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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77화 (177/818)

제177화. 투종의 힘

“저 녀석…또 다른 힘을 감추고 있을 줄이야.”

놀란 것은 메두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운산. 너희는 날 붙잡을 수 없다.”

바로 그 때, 한쪽은 푸른색, 한쪽은 백색 눈동자를 가진 기이한 소년의 목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내가 정말 네 놈을 얕봤구나. 몸속에 그런 힘을 감추고 있을 줄이야. 지금까지 그렇게 겁 없이 덤벼들었던 이유를 알겠군. 그렇지만 그 힘은 온전히 네 것이 아닌 것 같군.”

“누구 것이든, 내가 쓸 수 있으면 내 것이지.”

다음 순간, 준의 손바닥 위에서 흰색 화염이 춤을 췄다.

* * *

“스승님, 이준을 아세요?”

한편, 지상에 있던 나설아는 넋을 잃고 준을 바라보는 율희의 표정에 둘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냉정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진율희가 운남종에서 미쳐 날뛰는 적을 이렇게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리가 있었다.

“…그래.”

스승의 짤막한 답변에 나설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표정은 지금까지 진율희가 보아왔던 그 표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설아야, 설마 너…그를 좋아하게 된 건 아니겠지?”

진율희의 질문에 나설아는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 하고 어색하게 웃음을 지을 뿐 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마세요.”

누가보아도 뻔한 거짓말이었지만, 율희는 더 이상 따지고 들지 않았다. 제자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기 때문이다.

“휴. 다 제 탓이에요. 전 이제 어떡해야 좋을까요? 제가 제 무덤을 팠어요. 여기 일이 마무리 되고 나면 제가 생사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나 이어지는 제자의 말에 율희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생사의 문으로 들어가겠다고? 그곳은 최소 투령 계급이 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야. 아직은 너무 이르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돌아가신 선대 종주님들께서 저를 지켜주실 거예요. 제발 허락해 주세요. 이번 일은 따지고 보면 제 책임이에요. 그 정도 책임도지지 않고 제가 어떻게…?”

“휴우!”

율희는 말없이 제자의 눈을 바라봤다.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

“생사의 문은 운남종 종주가 될 사람이 치러야 할 마지막 관문이야. 정말로 그곳에 가겠다면…그 전에 너희 가문 사람들과 상의를 하고 오거라.”

하늘에서는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한 기세의 폭풍이 몰아치고, 녹색의 염력이 점점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마침내 두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을 지경이 된 순간, 운산의 주위에 있던 바람이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 모인 그것은 염력이라기보다 실재하는 사물 같았고, 바람이라기보다 차라리 칼날 같았다.

“죽어!”

이 광경을 바라보던 가철 일행은 화들짝 놀라 뒤로 몸을 날렸다. 지금 운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투황이라 해도 감당하기 힘든 것 이었다.

이를 보고도 감히 몸을 빼지 않는 것은 오로지 준과 메두사 뿐 이었다.

준은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채 자신을 향해 몰아치는 눈부신 녹색 섬광을 향해 손을 휘둘렀고, 동시에 그의 손가락 끝에서 또 다시 새하얀 불꽃이 튀며 요란하게 춤을 췄다.

손끝에서 인 불꽃은 이내 소년의 전신을 뒤덮고, 새하얀 불꽃과 대조되는 검은 송곳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

곧이어 검은 송곳에서도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자 준의 몸 전체가 새하얗게 불타기 시작했다.

“태양검!”

다음 순간, 거대한 백색의 염력이 폭발하며 태양이 두 개가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산을 두 쪽 낼듯한 기세의 폭음이 운남산의 정상을 뒤덮었다.

그리고 이내 칼날 같은 두 개의 염력이 사납게 뒤엉키자,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온 천지로 뻗어나갔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대기의 떨림이 전해졌다. 가철과 동해, 해길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마른 침을 삼키고 말았다.

그들 모두가 가한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강자들이었지만, 이런 괴물같은 힘의 충돌은 그들도 난생 처음보는 것 이었다.

“어떻게…저 꼬맹이가 투종의 공격을 막는거지?”

“지금 보아하니 운남종에서 이준을 붙잡아 두긴 힘들 것 같군. 게다가 메두사 여왕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있으니. 두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운산도 어찌할 수 있겠는가?”

“운산도 난감하겠군. 운남종의 대장로를 대놓고 죽여버렸으니 이대로 물러나는 것도 모양이 안나고 말이야.”

“따지고 보자면 운령이 자초한 일이 아니겠는가.”

* * *

“운남종 전임 종주도 별 거 없군.”

준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웃음을 짓자, 운산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

“흥…! 빌려온 힘으로 유세 떨기는…그래봤자 얄팍한 수작이다. 곧 그 껍데기를 벗겨주지.”

그리고 다음 순간, 운산의 몸에서 본격적으로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빨을 드러낸 호랑이 같은 운산의 모습에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표정이 얼어붙었고, 이는 이준도 마찬가지였다.

‘스승님…정말 괜찮을까요? 일단 후퇴하죠. 스승님도 너무 오래 잠들어 계셨고, 그…’

‘하하! 걱정 말거라. 아직 온전한 상태는 아니지만, 운산 정도로는 이 스승의 적수가 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애초에 오늘 이 곳에 온 것은 운산 때문도 아니고, 운남종의 장로들이나 진율희가 가세한다면 일이 너무 꼬이니까요.’

‘흠…좋아. 그렇다면 오늘을 일단 돌아가자꾸나.’

준은 이미 이성을 되찾은 듯 상당히 냉정한 상태였다.

‘다음번에 돌아올 때는 반드시 제가 직접 일을 마무리 짓고 말겠어요.’

‘허허, 녀석. 오랜만에 봐도 그 패기는 참 마음에 드는구나.’

오랜만에 만난 제자의 당당한 발언에 약로는 자신이 잠들어 있는 사이 제자가 또 허물을 한꺼풀 벗었음을 느꼈다.

……

마음속으로 스승과 대화를 마친 준은 서서히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다가 운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내가 말했지? 내가 운남종을 떠나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미친 놈. 우리 운남종이 가한제국에서 마냥 놀고먹으며 이 자리를 지켜온 줄로 아는가 보구나?”

곧이어 운산의 손에서 다시 녹색의 염력이 피어오르며 하늘을 뒤덮었고, 이내 온 허공에 염력으로 형성된 그물이 쳐졌다.

“운남종의 장로들은 전임 종주 운산의 명을 받들어 구름 진을 만들어라!”

그리고 운산의 명에 따라 20 여명의 장로들이 염력을 끌어모으자, 백색의 안개가 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촤악-!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약로는 즉시 준의 몸을 조종해 하늘에 펼쳐진 그물을 향해 자신의 얼음 불꽃을 쏘아냈다.

쿵!!

그러나 운산이 만들어 낸 그물은 마치 용수철처럼 그의 백색 불꽃을 튕겨냈고, 이 광경을 바라본 약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약로는 또 다시 백색 화염을 불러내 그것을 그물망을 향해 쏘아보냈다. 이번에는 불꽃이 튕겨 나오지 않고 그물이 조금 사라졌다. 그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듯 했다. 그가 쏘아낸 불꽃은 점점 더 확산되며 운산이 만들어낸 그물을 지워나갔다.

“어딜!”

하얀 그물에 구멍이 나자, 운산이 즉시 몸을 날렸다.

약로는 이에 맞서 즉시 손을 휘둘렀고, 이내 투명한 얼음 위에 불꽃이 일렁이는 기묘한 형상의 얼음벽이 나타났다.

쾅! 쾅!

그러나 운산이 미칠 듯이 공격을 퍼붓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얼음벽이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말하지 않았느냐! 오늘 절대로 이 곳을 무사히 벗어나게 두지 않겠다고!”

그리고 마침내 운산의 손에 안개가 응집되어 만들어진 백색의 활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활은 이전에 운령이 만들어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고, 마치 실제의 활처럼 단단하고 정교했다.

쉭!

운산은 한치의 망실임도 없이 활이 완성되자마자 준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준 역시 곧바로 손끝에서 화염을 쏘아내어 이에 맞섰다.

쾅!

또 다시 두 개의 무시무시한 힘이 충돌하며 굉음이 퍼져나갔다.

그러나 준의 불꽃은 아주 잠시 운산의 공격을 막아냈을 뿐, 백색 화살은 순식간에 새하얀 불꽃을 꿰뚫고 날아갔다.

화륵-

하지만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던 백색 화살 위에 새하얀 불꽃이 피어오르자, 불꽃에 눈이 녹듯 화살이 사라져 버렸고, 결국 준에게 닿지 못 했다.

다음 순간, 준은 또 다시 양 손에서 각각 푸른 불꽃과 백색 불꽃을 피워냈다. 그의 눈동자는 더 이상 각각이 다른 빛을 띠지 않고 평상시의 검은 눈동자로 돌아와 있었다.

‘빌려온 힘이 떨어진 모양이군!’

준의 눈동자가 평상시대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 운산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체불명의 힘이 떨어졌다면, 절대로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저 불꽃만큼은 골치가 아프지. 보통 물건이 아니야.’

……

“가라!”

“칫…!”

그리고 소년의 팔에서 ‘지옥불’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운산은 즉시 거대한 활을 방패로 바꾸어 들었다. 아무리 투종이라 해도 만만하게 볼 위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쿠르르-

땅이 진동하는 폭발 소리와 함께 운산의 주위를 감싸고돌던 구름이 산산이 흩어지고, 운산의 몸이 한참이나 뒤로 밀려났다.

“어이가 없군. 저런 걸 쏘는 놈이나, 저런 걸 받아내는 운산이나…”

해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이나 중얼거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이준의 염력이 점점 떨어지는 게 느껴지는데…”

바로 그 때, 운남종 정상에 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죽어버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준의 귀에 꽂혔다.

“이준, 안돼!”

뒤를 돌아보자, 그 곳에는 장검을 뽑아든 율희가 서 있었다.

“너도 운남종이다 이거야?”

“나는 운남종 종주야. 운남종의 명예를 지킬 의무가 있어. 게다가 운산은 내 스승님이고. 네가 해치는 걸 두고볼 수 없어.”

“그럼 반대로 운산이 날 살려둘 것 같긴 하고?”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율희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대답을 하지 못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조심해!”

“죽어라!”

둔탁한 주먹 소리와 동시에 사방으로 노도와도 같은 염력이 뿜어져 나갔다.

……

속수무책으로 배후를 당한 준은 시뻘건 피를 한 움큼이나 내뱉었다.

“운산, 투종씩이나 되는 자가 17살난 어린애를 뒤에서 기습하다니! 수치를 모르는구나!”

동해는 피를 토하는 준을 보며 분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철과 해길 또한 동해의 말에 동의하는 듯 했지만, 차마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운산은 동해의 말을 들은 채도 하지 않고 이준을 주시했다. 이 정도의 잠재력을 가진 소년을 놓친다면 운남종의 미래는 그야말로 끝장이었다. 체면 따위를 생각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준은 입가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율희를 바라봤다.

“네가 은지든, 율희든간에 앞으로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닌 거야. 이 물건은 돌려주지.”

소년이 무언가를 내던지자,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아 든 율희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자신이 소년에게 주었던 푸른 갑옷, 그것이었다.

준은 율희가 갑옷을 받아들자마자 즉시 구멍이 난 그물망 밖으로 몸을 날렸다.

“운산! 오늘 이 빚은 언젠가 꼭 갚아주지!”

곧이어 운남종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작은 악마가 모습을 감추자, 운산의 얼굴이 시커멓게 어두워졌다.

“운남종 장로들은 서둘러 산 속으로 들어가 이준을 찾아내거라! 내가 표식을 남겨뒀으니 절대로 도망갈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도망치게 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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