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158화 (158/818)

제158화. 약로의 부활?

이런 저런 생각에 젖어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느 새 나씨 가문의 저택이 눈앞에 나타났다. 조금 더 걸어들어가자, 정원 바깥까지 자신을 마중 나온 나원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승을 축하하네. 이거 정말 영광이군! 연금술사 대회 우승자가 나를 위해 친히 이곳까지 와주다니 말이야.”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나원승의 친절에 화답하던 준은 나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잠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아, 우리 손녀는 운남종으로 돌아갔다네. 그쪽 사람들이 하도 재촉을 해대는 바람에 거의 끌려가다시피 했지 뭔가.”

그러자 나원승은 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나설아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아아, 네.”

“여러모로 참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야. 그쪽 일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 걸세.”

나원승의 설명에 준은 저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운남종으로 돌아간 것은 자신 때문이었고, 며칠 뒤면 그녀와 대결을 벌이게 될 것을 모르는 나원승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묘하게 우습게 느껴졌다.

“하하, 네. 그것보다 어르신, 저희는 해독을 진행해야지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오늘 밤을 기점으로 각인 독이 서서히 어르신의 몸 밖으로 배출 될 겁니다.”

“좋네 좋아! 허허! 내 정말로 자네에게 신세를 많이 지는군. 만일 앞으로 무엇이든 필요한 게 있으면 주저 말고 꼭 내게 이야기 해주게. 우리 나씨 가문은 그래도 신의를 아는 가문이라네!”

나원승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신의’라는 단어를 꺼내자, 준은 순간 ‘손녀에게는 그 신의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으셨나보군요.’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눌러 참아야 했다.

“각자 필요에 의해 하는 것일 뿐인 걸요.”

* * *

마지막 해독은 평소보다 훨씬 순조롭게 진행됐다. 준은 대회를 기점으로 이화를 다루는 능력이 또 다시 한층 발전했음을 실감했다.

“축하드립니다. 나원승 어르신. 이제 각인 독이 완전히 배출 됐습니다.”

준은 나원승의 몸에서 완전히 뽑혀져 나온 각인 독이 자신의 몸 안으로 흡수된 것을 느끼며 또 다시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이지 나설아와의 대결을 앞두고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후우……”

한편, 그런 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원승은 자신의 숨에 더 이상 검은 입자들이 섞여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이건 참 고맙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되네. 사실 자네가 정령의 꽃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네. 내 바로 내어줌세, 목숨을 살려 줬는데 그깟 풀 따위가 대수겠는가! 그 외에도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라면 말만 하게나. 무슨 일이 있어도 은혜를 갚을 테니 말일세!”

‘짝짝—’

곧이어 나원승이 박수를 치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화분을 든 시녀가 문틈 사이로 슬며시 들어왔다. 시녀들의 손에 들린 정교하게 조각된 화분 위에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여린 식물이 자라나고 있었다.

식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방 안에는 온통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기분 좋은 향기가 가득 찼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정령의 꽃은 비취와도 같은 청색을 띠고 있었고, 식물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투명하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이파리의 끝부분에는 일곱가지 색의 작은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정령의 꽃이라네. 내가 듣기론 연금술사들이 이것을 액체 형태로 녹여내 쇠약해진 영혼을 빠르게 회복시킨다고 하던데…자네에게 꼭 쓸모가 있었으면 좋겠군!”

정령의 꽃을 받아든 준은 감격에 겨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아름다운 식물을 바라봤다.

“아, 이 식물은 저장반지에 두고 보관할 순 있지만, 반드시 하루에 한 시간씩 햇빛을 쬐어주어야 하네. 아니면 쉽게 시들어 버리거든. 많이 있다면 얼마든지 내어주겠지만, 우리 가문에도 하나 밖에 없어 다시 줄 수가 없으니 꼭 신경쓰도록 하게.”

“아아, 네.”

준은 나원승의 당부를 새겨들으며 정령의 꽃을 저장반지 안으로 집어 넣은 뒤 바로 인사를 올렸다.

“어르신, 제가 오늘은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곧바로 가봐야 합니다.”

“벌써 간단 말인가?”

나원승은 마음 같아서는 임현을 붙잡고 뭔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를 붙잡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찾아오게나.”

“하하, 그럼요.”

준은 약로를 깨울 생각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몸을 돌려 방에서 빠져나갔고, 나원승은 그런 임현의 뒷모습을 보며 못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 * *

숙소로 돌아가던 준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약솥이 사라졌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약솥 없이 제련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우선 약솥을 구해야 했다.

준은 황급히 걸음을 옮겨 근처에 있는 시장에서 자신이 기존에 사용하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약솥을 구매한 뒤 부리나케 달려 숙소로 돌아갔다.

그는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문을 단단히 걸어 잠든 뒤, 정령의 꽃을 탁자 위에 올려두고는 한참이나 그것을 바라봤다.

정령의 꽃 하나를 얻기 위해 숱한 고생을 해왔지만, 약로가 부활할 수만 있다면 그깟 고생쯤이야 백번을 해도 괜찮았다.

두근대는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 화분을 들어 올린 준은 염력을 불어넣어 화분을 깨끗하게 부숴버린 뒤, 조심스럽게 흙속에서 정령의 꽃을 뽑아냈다.

드디어 정령의 꽃이 약솥 안으로 들어가고, 새파란 불꽃이 약솥을 달구기 시작하자 일곱 빛깔의 꽃잎이 영롱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약솥을 달구자, 아름다운 꽃이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더욱 선명하게 변했고, 그와 동시에 방안을 가득 메울 정도의 아찔한 향기가 약솥에서 피어올랐다.

준은 꽃향기를 맡는 순간 온 몸에서 기운이 샘솟고 거짓말처럼 피로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아…! 향만 맡았는데도 3레벨 연금비약과 같은 효능을 내다니…”

그리고 약초의 효과를 몸으로 확인하는 순간, 준의 가슴이 다시 기대감으로 쿵쾅대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약효라면 분명히 스승님을 부활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한참을 달구어도 꽃이 제련되지 않자, 준은 더욱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정말 대단해! 천지의 불꽃으로 달구어도 재가 되지 않다니! 이 정도 물건이라면 분명히 그 효과도 대단할거야!”

그렇게 새파란 불꽃으로 약솥을 달군지 수 분…드디어 정령의 꽃이 액체로 변하고, 다시 옥처럼 신비로운 빛깔을 내는 액체가 진주 모양의 결정으로 굳어졌다. 딱딱하게 변한 구슬 안에는 신비한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겠지…? 그런데…이걸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하지만 막상 제련을 마치고 나니, 어떻게 써야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분명 구슬 안에는 영혼의 힘을 끌어올려주는 신비한 기운이 가득했지만, 그것을 약로에게 전달할 방법이 묘연했다.

“우씨…”

생각해보니 약로가 잠든 까만 반지에 그것을 넣을 방법이 없었다.

한참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준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작은 진주처럼 굳어진 정령의 꽃을 검은 반지에 무턱대고 문질러 보았다.

그러자 반지가 움찔거리며 반응했고, 그 안에서 영혼의 힘이 출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오오! 효과가 있어.’

준은 반지에서 반응이 나타났다는 것에 기뻐하며 망설임 없이 구슬을 깨뜨려 안에 있던 액체를 반지 위로 떨어뜨렸다.

곧이어 일곱 빛깔의 영롱한 빛이 발산되며 검은 반지를 감싸 안고, 반지의 색이 점점 짙게 변해가자 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분명히 약로의 기운이 점점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선생님, 일어나셨어요?”

준은 약로가 깨어났음을 확신하며 반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을 걸어보았다. 하지만…반지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고, 약로의 환영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러나 준이 어리둥절해하며 반지로 손을 뻗으려고 하던 찰나, 갑자기 반지에서 무시무시한 영혼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어어어어! 뭐야 이거!”

폭탄이라도 터진 양 하염없이 쏟아지는 에너지에 준은 잔뜩 겁을 집어먹고 몸을 움찔거렸다.

잠시 후…에너지가 준을 피해 하늘 위로 솟구쳐 폭발하고, 지붕에 새까맣게 구멍이 뚫리자 준의 얼굴은 더욱 사색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 * *

한편, 준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구석진 골목에 있던 동해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신을 발아래 두고 나뭇가지 위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가자고.”

“그러지.”

바로 그 때, 가철이 당황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이게 뭐지? 엄청난 영혼 에너지야!”

“우리 도시에 이런 강자가 존재했단 말인가? 어떻게 지금까지 전혀 느끼질 못했지?”

황실의 수호자인 가철은 가한제국의 그 누구보다도 발이 넓었고, 가한제국내에서 가장 많은 강자를 알고 있는 자였다.

하지만 지금 상공에 나타난 무시무시한 기운은 그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수준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통 누구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가한 제국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이 느낌은… 임현 그 친구의 에너지야.”

자리에 있던 세 투황 중 동해만이 그 기운이 누구의 것인지를 아는 듯 했다.

“뭐? 그 젊은이는 무투사…”

“시끄러 이 늙은이들아. 일단 돌아가서 한번 보자고!”

동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해길을 향해 피식 웃음을 지은 뒤 즉시 날개를 펼쳤다.

* * *

그 시간, 여관에 있던 준은 방안에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몸을 숙이고 있었다.

“어휴…이게 뭐야…죽는 줄 알았네…”

그는 너무나 방대한 에너지의 방출에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자신의 팔다리가 멀쩡하게 붙어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몇 번이나 자신의 팔다리를 만져댔다.

그러나…무시무시한 에너지가 솟구쳤음에도 반지 안에서는 여전히 약로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뭐지…분명히 선생님의 기운이 느껴졌었는데…그렇게 강한 기운을 내가 잘못 느낄 리도 없고…”

준은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반지를 바라보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약로가 깨어났다면 필시 그에게 말을 걸어왔을 것 이다. 하지만 반지 안에서는 여전히 스승의 기척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씨…모자란 건가?”

바로 그 때,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창문이 열리며 동해가 방안으로 날아들어왔다.

“동생! 회복된겐가?”

동해가 들이닥치자, 준은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생각도 못 했어. 그 정도 영혼 에너지가 방출됐는데 이 인간이 못 느낄 리가 없지…!’

눈앞에선 얼음왕의 표정에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가득한 것을 확인하니 더욱 머리가 지끈거렸다.

준은 잠시 숨을 고른 뒤 그럴싸한 거짓말을 늘어놨다

“하… 거참 이상하네요. 정령의 꽃을 복용했는데…영혼의 힘이 회복됐다가 갑자기 가라앉아 버렸어요.”

“응? 무슨 소리야, 엄청난 에너지가 솟구쳤는데…”

“그러게 말이에요…회복되기는 한 것 같은데…뭔가 이상해요. 물론 지금까지는 무슨 수를 써도 반응조차 없었으니 그보다 낫기는 하지만…이게 뭘까요? 혹시 선배님은 알고 계세요?”

천연덕스러운 준의 거짓말이 먹혔는지, 동해의 얼굴에도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정령의 꽃이라는 물건은 말만 들었지 나도 실제로 본적이 없어서…거참…난감하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