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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60화 (160/818)

제160화. 부탁

‘최고급 푸른 정령의 비약이라는게 이 정도일 줄이야…과연 수 많은 투사들이 눈이 벌게질만한 물건이군.’

준은 청색의 액체로 변화한 연금비약속의 기운이 자신의 힘의 근원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온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푸른 정령의 비약 속에 담긴 에너지는 아직도 절반이나 남았건만, 그는 이미 8성을 넘어 9성 무투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준의 몸 주변에 은은한 푸른 빛이 출렁이며 희미하게 염력으로 만들어진 옷이 형체를 갖추어 갔다.

하지만 준은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자신의 몸 주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까맣게 모른 채 정신없이 몸 속을 흐르는 방대한 염력을 조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준의 염력 회오리 안에는 어느 새 염력이 가득 차 툭 치면 금방이라도 염력이 흘러넘칠 지경이 되어버렸다.

눈덩이처럼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는 에너지 앞에 준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만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에너지를 밀어 넣는다면 염력 회오리가 터져버려 영원히 염력을 잃을 수도 있는 일 이었다.

‘이…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예측을 불허하는 엄청난 약효 앞에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잠들어 버린 스승의 모습이 스쳐갔다.

분명히 약로라면 방법을 알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도움을 줄 스승이 없었으니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으으…안돼, 지금 내 염력 회오리로는 절대 이 기운을 다 감당할 수 없어.’

준은 넘쳐나는 에너지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허둥거리다가 문득 자신의 염력 회오리 속에 있는 물방울을 떠올렸다.

‘그래. 부피를 줄이는 거야. 무투사가 될 때 거대한 에너지를 하나의 물방울에 압축했듯이 액체가 된 염력을 다시 압축해보자…!’

생각을 마친 준이 바삐 손을 놀려 인을 맺자, 기름처럼 들끓던 연금 비약속의 에너지가 급격하게 요동치며 미친 듯이 회전하더니, 이내 염력 회오리 주변으로 동그란 물결이 일며 묵직한 소리가 온 몸 곳곳에서 울려댔다.

곧이어 혈관을 뚫고 뼈를 지난 거대한 염력이 바깥까지 뚫고나와 준을 감싸고 있던 염력에 도달하는 순간, 눈부신 빛과 함께 그의 염력이 단단하게 응집되며 은은한 빛을 내뿜는 갑옷의 형상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회전하던 회오리가 서서히 느려지고 그 안의 액체가 딱딱하게 응결되어갈 때 즈음, 엄지 손가락만한 크기의 청색 수정이 준의 염력 회오리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푸른 수정은 요동치는 회오리의 정중앙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조용하게 은은한 푸른 빛을 내뿜고 있었다.

‘힘의 수정!?’

압축된 투기의 결정체, 진정한 대투사가 되었다는 상징…꿈에도 그리던 힘의 수정이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한 준은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을 하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몇 번이고 깊은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미처 흡수하지 못한 연금비약의 에너지가 자신의 염력 회오리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 준의 가슴이 좀 전과는 다른 의미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행여 그 에너지가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힘의 수정을 자극한다면 겨우 만들어진 힘의 수정이 손상을 입게 될 것은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 그로 인해 실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금비약을 통해 승급을 할 때 생기는 부작용이었다.

그러나 염력 회오리로 빨려드는 에너지를 통제하려 아무리 애를 써도 연금비약에서 비롯된 거대한 힘은 시나브로 그의 힘의 수정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갈 뿐, 도저히 그의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젠장…큭큭…끝장이야. 마지막 도박이 실패했어. 나설아와의 대결을 코 앞에 두고 실력이 오히려 떨어지다니…아버지, 스승님…죄송해요.’

그렇게 준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참한 결과를 받아들이려는 순간, 문득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난 너를 믿는다. 너는 절대 퇴물이 아니야.’

……

“으아아아!”

아버지의 얼굴이 뇌리에 스치는 찰나, 준은 맹수 같이 고함을 지르며 온 몸 곳곳에 흩어져 있는 영혼 에너지를 다시 한번 끌어올렸다.

그러자, 푸른 화염이 주인의 의지에 응하듯 맹렬하게 솟구치며 힘의 수정을 향해 몰아치던 에너지와 다시 한번 격돌했다.

그리고 노도와도 같은 푸른 화염이 연금비약속의 에너지와 부딪히는 순간… 준의 전신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휘황찬란한 빛이 잦아들 무렵…

준은 전신에서 막힌 둑이 터진 듯 뿜어져 나오는 염력을 느끼고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 성공이야! 성공이라고!”

주먹을 쥐고 염력을 끌어올리니 짙은 청색 빛이 그의 주먹을 감싸고, 그 주먹을 휘두르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방안의 기둥에 동그란 구멍이 생겨났다.

곧이어 손 끝에 염력을 집중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손 끝에 모인 염력이 화살처럼 날아가 꽃병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하하하! 정말 대투사가 된거야!”

체내의 염력을 끄집어내 마음대로 다루는 능력은 대투사가 가진 핵심적인 능력 중 하나였다.

이로 인해 대투사는 인체의 한계를 벗어난 움직임과 공격 범위를 가질 수 있게 되니, 무투사와 대투사의 힘은 단순히 더 강하고 빠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확인한 준은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채 가볍게 손을 휘둘러 염력을 방출해 굳게 닫혀있던 창문을 열었다.

대투사가 되니 이전과는 달리 무투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염력만으로 물체를 조종할 수 있게 된 것 이다.

“어…?”

창문이 열리니 눈부신 햇살이 그의 얼굴을 때렸다. 어느 새 해가 중천에 뜬 것을 발견한 준은 연금 비약의 에너지를 흡수하는데 무려 반나절이 걸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절박하긴 절박했나보네…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을 줄이야.’

바로 그 때, 방문이 열리며 중후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끝났나?”

동해였다. 그는 투황급 강자였으니, 당연히 대투사가 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준의 염력을 감지할 수 있었던 것 이다.

“기운을 보니 대투사가 된 것 같은데, 맞나?”

동해의 질문에 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흠…그럼 이게 동생의 진짜 실력인거야?”

그러나 이어지는 동해의 날카로운 질문에 준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아, 미안하네. 내가 갑자기 너무 민감한 질문을 했군. 다른 뜻은 없네. 빌려오든 뭐든 나나 다른 투황급 강자들과 싸울 때 보인 동생의 기운과 지금 뿜어져 나온 기운의 ‘질’이랄까…느낌이 너무 달라서 말이지. 그냥 호기심이 일었을 뿐이야.

아무래도 내가 보기에는 그 기운은 온전히 자네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 같거든. 뭐, 아무렴 어때. 그 힘의 정체야 알 수 없지만, 자네가 쓸 수만 있다면 그것도 동생의 실력이지. 정말로 신기해서 물어본 것 뿐이니 경계하지 않아도 되네.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아도 되고. 나름대로 견문이 넓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그런건 처음 봤거든.”

동해는 자신의 질문에 준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 하자 민망한 듯 설명을 늘어놓으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흐음…죄송합니다 선배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아, 괜찮아 괜찮아. 비밀 하나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신경쓰지 말게. 나도 단순한 호기심으로 괜히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고 싶지 않네. 지금까지 자네의 언행을 보면 뭔가 대단히 중요한 비밀인 것 같으니까 말이야. 그보다…”

준이 정중한 태도로 묵비권을 행사하자, 멋쩍은 표정으로 웃음을 짓던 동해가 갑자기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하하, 내가 방금 나가서 뭔가 받아왔는데 말이야……”

그가 꺼내든 것은 편지봉투로, 그 위에는 하얀 구름 속에 꽂힌 장검이 새겨져 있었다.

“운남종…?”

“맞아. 이건 운남종에서 황도 주요 세력의 수뇌부와 강자들에게 보낸 초대장일세.”

“초대장이요?”

“그래. 동생과 나설아의 약속 때문에 운남종에서 지금 명망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 같더군. 이 기회에 그녀의 실력을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야.”

동해는 그렇게 말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고, 그 웃음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차린 준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지게 되면 개망신이란 소리군요.”

“그렇지, 역시, 난 동생의 그런 배짱이 참 마음에 들어. 아, 물론 그 배짱 때문에 가끔 위험한 짓을 하기는 하지만…여튼,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재미있는 점은 이 결정을 종주인 진율희가 내린 것이 아닌 것 같다는 것 일세. 그녀는 지금 운남종에 없다고 하니, 아마 장로회에서 벌인 일일테지.”

“네? 이 문제가 차기 종주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그녀도 잘 알텐데 운남종을 비웠다구요?”

확실히 차기 종주의 명망이 걸린 민감한 문제에 현 종주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 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가철 그 노친네 말로는, 우리가 정체 모를 투황과 전투를 벌인 소금성 어느곳에서 진율희가 무엇을 발견했다고 하더군. 그리고 그 이후로 아직까지 운남종에 돌아오질 않았다고 하니, 뭔지는 몰라도 그녀가 발견한 물건이 이번 일을 뒤로 할 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이겠지.”

그리고 이어지는 동해의 설명에 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경험 많은 투황답게 그의 추리는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흠…그래도 곧 돌아오기야 하겠지. 자신의 제자와 운남종의 위신이 걸린 문제니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진율희가 없을 때 빨리 대결을 끝마치고 내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일세. 뭐…대결이 시작되기 전에 돌아와 버린다면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종주가 돌아오기 전에 자리를 피하는게 상책일거야.”

“확실히 그렇네요…투황급 강자가 한 명 있고 없고는 아주 차이가 클테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님.”

* * *

동해와 운남종 문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 준은 잠시 후 숙소를 나와 유씨 가문의 경매장으로 향했다.

‘누나가…어디 있나…’

준은 경매장에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주희를 찾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비에 서있던 주희를 만날 수 있었다.

주희는 준을 발견하자마자 피식 웃음을 짓더니 말 없이 눈짓으로 자신을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 * *

유씨 가문 경매장의 2층, 귀빈실.

“내일인가?”

“응.”

준은 경매장의 시녀가 가져다준 찻잔에 가볍게 입만 가져다 댄 채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그렇게 됐네…으휴…그래…그 일이 끝나면 어떻게 할거야? 집으로 돌아갈거야?”

“응, 그래야죠. 잠깐 들렸다가 바로 가람 아카데미로 가려고요.”

소년의 말에 주희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흠…이은이라는 아이 때문이야?”

“그런 이유도 있고요. 그리고…매번 부탁만 해서 미안하긴 한데…제가 다시 마을을 떠나면 이씨 가문을 잘 부탁드려요. 은혜는 꼭 갚을게요.”

준이 민망한 듯 머뭇거리며 부탁을 하자, 주희의 입가에는 장난스런 미소가 어렸다.

“은혜를 어떻게 갚을 건데? 지난 번에도 마을을 떠나고 나서 2년 넘게 감감 무소식이던 사람이 말이야.”

“아하하…”

주희의 말대로였다. 게다가 준의 계획대로라면, 이번 여행은 아마도 지난 번의 그것보다 더 길 것이 분명했다.

“어이구… 됐어. 걱정말고 다녀와. 대신 정산은 확실히 하고.”

그녀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준의 얼굴에는 다시 화색이 돌았다.

이후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가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헤어졌고, 희미하게 떠오른 달빛을 어깨에 이고 경매장에서 멀어져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주희의 눈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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