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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53화 (153/818)

제153화. 마지막 관문

“임현, 내가 보기에는 아직 실력을 전부 드러낸 게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내 생각이 맞나?”

피곤에 절어 반쯤 넋이 나가있던 준은 해길의 갑작스런 질문에 번쩍 정신이 드는 것을 느꼈다.

“네, 사실 아직 조금 숨겨둔 부분이 있긴 합니다만…”

“하하, 사실 난 자네가 서준열 그 빌어먹을 놈을 막아줄 거라고 믿어서 그런 소릴 한거거든.”

“회장님…죄송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협회의 부회장씩이나 되는 사람인데, 제가 이기긴 힘들 것 같은데요.”

“물론 모든 걸 다 맡기고 나 몰라라 할 생각 없네. 녀석이 먼저 룰을 깬 것이니 나도 그에게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

해길은 임현에게 무언가 남은 패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려 동해와 가철을 바라봤다.

“자네 둘은 먼저 들어가게. 임현 친구와 할 얘기가 있으니 말일세.”

동해와 가철은 어리둥절해 서로를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사라졌다.

“무슨 일 때문에…?”

“하하, 따라오게.”

두 투황이 사라지자 해길은 즉시 임현을 이끌고 협회로 이동했다.

어둑한 밤이었지만 연금술사협회는 불빛으로 매우 밝아 마치 대낮 같았다. 문지기들은 한밤중에 갑자기 회장이 나타나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숙인 뒤 즉시 길을 텄다.

잠시 후…임현과 회장이 사라지자 문지기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저 사람… 임현이란 사람 아니야?”

“회장님이 아끼시나봐.”

“참나, 말해 뭐해. 대회에서 하는 것만 봐도 엄청나잖아. 아주 아끼시겠지.”

“저 사람이 우승을 하면 우리 가한제국 연금술사협회 최연소 장로가 되는 건가?”

“천재는 진짜 타고나는 것 같네…”

“그러게 말이야.”

“나는 협회에서 평생을 바쳤는데도 겨우 이정도 계급인데.”

* * *

해길은 한참이나 계단을 오른 뒤 방 문 하나를 열어젖히고 그 안으로 준을 이끌었다.

두 사람이 들어간 방은 제법 널찍했지만, 방 안에는 책장 몇 줄과 낡은 탁자 하나가 덩그라니 놓인 단출한 구조였다.

“앉게나.”

“네.”

해길의 진지한 표정에 준은 지금 이 사태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중대하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먼저 입을 열었다.

“해길 선생님,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십시오. 제 힘이 닿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하하, 아마 대충 예상은 했겠지만, 우승을 차지하는 것과 관련된 일이네.”

“저 또한 우승을 차지하고 싶지만……”

“나도 알고 있네. 내일 시험은 큰 순발력이 필요 없는 시험으로, 개인의 실력이 가장 중요하네. 참가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 다만 재료는 반드시 직접 가져와야 해. 말하자면…내일은 그 어떤 조합표도 제공되지 않고, 재료도 제공되지 않는다는 소리지. 결국 본인의 능력을 발휘할만한 조합표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걸 만들 약재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핵심이야.”

해길의 말을 듣던 준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런 조건이라면 더더욱 서준열을 이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서준열 그 놈은 4레벨의 조합표를 들고 왔을 게야. 재료도 다 갖추고 왔을 테고.”

“그의 실력이라면 5레벨 연금비약도 만들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4레벨 비약을…”

“가능은 하겠지만 실패 확률이 높으니까. 4레벨이 딱이지.”

“하…그렇다 해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지금 제가 만들어낼 수 있는 처방전은 높아 봤자 3레벨 입니다. 게다가 재료도 많지 않고요.”

준의 푸념에 해길은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설마 내가 그 정도도 모르고 있을까봐?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말이야. 조합표와 재료 문제는 내가 모두 해결해 줄 수 있으니 자네 능력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를 확인하고 싶었던 걸세.”

회장의 한마디에 준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거기까지 안배했다면, 정말로 무언가 비장의 수가 있으니 자신을 부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높은 레벨의 조합표와 약재는 모든 연금술사들이 바라 마지 않는 것인데, 그것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큰 기회였다.

“그게 어떤 건지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제 능력이 닿는 한 힘껏 해보겠습니다.”

“흠, 그럼 함께 보도록 하지. 절대 실망할 일 없을 것이야. 이 처방전은 비록 4레벨이지만 그 가치는 5레벨에 절대 뒤지지 않네.”

4레벨 연금비약인 일반 푸른 정령의 비약은 무투사 강자들이 대투사 계급으로 진화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약으로, 대투사가 사용할 경우 낮은 확률로 1성을 올릴 수 있고 부작용이 없어 많은 투사들이 탐내는 물건이었다.

푸른 정령의 비약의 품질은 연금비약 표면에 둘러진 띠의 개수로 확인이 가능하며, 동그란 띠 문양이 세 줄이라면 최고급 연금비약이라 볼 수 있었는데, 세 줄짜리 푸른 정령의 비약은 대투사 계급이 복용할 경우 일정한 확률로 3레벨을 올릴 수 있는 대신 부작용이 존재해 일정 확률로 실력이 1성에서 2성 가량 내려갈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부작용은 없었다.

다만 대투사 계급 강자는 단 한 번 이 연금비약을 활용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는데 한 차례의 복용 후에는 체내에서 면역체계가 만들어져, 그 이후로는 아무리 먹어도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된다. 다만 투령 계급으로 승급한다면 다시 한 번 복용의 기회가 주어지니, 그야말로 환상의 비약 중 하나였다.

그러나 높은 품질의 푸른 정령의 비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 종류의 다른 불을 사용해야 하고, 그 불의 순도가 대단해야 했으니 그야말로 최상급의 난이도를 가진 연금비약이라 할 수 있었다.

해길이 내민 것은 바로 그 ‘푸른 정령의 비약’ 조합표였다.

이준은 두루마기에 기록된 자료들을 세심하게 읽으며 몇 번이고 마른 침을 삼켰다.

연금비약 중에서도 가장 값어치가 높은 것은 바로 승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런 종류의 물건으로, 수요는 폭발적이지만 공급이 드물기에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었다.

“이건 우리 연금술사협회에서 아주 오랜 시간 숨겨놓은 보물이네. 지금 넘겨준 건 복사본이지. 하지만 이 복사본 하나를 만드는 데에 내가 5년을 쏟아 부었지. 세상에 딱 두 개밖에 없는 걸세. 복사본이라 딱 한 번만 읽을 수 있고, 읽고 나면 종이 위에 영혼의 힘이 모두 소진 되지.”

“아아…”

아쉽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소중한 물건의 원본을 넘겨줄 수는 없는 게 당연했다.

“이 푸른 정령의 비약은 4레벨 연금비약 중에서도 최고급에 속하네. 대회 때 이걸 제대로 만들기만 한다면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네. 서준열 그 친구의 실력도 만만치 않지만 내일의 관문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모르니까…이 물건 정도면 승산이 있을 것 같네만.”

준은 해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만들어 낼 수 있겠나?”

“반드시 해낼 거라고 말한다면 믿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연금비약을 제조하는데 절대적인 것은 없으니까요. 다만…제가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 같긴 하군요…”

“그게 어느 정도인가?”

“……50대 50 정도요.”

준은 과장도 겸손도 보태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흠…그 정도면 충분하네.”

절반의 성공률조차 기대하지 않았는지, 혹은 실망스러워도 다른 수가 없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해길은 망설임 없이 준에게 처방전의 복사본을 넘겼다.

“자네를 믿네. 그러니…이걸 넘기지. 자네가 가지게나.”

준은 멍하니 있다 재빨리 두 손으로 두루마기를 받아 들고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해길은 씩 웃었다.

“부탁하네.”

“네.”

* * *

잠시 후. 푸른 정령의 비약의 조합표를 읽은 준은 방대한 정보량에 현기증이 이는 것을 느꼈다. 과연 단왕 고하 이상이라는 해길의 실력으로도 5년이 걸릴만한 물건이었다.

준은 눈을 감고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를 곱씹으며 까맣게 변해버린 복사본을 아쉽게 바라봤다.

“3회분의 재료가 준비 되어 있네. 재료가 적다고 원망하지 말게나. 시합에서는 어차피 세 번 안에 성공을 못하면 그걸로 끝이야. 횟수에 제한은 없지만 시간제한은 있으니까.”

“네, 해길 회장님.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인사드리죠. 대회 때 뵙겠습니다.”

* * *

연금술사 경연대회의 결승전이 치러지는 날.

거리는 대회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온통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길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동해조차도 당혹감을 느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이쪽으로 가지.”

동해는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협회의 대문을 대충 둘러보고는 뒤쪽으로 돌아 옆문으로 들어갔다. 물론 그 곳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지만, 이미 임현과 동해의 얼굴을 알고 있는 병사들은 그들의 진입을 막지 않았다.

……

‘임현’이 입장하자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그의 가슴에 붙어있는 것은 2레벨 연금술사의 휘장이었지만, 어제의 경기로 인해 그 누구도 그를 무시하지 못 했다.

“호호, 임현 선생님, 꽤 일찍 오셨네요.”

건물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준을 발견한 월아 공주가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공주님도 늦지 않으셨네요.”

준은 여전히 월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황실의 수호자 ‘가철’의 실력을 눈앞에서 확인한 이후 그녀와 직접적인 마찰을 빚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조금 성의 있는 태도로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오늘 경기가 마지막이잖아요. 임현 선생님, 절대 저 녀석에게 져서는 안돼요. 아시죠?”

공주가 싱긋 눈웃음을 짓는 순간, 준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즉시 알아챘다.

아마도 월아는 자신이 ‘임현’이나 정체불명의 소년보다 못 하다는 것을 이미 인정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가한제국 황실의 일원인 그녀 입장에서는 적국의 정체 모를 애송이보다는 ‘임현’이 우승하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최선을 다 해야죠. 보통내기는 아니니까요.”

그렇게 공주와 가볍게 인사를 마친 준이 귀빈석으로 다가가 가철, 해길 등과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있는 사이, 회색 망토를 입은 소년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소년의 등장에 시끌벅적했던 경기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고, 좌중의 시선이 못 박힌 듯 한 곳에 고정되었다.

기철과 해길은 준열이 나타나자마자 살기로 눈을 번뜩이며 그를 노려봤다.그러나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변한 서준열은 겁을 먹기는커녕 당당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들을 조롱할 뿐 이었다.

“우승 상품은 고맙게 받아가지. 하하하하!”

소년으로 변신한 중년의 연금술사가 웃음을 터뜨리자, 공주와 유슬은 모두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소년이 자신들보다 몇 수나 앞서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지.”

바로 그 때, 임현이 가소롭다는 듯 한마디를 던지고는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고, 가철은 이 모습을 보고 어제 밤 해길이 임현에게 무언가 도움을 줬다는 것을 확신했다.

“호오…이봐, 해길, 저 친구에게 뭔가 도움을 준 모양이군. 그럼 이제 임현이 저 놈을 이길 수 있는 건가?”

“글쎄…나도 잘 모르겠군.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남은 건 저 친구의 몫이지. 나도 아직 저 친구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 했으니까…그리고 연금술사 일은 재능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야. 경험이 반, 재능이 반. 그런데 경험 차이가 너무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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