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0화. 2격 무투기
약로와 이준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박쥐의 날개를 두고 범령과 청 장로사이의 가격 경쟁은 더욱 불이 붙어 있었다.
“190만!”
“정말 승부욕이 강하시군요. 190만이라니. 나중에 돈이 모자라는 일이 없으시기를…”
“흥.”
결국 이번에도 경매품을 낙찰 받은 것은 범령이었다. 하지만 벌써 310만 골드…범령 입장에서도 속이 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경매사가 190만이라는 가격에 넋을 잃자, 범령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백발의 노인을 쏘아보았다.
“왜 넋 놓고 구경 중이지?”
“어…아아, 네네!”
그제서야 정신이 든 백발의 경매사는 황급히 웃으며 낙찰을 알렸다.
‘역시 큰 세력이라 그런지 손이 크군…190만 골드라니…쯧쯧’
준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혀를 찼다. 연금비약 두 알에 무투기 하나를 사는데 310만 골드를 쓰다니, 재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확실히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박쥐의 날개가 낙찰되자, 곧바로 다음 경매가 시작되었다.
“하하, 다음 경매에 부칠 물건은 참으로 애매하군요. 사실 저희도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지의 보물이 숨겨져 있는 보물 지도라고 판단됩니다.”
다음 순간, 몹시 낡고 닳아빠진 지도 한 장이 쟁반 위에 올라왔다.
“허…!”
곧이어 여기저기서 어이없다는 듯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제 예상이 맞다면 아주 굉장한 물건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일 겁니다. 보통 지도는 아닐 테죠. 이 지도 조각을 완성하는 사람은 운이 좋으면 대륙을 뒤흔들만한 엄청난 보물을 손에 넣게 될 수도 있습니다!”
노인은 주위의 반응에 아랑곳 않고 설명을 이어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콧방귀를 뀌며 지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경매장에서 단 한사람…지도가 나타나자마자 저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킬 뻔한 사람이 있었다.
백발의 경매사는 입에 침이 마를 새라 이 오래된 지도 조각이 얼마나 신비로운지를 설명해대고 있었지만, 경매장의 누구도 그 물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열정적인 설명이 사람들의 관심을 더 시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참다 못한 몇 몇 사람들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욕설을 해대자, 그제서야 설명이 끝나고 경매가 시작되었다.
“규정에 따르면, 이 지도 조각의 최저가는 10만 골드입니다.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합니다.”
10만 골드라는 말에 경매장의 곳곳에서 또 다시 욕설이 터져나왔다. 제정신이 박힌 놈이라면 곰팡내 나는 정체불명의 ‘지도’도 아니고 ‘지도 조각’ 따위를 10만 골드나 주고 살 리가 없었다.
침묵을 지키는 것은 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서둘러 낙찰을 받으려고 한다면, 괜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했다.
그렇게 5분간이나 아무도 가격을 부르지 않고, 결국 경매사가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려는 순간…
“11만.”
무덤덤한 목소리가 침묵을 깼다.
“쟤 정신 나간 거 아니야? 11만 골드로 용도도 모르는 물건을 사고?”
“이걸 파는 놈들도 미친놈이지만 사는 놈도 미친 놈이지.”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저런 줘도 안 받을 물건을 11만 골드나 주고 사는 이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며 앞 줄에 앉은 검은 망토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중 유독 눈을 빛내며 검은 망토를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범령이었다.
그는 검은 망토의 사내를 볼 때 마다 왠지 모르게 섬칫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생전 처음 느끼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내가, 갑자기 11만 골드나 주고 저런 개똥만큼도 쓸모가 없어 보이는 물건을 사겠다고 나선 것이다.
범령의 텅 빈 눈동자는 한참동안이나 닳아빠진 지도 위에 머물렀다.
한편, 무대 위에 있던 경매사는 무슨 구원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준을 바라보며 서둘러 낙찰을 선언하려 하고 있었다.
“이 선생님께서 11만 골드를 부르셨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경매사가 망치를 든 손을 들어올렸다.
“잠깐.”
경매사를 멈춰 세운 것은 피의 종족의 작은 종주였다.
“작은 종주님 무슨 일이시죠?”
“별 일은 아니고, 갑자기 그 물건에 흥미가 좀 생겨서요. 13만 부르겠습니다.”
생각지도 못 했던 방해꾼의 등장에 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저 자식이 왜 괜한 짓을…”
준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 뒤 다시 가격을 올렸다. 어찌됐든, 지도 조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15만.”
“20만.”
이준의 패기에 피의 종족 작은 종주는 순식간에 5만 골드를 올려 불렀다.
“작은 종주님…”
범령의 돌발 행동에 옆에 있던 노인은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이미 비행 무투기를 구매하는 데에 많은 돈을 쓴 마당에 이런 의미 없는 지출까지 감수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앉으세요!”
하지만 범령의 서늘한 눈빛이 자신의 몸을 훑자, 노인의 창백한 얼굴이 더욱 새하얗게 변했고, 결국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의 경쟁은 그만두거라. 이렇게 하다간 다른 세력들도 호기심이 붙을지도 모른다. 결국 저 자와 계속 경쟁을 하다간 저 지도의 가치를 폭로하는 꼴이 되고 말게야. 그리고 저 쪽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그땐 정화의 불꽃을 빼앗길 수도 있어.”
“그럼 저 지도를 그냥 넘겨주란 말씀이신가요?”
“저 자가 원한다면 일단 넘겨 주거라. 그렇지만…결국엔 다시 우리 손에 넘어오게 될 게다.”
약로의 목소리에는 고요한 살기가 가득했다.
“그럼 몰래 강탈이라도 하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우린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저 지도를 손에 넣어야 한다. 그 상대가 피의 종족의 작은 종주일지라도 말이다.”
약로의 말대로였다. 범죄자들이 가득한 이 곳에서 괜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느니, 아무도 정체를 모르는 상태로 지도를 범령에게 넘기고 뒷일을 도모하는 편이 안전했다.
준은 스승의 말에 따라 더 이상 가격을 부르지 않았고, 그러자 경매장내의 시선이 정체불명의 검은 망토에게서 범령에게로 옮겨갔다. 조롱 섞인 비웃음 역시 덤처럼 피의 종족의 작은 종주에게로 옮겨갔다.
“하하, 네! 범령 작은 종주께서 20만 골드를 부르셨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경매사는 실실 웃으며 되물었지만 결국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이내 매정한 망치 소리와 함께 범령에게 곰팡내 나는 종잇조각이 낙찰되었다.
꼬질꼬질한 지도 조각의 낙찰 이후 범령의 창백한 얼굴에도 혈색이 돌았다.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달구어진 화로처럼 얼굴이 새빨개졌을 것이다. 호기심에 시작한 경매에서 20만 골드를 낭비하고, 덤으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다니, 참으로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매는 속행이었다. 이후로도 좋은 물건들이 많이 나왔고, 특히 준이 내놓은 최상급의 푸른 정령의 비약이 나타났을 때는 피의 종족과 하늘뱀족, 그리고 뼈의 무덤이 서로 그 물건을 얻기 위해 각축을 벌였다.
결국 물건의 주인은 재력가인 피의 종족이 아니라 하늘뱀족이 되었다. 청 장로는 단 번에 150만 골드라는 가격을 불렀고, 이미 많은 돈을 낭비한 범령은 속수무책으로 최상급 연금비약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물건은 바로 기묘한 약재였다. 약재는 피를 가득 머금은 듯 한 손바닥 크기의 식물로, 영지버섯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저건 불의 버섯이군! 허허, 녀석 운도 좋다. 이렇게 희귀한 약재를 만날 수 있다니. 이번 경매에 나오는 물건들이 하나 같이 보통이 아니구나!”
피처럼 붉은 버섯이 등장하자 약로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불의 버섯이요? 설마, 땅의 정령의 비약을 만들 때 필요하다던…”
“그래! 불의 버섯은 오로지 화산 아래에서만 자라지. 화산의 에너지를 듬뿍 머금고 있으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채집조차 하지 못 한다. 화산은 투황이나 투종급 강자들도 쉬이 발을 들이지 못 하는 곳이니 말이다.”
“정말로 놓치면 안 되는 물건이네요. 그런데…”
준은 말꼬리를 흐리며 범령을 흘깃 쳐다봤다.
이준과 약로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경매사는 신들린 듯 불의 버섯에 대해 설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하하, 이 신비한 약재의 경매 시작 가격은 70만 골드입니다. 여러분, 시작하시죠.”
“72만!”
“74만!”
“……”
준은 의자에 조용히 앉아 때를 기다렸다. 쓸데없이 가격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가격대가 형성 되자,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최종적으로는 단 두 명이 다투고 있었고, 가격은 107만 골드였다.
“120만!“
그리고 가격이 멈춰 있던 그때, 검은 망토의 목소리가 경매장에 울려퍼졌고, 120만 골드라는 높은 가격은 순식간에 경쟁자들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준은 갑자기 범령을 흘깃 바라보았다. 범령 역시 준의 시선을 느끼고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경매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잠시 눈치를 살피던 경매사는 더 이상 가격이 오르지 않자, 고개를 끄덕인 뒤 망치를 두드렸다.
“휴우…”
‘불의 버섯’이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준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불의 버섯이 낙찰되고 난 뒤 경매도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본격적으로 ‘보물’이라 부를만한 물건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냈다.
희귀한 무투기와 염력 수련법, 무기와 연금비약 조합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물들이 올라와 사람들을 홀렸지만 준은 단 한번도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다.
염력 수련법이라면 이미 ‘불개’가 있었고, 무투기라면 ‘태양검’ 과 ‘매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연금비약의 조합표라면 필요한 것은 이미 다 갖추고 있었고, 푸른 정령의 비약이나 소생의 비약, 영혼의 결정처럼 귀한 연금비약 조합표도 이미 여러개 가지고 있으니 딱히 그의 흥미를 끌만한 것이 없었다.
유일하게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약솥’이었는데, 40만 골드를 주고 ‘반딧불’이라는 이름의 약솥을 산 것을 제외하고 다른 물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준이 경매에 완전히 흥미를 잃으려는 찰나, 갑자기 그의 귀를 잡아끄는 말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여러분! 이번 경매 물품은 2격 무투기, 번개의 춤입니다!”
‘2격 무투기라고?’
순간 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일반적으로 돈을 받고 파는 것은 3격 무투기까지이다.
2격 무투기라면 귀한 연금비약의 조합표나 다른 무투기, 귀한 염력 수련법 같은 다른 보물들과 물물 교환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준이 놀란 나머지 눈만 꿈뻑이고 있자, 약로가 입을 열었다.
“누가 자기 물건을 내놓은 것은 아닌 것 같구나. 사실 이 곳에서 판매되는 물건은 거의 장물이란다. 밀수를 하거나 남에게서 훔친 물건인데, 갖고 있기에는 겁이 나니 익명으로 팔아버리려는 속셈이지. 내가 알기로 저 ‘번개의 춤’이라는 물건은 번개 속성의 무투기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무투기다. 배우기만 하면 문자 그대로 ‘번개같은’ 움직임을 선보일 수 있지. 대투사가 저 무투기를 습득하면 투령급 강자와 비등하게 겨룰 수 있다고 할 정도니, 실로 대단한 무투기라 할 수 있지…헌데…번개바람 가문에서 목숨처럼 여기던 물건이 이런 곳까지 흘러오다니, 참 의외로구나.”
“정말 구미가 당기긴 하네요. 그런데…제가 저 물건을 낙찰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나요?”
“그렇겠지. 저 사람들이 가만히 두고 보진 않을 테니 말이다.”
약로는 흥미롭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경매장에서 가장 대단한 물건은 마지막에 나오는데, 벌써 이 정도의 보물이 나온다면 마지막 물건이 무엇일지가 궁금해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