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201화 (201/818)

제201화. 불놀이

노담의 파란 불꽃에 맞서 보라색 불꽃이 등장하자, 광장 안의 온도가 일순 치솟았고, 관객석에서는 두 사람의 불꽃보다 더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준이 불꽃을 소환할 수 있는 거지? 그건 연금술사나 투왕 이상 레벨이나 되는 강자만이 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설마 그 녀석도 연금술사였던 거야?”

“와아…보라색 불꽃이라니…”

……

한편, 경기장 구석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둘의 대결을 바라보던 백성찬의 얼굴은 완전히 흙빛이 되어 있었다.

“헤헤, 성찬 형님! 걱정 마세요, 그 녀석이 노담과 같은 화염을 갖고 있다 한들 형님의 상대는 못될 거에요! 노담도 불꽃을 가지고 있지만 형님에게 패배하고 말았잖아요.”

“하하! 성찬! 무슨 걱정을 하는거야! 보라색 불꽃이든 파란 불꽃이든 네 상대는 못 된다고!”

그러나 동료들과 후배들이 자신을 칭찬하자, 금세 백성찬의 입가에 미소가 돌아왔다. 그 말대로였다.

노담 역시 진짜 화염을 조종할 수 있는 자였지만 자신의 상대가 되지는 못 했다.

하물며 이제 막 아카데미에 돌아온 이준 따위가 자신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

“화 선생, 어때? 저 보라색 화염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겠어?”

광장 중앙에 있던 부원장은 실실 웃으며 왼편에 있는 노인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음…불꽃을 뱉기 전에 무언가를 입에 넣었으니, 아마도 화염을 담고 있는 약을 만들어 지니고 있었던 것 같군. 불꽃을 삼키지는 못한 모양이야. 기발한 수이지만…이렇게 하면 불꽃을 불러낼 수 있다해도 화염을 조종하는 난이도가 많이 올라갈텐데…”

가람 아카데미측에서는 준에 대한 정보를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자세한 내용까지는 미처 파악하지 못 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만 키로미터도 더 떨어진 가한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세세히 파악하는 것은 제 아무리 가람아카데미의 정보망이라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가한제국에서 일어난 사건의 대략적인 개요뿐 이었다.

……

“와아…자네 정말 대단하군. 연금술사였어?”

노담이 환히 웃으며 질문을 던지자, 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자신이 연금술사임을 시인했다.

“이거 참…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는 친구군.”

다음 순간, 노담의 몸에서 푸른색 불꽃이 더욱 격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고, 그의 눈에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진지한 전의가 깃들었다.

아마도 자신이 자랑하는 ‘불놀이’에서만큼은 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좋아. 그럼 나도 전력을 다하지.”

이윽고 노담의 손바닥에서 춤을 추던 화염이 서서히 갈무리되더니 이내 둥그스름한 두 개의 구체로 변화했다.

이에 맞서듯 준은 자신의 보라색 화염을 길게 늘여 보라색의 화염 채찍을 만들었고, 그가 채찍을 휘두르자 보라색 화염은 자신이 얼마나 뜨거운지 자랑이라도 하는 냥 두터운 석판 위에 새까만 흔적을 남겼다.

상대가 아무렇지도 않게 화염을 조종해 채찍을 만들어내는 순간, 노담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준의 화염 통제 능력이 자신의 상상이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대결은 시작되었고, 서로 자신의 자랑거리인 불꽃을 꺼내들었으니, 물러날 수는 없었다.

노담은 두 개의 파란 화염 구체를 손에 든 채 준을 향해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치이익-!

다음 순간, 준의 채찍이 허공을 가르면서 공기가 타는 듯한 소리가 광장안에 울려 퍼졌다.

콰앙!

그리고 보라색 채찍이 허공을 가르는 찰나, 노담의 손에 있던 화염구가 뱀처럼 길게 늘어지며 채찍의 진로를 막아냈다.

보라색과 청색의 화염이 뒤엉키자, 무시무시한 폭발음과 함께 광장내에 불씨가 날렸다.

곧이어 노담의 손이 바삐 움직이고, 기다랗게 늘어났던 푸른색 화염이 뱀처럼 또아리를 틀었다가 다시 날카로운 송곳 모양으로 변화했다.

“하하, 이준 후배! 이건 연금술사들이 즐겨쓰는 불꽃 공격 중 하나야. 불을 녹여 폭발시키는 기술이지. 기억해두라고!”

준비를 마치자, 나선형의 화염 송곳이 ‘웅웅’거리는 기이한 울림과 함께 준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불꽃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송곳의 끝 부분은 점점 빠르게 회전하며 사방으로 불씨를 날려대고 있었다.

상대의 공격이 가진 무시무시한 위력을 감지한 준은 그 즉시 화염 채찍을 하나로 응집시켜 노담의 불꽃을 막아냈다.

쾅!

또 다시 두 개의 불꽃이 격돌하는 순간, 굉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열기가 광장 안을 가득 채웠다.

갑작스레 온 광장을 휩쓰는 열풍(熱風)에 가람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학생들이 다시 광장으로 시선을 돌렸을 무렵에는 이미 온 광장을 덮고 있던 불꽃이 서서히 사그라 들고 있었고, 광장의 정중앙에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노담이 서 있었다.

“이…이런…”

그는 어느새 자신의 발목에 족쇄처럼 채워진 보라색 불꽃을 보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그게 뭔지 잘 알고 있군요. 역시 수준이 높네요. 선배의 예상대로입니다. 함부로 움직이면 바로 폭발할거예요.”

여유만만한 표정을 한 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노담의 발목에 채워진 불꽃 족쇄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말도 안돼…어떻게 이 정도로 화염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거야?”

노담은 상대가 10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화염의 모양은 물론이고 폭발 여부나 화력까지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뒷통수를 맞은 듯 멍해지고 말았다. 이는 왠만한 수준의 연금술사라면 꿈도 못 꿀 정도의 화염 조종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

“호오…대단하군요. 그 찰나에 화염을 두 개로 쪼개 하나로 담이의 불꽃을 막아 시선을 끌고, 나머지 한쪽을 발밑으로 날려 상대를 제압하다니…화염 조종 능력, 이런 방법을 순간적으로 생각해내는 기지…정말 대단한 인재가 나타났습니다.”

광장에 있던 학생들 중에는 그 누구도 화염이 폭발하는 순간 준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지 못 했다.

갑자기 나타난 천재 소년이 방금 보여준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광장 중앙에 있는 네 명의 노인들 뿐 이었다.

……

“내가 졌다…”

광장 한켠에서 노인들이 준의 재능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노담이 긴 한숨을 토하며 패배를 시인했다.

그 역시 자신이 어떻게 당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잘못 움직였다가는 두 다리를 잃게 된다는 것만큼은 명확했으니, 패배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가 패배를 시인하자, 준은 즉시 노담의 발에 감긴 화염 족쇄를 풀어주었다.

“이번 경기는 C급 2반 이준 승!”

아카데미 최고의 인기인인 이은의 짝, 입학도 하기 전에 2년이나 개인적인 볼일을 보겠다며 휴학을 해버린 최고의 문제아, 그리고 천재 투사…심지어 외원 최고의 연금술사인 노담을 단숨에 제압하는 불꽃 통제 능력까지…아카데미에 나타난 지 불과 이틀 , 이미 준은 아카데미 최고의 유명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준은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환호성을 뒤로 하고 노담에게 악수를 청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봐주긴 개뿔. 지면 진 거지, 봐줬다는 건 없어. 다른 놈들처럼 자존심 세우고 싶지도 않고. 자네가 이렇게 엄청난 실력을 숨기고 있을지 몰랐어. 자네라면 5위 안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는걸?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자네에게 한수 배우고 싶을 정도야.”

말을 마친 노담은 씨익 웃으며 준과 악수를 한 뒤 손을 흔들며 시원시원한 걸음걸이로 광장을 떠났다.

‘하하…참 솔직한 사람이군. 지금까지 봐왔던 재능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좋은 사람 같아’

준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검은 송곳을 등 뒤에 매고 무대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수 많은 학생들이 환호하며 그를 칭찬했지만, 이런 일을 많이 겪어온 준의 입장에서는 경기를 시작할 때와는 사뭇 달라진 사람들의 시선이 영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

무대에서 내려온 준은 긴 한숨을 내뱉으며 이은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 갑자기 돌아와서는 내 기를 제대로 살려주는데? 이 예쁜 것!”

예진은 자신의 제자가 외원 최고의 인재 중 하나인 노담을 꺾자,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준은 피식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이은 곁에 서서 광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

반나절 사이, 40회에 가까운 경기가 치러지고, 어느새 170명 정도의 참가자 중 60여명 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41번째 경기는 C급 1반 철연우, 그리고 집행부의 오하늘!”

이전 경기가 정리 되자 새로운 참가자들의 이름이 호명 되었고, ‘오하늘’이라는 이름이 불리우자, 관객석에서 또 다시 소란이 일었다.

“집행부의 오하늘…저 사람이 스승님께서 말하던 그 사람인가요?”

“맞아. 집행부 내에서도 아주 유명한 놈이지. 저 놈 손에 목숨을 잃은 검은 성의 범죄자만 이미 수 백이 넘어. 실전 경험과 살인 경험으로 따지면 외원내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녀석이지. 그리고…백성찬과는 여러모로 라이벌 관계야.”

그렇게 예진이 오하늘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 사이, 갑자기 새빨간 망토를 입은 그림자가 관객석을 가로질러 번개처럼 광장 안으로 뛰쳐 들었다.

‘무서운 속도야…엄청나군. 저 자가 오하늘인가?’

빨간 망토를 입은 사내가 광장 안에 도착하는 순간, 짙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고, 순간 광장 안에 정적이 내려 앉았다.

“저 녀석 또 일 처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인가보군. 온 몸이 피 비린내에 절어 있어. 이 정도면 거의 좋아서 하는 일로 느껴질 정도인데?”

관객석 한편에 서 있던 빨간 치마를 입은 소녀는 오하늘에게서 풍기는 피냄새가 불쾌한 듯 코를 잡으며 짜증을 냈다.

한편, 오하늘의 등장과 동시에 백성찬의 얼굴이 시커멓게 흐려졌다.

지난 2년간 백성찬과 오하늘은 철천지 원수처럼 싸워댔지만, 승리는 항상 오하늘의 차지였다.

백성찬 역시 재능이 대단한 투사였지만, 집행부의 ‘사신’, ‘사형집행인’ 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는 오하늘에 비하면 실전 경험이 너무나 부족했다.

“음…이건 좀 심하군요. 오태산 그 미친 자식이 저 아이를 살인 병기로 만들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오하늘의 등장에 반응을 보인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광장 중앙에 있던 노인들 중 노란 두루마기를 걸친 노인 역시 오하늘에게서 풍기는 피 비린내를 느끼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럴 리는 없겠죠. 오태산이 사교성도 떨어지고 괴팍한건 사실이나, 저 아이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지극 정성이니 말입니다. 오히려 오하늘의 성질머리를 말릴 수 있을만한 사람들이 본원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일부러 이번 선발 대회에 출전시킨 듯합니다.”

부원장은 노란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을 안심시키려는 듯 사정을 설명했지만, 옆에 있던 다른 노인 역시 한숨을 내쉬며 연신 인상을 써대고 있었다.

“그랬으면 좋겠군요…재능이 뛰어난만큼 미래가 더 걱정이 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원장님께서도 말씀 하셨죠. 오하늘에게 10년만 준다면 훨씬 큰 인물로 성장할 것이라고요.”

“하하, 그러고 보면 이번 선발대회에 참 많은 인재들이 모였군요. 백성찬, 오하늘, 이은, 그리고 이준까지.”

“이윤영을 빼시면 섭섭합니다. 적어도 외원에서는 이윤영 학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 겁니다.”

“그러고 보니 언급된 아이들이 모두 비슷한 나이 또래군요. 규정상 본원에 진입하게 된 다섯 명은 특수 시험을 치르게 될 텐데, 나이도 비슷하고 하니 금방 친해지지 않을까요?”

……

그렇게 오하늘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심판이 경기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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