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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62화 (162/818)

제162화. 혈전

‘빌어먹을…너무 많아. 이건 못 피해.’

검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한 준은 검은 송곳에 염력을 불어넣었고, 이내 무시무시한 힘이 송곳 끝에서 폭발했다.

후웅-

곧이어 묵직한 파공음과 함께 검은 송곳 끝에서 푸른 불꽃이 뒤섞인 염력이 주위를 휩쓰는 순간, 푸른색과 녹색 염력이 뒤엉키며 무시무시한 폭발음을 일으켰고, 무지막지한 힘에 밀린 나설아가 잠시 균형을 잃은 사이 검은 그림자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콰-앙-!

하늘 위로 솟아올랐던 검은 그림자는 곧장 무시무시한 기세로 땅을 향해 내리 꽂혔다. 그러나 준이 송곳을 내리친 그곳에는 이미 나설아의 그림자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훅!

하지만 공격에 실패한 검은 그림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다시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말도 안돼…이게 정말 그 녀석이란 말이야?’

그리고 다음 순간, 상대의 공격을 파악하기 위해 공중으로 시선을 돌린 나설아의 동공이 빠르게 확대됐다.

공중에 남아있는 것은 상대가 들고 있던 검은 송곳 뿐 이었던 것 이다.

‘젠장!’

쾅!

검은 송곳을 던져버린 준의 속도는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고, 힘은 두 말할 여지가 없었다.

상대의 무기가 어떤 것인지 꿈에도 알지 못한 나설아는 등 뒤에서 불의의 일격을 맞고 줄이 끊어진 연 마냥 하늘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잠시 후…하늘로 튕겨져 올라간 가녀린 몸이 힘없이 새하얀 대리석 위로 추락하자, 광장 안에 썰렁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저 녀석 꽤 하는데……”

한편, 나무 위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는 가철의 입에는 살짝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러게 말일세. 그래도 보기만 요란했지 별 타격은 못 준 듯하군.”

해길 역시 준의 실력에 놀란 듯 했지만, 나설아가 패배했다고 생각하는 운남종의 제자들과는 생각이 전혀 다른 듯 했다.

“나씨 가문의 이 계집아이도 약하지 않군. 3년이란 시간 동안 진율희가 아주 힘을 써서 키워낸 것 같네.”

동해 역시 해길과 의견이 비슷했다.

“그나저나 신기하군. 송곳을 놓는 순간 염력은 물론이고 힘과 속도까지 놀라울 정도로 상승했어. 저 무기가 가진 기능인가?”

“그런 것 같군.”

그렇게 가철과 해길, 두 투황이 전황을 분석하고 있는 사이, 광장에서 안도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맥없이 추락하던 나설아가 갑자기 균형을 잡고 멀쩡하게 착지한 것 이다.

“대단하네…이제 퇴물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어.”

나설아는 태연한 표정으로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준을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하…그 일이 이렇게 만든건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원한이 사무쳤나보네. 3년 만에 이 정도로 발전할 수 있다니…보통 노력가지고는 되지 않을 일이지.”

말을 마친 나설아는 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녹색 장검을 움켜쥐었고, 그순간 그녀의 망토와 머리카락이 거칠게 휘날리며 광장 곳곳에서 폭풍이 일었다.

‘대투사…역시 이 계집애도 진작에 무투사 수준을 뛰어넘어 있었어.’

……

“후…이씨네 아들에게 너무도 미안하군. 저 아이도 대단하지만…설아가 진짜 실력을 보인 이상 승산이 없어. 3년 전에 이어 또 다시 이런 망신을 주다니…내 꼭 이씨 가문에게는 사과를 해야겠구만.”

손녀의 몸에서 솟구치는 염력을 바라보던 나원승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미 나설아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확신이었다. 타고난 천재로 일찍이 그 재능을 인정받아 운남종의 제자로 들어간 그의 손녀조차 운남종의 막대한 재력과 비밀스러운 수련법, 단왕 고하의 연금 비약이 없었더라면 그 나이에 대투사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막대한 재력도, 연금비약도, 대단한 수련법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준이 그 나이에 대투사가 된다는 것을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

“대장로님, 뭔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어째서 설아의 진짜 실력을 보고서도 아무렇지 않을까요?”

한편, 광장에 앉아있던 운남종의 장로 중 하나는 상대의 실력을 보고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준의 태도에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심리전을 꽤 하는 녀석이군.”

하지만 운령은 괜스레 옷에 묻지도 않은 먼지들을 툭툭 털어내며 그의 걱정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다.

“안 놀랄 리가 있겠나? 종주께서 직접 가르침을 내리신 것도 모자라 운남종내에 내려오는 비술까지 전승해주셨네. 설아의 성장은 우리 장로들조차 눈 앞에서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할 정도였어. 본래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에게 운남종의 비술과 고하 장로의 연금비약을 아낌없이 투자해 만들어낸 성과야. 설령 하늘이 내린 천재라 해도 저 수준에 오를 수는 없네.”

대장로의 논리정연한 말에 다른 장로들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단 한명,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 새파랗게 질려 준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도담, 무슨 일인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 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준을 바라보던 이는 바로 도담이었다.

그는 문씨 가문에서 만났던 정체 불명의 투황급 강자가 준과 동일 인물이라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말도 안돼. 하지만…아무리 봐도 같은 인물이 아닌가! 아니야…아니야, 20살도 되지 않은 투황이라니…말도 안되는 일이야. 그건 하늘이 두쪽이 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대장로는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비라도 맞은 듯 땀을 흘려대는 도담을 보고는 영문을 알지 못해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봐 도담, 왜 그러냐고 묻질 않는가?”

“아…아닙니다.”

도담은 차마 저 아이가 투황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입밖으로 내지 못 했다. 아무리 생김새가 닮았다고는 해도, 그럴 리가 없었다. 그저 놀라울 정도로 닮은 사람일 것 이다. 아니, 그래야 했다.

……

한편 온전히 실력을 드러낸 나설아의 몸에서 대하와도 같은 염력이 뿜어져 나오고, 쉴 새 없이 돌풍이 몰아치고 있는 와중에도 준은 태연자약하게 몸을 풀며 검은 송곳을 움켜잡을 뿐 이었다.

‘2성 대투사라…이 정도면 해볼만 하겠어.‘

그리고 다음 순간…그의 몸을 둘러싼 푸른 염력이 단단하게 형태를 갖추는 순간, 목석처럼 대결을 바라보던 운남종의 장로들 중 몇이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투기 갑옷…!”

“정말 재미있군…”

맞은 편에서 장로 둘 셋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가 헛기침을 하며 앉는 것을 발견한 준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지었다.

대투사의 상징과도 같은 투기 갑옷의 등장에 가철마저 입을 떡 하니 벌릴 정도였으니, 운남종의 장로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허…”

해길 역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가철을 바라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준의 염력갑옷을 보고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나원승이었다.

운남종 같은 거대한 세력을 등에 업은 것도 아닌데 20살도 되기 전에 대투사라니! 틀림없이 투황이 될 재목이었다.

아니, 투황은 물론이고 투종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재능을 손녀의 철없는 행동으로 놓쳐버린 것 이다.

‘큭큭큭… 아하하하! 나원승! 이 멍청한 놈! 손녀의 손 발을 묶어서라도 이씨 가문에 찾아가 무릎을 꿇게 했어야지…이 일을 대체 어쩐단 말이냐!’

……

“대장로님 이를 어찌……”

“우선 지켜봅세.”

광장 한 켠에 자리잡은 운남종의 장로들 역시 완전히 사색이 되어있었다. 그들도 가한제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강자였으니, 3년 안에 아무런 지원 없이 대투사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장로인 운령은 여전히 차분한 표정으로 장로들을 진정시킬 뿐 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나, 그건 어디까지나 염력의 수준이 대투사라는 것이지. 설아에게는 운남종의 전투 기술과 무투기가 있으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지켜보게.”

……

대장로와 자신의 할아버지 이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나설아였다. 언제나 얼음장같이 도도한 표정을 유지하던 그녀 역시 이번만큼은 도저히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말도 안돼…3년 전에는 1성 투사도 못된 상태였잖아…! 고하 장로님과 스승님의 지원을 받은 나보다,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 한 네가 더 빨리 발전했다고?’

그녀는 터져 나오는 놀라움과 공포, 열등감을 억누르기 위해 자신의 녹색 장검을 더욱 세게 움켜잡았다.

3년 전 철없는 행동이 이토록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결과를 불러일으킬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의 마음속에는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상대가 대단하면 더 강해지기전에 이 자리에서 죽여 없애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설아가 가볍게 손을 움직이자 장검이 날카로운 울음을 내뱉었고, 동시에 그녀의 몸 위에도 초록색의 염력 갑옷이 생겨났다. 그녀가 소환해 낸 염력 갑옷은 투박하기 그지없는 상대의 것에 비해 훨씬 정교하고 우아했다.

‘후…미안하다. 하지만 널 가만두면 장차 나에게는 물론이고 운남종에게도 너무 큰 골칫거리가 될 것 같아.’

결심을 굳힌 그녀는 번개처럼 몸을 날려 준의 간격 안으로 뛰쳐 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상대의 움직임에 준은 곧바로 검은 송곳을 손에서 놓은 뒤 몸을 날렸다.

“천 개의 바람!”

하지만 나설아는 이미 준이 자신의 공격을 피하리라 예상하고 있었고, 상대가 몸을 피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 속성 에너지를 응결시켜 다섯 개의 나선형 칼날을 만들어 준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다섯 개의 칼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자, 준은 즉시 손을 들어 세 개의 푸른 화염을 쏘아냈다.

그의 손 끝을 떠난 세 개의 불꽃은 즉시 세 개의 칼날을 분쇄했지만, 아직도 두 개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두 개의 염력 칼날이 준의 염력 갑옷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큭…!”

다행히도 일격에 끝나지는 않았지만 두 개의 칼날은 준의 양팔을 둘러싼 갑옷을 완전히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버릴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준은 나설아가 쏘아낸 칼날이 사라지자마자 즉시 염력 갑옷을 복원했지만, 이미 그의 양팔에서는 옅은 핏자국에 배어나고 있었다.

물론 그 정도 상처가 전투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공격을 몇 번 정도 더 허용한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 계집…분명히 내 목숨을 노리고 있었어. 단순히 승부를 내기 위한 공격이 아니야.’

……

상대의 살의를 확인한 준은 마음에서 불길이 이는 것을 느꼈다. 사슬 그는 자신과 이씨 가문이 당한 수모를 갚을 마음이 있었을 뿐, 상대를 죽일 마음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나설아의 공격을 받자마자 그의 마음속에서 살의가 들불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훅-

상대의 살의를 확인한 준 역시 마음을 굳히고 전력으로 염력을 끌어올린 뒤 나설아를 향해 몸을 날렸지만, 역시 속도면에서는 그녀를 당할 수 없었다.

나설아는 여유롭게 준의 공격을 피한뒤 민첩하게 검을 휘둘러 준의 두 다리를 노렸고, 준 역시 이에 질세라 염력 갑옷으로 검을 받아낸 뒤 전력으로 그녀의 가슴팍을 향해 염력을 쏘았다.

쾅!

물론 나설아 역시 염력 갑옷을 입고 있었으니 별다른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준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바닥을 향해 염력을 쏘아냈다.

곧이어 바닥을 타고 흘러간 그의 염력이 나설아의 발치에서 화산처럼 폭발하는 순간, 준은 상대의 몸에 바짝 붙어 상대의 급소에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이에 나설아는 폭풍처럼 쏟아지는 상대의 공격을 민첩하게 피해내며 검을 휘둘러 반격을 해댔고, 이내 두 명의 대투사의 염력이 충돌하며 만들어낸 굉음이 광장 안에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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