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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93화 (193/818)

제193화. 격전

“저희가 함정에 걸려든 걸까요?”

“그런 것 같진 않구나. 구멍 안에서 기운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매복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대투사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투황급 이상의 상대가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지.”

“매복이요? 대체 투황 강자 한 명이 잠복까지 할 일이 뭐가 있을까요?”

그 때 이준의 뇌리에 문득 ‘용의 구슬’의 낙찰자가 하늘 뱀 족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저 녀석들…물건을 강탈할 생각인가?”

“흠,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피의 종족 놈들이 2격 무투기나 용의 구슬을 순순히 넘길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 저흰 어떡하죠? 숨어있는 사람들이 전부 피의 종족 사람들일텐데요…팔선문의 주인보다 더 강한 투사라면 사실상 지도조각을 포기하는게…”

지도를 빼앗는 것이 어려워지자, 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일단 기다려보자.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준은 하는 수 없이 끄덕인 뒤 쉴 새 없이 사방을 훑고는 조심스레 풀숲으로 몸을 숨겼다.

수풀 속을 기어 조금 이동하자, 피의 종족 사람들이 매복해 있다는 땅굴이 설핏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시체처럼 가만히 엎드려 천천히 호흡을 줄여나갔다. 약로의 도움이 없었다면 생각없이 범령을 쫓다가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머리칼이 쭈뼛 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 뒤, 지면에 놓인 준의 몸에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이제 오려는 건가……’

그는 평소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운 채 먼 길가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이들을 바라봤다.

잠시 후,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가 그의 귓등을 때렸다. 고개를 돌리니 녹색 옷을 입은 여인 하나가 있는 힘껏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역시, 피의 종족 놈들이 용의 구슬을 노리고 있는 거군. 하지만 용의 구슬 같은 보물을 손에 넣을 정도면 하늘뱀족의 세력도 결코 약하지 않을 텐데…전쟁이라도 벌일 요량인가?’

‘흠, 그렇군…”

바로 그 때, 조용히 있던 약로가 다시 입을 뗐다.

“그럼 저 아래에서 느껴지는 투황의 기운은 피의 종족 종주였던 것 같군. 종주까지 출동하다니…애초에 저들을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흑각성에서 이 정도 규모의 살인은 매일 벌어지는 일이니까…”

“네? 다 죽인다고요?”

확실히 용의 구슬 정도라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준이 놀란 것은 피의 종족이 경매가 열리기 전부터 이런 상황에 대해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경매가 끝난 뒤 계획에 착수했다면,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를 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독한 놈들… 아예 경매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누가 보물을 얻든 상관없이 강도질을 할 생각이었던거야.“

잠시 후, 눈앞에 울창한 숲이 나타나자, 청 장로는 속도를 낮추고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말을 몰기 시작했다.

곧이어 청장로는 가볍게 손을 휘둘러 녹색 염력으로 뱀 한마디를 만들어 내더니, 그것을 먼저 숲 안쪽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염력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뱀이 소리 없이 숲 안으로 막 들어서려는 순간,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살 하나가 뱀의 머리 위에 단단히 박혔고, 뱀은 이리저리 발버둥치다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조심! 안쪽에 누군가가 잠복해 있다!”

“하하, 역시나 하늘뱀족의 장로답게 뱀을 만드는 솜씨가 아주 뛰어나군.”

청 장로의 경고가 떨어지는 찰나, 숲 속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와 주인공은 더 이상 숨을 마음도 없다는 듯 온 몸에서 살벌한 기운을 뿜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범로?”

선혈처럼 새빨간 망토를 걸친 거대한 사내의 모습에 청 장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지금 뭐 하자는 거죠? 우리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건가요?”

“하하! 전쟁이라니, 청 장로 손에 있는 그 용의 구슬에 관심이 있을 뿐이야.”

사내는 피처럼 붉은 눈동자를 욕망으로 번쩍이며 섬찟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 퇴각해라! 이 상황을 어르신께 즉시 보고해!”

상대의 입에서 나온 ‘용의 구슬’이란 말에 청 장로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피-웅!

그리고 하늘뱀족들이 퇴각하려던 찰나, 그들을 향해 날카로운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며 개전을 알렸다.

“청 장로! 지금 당장 용의 구슬을 넘기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죽여!”

청장로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즉시 반격을 명했다.

곧이어 그녀가 염력을 끌어올리자, 바닥에 널린 나뭇잎들이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청 장로의 명령을 신호로, 뒤에 서있던 20여명의 강자들도 즉시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색의 염력을 뿜어내며 즉시 붉은 옷을 걸친 피의 종족 투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초록색과 빨간색이 뒤섞이며 길 중앙에서 맹렬하게 충돌하고, 엄청난 파동이 100여 미터밖에 준이 있는 곳까지 전해졌다.

순식간에 곳곳에서 육체가 잘려 나가고 내장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사방에 선혈이 튀었다.

청 장로는 굳은 표정으로 뱀 모양의 장검을 뽑아들고는 민첩하고 유연하게 검을 휘둘러 나갔다.

그녀의 검이 허공에 획을 그을 때 마다 적의 모가지에서 피가 솟구쳤지만, 청 장로의 표정은 어둡기 짝이 없었다. 어느 새 하늘 뱀 족의 전사들은 12명이 죽고 8명밖에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더욱 세차게 검을 휘두르며 적의 목을 베고 뚫었다.

잠시 후, 그녀가 어깨를 살짝 들썩이자 초록색의 투기가 모여 날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청 장로가 막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순간, 벽력같은 고함 소리와 함께 피비린내가 숲을 가득 매우기 시작했다.

“하하! 청 장로, 내가 말 했을 텐데. 살아서는 못 갈 거다!”

그녀의 앞에는 어느 새 시뻘건 날개를 펼친 범로가 피비린내를 풍기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피를 빠는 박쥐마냥 섬칫한 눈빛으로 자신을 덮쳐오는 범로의 모습에 청 장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벌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듯 이를 단단히 문 채 검 끝을 하늘을 향해 세우고는 체내의 염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한편, 널브러진 시체더미들을 바라보던 준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선생님, 하늘뱀족 사람들이 도망갈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어 보이는 것 같은데요.”

“그래 보이는구나.”

“게다가 범령 주변에는 항상 투령 강자들이 지키고 있으니…역시 지도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그 시각, 준의 눈에는 한 손에 피의 검을 들고 흉악한 모습으로 하늘뱀족 강자의 머리를 두 동강내고 있는 범령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두 노인은 범령이 뭘 하든 간에 그의 곁에 딱 붙어 있었으니 두 종족간의 싸움을 틈타 지도를 빼돌리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조바심 내지 말거라. 범로에게 발각 되면 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게 될 테니 말이다.”

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아래쪽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참극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비록 8명 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들은 하늘뱀족의 정예인 듯 아직 한명도 죽지 않고 단단히 저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우두머리인 청장로는 범로에게 짓눌려 고전을 면치 못 하고 있었고, 범로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빠른 나머지 청 장로는 몇 합만에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쾅!

곧이어 정해진 수순대로 범로의 주먹이 청장로의 가슴팍에 꽂히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시뻘건 선혈이 솟구쳤다.

청장로는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른 뒤에야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고, 범로는 시뻘건 눈을 번뜩이며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위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갑자기 상황이 급변했다. 청장로가 품 안에 숨겨둔 용의 구슬을 꺼내든 것 이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 오면 지금 당장 이 용의 구슬을 부숴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어요!”

청장로의 한마디에 범로의 몸이 멈춰 섰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이전보다 더 흉흉한 살기가 가득했다.

“용의 구슬을 망가뜨린다면 널 사로잡아 염력을 쓰지 못하게 만든 뒤 우리 피의 종족에서 널 끌고 가 개 돼지처럼 사육시켜주지!”

상대의 악독한 말에 청 장로의 얼굴은 더욱 하얗게 질려버렸고, 그녀가 넋이 나간 찰나, 범로의 몸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우둑…

그리고 청장로가 사라진 범로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섬뜩한 붉은 빛과 함께 그녀의 어깨 부근에서 섬칫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팔이 부러지는 극한의 고통에 청 장로의 입에서 처참한 비명이 터져나왔고, 그녀의 손에 들린 옥 상자는 순식간에 범로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령아, 이걸 갖고 후퇴하거라. 피의 종족 호위대는 범령에게로 붙어 황혼의 성까지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호위해라! 여긴 내가 맡겠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범령은 아버지의 명에 따라 옥 상자를 받아들고는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그야말로 삽시간에 벌어진 일 이었다.

“으악! 너 이 개 자식!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널 가만히 두지 않겠어!”

보물의 빼앗긴 청 장로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녀는 처량한 비명을 지르며 갑자기 지금까지의 두 배도 넘는 염력을 내뿜었다. 청장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염력은 하늘 높이 솟아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그녀는 한손으로 검을 잡은 채 범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죽기 직전의 발악이라니. 볼만하군. 끌끌…”

그러나 범로는 한 치도 당황하지 않고 손에서 괴기스러운 빛을 내뿜는 붉은 검을 꺼내들 뿐 이었다.

* * *

범령이 물건을 갖고 철수하는 것과 동시에 준은 살금살금 풀밭에서 기어 나와 곧바로 몸을 날렸다.

바로 그 때, 등 뒤에서 엄청난 폭음과 함께 눈부신 녹색과 적색의 빛이 얽히며 하늘을 물들였다.

‘후…안됐군. 하늘뱀족이 다 죽지 않기를 빌어줄 수밖에.’

준은 한숨을 푹 쉬며 계속해서 빨간 옷 무리들의 뒤를 밟았다. 안쓰럽기는 했지만, 하늘뱀족과 큰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닌 이상 딱히 도움을 주겠다고 나설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제 몸 하나 지키는 것도 장담할 수 없는 마당에 지금 그들을 돕겠다고 뛰어든다고 상황이 달라질리도 없었다.

피의 종족들은 마치 성난 파도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로 숲을 가로질러 말을 몰아댔다.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강렬한 붉은 기운 덕에 마수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숲 속의 마수들은 피의 종족들과 마주치는 순간 황급히 달아나거나, 적당히 거리를 두고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 이었다.

그리고 그 빨간 파도가 지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숲을 가로지르는 피의 종족들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는 범로가 쫓아오겠군. 몰래 끼어들 기회가 없다면 억지로 뺏을 수밖에 없지.’

준은 대열의 맨 뒤쪽에서 100여 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놈들을 계속해서 추격했다.

그 때, 갑자기 범령 일행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준은 즉시 동작을 멈추고 다시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 그들의 동정을 살폈다.

무리를 멈춰 세운 범령은 앞쪽으로 먼저 치고나갔던 호위대를 불러들여 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다.

"앞쪽에 인기척이 있나?"

“작은 종주님, 전방의 작은 산 골목을 향하던 도중 누군가가 지나간 흔적이 발견 되었습니다. 자세히 확인한 결과, 뼈의 무덤쪽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 중 한 명이 공손하게 무릎 꿇고 앞 쪽의 상황을 보고했다.

“뼈의 무덤이라고 어떻게 우리의 행적을 눈치 챘지?”

“저희를 잡겠다고 잠복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그저 외진 골목을 찾아 해골성으로 돌아가는 듯 했습니다.”

“2격 무투기 하나 얻었다고 외진 골목까지 기어 들어가 해골성으로 돌아간다고? 그 놈들이?”

범령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총 몇 명이지?”

“딱 열 명입니다.”

“회색 뼈도 함께 있나?”

‘회색 뼈’는 어제 경매장에서 그와 입찰 경쟁을 벌였던 회색 망토의 중년이었다.

“네. 현재 뼈의 무덤측에는 투령 강자 두 명과 대투사 두 명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무투사 계급인 듯합니다.”

“투령 두 명에 대투사 두 명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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