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용의 구슬
2격 무투기의 등장에 경매장의 분위기는 전에 없이 달아올랐다.
시작 가격은 공개되지도 않았다. 경매사가 입을 떼기도 전에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 ‘200만’이라고 외친 뒤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300만, 400만, 500만…
가격은 준이 생전 듣도보도 없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800만 골드를 부르는 순간, 경매장은 정적에 휩싸였다.
‘800만? 이런 미친. 유씨 가문의 1년치 수입이잖아!’
그러나 800만 골드라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계속해서 치솟았고, 경매가 시작한지 10분쯤 지나자 ‘뼈의 무덤’에서 온 중년의 입에서 ‘1200만’이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1200만?”
“뭐라고?”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가격에 장내 곳곳에서 소란이 일었다가 다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심지어 ‘뼈의 무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두 세력인 피의 종족이나 하늘뱀족까지도 눈치만 볼 뿐 섣불리 경쟁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2격 무투기를 가져간 것은 ‘뼈의 무덤’ 이었다.
‘그나저나 이런 2격 무투기에 가격을 매긴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저 정도 돈을 가지고 있어봐야 정말 귀한 물건들은 물물교환으로만 얻을 수 있으니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나요 스승님?’
1200만 골드는 확실히 놀라운 가격이었지만, 준은 조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1200만 골드면 원하는 것은 뭐든지 살 수 있을 정도의 거금이지만, 반대로 정말 귀한 물건들은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그 돈을 가지고 있어봤자 진정한 보물을 손에 넣는 데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흠…연금비약 하나를 만드는데 약재가 많이 필요한 건 너도 알고 있겠지? 하지만 만일 네가 혼자서 약재를 모아야 한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겠니? 네가 만일 땅의 정령의 비약을 만든다고 했을 때, 기본 재료만 해도 500만 골드가 훌쩍 넘을 게다. 그럼 당연히 돈이 필요하겠지. 게다가 피의 종족 같은 큰 세력들은 그 아래에 수많은 강자들을 양성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더욱 큰돈이 들지 않겠니. 저런 거금은 보통 거대한 조직의 운영을 위해 쓰이게 된단다.”
약로의 명료한 설명에 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늘 혼자였으니,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는 데는 돈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다.
바로 그 때. 또 한 번의 경매장에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오는 건가?”
짝짝!
곧이어 수정 탁자 쪽에 서 있던 경매사가 손뼉을 치니 탁자 주변에서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철조망이 올라와 탁자를 감쌌다.
“아아, 이번에 나올 물건은, 저 대단한 2격무투기 바람의 춤보다도 더 대단한 물건입니다. 따라서 경매장 측에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니, 너무 고깝게 생가하시지는 않기를…”
안전장치가 마련되자 경매사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철조망은 아주 튼튼해 투황 강자들도 부수기 힘든 것 이지요. 그만큼 이번에 나올 물건이 대단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준은 팔선문 측이 경매 물품을 지키기 위해 이런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보니, 그간 헤인성의 경매장에서 몇 번이나 경매물을 힘으로 강탈한 자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어림짐작했다. 이런 무법천지라면, 그런 일이 없는 것이 더 신기한 일 이었다.
“허허, 경매장 여기저기서 실력을 감추고 있는 강자들의 힘이 느껴지는구나. 동해나 가철 급의 인물도 몇 느껴지는군. 아마도 팔선문의 문주인 것 같구나.”
“네?”
약로의 말에 준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과연 약로가 말한 대로, 2층 구석에 무시무시한 기운을 품고 있는 사내 하나가 눈을 빛내며 경매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체 어떤 물건이 나와 대미를 장식할까요? 팔선문에서도 이렇게 긴장하는 걸 보면 보통은 아닐 것 같은데.”
“하하. 일단 지켜보자꾸나. 이번 기회에 아주 좋은 구경을 할지도 모르니.”
마침내 경매대 앞에 선 경매사가 허리를 굽혀 조심스럽게 금빛 쟁반을 꺼내는 순간,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아름다운 상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자에서는 은은한 흰색 연기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보온을 위한 장치인 듯했다.
‘연금비약?’
준은 상자의 크기와 낯익은 보관 방법을 보고는 그 안에 담긴 것이 연금비약일 것 이라고 추측했다.
‘잠깐. 2격 무투기보다 귀한 연금비약이라면 대체 뭐야? 7레벨?’
7레벨의 연금비약이라니. 가한제국 내에서는 구경은커녕 그런 물건이 있다는 이야기조차 들을 수 없는 보물이었다.
7레벨 연금 비약은 제조 성공률이 낮을 뿐 아니라, 필요한 재료들도 하나 같이 어마어마한 것들이라, 그런 물건을 제조하는 ‘시도’를 할 수 있는 자조차 투기 대륙 전체에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껏 집중되자, 경매사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상자의 뚜껑을 열어젖혔고, 그와 동시에 눈부신 금색 빛이 사방으로 뻗쳐 나왔다.
“우와아…!”
상자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 광휘에 경매장 전체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얼핏보면 경매장 안에서 해가 지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상자 안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조그마한 연금비약 하나가 그 오만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비약의 표면은 마치 순금을 녹여내 만들어 낸 듯 광채가 가득했고, 그 안쪽에서는 신비로운 금빛 기류가 맴돌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연금비약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단순한 기류가 아니라 두 마리의 ‘용’이었다.
연금비약 안에 들어 있는 용의 형상에 준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연금비약 안에 영혼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7레벨 이상의 연금비약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용의 구슬이라니…’
약로는 경매장에 나타난 7레벨 연금비약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끝을 알 수 없는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약로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가라앉자, 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러세요?”
스승은 제자의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한 차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다…일단 지켜보자꾸나. 나중에 다 이야기 해줄 테니 걱정 말거라.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알려주기엔 너무 이르구나.”
소년은 스승의 엄숙한 목소리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고개를 들어 약로가 ‘용의 구슬’이라 불렀던 물체로 시선을 옮겼다.
연금비약의 정확한 효용을 모르는 사람들과 달리 피의 종족 같은 큰 세력들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 물건의 가치를 아는 듯한 다른 강자들 역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온 몸으로 염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이번 경매의 대미를 장식할 물품인 7레벨 연금비약, 용의 구슬입니다!”
경매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경매장에는 다시 정적이 감돌았고, 모두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상태로 연금비약을 응시했다.
7레벨 연금비약은 경매장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 구경조차 하기 힘든 물건이었으니, 다들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하, 많은 분들께서 이 연금비약에 대해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으실 것 같습니다. 용의 구슬은 전설의 7레벨 연금비약으로, 이 연금비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죽은지 7시간이 지나지 않은 6레벨 마수 두 마리의 마정핵이 필요하지요.”
경매사의 말에 사람들의 눈이 더욱 반짝이기 시작했다. 6레벨 마수의 마정핵을 얻으려면…최소한 투황 두명을 상대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연금비약이 완성 될 때는 하늘마저 놀라 날씨가 변한다고 하지요! 음과 양의 두 기운을 가진 용의 영혼이 하늘로 치솟아 구름을 뚫고 서로 뒤엉키며 연금비약 안으로 들어가는 광경이란…아…상상만 해도 떨리지 않습니까?”
나이든 경매사는 조금 과장된 몸짓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누구든 이 용의 구슬을 복용하면 중상을 입거나 생명이 위중할 때 단숨에 가장 완전하고, 온전한 상태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전의 속박을 벗어나며 성장하는, 그러니까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몸도, 영혼도 염력마저도 모두 성장하게 되지요! 그러니까…누구든 이 보물을 복용한다면 앞으로 생명을 잃을만한 중상을 입더라도 크게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 상처로 인해 더욱 높은 단계에 올라서게 되는 것이지요!”
경매사의 설명에 좌중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경매장 안에는 오로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투사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노인은 사람들의 반응에 희열을 느끼는 듯 중간중간 말을 끊어가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 뒤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께서는 바람의 신, 고영찬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적 있으실 겁니다. 투기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강자중 하나이지요! 투존 고영찬! 3일 만에 대륙의 8대 일류 세력을 모두 무너뜨린 일화는 이 광대한 투기 대륙의 모든 투사들의 가슴에 그의 이름을 새기게 만든 일대 사건이었지요!”
‘바람의 신? 고영찬?’
감탄사를 뱉어내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준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투존 강자는 아직 그에게 있어 너무 머나먼 존재였다.
“그럼 설명을 계속 해보겠습니다. 투존 고영찬이 숙적과 맞선 그 전투 역시 모두들 알고 계시겠지요! 당시 5성 투종이었던 고영찬은 상대의 무릎을 꿇리는 데 성공했지만, 그만 본인도 중상을 입어버렸지요! 그 상처는 살아남는다고 해도 예전 같은 실력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전장에서 사라진 뒤 7년…다시 대륙에 나타났을 때 그는 투존이 되어 있었습니다.”
7년이라면 투존이 되기는커녕 상처입은 염력을 회복해 제 실력을 찾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상처를 완치하는 것을 넘어 5성 투종에서 투존까지 실력이 상승하다니…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하, 이미 많은 분들께서 예상하셨겠죠. 맞습니다. 과거 고영찬 대사님께서는 대륙을 돌아다니다가 운 좋게 용의 구슬을 손에 넣어 복용했고, 그 약효가 아주 오랜 시간 몸에 남아 상처를 말끔히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성장하게 만든 것 입니다! 7년 만에 치명적인 중상을 치료하고 투종에서 투존까지! 자, 어떻습니까!”
경매사의 설명에 경매장 곳곳에서 낮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준 역시 7레벨 연금비약의 놀라운 약효 앞에 손바닥이 흥건하게 젖어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소년의 머릿속에 약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자가 말하는 것이 거짓은 아니나, 전부 진실도 아니다. 용의 구슬에 정말 능력을 끌어 올려주는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중상을 입었을 때 약을 복용하게 되면 상처 치유가 먼저 진행되기 때문에 온전히 실력을 올리기는 힘든데다가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도 단 한 번 뿐이란다. 게다가, 약효가 발휘되기 시작하면 몸은 자기 것이 아니라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이지.자칫 잘못하면 폐인이 되고 말지. 고영찬 같은 독한 녀석도 고통에 버티지 못할 뻔했으니, 어느 정도의 아픔인지 상상이 가느냐?”
약로의 말에 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승의 말투는 분명히 그 고영찬이라는 투종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마…그 고영찬이라는 투종과 잘 아는 사이이신가요?”
“뭐…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아직은 네가 너무 약하니, 알게 되어서 좋을 게 없을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