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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70화 (170/818)

제170화. 운남종의 실력

한편, 준을 포기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는 운령의 태도에 세형의 얼굴에는 점점 불쾌한 기색이 떠오르고 있었다.

‘짜증나는 늙은이군…말이 안 통해.’

곧이어 그의 손에서 새까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눈 깜짝할 새에 2미터에 달하는 기다란 창이 나타났다. 창 가득히 새겨진 기묘한 문양에서는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음산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흑사의 저주!”

세형이 자세를 잡자, 불길한 기운을 내뿜던 허공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듯 검은 에너지가 흩날리며 창 위에 내려앉았다.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창은 어느 새 칠흑 같은 구렁이의 형상으로 변화한 채 소름끼치는 울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운령은 흉악한 울음소리에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온 힘을 다해 백색의 구름을 응집시켰다.

그러자 그의 머리 위에 있던 새하얀 구름들이 소용돌이치며 3미터 크기의 방패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구름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세형은 거대한 염력 방패의 출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즉시 아래로 몸을 날렸다.

쾅!

곧이어 세형의 검은 염력과 운령의 백색 방패와 맞부딪히며 다시 한번 무시무시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제법이군!”

다음 순간, 세형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일 듯 검은 연기가 일렁이며 거대한 흑사가 나타났고, 흑사는 흉측한 아가리를 쩍 벌리며 견고하기 그지 없는 방패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슈욱-

그리고 방패가 사라지는 순간, 세형의 손에 들린 시커먼 창이 불을 뿜었다.

……

“커헉…!”

새하얀 수염을 휘날리는 백발의 노인은 칠흑 같은 검은 장벽을 배경으로 저 멀리 상공에서 대지까지 자신의 몸을 붓 삼아 새하얀 수직의 획을 그었다.

꽃잎처럼 점점이 흩날리는 붉은 핏방울이 참담한 그림에 색채를 더하자, 운남종의 제자들을 그제서야 자신들의 눈 앞에서 벌어진 참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차렸다.

마침내 천 여명의 제자들이 합심해 만들어낸 장엄한 백색 구름이 산산이 흩어지는 순간, 대장로의 몸이 ‘철퍽’하는 소리를 내며 지상에 도착했다.

“음…”

선연한 하늘 아래 처참하게 드러누운 운령의 몸뚱이를 바라보던 가철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토했다.

“쿨럭…!”

뒤이어 거친 기침 소리와 함께 대장로가 몸을 일으켰다.

대장로가 일어서는 순간 환호성을 지르려던 운남종의 젊은 제자들은 처참하게 망가진 노인의 형상을 보고 기쁨의 함성 대신 마른침을 삼켰다

운령의 옷을 감싼 새하얀 도포는 어느 새 시커먼 흙먼지와 피로 물들어 이전의 그 고고함은 온데 간데 없었고, 그의 허리와 오른손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마지막 순간에 세형의 창을 붙잡아 방향을 틀었으나 그 대가로 오른손과 복부를 상한 것 이리라.

그러나 운령은 온 몸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한점 흐트러짐 없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남의 몸을 보듯 허리춤에서 흐르는 피를 무심하게 바라본 뒤 피식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역시, 내 실력으로는 당신을 당할 수 없군.”

패배를 시인하는 듯한 말과는 달리 너무나 담담한 운령의 표정에 세형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알면 이쯤에서 그만하지. 내 일격을 받아낸 것에 대한 상으로 목숨만은 살려줄테니 조용히 물러서.”

“하하…! 하하하!”

그렇게 모두가 운남종의 패배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운령의 목구멍에서 광기 어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큭큭…당신이 누구든, 어디서 왔든, 사태가 여기까지 온 이상 절대로 편히 보내줄 수는 없지.”

“하…대장로의 자존심인가 했더니, 주제 파악이 안 되는 미친놈이었군.”

세형은 운령의 한마디에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감출 길 없는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운령의 한마디가 그를 자극한 것 이다.

“제 능력으론 어려울 수 있죠. 그렇지만…”

하지만 운령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저장반지에서 흰색의 피리 하나를 꺼내 물 뿐 이었다.

삐이이-

그리고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장엄하게 솟은 산봉우리 곳곳에 풀려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해일과도 같은 강맹한 기운이 산속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계곡과 산등성이를 가로질러 메아리치던 피리 소리가 가라앉은 무렵…

자욱한 안개가 거대하게 솟은 운남산의 모든 봉우리를 뒤덮으며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광장위에 내려앉았다.

“설마…!”

나설아는 동그란 눈을 더욱 크게 치켜뜨며 갑자기 나타난 여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염병할…”

동해는 정체불명의 여인이 나타나자마자 파랗게 질려서는 대뜸 욕설부터 내뱉었다. 그 순간, 준의 머릿속에 지난 밤 동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 저 사람이 그…”

“맞네. 상대를 보아하니 이미 투종이 된 것 같아. 최악이군.”

‘투종’이라는 말에 준은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메두사나 가철 정도만 되어도 끔찍한데, 투종이라니…그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속으로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다.

그렇게 준이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순간, 동해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어이 동생, 설마 포기하는거야?”

“네?”

소년은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노인의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힘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들 달라질 것은 없어보였다.

“이런, 동생이 날 너무 물로 보는군. 난 아직 포기하지 않았는데 자네가 먼저 포기하면 안 되지.”

동해의 담담하고도 힘 있는 말에 준은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선배님…”

소년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자, 동해의 얼굴에 웃음이 번져나갔다.

“좋아, 대신 계산은 확실히 하자고. 이건 꽤 비싸. 자그마치 투종에게서 탈출시켜주는 거니까 말이야.”

동해는 준을 안심시키려는 듯 가볍게 웃으며 농을 던졌지만 그의 눈은 전에 없이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때, 눈처럼 깨끗한 옷을 걸친 운산이 대장로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입을 뗐다. 그의 외모는 아무리 보아도 동해와 비슷한 연배의 그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젊어보였다.

“운령…대체 무슨 일이지?”

“선대 종주님…! 감사합니다! 종주님이 아니었더라면 오늘 운남종이 사라질 뻔 했습니다!”

대장로가 덜컥 무릎을 꿇자, 운산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율희는 어디에 있지?”

“종주님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흠…대체 무슨 일이기에 대 운남종이 이토록 엉망이 되었단 말인가?”

“전 종주님, 오늘 이 일은 모두 저 자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선대 종주의 질문에 운령은 악에 받친 표정으로 준을 가리켰다.

하지만 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운령과 운산을 지켜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쉴 뿐,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변명을 한들 운산이 그 이야기를 들어줄 것 이라는 생각이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령의 하소연에 가까운 설명이 끝날 무렵, 운산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재미있군. 게다가 가철과 해길까지…반가운 얼굴들도 모여 있고 말이야. 가끔씩 바깥으로 나오는 것도 나쁘진 않군.”

여인이 자신들을 바라보자, 가철과 해길이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아는 사람이 하나 더 있을걸?”

“알고 있어. 아까 깨어날 때 그의 기운을 느꼈거든. 그나저나, 메두사에게 죽임을 당한 줄 알았는데, 그 노친네가 살아있는 건 꽤 의외로군.”

운산은 동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그 뒤에 있는 소년에게 시선을 멈췄다.

“저 아이가 그 이준이라는 아이인가?”

“네. 그렇습니다.”

선대 종주의 질문에 대장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답을 했다.

“느낌이 나쁘지 않지만…아직 덜 여물었군.”

그는 준에 대한 간단한 품평을 마친 뒤 다시 고개를 돌려 세형을 바라봤다.

“당신은 누구지? 내가 속세와 연을 끊은지 제법 오래 되긴 했어도…제법 발이 넓은 편이라서 말이야. 어디서 왔길래 감히 대 운남종을 무시하는지 호기심이 생기는군.”

투종의 목소리에는 불쾌함이 가득했지만, 세형은 조금도 기가 죽지 않은 듯 당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세상이 다 자기 발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투종이 되니 자신이 무적이라고 생각하게 된건가? 어느 세력이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운남종 정도는 열 개라도 박살낼 수 있는 세력이라고만 해두지.”

뒤이은 사내의 도발에 운산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 앉았다.

“지금…대 운남종을 위협하는 겐가?”

“좋을대로 생각해.”

세형이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에게 맞서자, 운산은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호오…제법 용기 있는 사내로군. 나쁘지 않아. 게다가 얘기를 들어보니 저 소년도 아주 제법인 것 같고 말이야. 좋아, 자네의 용기와 저 소년의 재능을 높이 사서 제안을 하나 하지. 거기 소년, 이준이라고 했나? 내 손에서 벗어나서 운남산을 빠져 나가보게. 그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해주겠어. 단…내 손에 잡힌다면 뒷일은 상상에 맡기지.”

곧이어 그의 몸을 중심으로 파도와도 같은 염력이 출렁대기 시작했다.

“쳇! 동생, 아까 그 마수와 함께 달아나. 나와 저 시꺼먼 친구가 운산을 막아보지.”

준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 뒤 세형을 바라봤다.

“저기 실례지만…”

“아아, 됐어. 난 자네를 운남종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즉시 가한제국을 뜰걸세.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내 정체를 알 수 있을 거야. 단, 그 전까지는 날 죽인다고 해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테니 쓸데없는 생각 말고 이곳을 빠져나가는데 집중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한 상대의 말에 준은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가 날개를 펼쳤다.

게다가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력으로 달아나는 것 뿐 이었으니, 더 이상 대화를 나누면 상황만 복잡해질 뿐 이었다.

“어이, 가철, 어쩌겠나? 운산까지 나온 마당에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데 말이지.”

한편, 운산과 세형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해길은 가철과 자신이 나서 상황을 중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소용없을 것 같은데…”

그러나 가철은 엉망이 된 운남종의 광장과 제자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을 뿐 이었다.

“운남종의 자존심을 너무 건드려놨어. 뭐…워낙에 약아빠진 여자라 이준의 배후에 있는 세력이 누구인지 확실해 지기 전까지는 그를 죽이거나 하진 않겠지. 저 시커먼 놈이 하는 말로 봐서는 뭔가 배후가 있긴 있는 것 같으니까…하지만 이대로 저 꼬맹이를 돌려보내면 운남종의 체면이 땅에 떨어질 테니 저런 제안을 하는 거 아니겠어? 이미 거기까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자네랑 내가 중재한다고 들을 리가 없지.”

……

“동해, 지금 조용히 물러나면 자네에게는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지.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말이야.”

“쓸데없는 소리…속세를 떠난지 너무 오래 돼서 내 성질머리가 어떤지 잊은건가? 시작하지. 투종이 된 자네 실력도 궁금하니 오랜만에 한번 어울려보자고.”

가철과 해길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동해와 세형은 투종이 된 운산에 맞서 완전히 임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마침내 동해와 운산의 마지막 협상이 결렬되는 순간, 얼음왕의 손에서 거대한 얼음 칼날이 쏟아져 나가며 대결의 시작을 알렸다.

이와 동시에 세형 역시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창을 들고 빠르게 앞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두 명의 투황이 앞으로 나아가는 찰나, 준은 날개를 펼쳐 즉시 이무기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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