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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99화 (199/818)

제199화. 교전

깊은 밤, 인기척 하나 없는 조용한 공터에 달빛이 내려 아카데미내에 있는 건물들의 모습이 선연히 드러났다.

……

한편, 예진과 준이 머물고 있는 숙소 주위의 숲에서는 새하얀 그림자 하나가 나뭇가지를 밟고 이동하고 있었다.

나뭇가지를 딛고 날아오른 그림자는 건물과 멀지 않은 곳에 펼쳐진 돌 더미 위에 착지해 건물 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새하얀 인영(人影)에서 은빛의 염력이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순간, 건물 안에서 이와 대비되는 새카만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튀어나왔다.

두 그림자가 마주서는 순간, 새하얀 옷을 입은 그림자에게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건방진 놈…네 놈 실력을 확인하러 왔다.”

말을 마치자마자 흰색 옷을 입은 사내의 손에서 은색의 염력이 치솟았다.

‘번개 속성 염력인가?’

준은 은색 염력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소음에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찬 형님과 같은 번개 속성의 염력이군…골치 아프겠는데…’

은색 염력과 무투기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독특한 소음은 번개 속성 염력이 가지는 특징이었다.

준은 긴장한 표정으로 서서히 염력을 끌어올렸고, 흰 옷을 입은 사내는 상대가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자 곧바로 돌을 밟고 뛰어올라 몸을 날렸다.

콰릉…!

그러나 은색의 섬광이 준을 향해 날아드는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울려 퍼졌다.

“백성찬? 지금 뭐 하는 거죠?!”

은색 빛을 내뿜던 사내는 화가 난 목소리에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염력을 거두어 들였고, 이에 따라 준 역시 염력을 거두어들였다.

“아, 별 거 아닙니다. 그냥 이준 후배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백성찬은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며 이준을 흘깃 노려보고는 변명을 해댔다.

“백성찬 선배님…이렇게 한밤중에 찾아와 다짜고짜 후배를 습격하는 것은 아카데미의 규칙에 어긋나는 것 아니던가요?”

하지만 이은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계속해서 상대를 몰아세웠고, 이에 백성찬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다물었다.

“뭐하는 짓이야!”

바로 그 때 누군가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백성찬! 내일이 선발전인데 한밤중에 여기서 뭐하는 거야!?”

예진이었다.

이은에 이어서 선생인 예진까지 달려 나오자, 백성찬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이거이거… 명성이 자자한 후배님 실력이 궁금해서 온 것뿐인데 정말 너무들 하는군요…알겠습니다. 제가 내일까지 참겠습니다. 어차피 내일이면 이준 후배님의 실력을 알 수 있을 텐데, 제가 호기심이 과했군요.”

“후우…백성찬…그만하고 들어가. 오늘 이 문제는 징계위원회에 회부해도 될 만한 사건이야. 감히 한밤중에 같은 아카데미생을 습격하다니…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어서 돌아가라.”

……

결국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백성찬이 예진에게 인사를 올리고 사라지자, 준은 그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2년 동안 잘 지냈어?”

“네…”

준은 이은을 데리고 창문 옆에 앉아 밤 하늘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내가 2년 동안 뭐하고 지냈는지 궁금하지 않아?”

“엄청이요.”

이은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자, 준은 지난 2년간 있었던 일들을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천둥산에 들어간 것부터 타르 사막에서의 일까지, 마씨 가문에서의 소동과 황성(皇城)에서의 사건, 연금술사 대회와 운남종에서의 일까지…

그리고 그 긴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는 이은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한시도 떠나질 않았다.

“아직 운산이 살아 있을 줄이야…정말 놀랍네요.”

이준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이은의 표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확실히 번거로워졌어.”

운산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준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운산만 아니었어도 꼬리를 말고 도망친 개처럼 비참하게 가한제국에서 달아나지는 않았을 것 이다.

준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다가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궁금한게 있는데, 중요한 일이니 솔직하게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네?”

이은은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준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가 궁금한 거라면 뭐든지 물어봐요. 솔직하게 대답할게요…”

“운남종에서 순조롭게 빠져나온 뒤로, 운남종의 분노가 우리 이씨 가문을 향하지 않을까 걱정했었거든…그리고 내 생각대로, 내가 은빛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운남종의 대장로가 우리 가문을 습격한 상태였어.”

이씨 가문을 습격했다는 말에 이은의 얼굴에 눈동자에 살기가 어렸다. 하지만 그녀는 준의 말을 가로막지 않고 가만히 그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피해를 좀 입기는 했지만…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어. 하지만…그 과정에서 운남종의 장로들을 유인하던 아버지가 실종되셨지.”

“실종이요…? 운남종에서 아저씨를 납치했다는 건가요?”

“그건 아니야. 이씨 문중을 습격했던 대장로는 이미 내 손에 죽었어. 하지만 죽을 때 까지도 아버지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어. 알았다면 인질로라도 썼겠지…그러니 아마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말은 정말일거야.”

“사라져요?”

“응. 사라졌다고 했어. 자신이 보는 앞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고. 아마도 이름 모를 강자가 아버지를 빼돌린게 아닌가 싶어. 하지만 가한 제국내에서 운남종의 대장로 앞에서 아버지를 빼돌릴만한 강자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더욱이 그 강자들 중에 운남종이 아니라 이씨 가문을 택할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렇…죠.”

이은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준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은아, 난 이미 네가 이씨 가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 그리고 네 배후에 있는 세력은 아마도 가한제국의 그 어떤 세력보다 대단하다는 것도…그런 큰 세력과 우리 가문같이 작은 가문이 무슨 관계인지를 잘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누군가가 아버지를 도왔다면, 그건 아마도 너와 관련이 있는게 아닐까?”

이준의 말에 이은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투왕의 눈을 피해 아저씨를 빼돌릴 정도면 적어도 투황이라는 소리인데…근래에 가한제국에 들어온 투황이 있다면 제가 모를 리가 없어요.”

“너희 쪽에서 손을 쓴 게 아니라고? 나를 제외하면 우리 가문 사람들은 투황급 강자를 구경조차 못 해봤는데, 갑자기 모르는 투황이 와서 아버지를 납치했다고?”

이은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준의 얼굴에는 분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상황에서 이은의 가문 말고는 딱히 짚히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준의 입장에서는 이은의 가문에서 아버지를 빼돌렸다는 것이 유일한 가능성이었는데 은이 아니라고 단언해버리니, 답답함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오라버니…정말이에요. 우리 가문과 이씨 가문은…후…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어찌됐든, 정말로 저희 가문의 소행일 리가 없어요. 설령 누군가가 독단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고, 정말로 실행에 옮겼다면 반드시 처벌을 받았을 거예요. 결국 저 몰래 투황급 이상의 강자가 가한제국에 발을 들였다고 해도, 아저씨를 납치한 게 저희 쪽 사람이라면 제가 모를 수는 없단 말이에요.”

이은은 준을 진정시키려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그를 타일렀고, 이은의 침착한 태도에 잠시 흥분해서 언성을 높이던 준도 조금씩 냉정을 되찾아갔다.

“후…우리 집안에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그럼 운령이 거짓말을 한건가…?”

준이 계속해서 아버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어두운 표정을 짓자, 이은은 다정한 목소리로 그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일단 들어가서 좀 쉬어요. 오라버니…내일 선발전이 있잖아요. 아저씨에 대한 일은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그것보다도, 오라버니에게 중요한 것은 우선 실력을 기르는 거예요. 아저씨의 행방을 알게 되어도, 힘이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요.”

은이 말대로 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고민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설령 아버지가 운남종에 잡혀간 것이 사실이라 해도, 지금의 그로써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알았어. 뭔가 알게 되면 꼭 알려줘.”

“알았어요. 약속할게요.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그래…너도 얼른 들어가서 쉬어.”

준과의 대화를 마친 이은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곧장 손가락을 까딱거려 누군가를 불러냈다.

“내일 세형님에게 뒷산으로 와달라고 전해줘. 그리고 가한제국 안에 알려지지 않은 강자가 있는지, 행적은 어떤지도 알아봐주고. 운남종과 관련된 정보가 필요해.”

“네, 아가씨.”

* * *

다음 날 아침…해가 떠오르며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고, 밤새 적막에 싸여있던 가람 아카데미에도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본원 선발경기는 가람 아카데미에서 일 년에 딱 한 번 열리는 중대 행사로, 올해는 이은, 백성찬 등 주목 받는 인물들이 있어 더욱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하고 있었으니 이른 아침부터 광장으로 향하는 학생들이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많았다.

건물 안에서 간단하게 세수를 마친 준 역시 예진 선생, 이은, 이옥과 함께 건물에서 나와 광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예진 일행은 인파를 헤치고 광장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고, 준은 광장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누군가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준은 자신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백성찬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광장 곳곳을 둘러봤다.

경기장의 중앙에는 시야가 트여있는 좋은 자리가 있었고, 그 곳에는 네 명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노인처럼 보였지만,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절대 예사롭지 않았다.

지난 2년간 제법 많은 강자와 대적해온 준의 기억 속에서 그 정도 기운을 가진 사람은 가철이나 운산 정도밖에 없었다.

준이 노인들을 훑어보자 그 시선을 느꼈는지 노인들 역시 준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준은 노인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알이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을 느껴 곧장 시선을 돌렸다.

“응?”

그 순간 준의 눈동자에 스쳐간 푸른 불꽃을 발견한 네 명의 노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신기한 염력입니다. 마치 영혼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뜨거운 염력이군요.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힘을 손에 넣었을까요?”

“저런 염력은 연금술에 활용하면 참 좋은데 말입니다.”

“하하. 화 노인, 걱정 마십시오. 이준이라는 아이가 얼마 전 가한제국 연금술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고 하더군요.”

회색 두루마기를 걸친 노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중요한 정보를 던져주자, 화 노인이라고 불린 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18살에 저 정도라면 정말로 뛰어난 인재입니다. 가능하다면 꼭 연금술 학과로 데려가고 싶군요.”

“어차피 아카데미 교육은 개인교육과 별개이니, 저 친구가 따로 스승이 있다 할지라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우리 가람 아카데미의 연금술 학과의 도움을 받는다면 본인에게도 좋을 테죠.”

“하하, 저 아이가 연금술 학과에 관심을 보인다면 저희야 좋지요.”

……

“외원의 세력구도는 제법 복잡하지만…일단은 두 세력 정도만 주의하면 될 거야. 하나는 집행부야. 아무래도 특수 직책을 맡고 있으니…그들 눈에 벗어났다간 아주 골치 아플 거야. 영혼의 나무 위에 시체를 걸어 놓는 것도 다 녀석들이 하는 일이니까. 그 다음은 연금술 학과야. 연금술사들을 특별 취급하는 건 가람 아카데미도 마찬가지니까.”

“아아, 네.”

준은 예진이 언급한 두 세력을 머리에 새겨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선발경기에서 50위 안에 드는 걸로는 부족할거야.”

“다 비슷한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오라버니, 5등 안에 들게 되면 아카데미의 장서각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거든요.”

그 때, 이은이 끼어들어 예진 대신 설명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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