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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17화 (217/818)

제217화. 마지막 전투

곧이어 검은 옷을 입은 다섯명의 젊은이들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자, 산봉우리에 서있던 젊은이들이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쟤네 한상철이잖아….”

“설마 벌써 다 처리한 거야?”

“아니…오히려 다 지고 온 것 같군.”

흰색 옷을 입은 청년 중 가장 강해보이는 청년이 확언하자, 좌중에 잠시 소란이 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 도착한 한상철이 그의 말을 확인해주듯 패배를 시인하는 순간, 이번에는 돌산 위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말도 안되게 강해. 신입생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어. 게다가 전투 경험도 적지 않아 보이고 말이야.”

상철의 말에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재학생들 중에도 한상철을 이길만한 강자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한상철의 입에서 ‘믿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니,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원 재학생들을 이렇게 벌벌 떨게 한 장본인들이 얼마나 대단한 놈들인지 직접 한 번 보고 싶군.”

하얀 옷을 입은 청년이 한기를 뿜어대며 살기를 피우자, 상철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근접 전투에 강한 자신과 달리 그들은 얼음 속성 염력을 사용하고 있으니, 준과 맞붙으면 어떤 꼴이 될지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라훈, 얕보지 않는 게 좋아. 너희 한 조로는 어림없을 거야.”

“비켜. 너희는 여기 있을 자격조차 없으니까.”

하지만 라훈이라는 청년은 한상철의 충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그를 무시했다.

“그래. 맘대로 해라. 그 때 가서 후회하는 건 어차피 너희니까.”

그 때, 갑자기 숲이 뒤흔들리며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얼핏 보기에도 40명은 거뜬히 넘어보였다.

“신입생들을 한 데 뭉치게 만들다니. 꽤 큰 수를 뒀군요. 이걸 제안한 사람은 누굴지…”

똘똘 뭉친 신입생들을 발견한 서장로는 연신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여댔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쟁탈전이 벌어져왔지만, 이렇게 대단위의 인원을 한 데 뭉치게 한 인물은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 생각에는 그 이준이라는 청년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건 선생도 말 하지 않았습니까. 그 녀석이 선발전에서도 서너 명이 모인 상대의 연합 공격을 이겨냈다고…”

그 사이, 신입생 무리가 양쪽으로 갈라지며 가운데에 작은 길을 텄다.

그러자 작은 발자국 소리와 함께 네 사람의 신입생이 그 작은 길 위로 천천히 걸어와 나머지를 이끌었다.

무리의 선두에 선 사람은 자신 키만한 큰 무기를 멘 채 검정 망토를 입고 있었다. 그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쭉 둘러보고는 마침내 흰 옷을 입은 다섯 사람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당신들이 이번 ‘불의 힘 쟁탈전’ 마지막 조인 하얀 사자부대 맞지?”

“하얀 사자부대의 대장 라훈이다.”

라훈은 서늘한 냉기를 흉흉하게 내뿜어대며 준을 노려봤지만, 준은 조금도 기죽지 않은 채 염력을 끌어올리며 임전 태세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장인 이준이 투지를 보이자, 나머지 신입생들도 모두 염력을 폭발시키며 라훈에게 맞설 의지를 보였다.

“라훈 선배, 길을 비켜주시죠.”

“안돼.”

그렇게 두 집단의 우두머리가 나눈 짤막한 대화가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너무 단호하시네요. 저희도 꼭 이길을 지나야하니, 힘으로 뚫고 가겠습니다.”

준은 기다렸다는 듯 검은 송곳을 꺼내들었고, 검은 송곳이 바람을 가르자 이내 바닥에 놓인 돌들이 사방으로 튀며 그 위력을 짐작케 했다.

이준의 움직임에 이은을 비롯한 나머지 세 명도 재빨리 염력을 끌어올렸다.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당연히 라훈이었다. 하얀 사자 부대의 최강자는 라훈이니, 일단 그를 쓰러뜨리면 다른 것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준을 포함한 네 명은 내가 막지. 예한, 너희 넷이서 나머지 신입생들을 맡아. 절대 흩어지지 말고. 신입생이 많긴 하지만 아직 제대로 연합하는 방법도 몰라서 우리 쪽이 똘똘 뭉치면 꽤 승산이 있을 거야.”

대장의 말에 하얀 옷을 걸친 네 명의 대원들은 즉시 염력을 끌어올렸다.

하얀 사자 부대는 대장부터 시작해 부대원들까지 전원 얼음 속성의 염력을 다루는 자로 구성되어 있었으니, 다섯 명의 강자가 내뿜는 한기에 돌밭 전체가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네 사람의 몸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얼음장 같은 한기에 이준의 얼굴이 구겨졌다. 동일한 염력을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뭉치면 그 위력이 배가 되니, 검은 사자부대보다 강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실감났다.

“후…마지막 관문답군. 다들 준비됐지?”

준이 신호를 보내자, 오하늘과 이윤영, 이은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가자!”

대장의 돌격 명령을 신호로 수십 개의 염력이 빛을 뿜으며 돌진을 시작했다.

준은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푸른 염력을 폭발시키며 라훈을 향해 날아갔고, 이은, 윤영, 그리고 오하늘이 똘똘 뭉쳐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뒤로는 40여 명의 신입생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라훈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의 부대원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네 명의 하얀 사자 부대원들은 즉시 기다란 은색 봉을 꺼내 하늘로 날아올랐고, 은색의 봉은 춤을 추듯 요란하게 몸을 떨며 신입생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 * *

푸른색 염력과 금색의 염력, 녹색과 붉은 염력이 바람을 가르고 라훈을 향해 날아들자, 라훈의 손에 서늘한 냉기를 뿜는 백색의 얼음 봉이 생성됐다.

그는 양 손으로 그 봉을 단단히 움켜쥔 채 네 갈래의 염력을 박살내며 앞으로 전진했다.

‘이게 정말 갓 투령이 된 사람이라고?’

라훈이 보여준 일격의 위력에 준의 낯빛이 대번에 변하고 말았다. 투령이라고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 수준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준은 포기하지 않고 더욱 거칠게 검을 휘둘렀고, 그 뒤로 붉은 색의 검과 녹색의 긴 채찍, 황금빛의 섬광이 잇달아 휘몰아쳤다.

하지만 백색 사자 부대의 대장은 물러서기는커녕 더욱 서늘한 냉기를 뿜어내며 또 다시 단숨에 네 개의 염력을 뿌리쳤다.

“제기랄…은아! 시간을 좀 벌어줘!”

상황이 여의치 않자, 준은 검은 송곳을 바닥에 내리 꽂은 뒤 곧바로 보라색의 연금비약 한 알을 꺼내들었다.

잠시 후…준의 손바닥 위에서 보라색 불꽃이 춤을 추기 시작하자, 신입생은 물론이고 재학생들도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져졌다.

그리고 그 위에 푸른 불꽃이 더해지는 순간…멀리 앉아 이 광경을 바라보던 두 장로가 벌떡하고 몸을 일으켰다.

“저, 저건……”

“천지의 불꽃!”

……

신입생의 손에서 두 개의 불꽃이 일렁이자, 라훈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는 얼음 속성의 염력을 다루는 자이니만큼 불꽃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대체 무슨 불꽃이지…? 내 체내의 염력을 제약할 정도의 열기를 가졌다고?’

그는 당장이라도 준에게 달려들어 불을 꺼버리고 싶어졌다. 열기도 열기이지만,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한 준의 모습이 몹시도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셋이 준을 보호하며 그를 공격하는 통에 그대로 준을 향해 달려들었다가는 협공을 당해 더 어려운 지경에 빠질 것이 분명했으니, 섣불리 달려들기도 어려웠다.

한편 다른 조원들의 도움으로 시간을 번 이준이 두 손을 천천히 가까이 맞대기 시작하자, 두 장로의 얼굴이 사색이 되고 말았다.

두 장로는 두 개의 불꽃을 융합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두 장로가 말려볼 틈도 없이 파란색과 보라색의 불씨가 사방으로 튀며 융합되기 시작됐고, 이내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기묘한 파열음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조금 물러나 있어.”

잠시 후… 준이 보라색이 섞인 푸른 화염을 살짝 들어 올리며 팀원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끝이다.”

“이런…!”

그리고 라훈이 그 불꽃에 담긴 범상치 않은 위력을 감지하고 손을 쓰려는 순간, 준의 손에서 청보랏빛 불꽃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콰르르릉-

청보랏빛 불꽃은 자신이 나아가는 길목에 있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며 라훈을 향해 날아갔고, 하얀 사자 부대 대장의 머릿속에는 순간 새까맣게 재가 된 자신의 모습이 스쳤다.

하지만 신입생들을 상대로 자신까지 무너질 수는 없었다. 그는 입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이를 악물며 염력을 끌어올렸다.

“와라! 네가 얼마나 강한지 내가 한 번 봐주마!”

그가 전력으로 염력을 불어넣자 얼음 같이 차가운 쇠 봉 위로 단단한 서리가 서렸지만, 그 또한 한 순간이었다. 두 개의 불꽃이 만들어낸 맹렬한 열기는 고작 투령 따위가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쾅-!

그리고 거대한 굉음이 이는 순간…거대한 안개가 돌산을 가득 메웠다.

……

라훈은 사력을 다해 자신의 쇠막대에 한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아무리 염력을 쏟아 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끝도 없이 얼음이 녹아나갔고, 결국 그가 잡고 있던 쇠봉이 불에 달군 듯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치익.

“아악!”

라훈은 쇠봉에서 전해지는 미칠듯한 열기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손에 들린 무기를 집어던지고 말았다.

그의 손을 떠난 쇠봉은 바닥에서 몇 바퀴 구르면서도 계속해서 열에너지를 받았고, 끝내 까맣게 그을려진 폐기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더욱 놀라운 광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자신의 모든 염력을 쏟아 부은 냉기가 안개로 돌아간 것도 모자라, 이내 깔끔하게 증발되어 사라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콰앙!

곧이어 또 한차례의 굉음이 울리고, 주위의 암석이 모두 산산 조각나기 시작했다. 신입생이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불꽃은 투령의 염력을 송두리째 증발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탐욕스러운 악마처럼 주위의 모든 것을 박살내고서야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준의 손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악마’가 보여준 위력에, 한상철을 비롯한 모든 재학생들은 온 몸이 떨릴 정도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게 이준이 만든 거라고?”

“저 자식 대투사 계급 맞아? 이 정도 파괴력이면 6성, 7성 투령은 되는 것 같은데…”

“라훈, 라훈은 어떻게 됐지?”

그 때, 하얀 연기가 걷히고 라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엉덩이를 땅에 붙인 채로 벌벌 떨고 있었다. 다행히도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어안이 벙벙해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그 때, 그들 눈앞에 깡마른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서 장로님?”

“이번 쟁탈전은 신입생들의 승리로 하자.”

서 장로의 선언에 모든 전투가 중단되고, 일순 정적이 맴돌았다가 한쪽에서는 탄식이, 한쪽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환호성이 터져나온 것은 신입생들의 입이었다. 그들은 남녀 할 거 없이 서로를 얼싸 안으며 기뻐했다. 드디어 일주일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죽어라 싸워왔던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뒤쪽에서 전해지는 힘찬 환호소리에 이준의 얼굴에도 작은 웃음이 걸렸다. 그는 가슴을 부여잡고 몇 차례 마른기침을 한 뒤 고개를 돌려 자신의 팀원들을 바라봤다.

“우리가 가진 걸 다시 돌려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오라버니…괜찮아요?”

“별 거 아니야. 그냥…이게 원래 비장의 카드 같은거거든…콜록…몸에 무리가 좀 간 것뿐이야. 어찌됐든, 덕분에 팀원들이 애써 모은 불의 힘을 지켜냈으니까…이 정도면 싸게 먹혔다고.”

“이런 걸 숨겨두다니…완전 괴물이잖아…”

이윤영은 준이 보여준 정체불명의 무투기가 가진 살벌한 위력 앞에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그 청보랏빛 불꽃에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자, 온 몸에 힘이 빠졌던 것이다.

“나와의 대결에서 이걸 안 썼던 것에 고마워해야겠군.”

‘사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오하늘마저도 이번만큼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괜히 내가 다 한 것처럼 안 굴어도 돼. 나는 내 몫만 했어. 너희들 도움이 없었으면 내가 아무리 강해도 여기까지 절대 못 왔을 거고.”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언뜻 보기에도 준의 안색이 심상치 않았다. 팀원들이 함께 얻어낸 것을 지키기 위해 이정도로 몸에 무리가 가는 행동을 해놓고도 자신들에게 공을 돌리는 것을 보자, 이윤영과 하늘 두 사람의 마음속에 아직 조금은 남아있던 준에 대한 악감이 눈 녹듯이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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