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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10화 (210/818)

제210화. 불의 힘

울창하고 조용한 숲 속, 나뭇잎이 미세하게 떨리며 몇 갈래의 사람 형상이 튀어나왔다.

“멈춰!”

그 때, 앞장서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이동을 멈추고, 뒤를 돌아 손바닥을 펴 따라오던 네 사람을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이야?”

“누군가가 오고 있어. 일단 숨자.”

준은 왼쪽을 한번 가리킨 뒤 즉시 반대쪽으로 몸을 숨겼다.

이준의 말을 듣고 모두가 놀란 눈치였다. 그들은 아무런 기운도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준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거짓이 아닌 듯했고, 그의 실력까지 생각했을 때 이준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것이 백번 나았다.

5분 뒤…과연 준의 말대로 다섯 사람이 나타나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준을 비롯한 다섯 명은 나뭇잎 사이로 다섯 명의 본원 학생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그들의 실력을 가늠해 보았다.

눈앞에선 선배들은 1성 대투사 정도로, 제법 뛰어난 실력이었지만 준 일행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준은 섣불리 전투에 나서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본원에 가는 것이지,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다섯 사람이 떠나고, 성찬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갑자기 준이 그의 옷소매를 잡으며 그를 주저 앉혔다.

“움직이지 마!”

“왜 그래? 다 갔는데?”

준의 명령에 기분이 상한 성찬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불만 섞인 말과는 달리 몸은 얼음처럼 춰 있었다.

이준은 그에게 대꾸조차 하지 않고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대고는 다시 다섯 명이 머물다 간 자리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렇게 침묵이 시간이 흐르고, 다시 나뭇잎이 찰랑이며 흔들리더니 아까 자리를 떠났던 이들이 다시금 같은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도 없잖아. 류민우, 네가 잘못 짚은 것 같아. 이런걸로 시간낭비 하지 말자고 했잖아.”

류민우라고 불린 청년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문스럽다는 듯 말했다.

“내가 나무 속성 염력을 다루다 보니까 숲에 들어오면 감각이 예민해진단 말이지. 아까는…그래, 뭐 내가 잘못 느꼈을 수도 있지. 가자.”

말이 끝나자 그들은 다시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본원 사람들이 역시 보통은 아니야…”

다섯 선배가 다시 떠나자, 준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그의 뛰어난 영혼탐지 능력이 아니었더라면 진작 그들에게 들키고 말았을 것이다.

이윤영과 오하늘은 준에게 대장 자리를 맡기길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동을 해야 하는데, 아까 급히 숨느라…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을 잃었어. 이대로 막 움직이다간…”

그 때, 이은이 나서서 의견을 냈다.

“먼저 이 숲과 사냥 대회에 참여한 본원 학생들의 구체적인 수나 실력에 대한 정보를 좀 얻어야 할 것 같지 않아요? 이렇게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다가 상대한테 잡히면 더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어요. 만일 그들 중 한 무리랑 마주쳐서 싸우게 되면 우리가 이긴다고 쳐도 다른 무리들을 또 끌어들이게 될거예요. 게다가 이길 거란 보장도 없고……”

이은의 말대로였다. 낯선 장소에서 계획도 없이 돌아다니다보면 언젠가는 본원의 선배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고, 운 좋게 한 팀 정도를 이긴다해도, 싸움이 길어지면 계속해서 다른 팀들을 불러들일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본원의 학생들이잖아.”

백성찬이 의견을 내자, 준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어느 정도 걸어가보자. 만일 싸울 상황이 생긴다면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우리가 다른 평범한 조랑은 다르니까. 다만 다른 사람들까지 끌고 오는건 위험하니까, 그것만큼은 주의하자고.”

“뭐?”

이준의 발언에 이윤영을 비롯한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신입생들은 재학생들을 피하기에 급급한데 이준은 그들과 싸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위험해.”

“다들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할 준비 되어 있는 거 아니야? 우리가 이대로 숲을 휘젓고 다니게 되면 어느 세월에 도착하겠어? 게다가 너희들도 원생들이 ‘불의 힘’을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 돌아다니는 걸 봤잖아? 분명 본원에 들어갔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걸 거야. 그러니 반대로 우리가 그 사람들 걸 빼앗을 수도 있지 않겠어? 괜히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야 모험 한 번 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보는데. 한 번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정확한 전략을 세우자고. 아니면 계속해서 위험에 노출될 뿐이야.”

이윤영과 백성찬이 고민하는 사이, 오하늘이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해보지 뭐.”

곧이어 이윤영이 동의를 표하자, 준은 백성찬의 의견을 물었다.

“너는 어떤데?”

“그래. 해보지. 그런데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대장인 네가 책임져야 할 거야.”

“좋아, 의견이 모아졌으니 이제 움직이자. 가만히 있다가 빼앗기느니, 먼저 나서서 뺏어버리는 게 낫지.”

* * *

작전을 세운 이준 일행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본원 학생들의 위치를 탐색했다.

한 시간 동안 그들은 세 팀의 원생들을 만났지만, 그 세 무리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다시 한 시간이 흐르고, 다섯 개의 그림자가 준이 매복하고 있는 곳을 지났다.

준은 잠시 눈을 감고 영혼 탐지 능력을 동원해 주위에서 다른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지를 확인하고는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저쪽이다. 가자.”

준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5분 정도를 이동하자, 파란 망토를 걸친 청년 하나가 카드를 매만지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키키, 오늘 운도 참 좋지. 벌써 두 번째 신입생이군. 수확이 짭짤한 걸?”

“후배님들, 고마웠어. 혹시나 너무 분하다면 나중에 언제든지 본원으로 우릴 찾아 와도 돼. 네 도전을 받아주지. 물론 네가 충분한 불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야. 하하!”

그는 신입생들을 약 올리듯 연신 자신의 수정 카드를 흔들어 댔다.

“가자, 다음 목표를 찾으러.”

그리고 용무를 마친 파란 망토의 청년이 막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귓가에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을 필요 없어. 우린 여기 있으니까.”

다른 신입생들은 모두 쥐새끼처럼 도망다니느라 바빴지만, 이준을 비롯한 다섯 명은 달랐다. 본원 학생들은 다섯 명의 신입생이 제 발로 나타나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올해 신입생 중에는 제법 용기 있는 놈들이 있군. 대견해.”

하지만 준은 선배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태연한 표정으로 일행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방심하지 마. 이놈들 모두 2성 대투사 정도야. 각각 한 명씩 맡자. 시간 끌지말고. 최대한 속전속결로 끝내. 절대로 한 명도 놓치면 안 돼.”

“응.”

네 사람은 시선을 교환한 뒤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순식간에 몸을 날렸다.

그리고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이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시꺼먼 그림자가 그의 머리통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심상찮은 주먹의 위력에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내뿜었고, 이내 주먹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주위에 깔려있단 나뭇 잎들이 흩날렸다.

퍼억!

준의 주먹이 상대와 맞부딪히는 순간, 상대는 곧바로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섰다.

“빌어먹을…!”

곧이어 그의 몸뚱이 위에 파란색의 염력 갑옷이 나타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또 다시 시커먼 그림자가 청년을 습격했다.

쾅!

하지만 만들어낸 보람도 없이 그의 염력갑옷은 일격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고, 청년은 또 한 번 뒤로 밀려나며 나무 기둥에 부딪혀 피를 토했다.

도움을 청하려 옆을 보니, 이미 나머지 동료들도 똑같이 피를 흘리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이런…’

“계속 맞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 이대로 차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 때,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어안이 벙벙해진 청년 앞으로 갑자기 준이 다가와 무릎을 굽혀 말을 걸었다.

“뭐 하자는 거지…?”

“질문은 내가 한다. 넌 대답만 해. 허튼 수작 버리면…”

신입생은 말과 동시에 등 뒤에 매고 있던 검은 송곳을 빼들었다. 검은 송곳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아, 알았어. 이, 이러지마… 뭘 묻고 싶은데?”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은 검은 망토를 두른 신입생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범상치 않은 살기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숲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되지?”

“아주 커.”

“숲의 지도나 약도 같은 건 없고?”

준은 청년을 힐끗 본 뒤 고개를 돌려 이은을 비롯한 다른 조원들을 바라봤다.

“너희도 각자 한 사람씩 맡아 심문해봐. 답변이 일치하는지 확인해보게. 만일 한 놈이라도 다른 대답을 한다면…장담하건데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주지.”

마지막 한 마디에 바닥에 나뒹구는 재학생들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학원의 규정상 살인은 금지였으니 자신들이 죽을리는 없다고 믿고 있었지만, 눈 앞의 신입생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런 규정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좋은 생각이야.”

준의 말에 따라 다른 조원들이 각자 돌아가며 질문을 시작했고, 협박을 마친 준은 다시 파란 옷의 청년을 바라보며 재촉했다.

“대략적인 노선도는 있어. 세부적인 부분은 없고. 사냥 대회에 참가하면서 본원에서 구입한 거야. 하루치의 불의 힘을 써서 말이야.”

파란 옷 청년은 씁쓸한 표정으로 저장반지에서 거친 종이 한 장을 꺼내 이준에게 건넸다.

“불의 힘 이라는 걸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이 어설픈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썼다고? 아깝지도 않아?”

준은 생각보다 너무 허술한 지도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도 그럴 것이 , 지도에는 큰 점 몇 개와 선 몇 개가 그어져 있는 게 전부였다.

“다들 아까워하지.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본원에서 구매를 강제하니까. 안 사면 안 돼.”

파란 옷 청년이 입을 내밀며 불만 가득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사실 신입생들이 가진 불의 힘을 빼앗을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고분고분 이 쓸모없는 지도를 사려고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사냥 대회에 참여한 재학생은 몇 명 정도이지?”

이준은 노선도를 챙겨 들고 물었다.

“50명이야. 5명이서 한 조, 총 열 조.”

파란 옷을 입은 청년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신이 바른대로 불고 싶지 않아도 결국 조원 중 누가 사실을 고했을지 모르기 때문에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 가 없었다.

“실력은? 너희랑 비슷한가?”

“8조 정도는 비슷할 거야. 우리랑 같이 작년에 본원에 들어온 동기들이니까. 하지만 두 조는 우리 전 해에 본원에 들어간 선배님이라 본원에서 수련한 시간이 더 오래 됐으니 그만큼 더 강하지… 알아보긴 쉬울 거야. 한 조는 온통 검은색 옷을 입고 있고, 한 조는 전부 흰색 복장을 하고 있으니까. 매년 이 두 무리들이 참여한다고 들었어. 본원에서는 흑백 사자라고 부르지.”

“흑백 사자?”

준은 일단 흑백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 불의 힘이라는건 어디에 쓰이는 거지? 다들 왜 거기에 미치는 거야?”

“본원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니까. 신입생이 본원에 들어오면 실력이 느는 이유도 사실은 그 불의 힘이라는 것 덕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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