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4화. 방주빈
“알아서 손해를 감수하겠다니…좋아. 시작하지.”
상대의 오만함에 기분이 상한 준이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검은 송곳을 뽑아들었다.
“호오, 듣던대로 배짱 하난 끝내주는 놈이군…”
상대가 정말로 일 대 일 대결에 응하자, 주빈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좋아. 오늘 한 번 구경 좀 해보지. 본원에서 소문이 자자한 그 신입생 우두머리가 정말 소문만큼 강한지 말이야.”
그렇게 두 무리의 우두머리간의 대결이 성립됐다. ‘비석’과 ‘백의’의 다른 학생들은 뒤로 걸음을 물리며 두 사람이 대결을 펼칠 공간을 마련했다.
“이준이 방주빈이랑 싸울 실력이 되는지 모르겠네. 만일 지게 된다면 단순히 체면이 깎이는 수준이 아닐 텐데…”
“헤헤. 방주빈은 한 달 전에 3성 투령이 됐다고. 라훈은 몰라도 방주빈한테는 안되지.”
“왜, 그래도 배짱 하나는 두둑한 놈인데? 여기서 지면 15명이라고 15명. 자칫하면 만들자마자 조직이 와해될 수도 있다고.”
준은 자신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잡소리를 늘어놓는 선배들을 무시한 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준의 염력 회오리에서 수십 갈래의 푸른 불꽃이 솟구치더니 그의 전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천계의 불꽃 제 1장…대지의 약동!’
화륵!
순식간에 장엄한 푸른 불꽃이 그를 감싸고, 이내 거짓말처럼 그의 몸 안으로 사그라들었다.
불꽃이 몸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준의 기운이 갑자기 투령 강자 수준으로 강해지자, 주빈의 입가에 웃음기가 어렸다.
“강제로 실력을 끌어 올리는 비술 같은걸 익혔나보군.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해봤자 어차피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몸만 상할 텐데 말이야. 자신감 있게 나선 것 치고는 가지고 있는 패가 시시하군.”
하지만 준은 말없이 검은 송곳을 붙잡으며 오하늘을 바라볼 뿐 이었다.
“백성찬 쪽을 주시해. 너만 믿는다.”
오하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은 곧바로 시선을 다시 주빈에게로 돌렸다.
다음 순간, 무시무시한 염력이 폭발하며 검은 섬광이 푸른 색 염력에 뒤덮인 주빈을 향해 날아들었다.
“흥. 진정한 투령 강자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느껴봐라!”
고함 소리와 함께 주빈의 손에 커다란 청색 삼지창이 나타났고, 그는 곧바로 삼지창의 손잡이를 잡고 그를 향해 날아오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빠르게 공격을 퍼부었다.
쨍!
‘힘이 꽤 있군.’
그러나 검은 그림자와 맞부딪히는 순간, 여유롭던 주빈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두 사람이 격돌하자 짙은 청색의 염력과 옅은 청색의 염력이 뒤엉키며 새하얀 연기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너무 빠른 나머지 주변에 모여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삼지창과 검은 송곳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밖에 들을 수 없었다.
쾅!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수 십 번, 갑자기 커다란 굉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파동이 퍼져나가고, 이내 연기 속에서 두 사람이 튕겨 나왔다.
“꽤 하는군. 그렇게 기고만장했던 이유를 알겠어.”
연기 속에서 빠져 나온 방주빈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상대를 노려봤다. 준 역시 바닥에 검은 송곳을 내리꽂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준에게는 시간제한이 있으니 여유가 있는 쪽은 주빈이었다.
방주빈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에 든 삼지창에 다시 염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거대한 파란 염력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의 얼굴에도 서서히 푸른 기운이 오르기 시작했다.
준은 상대의 무기 끝에 서린 살벌한 기운에 자신의 등 뒤로 한줄기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한 방에 끝내주지.”
주빈은 곧바로 창끝을 준에게 향한 뒤 몸을 날렸고, 이와 동시에 거대한 푸른 염력이 그의 몸을 뒤덮으며 거대한 상어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염력을 응집해 실체를 만드는 것. 이는 투령 강자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투령강자의 공격은 대투사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위력을 자랑했다.
자신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염력 상어를 보며 준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준은 곧바로 염력 회오리에서 대지의 불꽃을 모조리 끌어내기 시작했다.
순간 준의 눈에 푸른 불꽃이 깃들고, 새파란 화염이 쏟아져 나와 검은 송곳을 에워쌌다.
콰광!
불꽃에 휩싸인 송곳과 푸른 색의 염력상어가 맞부딪히는 찰나, 광장이 안개로 뒤덮이며 안개 사이사이로 두 개의 염력이 흘러나왔다.
곧이어 두 강자의 힘이 충돌해 만들어진 파동이 안개를 흩어내고, 사방으로 진동이 퍼져나갔다.
안개가 걷히자 검은 송곳에 의해 가로막힌 방주빈의 삼지창이 시야에 들어왔다. 준의 푸른색 화염은 염력으로 이루어진 푸른 상어를 시나브로 침범해 불태워 버리고 있었다.
“치익…”
결국 주빈은 이를 악물고 한걸음 뒤로 물렀다가 다시 팔을 휘두를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이준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이미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슬슬 한계가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비장의 수가 남아있었다.
……
“크르르렁!”
준이 입을 활짝 벌리자 천둥 같은 소리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고막을 때렸다. 주변에 모여 관람하던 이들은 고막이 찢어질 듯한 통증에 황급히 양 귀를 틀어 막았다.
이준과 가장 가까이 있는 방주빈은 순간 눈 앞에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음파가 아직 다 터져 나오지 않았는데도 방주빈의 귀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의 동공이 풀리는 순간, 준이 검은 송곳을 손에서 놓고 바람처럼 상대의 뒤로 돌아 들어갔다.
퍽!
다음 순간, 주먹과 얼굴이 부딪히며 방주빈의 거구가 허공에서 두 바퀴를 회전한 뒤 바닥으로 추락했다
드넓은 공터의 분위기는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자신만만한 태도로 준과 대결을 펼친 3성 투령 강자는 이미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서 피를 토하고 있었다.
주빈은 본원 전체에서 70위권에 속하는 강자였으니 선배들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콜록, 콜록……”
잠시 후…격렬한 기침 소리가 침묵을 깨뜨렸다.
준은 검은 송곳에 몸을 지지하며 힘겹게 몸을 가누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이마 위에서부터 가느다란 땀줄기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승리하기는 했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한계에 달한 것이 분명했다.
“오라버니, 괜찮아?”
그 때, 이은이 빠르게 달려와 준을 부축했다. 그녀의 눈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준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천계의 불꽃을 이용하면 단시간에 힘을 끌어 올릴 수는 있었지만, 급작스러운 염력의 폭발은 그의 혈관과 내장을 상하게 하는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방주빈이 졌으니 이제 사람들을 데리고 사라져. 우리가 한 약속을 잊지 않았겠지.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증인이니 딴 소리할 생각 마.”
준은 창백한 얼굴로 이은의 부축을 받으며 백성찬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젠장. 멍청한 자식. 3성 투령이면 다인 줄 알았나? 꼴사납게 진데다가 이준 놈에게 반년이나 숨 틀 시간을 주다니! 반 년 후에 저 녀석들이 얼마나 성장해있을 줄 알고!’
백성찬은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이를 바득바득 갈며 방주빈을 욕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어쩔 수 없었다. 3성 투령인 방주빈이 신입생에게 박살이 난 것으로도 모자라 약속까지 어긴다면 ‘백의’는 본원의 다른 조직들에게 비웃음을 살 것이 뻔했다.
“갑시다.”
준의 재촉에 백성찬은 별 수 없이 사람들을 이끌고 돌아갔다.
“여러분, 볼 거리도 끝이니 이제 각자 들어가시죠.”
준은 어느 새 주변에 모여든 재학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때 마침 구경꾼들이 제법 몰렸기에 망정이지, 그들이 아니었다면 백성찬이 오늘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 모를 일 이었다.
신입생의 놀라운 실력을 목격한 선배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칭찬이나 감탄사를 내뱉으며 등을 돌렸다.
“오라버니, 아주 화려하게 신고식을 치렀네요.”
선배들이 돌아서자, 이은이 해맑게 웃으며 준은 바라봤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적어도 이제 방주빈보다 약한 선배들은 우리 ‘비석’을 넘볼 수 없을 테니까.”
준은 그렇게 말한 뒤 잠시 숨을 고르고 ‘비석’의 멤버들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여러분, 오늘 일은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세력이 우리를 흔들고, 여러분들을 힘으로 끌고 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다고 끌려가 줄 우리가 아니야!”
“대장! 오늘 아주 멋졌다고!”
“안돼 안돼, 오늘은 이준 대장이 어떻게든 해줬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힘이 되어줘야 한다고!”
우두머리가 입을 떼자, 곳곳에서 함성과 박수, 응원의 목소리와 결의가 담긴 말들이 터져 나왔다.
준은 창백한 얼굴로 흐뭇하게 웃은 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내일부터 우리 ‘비석’ 구성원들은 천계의 탑에 들어가 수련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방주빈을 쓰러뜨렸으니 한 동안은 누군가가 우릴 찾아와 성가시게 구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이 기회에 최대한 빨리 실력을 키워두어야 합니다.”
“옳소!”
“좋아! 그래야지!”
“나도 조만간에 투령이 돼주지! 하하하!”
또 다시 ‘비석’의 멤버들이 힘차게 응답했다. 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목표를 제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발전에도 속도가 붙을 것 이다. 그는 생각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목소리를 높여 앞으로의 계획을 제시했다.
“반 년 안에 ‘백의’를 뛰어넘는 것. 그게 현재의 우리의 목표입니다.”
우두머리의 선언에 여기저기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비석’의 멤버들은 하나 같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저마다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좋습니다. 오늘은 이만 각자 돌아가도 좋습니다. 내일 여기서 다시 집합하죠. 함께 ‘천계의 탑’에 들어가기 위해서!”
준은 그 말을 끝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자신의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막 대문에 다다랐을 무렵, 그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황급히 고개를 돌려 이은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은아, 하태준을 불러줘.”
“응, 알겠어요 오라버니…!”
……
“백의. 혹시 그 조직에 대해서 아는거 있어?”
대청의 한 가운데에는 이준과 이은, 이윤영, 오하늘을 비롯한 네 명의 강자와 하태준이 앉아 있었다.
“백의의 수장은 백청이라는 사람이야. 백성찬의 사촌 형이지. 6성 투령쯤 된다고 들었어. 강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으니 본원에서도 제법 유명인사야.”
“6성 투령? 대충 몇 등 정도에 들었는데?”
6성 투령이라는 말에 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70위인 방주빈을 상대로도 이 정도였는데, 그 이상이라면 지금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어보였다.
“34위였던걸로 알고 있어.”
하태준의 답변에 준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갔다.
“다른 구성원들의 실력은?”
“백청 말고도 투령 계급 강자가 세 명 더 있어. 그 중 한 명은 오늘 우리랑 싸웠던 방주빈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방주빈보다 실력이 조금 더 뛰어날 거야. 계급은 똑같이 3성 투령 정도인걸로 알고 있어. 전체 구성원은 총 34명, 대투사급 강자가 13명, 나머지는 최하 무투사 최고 단계인걸로 알고 있어.”
“투령 네 명, 대투사 열세 명, 나머지는 전부 무투사 최고단계라……”
이준은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이지 만만치 않군.”
“그래서 본원 안에서도 제법 위세가 높지. 그래도 지난 쟁탈전에서 불의 힘을 꽤 많이 손에 넣었으니, 이것만으로도 한 달은 천계의 탑에 머물 수 있잖아. 일단은 해볼만할거야.”
하태준은 준의 불안을 눈치챘는지 여유로운 듯 웃음을 지어보였다.
“후…그나마 다행이군. 지금 이대로는 안돼. 본원에서 살아남으려면 실력이 너무 부족해.”
본원의 높은 벽을 실감한 준은 탄식하듯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