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대장
아득하게 펼쳐진 숲의 바다에는 각양각색의 마수들이 그득했다. 때때로 마수들의 포효 소리가 숲을 뚫고 하늘까지 울려 퍼지고, 일부 마수들은 비행 마수를 쫓아오기도 했지만, 대건을 비롯한 강자들의 기운에 눌려 금세 숲으로 달아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물론…숲이 워낙 넓다보니 종종 겁 없이 그들에게 달려드는 마수들도 있었지만, 매번 대건을 비롯한 세 노인의 공격 앞에 피투성이가 될 뿐 이었다.
이준을 비롯한 학생들은 비행마수 위에 올라탄 채 두 눈을 꿈뻑이며 폭탄을 심어놓은 것 마냥 공중에서 분해되는 마수들의 사체를 지켜봤다.
마수들이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마수들은 세 노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왜 굳이 학생들을 데려다 주는지 알겠군. 우리 학생들만 이곳을 지나왔다면 도착했을 때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이 몇 안 됐을 거야.’
그렇게 각종 마수와 격돌하며 한 시간 가량을 날아가니, 비행 마수의 속도가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들의 발밑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산골짜기와 수풀 뿐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은과 이준은 서로를 마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려가자!”
그 때, 대건의 명에 따라 열 마리의 비행 마수가 땅으로 내려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땅에 내려앉았음에도, 여전히 주위에 보이는 것은 끝없이 이어진 밀림 뿐 이었다.
“여기가 어디에요? 본원이 여기에 있는 거예요?”
윤영은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쪼르르 달려가 할아버지를 채근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귀를 쫑긋 세우며 대건의 입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본원 들어가기가 그리 쉬운 줄 알았느냐?”
그러나 대건은 질문에는 답도 하지 않고 느긋하게 앞으로 걸음을 옮길 뿐 이었다.
그렇게 부원장을 따라 이동한지 얼마 안 돼 노인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손바닥을 펼쳐 전방을 향해 염력을 쏘아댔다. 그러자 물결 모양의 파동이 일어나며 7미터가 훌쩍 넘는 커다란 은색 대문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나타난 기이한 은색 대문에 이준을 비롯한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그 누구도 평범한 장소에 이런 엄청난 공간이 숨어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탓이다.
“따라오거라.”
부원장이 은색 문으로 걸어 들어가자, 수 십 명의 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 * *
은색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두 명의 노인과 몇 몇 중년의 사내들이 서 있었고, 그 주위로 또 스무 명 가량의 젊은 청년들이 서있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모두 탑의 형태를 한 휘장이 달려 있었다.
“하하, 항상 시간을 칼 같이 맞춰 오는군요. 부원장께서 신입생들을 데려 와주시니 마음이 놓인단 말이죠. 올해 신입들은 어떠한가요?”
두 노인 중 한 명이 대건을 향해 걸어 나오며 말했다.
“괜찮은 녀석들입니다. 확실히 작년 보다 수준이 높아졌죠. 너희 다섯 명은 이리로 오거라.”
부원장은 노인과 대화를 나누며 외원에서 가장 우수한 다섯명을 불러들였다.
“이 두 분은 본원의 장로란다. 이분은 서 장로님, 저 분은 차 장로님이다. 너희들이 본원에 들어가고 나서 무슨 일이 생기게 된다면 저 두 사람을 찾아가거라. 하하, 이 친구들이 올해 선발 대회에서 5위 안에 든 녀석들입니다. 실력이 출중하죠.”
“오호?”
두 장로는 흥미롭다는 듯 다섯 사람을 훑어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 나이에 5위 안에 들 수 있다니, 확실히 작년 보다 뛰어나군.”
“새로운 친구들 모두들 최대한 빨리 이쪽 생활에 적응하길 바라네. 적응이 빠를수록 본인이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아질게야. 저 꼴통 녀석들을 보거라. 작년에 외원 선발 경기를 통과 했지만 거의 꼴찌로 운 좋게 들어온 녀석들이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녀석들이 다시 선발 경기에 참여한다면 분명 10위 안에 들 수 있을 게다.”
차 노인의 설명에 준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자신의 영혼 탐지 능력에 따르면, 저들 중 누구하나 자신보다 못한 자가 없었다.
그런데 저 자들이 작년에 거의 꼴찌를 한 사람들이라니, 본원의 수련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확실히 기대 이상이었다.
“쓸데없는 말은 여기서 줄이겠다. 너희는 이미 선발 경기를 통과해 본원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졌지만, 그게 끝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거라.”
곧이어 서 장로가 웃으며 손을 휘두르자 새까만 수정 조각 한 뭉텅이가 그의 손바닥 위에 나타나 각 학생들 앞으로 날아갔다. 신입생들은 어리둥절하며 손을 뻗어 조각을 쥐었다.
조각에서는 기이한 힘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수정 조각에는 빨간색으로 ‘5’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이게 무슨 의미이죠?”
“설명하기 어려운 물건이다. 설명할 수도 없고 말이다. 나중에 너희도 자연스레 알게 될 게다. 다만, 너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지금 손에 잡고 있는 수정 조각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거다. 너희들이 본원에 들어가면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게다! 물론, 저 뒤에 서 있는 녀석들이 왜 그런 눈빛으로 조각을 바라보는지도 이해할 테고 말이다.”
서장로의 말마따나, 뒤에 서있는 청년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중요한 물건임에는 틀림이 없어보였다.
준과 이은은 재빨리 수정 조각을 저장반지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제부터 너희는 숲 속으로 들어가 안전하게 숲의 끝에 있는 본원으로 입장하면 될게다. 그러나 조심하거라. 본원의 규정상 이 숲 안에서는 아무나 공격을 펼치는 것이 가능하니, 조각을 노리는 녀석들이 언제 덤벼들지 모른단다. 그리고 기억하거라. 너희 손에 있는 수정 조각에 적힌 숫자는 녀석들에게 큰 유혹으로 다가올 거다. 그러니 살인을 제외한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너희들의 수정에 들어 있는 ‘불의 힘’를 빼앗으려 들겠지. 불 에너지라는 것도 너희들에게 곧 익숙한 단어가 될 거란다. 본원에 일찍 들어갈수록 상이 크니 최선을 다 해 보거라.”
곧이어 노인은 까마득한 숲 속을 가리키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이 숲 속에서 벌어지는 강탈을 두고 우리 본원에서는 불의 힘 쟁탈 대회라 부르기도 하지. 지금부터 이번 회차의 불의 힘 쟁탈 대회의 정식 시작을 알린다! 자! 도망치거라!”
* * *
울창한 숲 속,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별처럼 쏟아져 내리며 메마른 잎으로 덮인 땅을 군데군데 비췄다.
조용한 숲 속에서 돌연 발걸음 소리가 울리고, 순간 다섯 개의 사람 형체가 나타났다. 다섯 개의 그림자는 끊임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서로를 비난 하고 있었다.
“아이고, 아주 여유가 넘치는 친구들이네? 여기서 감정 싸움 할 시간도 있고 말이야?”
그 때, 숲 속에서 갑자기 조롱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섯 사람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나뭇가지에 올라 서 있는 다섯 청년을 바라봤다. 그들의 가슴엔 모두 탑 모양의 휘장이 달려 있었다.
“그 불의 힘 이라는 것을 빼앗으려고 따라 온 건가?”
다섯 명 중 가장 키가 큰 청년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실력에 상당히 자신감이 있는 듯, 조금도 기가 죽지 않은 표정이었다.
“똑똑하네.”
그러자 얼굴에 뱀 모양처럼 굽은 형태의 흉터를 가진 젊은 청년이 비열한 웃음을 띠며 싸늘하게 눈을 빛냈다.
“우리 목적을 다 알았으니 괜히 시간 낭비할 필요도 없지. 그냥 그걸 순순히 내놔. 괜한 힘 낭비 하지말고.”
”꿈 깨시지?”
마른 체구의 청년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뭇가지 위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그들 앞에 나타났고, 눈 깜짝할 새에 청년의 복부를 발로 냅다 걷어찼다. 마른 체구의 청년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 하고 얻어터져 나무 기둥에 박히고 말았다.
“젠장할. 덤벼 이것들아!”
곧이어 키 큰 청년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순간, 곧장 세 개의 그림자가 번개처럼 날아들어 그의 온 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이봐, 친구. 기억해둬. 네가 외원에서 얼마나 잘 나갔는지 모르겠지만 본원에 막 들어온 이상 뛰어봤자 벼룩이야. 용도 기어 다니고 호랑이도 바짝 엎드려 사는 곳이라고. 이 선배님이 뼈와 살을 깎아내는 고통을 견뎌가며 터득한 진리인데, 내가 오늘 공짜로 가르쳐 주는 거야.”
사내는 낄낄 웃더니 키가 큰 청년의 얼굴을 다시 주먹으로 내리쳤다.
“계속 맞기 싫으면 순순히 불의 수정 카드를 꺼내!”
결국 다섯 명의 신입생들은 계속 되는 모진 매질 앞에 이를 악물고 ‘불의 수정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다섯 명의 수정을 받아 든 청년은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그것을 동료들과 분배하기 시작했다. 그가 손을 뒤집자, 파란색 카드가 손 위에 나타났다. 그의 카드 위에는 ‘47’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곧이어 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가 까만 카드를 파란 카드와 맞대자, 카드 두 장에서 빛이 번쩍 나더니, 빛이 꺼지면서 파란 카드에 적힌 숫자가 50이 되고, 검정 카드의 숫자가 5에서 2가 되었다.
“참 쓸데 없는 규정이라니까. 신입생한테 굳이 이틀분의 ‘불의 힘’를 남겨줘서 뭐해. 낭비야 낭비.”
“가자 임탄. 빨리 다른 놈들을 찾아보자고. 어렵사리 불의 힘 사냥 대회 참가 자격을 얻었잖아. 빨리 6일치를 못 채우면 손해라고.”
무리 중 한 명이 검은 카드를 휙 내던지며 말했다.
“그래, 가자.”
임탄이라 불린 청년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섯 신입생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불쌍한 놈들. 이래서 팀 화합이 중요한 거야. 알았냐? 잘 기억해둬. 너희들 몫의 ‘불의 힘’은 수업료로 받아가지.”
* * *
그와 십여 미터 떨어진 울창한 숲 속.
다섯 명의 또 다른 신입생들이 나무 뒤에 숨어 아까 습격 당한 신입생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수정 카드 안에 들어 있는 불의 힘이라는 게 본원에서 엄청 중요한 역할을 하나 봐. 아니면 어떻게 사람을 저 지경으로 만들겠어.”
준은 자신이 가진 까만 카드에 새겨진 숫자 5를 보며 연신 입술을 매만져댔다.
“가자, 그 녀석들도 갔으니 우리도 괜히 꾸물대지 말자고. 서 장로라는 분도 일찍 도착할수록 더 좋은 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으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말이야.”
준이 입을 열자, 백성찬은 짜증스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기다려봐.”
그 때, 평소와 달리 준이 백성찬의 빈정거림을 무시하지 않고 그를 불러 세웠다.
“또 무슨 일인데?”
준은 백성찬을 한번 흘겨보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후…우리가 그다지 감정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혼자서 이 숲을 헤쳐 나갈 자신 있어?”
준의 말에 이윤영과 오하늘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 한 명 만만치 않은 실력자들인데다가, 연계도 좋은 상대들을 상대로 각개전투를 벌인다면 패배는 불 보듯 뻔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지?”
이윤영은 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의견을 물었다.
“그래도 한 팀을 이룬 이상 아무래도 대장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어느 정도 선택을 내리고 지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지.”
“그럼 대장은…누가 맡지?”
평소에는 거의 입을 열지 않던 오하늘이 모처럼 입을 열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은과 이윤영, 오하늘이 거의 동시에 준을 바라봤다.
그러자 백성찬의 얼굴이 벌레라도 씹은 듯 일그러졌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이대로 준과 실랑이를 벌여봤자 자신만 손해였다. 결국 백성찬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좋아. 지금은 네가 팀의 대장을 맡는 걸로 해. 하지만 우릴 쓸데 없는 일에 이용하려고 든다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어차피 나 혼자 하는 일도 아니고 같이 살자고 뭉치는 거니 그런 걱정은 말고. 하지만…반대로 내 지시에 따르지 않고 단독 행동을 해 우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면 누가 되든 좋은 꼴은 못 볼 거야. 내 성격은 다들 알 거라 믿어.”
준의 경고에 이윤영은 입을 삐쭉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하늘은 여느 때처럼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백성찬은 한참을 망설이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