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195화 (195/818)

제195화. 용음

“역시…천지의 불꽃이야!”

피의 종족의 염력은 차가운 속성이기 때문에 불 속성과 서로 충돌하면 화염을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극복’은 상대의 불꽃이 보통 의 것일 때나 먹히는 이야기지, 천지의 불꽃 앞에서는 그 위력을 줄이기는커녕 되려 자신의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래서 피의 종족의 전투 규칙 중 첫 번째는 천지의 불꽃을 지닌 강자를 만났을 때 즉각 후퇴하는 것 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천지의 불꽃을 가진 사람이 극히 드물었으니, 지금까지 피의 종족 사람들은 큰 무리 없이 세력을 확장 시켜나갈 수 있었던 것 이다.

“큭, 네 놈…대체 정체가 뭐지? 감히 우리 피의 종족을…!”

아버지조차 두려워하는 천지의 불꽃을 가진 상대의 등장에 자신만만하던 범령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작은 종주님, 먼저 가십시오! 이 자는 제가 맡겠습니다. 종주님의 실력이라면 이미 하늘뱀족과 결판을 내고 이쪽으로 오고 계실 겁니다!”

그 때, 아직 어느 정도 힘이 남아 있는 나 장로가 검을 뽑아 들며 범령의 앞을 막아섰다.

나 장로의 말에 범령은 이를 갈면서도 몸을 일으켜 발걸음을 옮겼다. 천지의 불꽃을 가진 상대와 겨루기에는 자신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은 도망가느라 바쁜 범령을 보며 차갑게 웃을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범령의 머릿속에 상대가 자신을 추격하는 것을 포기했다는 생각이 스치려는 찰나, 갑자기 무지갯빛 섬광이 그의 가슴에 꽂혔다.

“커헉!”

흉부에서 전해지는 극한의 고통에 범령은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앞에는 칠색의 비늘을 가진 뱀 한 마리가 어른거리고 있었고, 그 뒤로 푸른 불꽃을 몸에 두른 소년의 형상이 다가오고 있었다.

……

준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범령의 시체를 바라보며 천천히 염력을 갈무리했다.

적들 앞이라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온 몸의 혈관이 뒤틀리는 것 같은 고통이 그의 전신을 엄습하고 있었다.

‘큭…위력은 엄청 나지만 몸에 가는 부담이 너무 커…’

“정말로 천계의 불꽃 제 1장을 성공해내다니, 대단하구나! 비록 불완전하지만 아주 훌륭했다! 이제 천천히 수련을 거듭하면 부상없이 제대로 위력을 끌어낼 수 있을게야! 껄껄껄!”

약로는 제자가 벌써 천계의 불꽃을 사용해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탄하는 듯 했다.

1개월만에 불완전하나마 비술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칠색 이무기를 도로 소매 안으로 넣어 주고는 허리를 숙여 범령의 손에 끼워진 저장반지를 빼낸 뒤, 차가운 옥으로 만들어진 상자를 찾아 꺼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옥 상자를 열지 앉고 그대로 자신의 저장반지 안에 넣어 놓았다. 다음으로 찾아낸 것은 바로 문제의 지도 조각이었다.

헤진 지도 조각을 펼치자, 눈에 익은 그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손에 넣었다……”

준은 조심스레 지도를 다시 저장반지 안으로 넣고 다시 기나긴 한숨을 쉬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빨리 움직이거라! 범로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번개의 춤’과 ‘지도 조각’이 저장반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약로가 다급한 목소리로 범로가 다가옴을 알렸다.

준은 번개처럼 몸을 날려 숲속으로 날아가 몸을 숨겼다.

……

그렇게 준이 떠나고 10분 정도 뒤…시뻘건 눈을 번뜩이며 범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앞에는 싸늘하게 식은 자신의 아들이 놓여있었고, 주위로는 가을바람에 쓰러진 낙엽처럼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진 동족들의 시신이 가득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 광경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긴 한숨을 내쉬며 붉은 눈동자에서 섬칫한 붉은 빛을 발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범령의 뒤통수에서 갑자기 빨갗 빛이 뿜어져 나오며 진득한 핏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은 천천히 퍼져나가며 바닥을 물들였고, 곧이어 그 속에서 어떤 ‘그림’이 그려졌다.

“후…좋아.”

“네 정체가 무엇이든, 내 손에 잡히기만 하면 최고의 고통을 느끼게 해주마.”

* * *

한편 준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나무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허공에서는 엄청난 한기와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범로의 기운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으로는 약로의 도움을 받아 기척을 숨기고 있는 준을 발견할 수 없었다.

준은 그렇게 꼬박 하루를 나무 위로 이동해 회색 성과 꽤나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 * *

준은 거인이 깎아 내린 듯한 벼랑 끝에 서서 신선한 공기를 천천히 들이쉬었다.

맑은 공기가 몸 안을 훑고 지나가자 간밤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하, 원한건 지도 조각 뿐 이었는데…번개의 춤에 용의 구슬이라니!’

이번에 얻은 수확을 생각하자 몸이 날아갈 듯 가볍게만 느껴졌다. 평생 가도 손에 넣기 어려운 보물을 한 번에 세 가지나 얻어내다니, 정말로 천운이 따랐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몇 분간 이 행운을 마음껏 만끽한 뒤 낡은 지도 조각을 꺼내 살폈다.

그간 손에 넣은 지도조각과 합쳐보니, 이제 남은 것은 왼쪽 모서리 한 귀퉁이 뿐 이었다. 겨우 3년 만에 지도 조각을 이 정도나 손에 넣다니, 아무래도 행운의 신이라는 것이라는 게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자신의 편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준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지도를 집어넣고 반지 속에서 또 다른 보물을 꺼내들었다.

그렇게 소년이 기묘한 기운을 내뿜는 옥 상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약로가 말을 걸어왔다.

“먹어버리거라. 계속 갖고 다니면 너무 위험하다.”

“네?”

“어서 그 용의 구슬을 먹으래도!”

“여기서요?”

준은 갑작스러운 스승의 말에 너무 놀란 나머지 멍하니 서서 연신 눈을 꿈뻑여댔다.

“잔말 말고 어서 먹으래도!”

어딘가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서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스승의 말이 틀릴 리가 없었다.

준은 영롱한 빛을 발하는 옥상자를 슬며시 열어 젖히는 동시에 자신의 푸른 염력으로 ‘용의 구슬’이 발하는 찬란한 금빛 섬광을 가렸다.

그의 손바닥 위에서는 용의 구슬이 반질반질한 금빛을 내뿜고 있었고, 두 마리의 작은 금색 용이 그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곧이어 용의 울음소리가 연금비약을 뚫고 나와 이준의 귓가에 울려댔다. 실로 영혼마저 떨리게 만드는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후우…”

이준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정신을 다잡고는 용의 구슬을 바라봤다. 평생 한번 볼까 말까한 귀한 물건이다. 삼키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

“으으!”

마침내 준이 눈을 질끈 감고 연금비약을 입 안에 털어넣는 순간, 신비롭고 뜨거운 기온이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푸른 정령의 비약을 삼켰던 때를 떠올리니, 얼마나 거대한 힘이 자신을 괴롭힐지 상상하기도 두려울 정도였다.

준은 잠시 후 자신을 덮쳐올 거대한 에너지의 파도를 상상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고, 처음 목구멍을 훑고 지나갔던 거대한 기운은 점점 평온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스승님…… 설마 빌어먹을 용의 구슬이 가짜는 아니겠죠? 어떻게 아무런 반응도 없죠?”

“무슨 반응을 말하는 게냐? 몸에서 빛이라도 날까? 아니면 예전에 먹던 연금비약처럼 엄청난 고통이라도 느껴질 줄 알았느냐?”

스승의 답변에 준은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최소한 뭐라도 변화가 생겨야 하지 않나요? 그냥 밥 먹고 물 마신 것처럼…이건 뭔가 아닌 것 같은데요…”

“경매사도 설명하지 않았더냐. 이 용의 구슬은 실력을 올려주는 종류의 비약이 아니란다. 가장 큰 효과는 바로 상처를 회복해주는 것이지. 상처를 회복시켜준다기보다… 거의 죽은 사람을 살리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이미 네 몸 안에 스며들었으니, 나중에 정말 죽음의 고비에 부딪혔을 때 운 좋게 약효가 발동해 예상치 못한 데서 효과를 볼 수도 있단다. 지금은 뭐… 밥 먹거나 물 마신 것과 같은지도 모르겠구나.”

“그렇다면…정말 조금의 효과도 볼 수 없는 거예요?”

“뭐, 간혹 가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미약한 용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다만…”

“그 용의 기운이라는 걸 갖게 되면 뭐가 좋은데요?”

“용의 기운을 가지게 된다는 전제 아래, 음파를 이용한 무투기를 익히면 음파를 이용해 상대의 영혼을 마비시킬 수 있지. 게다가 영혼체에게는 이런 종류의 공격이 더욱 치명적이기 때문에 영혼체를 만났을 때는 정말로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

약로의 답변에 준의 눈이 또 다시 반짝반짝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낭떠러지 끝에 선채 깊은 숨을 들이쉬고는 자신의 체내를 샅샅히 훑어보았다.

잠시 후 그의 몸 밖으로 푸른 염력이 솟구치며 그의 몸을 뒤덮고, 체내로 들어간 염력이 몸 안을 휘저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가슴팍에 칼로 후비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윽!”

“조금만 버텨보거라…!”

무언가를 느낀 약로가 자신을 격려하자, 준은 이를 악문채 통증을 참아냈다. 곧이어 통증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며 그의 영혼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준의 의식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으으으으으…!”

준은 눈 앞이 가물가물해지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며 자신의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염력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이한 염력이 준의 목을 타고 머리에 도달했고, 준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크르르르릉……’

그 순간, 섬뜩하고 낮은, 하지만 위엄이 가득 서린 울음 소리가 산등성이를 타고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하하…정말 운이 좋은 녀석이구나. 용의 기운을 이어 받다니. 고영찬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미쳐 날뛰겠군!”

이준의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음파에 약로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 * *

정체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는 곳곳에 메아리치다 한참 뒤에야 조금씩 잦아들었다.

준은 목에서 올라오는 격렬한 통증에 목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정신없이 기침을 해댔다. 침을 몇 번이나 삼키고 나서야 불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운 느낌이 조금 나아지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반응이다. 너무 걱정 말거라.”

“콜록…! 스승님, 제가 용의 기운을 계승하는 데 성공한 걸까요?”

“그래. 성공한 것 같구나.”

스승의 대답에 준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비록 용의 구슬의 효과를 바로 체험할 순 없었지만, 용의 기운을 이용해 예상치 못한 적을 만났을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네가 무투기 없이 ‘용음’을 낸다면, 네 성대에 아주 큰 손상이 가해질 게다. 최악의 경우 벙어리가 될 수도 있지.”

“그건 좀…역시 ‘소리’와 관련된 무투기를 찾아야겠네요. 그런건 어디서 구할 수 있죠?”

“하하, 녀석! 급하기는! 지금 네가 얻은 ‘용음’은 정말로 진귀한 것이다. 과욕 부리지 말거라. 전에 네가 갖고 있으면 좋을 법한 3격 무투기를 지니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네가 직접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알겠어요. 그런데 스승님, 이 용의 구슬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계시네요? 남들은 잘 모르는 고급 정보도 다 아시고… 역시 스승님은 대단해요!”

준은 다시 한번 약로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했다. 음파 종류의 무투기가 없는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정말로 스승은 모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제자의 칭찬 앞에 약로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낮은 한숨을 토해냈다. 용의 구슬을 처음 봤을 때와 유사한 반응이었다. 준의 머릿속에는 순간 용의 구슬이 스승의 과거와 무언가 중대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