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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200화 (200/818)

제200화. 노담

“장서각? 거기에 뭐 특별한 거라도 있어?”

“음…아직은 저도 잘 몰라요. 들어가 본 적은 없거든요. 하지만 선발경기에 참여한 사람 중 절반 이상은 그 장서각 때문에 신청서를 내는 거예요. 장서각은 일반 학생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고, 매년 선발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잠깐 열어 놓는 정도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운이 좋고 실력이 받쳐주면 그 안에서 상상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해요.”

가람 아카데미에서 특별히 관리할 정도의 보물이라는 말은 준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럼 나도 최선을 다해야겠네.”

“그럼, 최선을 다해야지. 일단 네가 조심해야 할 인물들에 대해서 알려줄게. 특별히 더 신경쓰도록 해. 첫 번째는 저기 있는 아가씨야. 이 가람 아카데미에서도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아이로 인정받고 있지. 게다가 부원장님의 가르침까지 받고 있으니…실력은 이루 말할 필요가 없겠지? 부원장님의 손녀이다보니 특별한 무투기도 몇 개 가지고 있고 말이야.”

예진은 빨간 치마를 입고 있는 아이를 한번 바라봤다가 백성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번째는 어제 밤에 널 찾아왔던 백성찬이야. 외원 최고의 인재로 인정받고 있지. 세 번째는…네가 아직 만나본 적이 없어. 다만, 집행부 소속이고, 앞으로 집행부의 수장이 될 거라는 평을 받고 있지. 네 번째는, 노담이라는 아이야. 이 아이는 연금술 학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지. 연금술뿐 아니라 투사로써의 재능도 상당해. 우선은 네가 가장 조심해야 할 아이지. 대진표 상으로는 너와 가장 먼저 만날 아이니까.”

“그래요? 그 노담이라는 사람은 실력이 어느 정도예요?”

“3성 대투사 정도일걸? 일단 연금술사라는 점에서부터 경계할 이유가 충분해.”

노담의 이야기가 나오자, 이옥이 예진의 말을 받아 대신 설명을 했다.

“하하! 그리고 추가로, 옥이를 짝사랑하고 있단다. 제법 열정이 넘치는 아이지!”

예진은 노담과 이옥의 관계를 설명하며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지만, 이옥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 절레 저어댔다.

“제발 그 얘기 좀 그만하세요. 너무 싫어요.”

“그런데 다섯 명이라 하지 않았어요? 마지막은 누구인가요?”

“네 눈앞에 있지 않니?”

“네?”

예진이 고개를 들어 턱짓으로 은을 가리키자, 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상대이긴 하죠.”

그렇게 그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광장 안에는 어느새 인파가 가득차 있었다.

중년의 심판이 천천히 광장 중앙으로 걸음을 옮기자, 사방에서 귀가 먹먹해질 듯한 환호가 쏟아졌다.

곧이어 심판이 손짓을 하자 박수소리와 환호소리가 젖어들고, 장내가 충분히 조용해지자 심판은 주위를 둘러본 뒤 입을 열어 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학생 여러분, 어제의 경기를 통해 300명의 지원자 중 174명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오늘 안에 본원에 들어갈 후보자 50명이 선정될 것 같군요. 이미 경기 시간이 다 됐으니, 지금부터 호명 되는 참가자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예정 시간보다 늦게 된다면 자동 탈락처리 되니 주의하세요.”

중년 심판은 간단히 규칙을 설명한 뒤 바로 대전자를 호명했다.

“C급 3반, 나율!”

“C급 5반 갈리!”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두 사람은 이미 준비를 마쳤다는 듯 광장 위로 올라갔다.

광장에 선 둘은 백성찬이나 다른 천재들만큼 주목 받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학생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강당에 오르자 함성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모두 C 등급의 학생이었고, 한 사람은 바람, 한 사람은 땅 속성의 염력을 지니고 있었다.

바람 속성은 빠른 속도로 이름이 높았고, 땅 속성은 높은 방어력으로 이름이 높았으니 속성만 놓고보아도 꽤 흥미로운 대전이 될 터였다.

예상대로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바람 속성의 학생이 선공을 취했고, 민첩한 속도를 내세워 빠르게 위치를 바꿔가며 공세를 퍼부었다.

반면 상대는 돌처럼 한 곳에 우뚝선 채 상대의 공격을 제법 안정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나율이라는 사람이 이길 확률이 높진 않은 것 같은데…”

이준이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이옥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아무리 봐도 나율이 우세해 보이는데?

“얼핏 보기엔 유리한 것 같지만…장기전으로 가면 염력이 떨어져서 큰 공격은 어려워 질 거에요. 익히고 있는 염력 수련법도 썩 대단한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염력의 양으로 보나 효율로 보나 장기전으로 갈수록 더 어렵겠죠. 게다가 갈리는 아까부터 시종일관 움직이질 않는걸요. 아마 땅에서 자연의 기운을 끌어내 염력 소비를 최소화 하고 있는 거겠죠. 이미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는거예요.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갈리에게 유리한 싸움이 될 거예요.”

옆에 있던 이은이 웃으며 상황을 분석해주자, 이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준과 이은의 예상대로 나율의 공격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갈리의 묵직한 일격이 나율에게 적중했다.

신나게 몸을 날리며 공세를 퍼붓던 나율은 일격에 피를 토하며 나가 떨어졌고, 관객석에서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실력들이 상당하네…’

조용히 경기를 분석하던 준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지간한 실전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이 나이 또래에서 갈리같은 전법을 구사하기란 쉽지 않은 일 이었다. 확실히 가람 아카데미에는 인재가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전 경험이라면…나도 만만치 않지.’

그렇게 준이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팔짱을 끼고 경기를 관람하던 예진이 입을 뗐다.

“매해 아카데미에서는 일부 학생들을 검은 성에 투입시켜 실전감각을 익히게 하지. 그러다가 자기 제자를 잃은 선생들도 한 둘이 아니지만…보시다시피, 성과는 제법이거든.”

“네? 학생들을 그런데로 보낸다고요?”

검은 성을 통과해온 준은 그 곳이 얼마나 미친 곳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살인이 밥 먹듯이 벌어지는 곳에 학생들을 보내다니…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교육 방식이었다.

“뭐…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대부분 다 갔다왔다고 생각하면 될거야. 백성찬이나 노담도 당연히 검은 성에 다녀왔고.”

“제 38회차, 연금술과의 노담 대 C급 2반, 이준!”

그 때, 광장 중앙에서 준의 이름이 호명되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예진 곁에 서있는 이준에게로 쏠렸다.

“다들 네가 망가지는 꼴을 기대하고 있을 거야. 노담은 외원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녀석이니까…조심하는 편이 좋아. 게다가 연금술사라서 살상력이 상당한 불꽃을 가지고 있지. 내가 줄 수 있는 정보는 그 정도야.”

예진은 어서 나가보라는 듯 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설명을 마쳤다.

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광장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이은이 웃으며 응원의 말을 건넸다.

“오라버니! 믿고 있을게요!”

이은의 곁에 있던 이옥 역시 주먹을 들어 올리며 거친 응원의 말을 내뱉었다.

“지고 돌아오면 죽여버릴거야.”

“노력할게.”

준은 피식 웃으며 등 뒤에 있던 검은 송곳을 빼어 들고 천천히 광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준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파란색 옷을 입은 사내 하나가 빠른 속도로 광장 안으로 날아들었다.

파란 색 옷을 입은 청년은 제법 건장한 체격에 따뜻하고 순박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봉두난발을 쓸어 넘기며 귀찮은 표정으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 댔다.

“네가 이준이지? 이옥의 사촌동생?”

“네.”

“음음…이거 참…곤란하게 됐군. 좋아. 혹시 내가 이기게 되더라도, 큰 부상은 당하지 않게 조심할게! 네가 다치면 이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거든!”

“흠…”

준은 초면부터 너무나 스스럼 없이 구는 상대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감사합니다.”

“어휴, 아니야.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네 누이 성격이 어떤지 알아? 글쎄 지난 번에는…”

그렇게 노담이 하소연을 계속에서 늘어놓는 사이, 갑지가 심판이 경기 시작을 알렸다.

“준비, 시작!”

그리고 경기 시작 선언과 거의 동시에 심판석에서 이옥이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준, 저 약쟁이의 코를 그냥 납작하게 눌러줘!”

준은 놀란 눈으로 이옥을 한 번 바라보고는 어깨를 한번 으쓱한 뒤 검은 송곳을 더욱 꽉 움켜잡았다. 그러자 공기가 타들어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푸른 염력이 검은 송곳을 감쌌다.

“노담 선배님, 시작하시죠!”

“우와아…자네, 최소한 대투사는 된 것 같은데…내 말 맞지?”

노담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염력을 끌어올렸다. 곧이어 그의 몸에서 정체 모를 연기가 피어오르며 염력 갑옷이 그의 몸을 감쌌다.

한 눈에 서로의 실력을 알아본 두 사람은 한참이나 말 없이 기회를 엿보다가 약속이나 한 듯 갑작스럽게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공중에서 청색과 흑색의 물체가 뒤엉켜 몇 번인가 맞부딪히자, 파공음과 함께 돌로 된 바닥이 박살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속도가 너무나도 빠른 나머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준과 노담의 공방은 제대로 볼 수 조차 없었다.

노담은 손에 든 가느다란 검을 뱀처럼 유연하게 움직여가며 맹렬한 기세로 몰아치는 준의 공격을 흘려 넘기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노담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져 가고 있었고, 수 십 합을 겨뤘을 때 즈음에는 이미 처음에 보였던 그 사람 좋은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채 온 정신을 집중해 대결에 임하고 있었다.

“후우…”

그리고 두 사람의 공방이 백 합을 넘었을 때, 노담이 긴 한숨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곧이어 그의 검이 새빨갛게 타오르며 열기를 띠었고,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검은 송곳을 교묘하게 피해 준의 손등을 향해 칼날을 휘둘렀다.

이에 준은 화들짝 놀라 빠르게 검은 송곳을 놓고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손에서 검은 송곳을 놓자 억제하고 있던 염력이 해일처럼 폭발하며 온 몸을 돌았고, 다음 순간, 시커먼 그림자가 번개처럼 달려들어 노담의 손목을 후려쳤다.

쨍그랑.

장검이 땅으로 떨어지는 찰나, 노담은 재빠르게 몸을 날려 준의 공격권을 벗어났다.

“빠르군. 위력도 있어. 정말 대단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

노담은 얻어 맞은 오른쪽 팔목을 연신 문지르며 또 다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야 원…이런 사람을 상대로 다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하다니…미안하군. 내가 자네를 너무 얕봤어.”

그는 계속해서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서성거리다가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나는 연금술사야. 그러니 내가 잘 하는 건 염력을 이용한 싸움이 아니라, 불놀이지.”

그러자 그의 손에 짙은 청색을 띤 아름다운 화염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다치지 않게 주의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불꽃이 가진 힘이 상당하다는 믿음에서 나온 말인 듯 했다.

하지만 노담이 하나 놓친 것이 있었으니…바로 상대도 연금술사 일 것 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는 점 이었다.

게다가 준이 가진 것은 ‘천지의 불꽃’으로, 그가 가진 ‘마수의 불꽃’보다도 훨씬 귀하고, 화력에 있어서는 두 말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격이 달랐으니, 준 앞에서 마수의 불꽃으로 ‘불놀이’를 하는 것은 참으로 가소로운 짓이었다.

“이준 후배님, 조심해. 내 불꽃은 화력이 상당하거든!”

그리고 노담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불꽃을 날리려는 순간, 준의 입에서 보라색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하하, 선배님, 죄송하지만 제 주특기도 불놀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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