금질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염력을 다시 자신의 염력 회오리 안으로 끌어들였다.

* * *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네 사람은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자신의 염력을 담금질하고 다시 몸 안으로 끌어들이기를 반복했다.

그들의 몸 표면에는 희미한 파동이 일었다가 백색의 연기가 피어오르기를 반복했고, 연기가 서서히 옅어져 사라지면 이따금 무형의 파동이 세차게 일었다.

마침내 더 이상 염력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가 됐을 무렵, 준은 서서히 눈을 떠 다른 팀원들을 살폈다.

오하늘과 이윤영의 몸에는 연한 붉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이는 더 높은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라버니, 수련은 잘 끝냈어?”

그 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이은도 수련을 마친 모양이었다.

아쉽게도 이은과 준 두 사람은 승급에 성공하지 못 했다. 아마도 천계의 탑 1층에 담긴 염력은 그들을 승급시키기에는 조금 부족한 모양이었다.

‘얘도 정말 실력의 깊이를 알 수가 없네……’

준이 그렇게 속으로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약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지의 불꽃이 몸을 보호하고 있으니, 너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담금질을 할 수 있을게다. 대지의 불꽃이 순위 상으로는 구름 불꽃보다 아래이지만 이 정도로 작은 규모의 투사체라면 대지의 불꽃이 너를 잘 보호해 줄 수 있을게야. 그리고 네 여자친구도 뭔가 신비한 기운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구나.”

“그럼 저는 심장에 생긴 불꽃을 없애기 위해 휴식기를 가질 필요가 없는 건가요?”

“그렇지. 네가 수련을 하며 발생하는 고통만 감수할 수 있으면 말이다.”

약로가 답했다.

“그 고생을 몇 년을 했는데요. 겨우 이거 하나 못 견디겠어요? 스승님이 예전에 불의 숨결로 전신을 지져주실 때보다는 덜하다고요.”

준은 기쁨에 가득한 표정으로 농을 던졌다. 한가지 문제는 무슨 구실로 권장 시간 이상 천계의 탑에 남아있나 하는 점 정도였다.

이준은 잠시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운 뒤 이은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다.이은은 준의 계획을 듣자마자 다정하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오라버니. 비석에 관한 일은 우리 셋한테 맡기고 오라버니는 수련에 전념하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종소리가 울리고, 탑 곳곳에서 수련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학생들이 하나 둘 문을 열고 나오자 탑 안은 순식간에 북새통을 이루었다.

한편, 수련실 밖에 서 있던 이준은 잠시 갈등하다가 결국 사람들 틈에 끼어 탑의 중심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층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바로 그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첫째 층에서는 하루만 머물 수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수련을 하려면 다음 층으로 넘어가야만 했다.

쏟아지는 인파 속에서 준은 민첩하게 틈새를 찾아 이동했다. 그렇게 십 분정도가 지나자,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더 이상 부대끼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준이 막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벽력 같은 호통 소리가 그의 귓등을 때렸다.

“너 이 자식, 규정도 모르는 게냐! 종소리가 울렸는데도 감히 마음대로 돌아다니다니!”

노발대발하며 준을 향해 달려오는 사람은 황호연과 비슷한 나이대의 사내였다. 그의 가슴에도 동일하게 교사임을 나타내는 휘장이 달려 있었다. 그도 황호연처럼 탑의 질서를 관리하는 사람인 듯했다.

준은 무언가 변명을 하려했지만, 그 낯선 사내는 곧바로 커다란 손을 휘휘저으며 준을 나무랐다.

“어허! 변명할 생각 말아라! 수련이 끝났으면 돌아가서 휴식을 취해. 몸에서 불씨가 모두 빠져나가면 그 때 오거라. 곧 탑에서 검사를 진행할게다. 그 때까지 안나가고 있으면 네 불의 힘을 빼앗겠다.”

상대의 단호한 태도에 준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엥? 이준?”

익숙한 목소리에 이준은 반색하며 바로 고개를 돌렸다. 황호연이었다. 준이 간절한 눈빛을 보내자 그는 의아해하며 이준을 붙잡아둔 중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태령, 여기는 제가 해결할 테니 볼일 보시면 됩니다.”

태령이라 불린 그 교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이준은 한 번 쓱 훑어보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빨리 내쫓으시죠. 검문 할 때 발각되는 일이 있으면 저도 유 장로님께 한 소리 듣게 되니 말입니다.”

“그럽죠.”

호연이 고개를 끄덕이니 상대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등을 돌려 자리에서 벗어났다.

“이준, 수련이 다 끝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참이었나?”

“하하. 사실 제가 부탁 하나 드릴 게 있습니다.”

“무슨 일이지?”

황호연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으음…다름이 아니라 제 실력으로 1층에서 수련을 하자니 너무 효과가 나지 않아서 말입니다. 몇 층 더 내려가서 수련을 하고 싶은데 허락해주실 수 있나요?”

“내려간다고?”

호연은 생각지도 못한 부탁에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이준, 네가 1층에서 수련할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긴 하지만, 규정상 신입생의 실력이 어떻든 간에 1층에서 일주일간 수련을 하고 나서야 아래층으로 내려가 수련이 가능하단다. 이는 심장의 불꽃이 실력과 무관하게 염력 속으로 들어가 독성을 축적시키기 때문이야. 본원에서 오래 지내며 그 불의 독성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 일을 겪은 학생들이 많아. 그러니 아쉽더라도 하는 수 없다. 게다가 층수로는 한 층에 불과하지만 불꽃의 힘은 몇 배나 강해지니 아직은 무리다.”

황호연의 태도 역시 태령 못지않게 단호했다. 하지만 준은 기다렸다는 듯 준비해놓은 말을 늘어놓았다.

“사실 제가 익힌 수련법은 등급은 높지 않지만 특별한 구석이 있습니다. 불이 가진 독성에 대한 면역력이죠.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듣기론 보통 본원에서 5성 대투사 정도 되는 실력자는 3층까지 내려갈 수 있다던데, 저는 딱 2층까지만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준은 그렇게 말하며 대지의 불꽃으로 인해 푸르게 빛나는 자신의 눈동자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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