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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76화 (176/818)

제176화. 생사의 기로

“운령…이 일에 대해서는 들은바가 없는 것 같은데? 지금 자네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가?”

다음 순간 율희의 손에서 장검이 나타나자, 운령의 얼굴이 더욱 새파랗게 질렸다.

“조, 종주님, 저는 절대 녀석의 아버지를 다치게 한 적 없습니다. 제, 제가 그 자를 쪼, 쫓아간 건 사실이나…산에서 그를 잡으려는 찰나 갑자기 사, 사, 사라져 버려서…저희도…”

“갑자기 사라졌다고?”

대장로의 변명에 마침내 율희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성을 잃은 그녀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장검을 빼든 채 대장로에게 호통을 쳐댔다.

“지금 자네가 날 가지고 노는 거군. 이한은 대투사로 알고 있는데, 투왕급 강자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주 그럴싸하군.”

“저, 저도 정말 모릅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저, 저와 같이 있던 운비를 찾아가서 물어보셔도 됩니다. 정말 맹세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운령의 주장에 율희와 운산은 서로를 바라보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운남종의 대장로가 하는 거짓말치고는 너무 유치하고 앞뒤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두 사람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논의하기도 전에 회의실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소년의 몸에서 푸른 불길이 타올랐다.

“좋아. 아주 잘 알겠어.”

“준! 안돼! 우리에게 며칠만 시간을 줘! 우리가 사람을 동원해서…”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 준의 눈빛에 율희는 즉시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려 했다. 하지만 소년은 한걸음도 물러설 마음이 없어 보였다.

“저 말을 믿는 건가? …아니, 대운남종의 종주인 진율희께서 저런 어린 애도 속지 않을 거짓말을 믿는다고?”

다음 순간, 싸늘한 미소와 함께 소년의 왼손에서 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서…설마!”

“좋아. 아주 잘 알겠어. 한번 끝까지 가보자고.”

운남종의 장로들은 준의 손바닥 위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준, 대체 뭘 하려는 것이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운산이 질문을 던졌지만, 준은 대답조차 하지 않고 손을 들어 흰 색의 불꽃과 푸른색의 불꽃을 점점 가까이 붙이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두 개의 천지의 불꽃이 맞닿으며 공간이 일그러지고, 천둥소리와 같은 폭발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천지의 불꽃 두 개를 섞어서 뭘 하려고? 저 자식 정신이 나갔군.”

이 광경을 바라보던 메두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대지의 불꽃에 의해 재가 될 뻔 했던 그녀이니만큼 준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을 멈춰!”

바로 그 때, 운산이 하얗게 질려 명을 내렸고, 순식간에 몇 몇 장로들이 준을 향해 몸을 날렸다.

준은 잽싸게 자신의 날개를 펼쳐 뒤로 몸을 날리며 계속해서 두 개의 불꽃을 가까이 붙였다. 그 사이 이미 그의 손에서는 푸른 색과 흰색이 서로 뒤엉키고 있었다.

“허, 미친 짓을 꽤나 하는군.”

이준이 장로들의 포위망을 피하는 것을 바라보던 운산은 코웃음을 치며 날개를 펼쳤다.

그러나, 메두사가 즉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자네가 두려워서 피했다고 생각 말게. 쓸데없는 마찰을 빚고 싶지 않았을 뿐이니까. 하지만 오늘은 도저히 그냥 못 넘어가겠으니 자네가 굳이 원한다면 투종이 어떤 존재인지 확인시켜주지.”

“호오…그래? 그럼 나도 새 몸을 얻게 된 메두사가 어떤 존재인지 확인시켜주지.”

뱀여왕과의 일전을 피할 수 없음을 확신한 운산은 즉시 고개를 돌려 율희를 향해 소리쳤다.

“율희야, 네가 이준을 저지하거라. 메두사 여왕은 내가 맡을 테니까!”

“네?”

하지만 뜻 밖에도 운남종의 현(現) 종주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할 뿐, 스승의 명에 따라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뭐하는게야! 저 꼬맹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없애버려야 한다! 운남종이 무너지고 제자들이 죽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겠다는 게냐!”

스승의 호통소리에 정신이 든 율희는 아래쪽에 있는 제자들을 바라보고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수많은 제자들의 목숨을 앗아가게 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율희가 날개를 펼치자, 운산은 다시 메두사를 바라봤다.

“율희가 있다면 굳이 내가 끼어들지 않아도 저 빌어먹을 애송이의 실력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겠지.”

“난 널 잡아 놓기만 하면 돼. 나머지야 내 알바 아니지.”

하지만 메두사 여왕은 이준을 흘깃 쳐다보고는 관심도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을 뿐 이었다.

“허…”

한편 두 사람이 설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 준의 손에서는 두 개의 천지의 불꽃이 점점 더 가까이 맞붙고 있었고,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율희의 손에서는 녹색의 염력이 뿜어져 나왔다.

캉!

그러나 준은 투황 강자의 바람 칼날을 피하지 않고 매의 날개를 오므려 그녀의 바람 칼날을 받아냈다.

‘빌어먹을…저 아이, 살아나갈 마음이 없어!’

그녀가 살의를 담아 공격했더라면 방금 전의 행동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율희는 준이 죽음을 각오했음을 직감했다.

“이준! 이러지마!”

“입 닥쳐. 운남종 놈들의 말 따위는 듣지 않아.”

“제발! 운남종의 제자들을 생각해봐. 왜 그들까지 끌어들이는 거야?”

“그딴 소리는 운령에게나 해. 빌어먹을 늙은이의 자존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아아…”

분노로 가득 차 핏대가 선 이준의 얼굴을 본 율희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식이 흘러 나왔다.

“이준! 지금 너무 흥분했어! 제 정신이 아니라고! 당장 그만둬!”

……

잠깐의 망설임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렀다. 본래 율희의 실력이라면 단칼에 준을 없앨 수도 있었지만, 손속에 정을 둔 것이 화를 부른 것이다.

어느 새 준의 손바닥 위에는 융합을 마친 푸른색과 흰색의 불꽃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운령! 이 빌어먹을 자식! 내 진작 너를 처벌했어야 했는데!”

그리고 준의 손에서 미칠듯한 에너지가 터져 나오자, 운산의 입에서 한탄 섞인 욕설이 터져 나왔다.

투종인 그가 보기에도 지금 소년의 손바닥에 들린 물건이 가진 위력은 감히 상상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준! 안 돼!”

“이미 늦었어…”

쾅!

쿠르르-

천둥소리가 온 하늘을 가득 메우고, 가한제국 최고의 세력임을 자랑하듯 고고한 산 위에 자리 잡고 있던 운남종의 둥지에 불길이 치솟았다.

곧이어 산 정상에서 시작된 거대한 불꽃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온 산을 불태우고, 신선이라도 사는 듯 평화롭고 아름답던 운남산에 순식간에 지옥도가 펼쳐졌다.

운남종 근처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고개를 치켜들고 붉게 타오르는 산을 멍하니 바라보며 미칠듯한 열기에 비 오듯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 * *

한편…때 마침 운남종에 도착한 동해는 눈 앞에 펼쳐진 지옥도에 입을 떡 벌리고 공포에 질려 있었다.

운남종에서 치솟는 거대한 불길이 만들어낸 아지랑이는 투황 강자라 해도 만들어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지옥’의 그것이었다.

“저… 저걸 이준이 만들어 냈다고?”

황도를 지나는 준의 기운을 느끼고 운남산으로 날아온 가철 역시 모골이 송연해지는 위력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가철의 곁에 있던 해길은 이전에 나원승이 느꼈던 것과 거의 똑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는 준과 특별히 갈등을 일으킨 적은 없었지만, 그의 잠재력이 이 정도인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준의 편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끔찍하군. 운남종에서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엄청나긴 하지만, 운령은 그렇다 치고 운산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일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군…”

동해의 머릿속에는 문득 두 개의 불꽃을 융합한 뒤 망가진 준의 상태가 스쳐갔다. 그 상태로 운산과 마주한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 * *

운남종의 아름다운 대리석 광장은 이미 과거의 영광을 찾아볼 수 없이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그들의 고고한 자존심을 상징하듯 우뚝 솟아있던 대 궁전 역시 어느 새 절반 가까이 날아가 있었고, 여기저기서 제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헉…헉…”

준의 불꽃을 막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염력 방벽을 만들어냈던 운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분노로 이를 갈았다.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선조들이 남긴 운남종의 유산은 모두 재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 이…어찌…”

그는 분노로 인해 차마 말을 잇지 못 하고 부들부들 떨다가 고개를 돌려 이미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운령을 바라봤다.

“고하에게 데려가라.”

운산의 싸늘한 한마디에 장로 두 명이 뛰쳐나와 운령을 들쳐 업고는 즉시 몸을 날렸다.

“네 이놈!”

곧이어 분노로 가득 찬 외침소리와 함께 운산의 형체가 사라지고, 갑자기 소년의 눈앞에 귀신같은 형상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쾅!

그러나 운산의 손이 이준의 목을 스치려는 순간, 새하얀 손이 둘 사이를 가로 막았고, 준은 뱀 여왕이 운산을 막아서는 찰나 날개를 펼쳐 달아나기 시작했다.

“메두사!”

다음 순간, 운산의 몸이 두 개로 쪼개지더니 그 중 하나가 날개를 펼쳐 달아나고 있는 준을 향해 날아갔다.

‘이만한 힘을 가진 분신이라니…’

메두사는 운산이 만들어 낸 분신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힘에 자신이 막아선 것이 투종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녀의 실력으로 운산을 잡아두는 것은 가능했지만, 본체를 뚫고 준을 향해 날아가는 분신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얼음 거울!”

쾅!

그러나 운산의 분신이 소년에게 주먹을 날리는 순간, 이번에는 거대한 얼음 거울이 앞을 막아섰다.

“동생! 서두르게!”

동해는 순식간에 이준 앞에 나타나 그를 멀찍이 밀어낸 뒤 투종 강자의 공포스러운 분신에 맞섰다.

이미 그의 손에는 투명한 얼음검이 쥐어져 있었고, 이는 운남종과 그의 관계가 완전히 끝장났다는 것을 알리는 것 이었다.

“동해! 감히 네가! 바람의 손자국!”

다음 순간, 무시무시한 염력을 담은 손바닥이 동해를 덮쳐왔다.

“얼음벽!‘

쾅!

동해 역시 이에 맞서 거대한 얼음벽을 만들어냈지만, 거대한 녹색 손바닥은 순식간에 얼음벽을 깨부수고 동해를 향해 날아들었다.

“큭…!”

얼음왕은 운산의 분신이 가진 상식 밖의 힘 앞에 단번에 피를 쏟고 말았다.

‘과연 투종은 투종이군.’

* * *

한편, 동해와 메두사의 호위를 받아 달아나는 준의 등 뒤로는 두 명의 투왕이 따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대투사인 준으로써는 둘의 추격을 따돌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옥불’을 만들어 낸 뒤의 후유증 때문인지 준은 계속해서 눈이 감기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몸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저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아요……’

‘하하, 녀석, 이미 충분히 잘했다. 나머지는 내게 맡기거라……’

“뭐…?”

“이 힘은…”

공중에 떠 있던 동해는 화들짝 놀라 하늘에 있는 이준을 바라봤다.

“녀석, 드디어 숨겨진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거냐!”

“어떻게 된 거지? 이준의 실력이……. 평소보다 몇 단계나 폭등했는데?”

가철 역시 준의 몸에서 터져 나온 급작스런 에너지를 느꼈는지 놀란 토끼 눈이 되어서는 해길을 돌아보고 있었다.

“허…이건 또 뭐란 말인가…어이가 없군.”

해길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20살도 되지 않은 청년의 몸에서 느낄 수 있는 수준의 기운이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서 나오는 기운은 분명히 해길 자신의 그것보다도 더욱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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