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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98화 (198/818)

제198화. 격의 차이

“오라버니!”

이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자, 광장 안에 정적이 내려 앉았다.

“저 망할 자식이…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뻔뻔하게!”

이옥은 준을 발견하자마자 또 험한 소리를 내뱉었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맞춰서 오긴 했어도 상황이 그리 좋진 않은 것 같은데요. 임필은 9성 무투사잖아요. 게다가 3격 하급 염력 수련법도 가지고 있고…얼마전에는 3격 중급 무투기인 ‘창의 물결’까지 익혔다구요.”

그 때, 이옥 옆에 서있던 계집 아이 중 하나가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글쎄…어련히 잘 하겠지. 저놈도 2년 동안 놀고 먹지는 않았을테니까.”

한편, 예진의 얼굴에는 완전히 웃음 꽃이 피어 있었다. 일단 자리에 나타났으니, 이준이 경기에 지더라도 내년에는 승진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 자, 다들 넋 놓고 있지 말고, 기왕 도착했으니 같이 응원이나 해주자구나. 미우나 고우나 우리반이니까 말이야.”

기분이 좋아진 예진은 승패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손사레를 치며 연신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빨간 치미를 입은 소녀는 여전히 못 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흥, 뭐가 그리 잘났다고 늦게 와서 저리 당당하담?”

……

“네가 이준이냐?”

순식간에 이준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자, 임필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관심 받는걸 좋아하는 모양이군.”

“그다지…”

“가람 아카데미의 많은 학생들이 널 기다렸다. 2년 내내 소문만 무성한 천재 투사였으니까. 입학을 하자마자 휴학을 하고, 아카데미에는 나오지도 않으면서 선발전에는 계속 이름을 올리고 말이야. 게다가 이은이 그렇게 널 싸고 돌았다지? 뭐 얼마나 대단한게 있길래 이렇게 시건방지게 구는지 내 손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어서 영광이군.”

순간 준의 머릿속에 평화마을에서 황두식이 해주었던 충고가 스쳐갔다.

그의 말대로, 자신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많은 학생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모양이었다.

준은 말없이 검은 송곳의 손잡이를 부여잡고 가볍게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송곳이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하…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오해?”

“아닙니다…일단 대결부터 시작하죠.”

상대가 노골적으로 자신에게 적대감을 드러내자, 준은 말싸움을 멈추고 심판을 바라봣다.

“시작해도 될까요?”

“좋다.”

심판의 허가가 떨어지는 순간, 임필이 한 마리 이리처럼 날렵하게 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준은 미동조차 않은 채 가만히 상대를 바라봤다.

휴학도 휴학이지만, 예진이 선발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것부터 이은의 문제까지…이유는 제각각 다르더라도 자리에 있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이 확실해진 이상, 앞으로 있을 귀찮을 일들을 예방하려면 여기서 실력차를 보여주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마음을 굳힌 준은 일부러 임필의 공격이 코 앞까지 날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창 끝이 그의 목줄기 앞까지 날아든 순간, 준의 손이 번개처럼 임필의 창대를 낚아챘다.

왼손으로 창대를 낚아챈 준의 오른손에 무시무시한 염력이 깃들자, 임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리고 말았다.

준은 눈 깜짝할 사이에 창대를 놓고 임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그의 눈 앞에 나타났다.

쾅!

임필은 필사적으로 뒤로 몸을 날려 준의 주먹을 피한 뒤 다시 염력을 끌어올렸다.

‘위…위험했어…생각보다 제법이군.’

다음 순간, 임필의 몸에서 폭포수 같은 염력이 뿜어져 나오며 창을 감쌌다.

방금 전의 공방으로 인해 보다 신중해진 임필은 가만히 기회를 노리다가 준이 빈틈을 보이는 듯 하자 다시 한번 이리처럼 날렵하게 몸을 날리며 창을 내질렀다.

“창의 물결!”

임필이 자랑하는 3격 중급의 무투기 ‘창의 물결’이 시전되는 순간, 광장에 있던 학생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정작 그 무시무시한 공격을 받아내야 하는 준은 여전히 평온하기 그지 없는 표정으로 멀뚱히 창 끝을 바라볼 뿐 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상대의 창끝이 자신의 몸을 향해 날아드는 순간, 준의 오른손에서 푸른색 염력이 치솟았다.

“태초의 힘!”

쾅!

창과 주먹이 맞부딪히며 굉음을 일으키고, 강대한 두 무투기가 맞부딪히며 바닥이 갈라지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

“으윽…”

자욱하게 일었던 흙먼지가 가라앉자, 관객석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맨주먹인 상대와 부딪힌 9성 무투사인 임필의 양손에서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금 전 그가 사용한 것은 3격 중급의 무투기인 ‘창의 물결’이였으니, 어지간한 대투사라 해도 이를 받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 녀석… 2년 사이에 이렇게나…”

이옥과 예진은 나란히 정신을 놓고 지난 2년간 무던히도 속을 썩여왔던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쳇…이렇게 대단해서야…야단도 못 치겠는걸…”

예진은 자신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준의 성장에 괜히 민망한 기분까지 들고 있었다.

“와…그래도 완전히 속빈 강정은 아니군요. 임필의 무투기를 주먹으로 깨부수다니…저 정도면 3성 대투사 이상이겠는걸요?”

놀란 것은 여태까지 계속해서 준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빨간 치마의 소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것 같구나…게다가 염력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공수를 전환하는 것을 보니 염력 조종 능력이나 실전 경험도 상당한 수준이야. 어쩌면 너와 비슷한 수준일지도 모르겠구나.”

노인 역시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빨간 치마 소녀의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저 정도라면 정말 한 번 붙어보고 싶네요.”

……

한편, 경기장 가운데 서있던 준은 임필의 손 상태를 보고는 조용히 염력을 거두어 들이며 심판을 바라봤다.

“이 정도면 제 승리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심판석에 서있던 노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준의 승리를 인정했다.

준은 곧바로 검은 송곳을 챙겨 경기장 밖으로 내려가 경기장의 한구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곳에는 예진과 이옥, 그리고 이은이 있었다.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그리고 준의 입에서 다정한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 푸른 옷을 입은 아리따운 소녀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

한 걸음에 달려가 이준의 품에 안기는 소녀의 모습에 광장에는 적막이 내려 앉았다.

이은은 그 대단하다는 가람 아카데미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인데다가 그 미모 역시 대단했으니, 수 많은 남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 광경에 항상 친절한 웃음을 짓고 있던 백성찬의 얼굴에도 어둠이 내려 앉았다.

“크흠…”

3년 만에 재회한 두 사람이 서로를 부둥켜 안고 떨어지지 않자, 참다 못한 예진이 헛기침을 했다.

스승의 말 없는 지적에 민망해진 두 사람은 즉시 떨어졌고, 이준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헤헤, 죄송해요 스승님.”

“내가 네 지도교사라는 건 기억하고 있니?”

예진의 따끔한 한마디에 더욱 민망해진 준은 말없이 웃으며 눈동자를 굴려댔다.

“어휴! 지난 2년 동안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 너는 말이지! 정말…”

예진의 목소리는 잔뜩 심통이 나 있었고, 표정을 보아하니 2년간 참아온 화를 지금 이 자리에서 다 풀기라도 할 기세였다. 결국 잔소리가 길어질 것 같자, 이옥이 중재에 나섰다.

“스승님, 사람들 눈도 있고…일단 선발전에 맞춰서 돌아왔으니…나중에 이야기 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이옥의 지적에 정신이 들어 주위를 한번 둘러본 예진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관중들의 시선에 민망해진 나머지 헛기침을 하고 서둘러 말을 마쳤다.

“흠…흠…! 좋아. 잘잘못은 선발 대회가 다 끝나고 따지자.”

준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이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오, 2년 사이에 더 예뻐졌네. 역시 우리 이씨 가문의…”

“시끄러.”

준은 이옥을 향해 반가운 듯 너스레를 떨었지만, 정작 상대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다리를 들어 준을 걷어차는 시늉을 한번 하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에휴…됐어 됐어, 돌아가자. 일단 오늘 경기는 거의 다 끝나가니까, 돌아가서 좀 쉬자고. 내일이랑 모레부터가 본격적인 선발전이야.”

이옥과 준이 으르렁대자, 이번에는 예진이 중재에 나서 둘을 말렸다.

그 때, 이준의 곁으로 새하얀 옷을 입은 청년 하나가 지나갔다.

그리고 청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준은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 사람은 누구지? 아주 강해 보이는데……’

……

“본원에 들어가면 좋은 점이 뭐죠?”

예진, 이옥 등과 함께 경기장을 빠져 나온 준은 곧바로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다.

“가람 아카데미는 본원과 외원으로 나뉘어. 외원은 우리가 있는 이곳이고, 대륙의 곳곳에서 불러온 신입생들은 모두 외원에서 실습을 하고 실력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난 뒤에야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본원 선발경기에 참가할 수 있게 되지. 경기 성적이 15등 안에 들게 되면 본원으로 들어갈 기회가 주어지고 말이야. 본원은 외원과 완전히 달라. 가람 아카데미의 외원은 사실 신입생들은 시험하기 위한 곳일 뿐이라고 봐도 좋아.”

예진은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어나갔다.

“외원은 각각 B급, C급으로 급이 나뉘고, 급마다 반이 따로 정해져 있어 네가 방금 겨뤘던 녀석은 B급이고. 난 C급 담당이지. 뭐, B급에 속해있는 아이들이 C급에 속해있는 아이들보다 강한건 사실이지만…오늘 너와 임필처럼, 급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야. 특히 너나 은이 같은 경우는 백성찬이나 이윤영만 피하면 본원에 갈 가능성도 충분해 보이고.”

“백성찬, 이윤영이요?”

“백성찬은 최근 2년 사이에 외원에서 가장 실력 좋은 학생으로 손꼽히고 있지. 외모도 출중하다보니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고. 뭐…정작 본인은 은이말고 다른 여자애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말이야.”

백성찬이 은이를 짝사랑한다는 말에 준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예진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이윤영은 부원장님의 외손녀야. 당연히 실력도 뛰어나고, 부원장님의 지도까지 받고 있으니 어쩌면 백성찬 보다 나을지도 모르겠구나. 성격은…음…내 입으로 말하기 어렵구나. 하지만 실력도 뛰어나고, 외모도 제법이라 이 아이도 제법 인기가 많지. 그리고…특이 사항이라면…남자한테는 별 관심이 없는데, 이 아이도 은이를 졸졸 쫓아다닌단다.”

예진이 설명을 마치자, 준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은아…너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닌거니…”

“오라버니 그게 무슨!”

“아아, 시끄러! 내 앞에서 사랑싸움 같은거 하지마! 새파랗게 어린 것들이! 얼른 들어가서 쉬고, 내일부터가 본 경기니까 몸 관리 잘하고!”

* * *

책장에 책이 한 가득 꽂혀있는 방 한 켠, 예닐곱 명의 노인들이 원형 탁자에 앉아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에는 빨간 치마를 입은 소녀의 할아버지인 부원장도 자리하고 있었다.

“허허, 그 이준이란 아이, 아주 대단하군요. 가한제국의 운남종과 겨루어 이겼을 뿐만 아니라 투왕 강자와 맞붙어 승리하기도 했고, 투종 강자의 손에서도 죽지 않고 빠져나갔던데…이 정도면 본원행은 거의 확정적이겠는데요?”

노인이 웃으며 서류 뭉치를 내밀자, 주위에 있던 노인들의 눈이 두 배는 커졌다.

“으음?”

“이준과 관련된 정보들이니 다들 직접 보시지요. 잠재력이 아주 큰 친구입니다. 뭐…한가지 흠이라면…벌써부터 운남종과 관계가 아주 나쁘다는 점일까요?”

“잠재력이 뛰어난 친구인 건 사실 같습니다. 잘 육성하면 최고 수준의 투사가 될 수도 있으리란 기대가 드는군요. 운남종은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겨우 투종 한 명이 우리 가람 아카데미를 어찌하겠습니까.”

“운남종은 걱정할게 없다 쳐도, 그 배후가……”

“일단 조용히 지켜보도록 합시다. 정말 키울 가치가 있는 친구라면 키워봐야지요.”

“그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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