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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54화 (154/818)

제154화. 진검승부

대회 시간이 다가오자 관객석에서는 저마다 우승자를 점치느라 소란이 일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준열과 임현, 둘 중 하나가 우승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오… 저기 봐. 저 사람이 어제 성적이 제일 좋았던 사람이지? 말도 안돼…너무 어린데?”

“이름이 임현이랬나?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것 같은데, 부럽다 부러워.”

“구름제국에 그 망토 쓴 남자애랑 붙는 건가? 진짜 궁금하다.”

“오늘이 진짜 중요한 날이지. 구름제국에서 온 녀석에게 본 떼를 보여줘야 할 텐데…”

“내 말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참가자들이 입장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헛기침 소리와 함께 해길이 등장했다.

“크흠…여러분, 오늘 시험은 대회의 마지막 관문이자 가장 중요한 관문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승리를 거둔 참가자가 이번 대회의 우승자가 될 것입니다.”

“세 번째 시험에서 우리 협회는 여러분들께 그 어떤 도움도 드리지 않습니다. 모든 걸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내시기 바랍니다. 처방전도, 약재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정해진 시간 내에 여러분들의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가장 훌륭한 연금비약을 만들어 내시면 됩니다. 최종 우승자는 연금비약의 실용성과 가치를 기준으로 가려지게 됩니다.”

해길의 설명에 그곳에 있던 참가자들 대부분이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이 창백해진 몇 몇 이들은 괜찮은 조합표나 약재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물론 준은 결승전의 시험 내용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고개를 돌려보니 공주와 유슬은 잠시 표정이 굳었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은 듯 보였고, 서준열은 눈썹 하나 까딱 하지 않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럼, 이제 세 번째 관문의 시험 내용 및 규칙에 대한 설명이 끝났으니 바로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말과 동시에 몇 몇 연금술사들은 저마다 저장반지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으며, 또 다른 몇은 팔짱을 끼거나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준의 곁에 있던 월아는 십 여분간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천천히 탁자 근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커다란 약솥이 나타났다.

그녀의 저장반지에서 나온 파란 색과 붉은 색이 섞인 약솥에서는 한 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허허, 가철! 아무리 황실이래도 너무 손이 큰 거 아닌가? 청염솥까지 꺼내 보이다니…저건 5레벨 약솥이지 않은가. 저걸 차지하겠다고 많은 4레벨 연금술사들이 발에 불이 나게 뛰어다녔던 걸로 아는데 당신네 손에 있었구먼.”

공주가 꺼내든 물건이 무엇인지를 알아본 해길이 놀란 듯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 나도 잘은 모르지만…보아하니 저 녀석이 자기 아버지를 졸라 얻어온 것 같군. 그나저나 고하 선생도 통이 크군. 유슬이 가져온 약솥 좀 보게. 저 붉은 빛, 아마도 단왕의 보물인 ‘화산불솥’ 인 것 같은데, 저것도 5레벨 약솥 아니던가?”

가철은 손녀의 약솥에 대해서는 자신도 몰랐다는 듯 짐짓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유슬이 꺼내든 약솥에 대해 품평을 늘어놨다.

좋은 약솥은 연금비약을 제조할 때 성공률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견딜 수 있는 열의 온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오랜 시간 제조가 필요한 고급 연금비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레벨의 약솥이 필요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약솥은 연금비약의 제조를 돕는 역할을 할 뿐, 당연히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실력이었으니, 준은 유슬과 월아가 꺼내든 약솥을 보고도 피식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약솥을 꺼내들 뿐 이었다.

물론 약솥에 대해 잘 모르는 준이라도 두 사람이 결승을 위해 준비한 것들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이 꺼내든 약솥에서는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고급 약솥이 없더라도 자신에게는 천지의 불꽃이 있고, 약로가 가르쳐준 제련술과 해길이 넘겨준 조합표와 재료가 있으니 자신이 불리하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는 준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했다. 경기장에 모여 있던 관객들은 ‘임현’이 비교적 평범해 보이는 붉은 약솥을 꺼내들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고, 약솥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몇 몇 연금술사들은 이미 승부가 난 것처럼 고개를 흔들기까지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준은 조용히 푸른 정령의 비약 조합표를 다시 한번 되짚은 뒤 약솥에 하나하나 약재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푸른 정령의 비약을 만드는데 필요한 약재는 무려 20여 가지나 되었으니, 준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주위의 시선 따위를 의식할 여유 따위는 없었던 것 이다.

‘하…4레벨 연금비약이라 그런지 정말 쉽지 않군. 게다가 우승을 하려면 적어도 2급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텐데…’

바로 그 때 관중석이 들썩거리며 관객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뭐지…?’

5레벨 약솥이 나왔을 때 보다도 더한 반응에 준은 잠시 고개를 돌려 사람들의 시선을 쫓았다.

그러자, 경기장 한 편에서 공주가 짙은 푸른색의 불꽃을 내뿜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공주의 손에서 나온 불꽃은 마치 파도처럼 아름답게 일렁이며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저건 무슨 불꽃이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온도로 보아 천지의 불꽃은 아닌데…’

“어라? 저건…야수의 불꽃 아닌가?”

한편 귀빈석에서는 그 불꽃이 무엇인지를 알아본 해길과 동해가 거의 동시에 가철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가철은 그저 멋쩍은 표정으로 웃음을 지을 뿐 아무런 설명을 더하지 않았다.

야수의 불꽃은 비록 천지의 불꽃과 비교할 수 있는 급의 화염은 아니었지만, 부드럽고 온순해 잘만 다룬다면 평범한 불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화력을 자랑하는 보물이었다.

그리고 야수의 불꽃이 소환 되고 머지않아, 관중석에서 또 한 번 소란이 일었다. 이번에는 유슬이 처음 보는 연갈색의 불꽃을 불러냈기 때문이었다.

잇달아 준열의 손에서도 시커먼 빛이 감도는 노란 불꽃이 나타나자 경기장 안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세 개의 신비한 불꽃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마침내 ‘임현’의 손에서 푸른 불꽃이 뿜어져 나오고, 경기장내에 작은 태양이 뜨기라도 한 것처럼 후끈하게 온도가 오르자,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천지의 불꽃의 등장과 함께 터져 나온 함성에 준은 민망한 듯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곧바로 약솥을 붙잡았다.

“칫…”

월아는 경기장 전체의 온도를 바꿔버릴 정도의 화력을 가진 천지의 불꽃의 등장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가진 ‘야수의 불꽃’ 역시 많은 연금술사들이 탐내는 보물임에는 틀림이 없건만, 임현이 꺼내든 불꽃 앞에서니 그리 대단치 않은 물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허탈한 표정을 짓는 건 유슬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연갈색 불꽃은 그의 스승 고하가 수많은 강자들에게 부탁해 5레벨 마수의 몸에서 얻어낸 희귀한 보물이었다. 그러나 ‘임현 선생’이 꺼내든 푸른 불꽃에 비하면 천하의 고하가 구해다준 보물조차도 평범한 불꽃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껄껄,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보통이 아니군. 저런 귀한 것들을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다니, 정말 대단해.”

귀빈석에 앉아있던 나원승은 젊은 후배들이 꺼내든 보물을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지만 역시 임현 후배의 천지의 불꽃에 비하면 조금 초라한 걸?”

“뭐…고하 장로님도 손에 넣지 못했던 귀한 물건이니까요. 화력부터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죠.”

이미 몇 번이나 천지의 불꽃을 본 나설아였지만, 다른 불꽃들과 나란히 보니 그 화력에 새삼스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 그렇고말고.”

고개를 끄덕이던 나원승은 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 듯 나설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오늘 오전에 운남종에서 온 사람들은 널 데리러 온 게 맞느냐?”

“네.”

“3년 전에 했던 약속 때문이지?”

약속 이야기가 나오자, 나설아의 얼굴에 살짝 곤혹한 기색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이준 그 녀석은 아주 단시간 안에 괄목할 만한 결과를 보였어. 지금이라면 적어도 무투사 계급은 됐을 게다. 후…정말이지 어쩌자고…이번 대결이 끝나면 승패와 무관하게 그 아이에게 꼭 사과하거라.”

“사과요?”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던 나설아는 ‘사과’라는 말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할아버지를 노려봤다.

“제가 잘못 한 것도 없는데! 왜 사과를 하죠?”

“흥, 뭐라고? 사실 파혼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실례다. 그래도 준이라는 아이의 성품으로 보나, 그 애비의 성품으로 보나 네가 예의를 갖추고 제대로 사과만 했어도 순순히 파혼을 허락했을 게야! 그런데 네가 괜히 운남종의 힘을 빌려 이씨 가문을 겁박하고 압력을 넣지 않았더냐! 그럼 그게 잘한 짓이란 말이냐! 그 일로 이씨 가문만 망신을 당한줄 아느냐? 네 철없는 짓 덕분에 나씨 가문은 지난 3년간 약속을 깨뜨리고 작은 가문을 겁박하는 신의 없는 가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어! 그리고 네 철없는 짓거리로 가장 욕을 먹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 할애비다!”

“흥…그래서 어쩌라는 거예요! 이미 끝난 일이에요! 제가 알아서 할테니 그만하세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런 약속은 왜 하신 거예요! 따지고 보면 할아버지가…”

“뭐라고? 너…!”

나원승은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드는 손녀의 태도에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 결국 버럭 소리를 지르다 말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 *

시험이 시작된 지 약 30분… 광장에 있던 연금술사들 중 일부는 이미 제련을 마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준은 한순간도 약솥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약재들을 제련하고 있었다.

준은 비 오듯이 흐르는 땀을 닦을 틈도 없이 마지막 약재를 약솥 안에 넣고 10여분 정도 더 약재를 달인 뒤 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유슬, 공주, 준열 역시 아직 제련을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저 녀석들이 아직도 제련을 마치지 못 했다는 건…꽤 대단한 물건을 만들려나보네…역시 쉽지 않겠어.’

잠시 후…이준이 연금비약의 융합을 시작할 즈음이 되자 나머지 세 명도 하나 둘씩 약재의 제련을 끝낸 뒤 곧장 그것들을 약솥 안에 넣고 융합 작업을 시작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거대한 규모의 광장에서 여기저기서 가벼운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연금술에 실패할 때 나는 골치 아픈 소리였다. 폭발음이 난 곳에는 풀죽은 얼굴을 한 연금술사들이 있었다.

……

시간이 흐를수록 연금술사들의 표정이 점점 잿빛이 되어가고,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떤 이들은 조금씩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연금비약을 만드느라 염력의 소모가 극심해 피로감이 몰려온 탓이었다.

“자네가 보기엔 누구의 연금비약이 가장 우수할 것 같나?”

동해는 궁금증이 일었는지 해길에게로 슬쩍 걸어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모르겠네. 거의 모양을 갖출 때 쯤에는 판별이 가능하지만 아직은 짐작하기가 어렵지. 4레벨 연금비약 같은 경우 모양이 만들어지면서 갖가지 향이 나기 시작하는데, 그 향으로 품질을 알 수 있네. 5레벨의 경우에는 품고 있는 에너지의 양이 방대한만큼 모양이 만들어질 때 실제로 염력의 파동이 육안으로 보이고 말이야.”

해길의 설명에 동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시합에 집중했다.

해길의 설명에 동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시합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길의 눈이 반짝였다. 임현의 약솥에서 옅은 약향이 새어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임현과 제법 가까이 있던 공주 역시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고, 유슬 역시 은근슬쩍 몇 번이나 임현의 약솥을 흘깃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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