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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51화 (151/818)

제151화. 전력 투구

준은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온 정신을 집중시켜 보라색 불꽃을 통제했고, 약재들이 하나하나 순조롭게 융합되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봤다.

“꼬리 바람 잎, 융합 성공!”

“운초…도… 융합 성공!”

“하늘 과일… 융합 성공!”

이준의 예민한 감각들 속에서 모든 약 재료가 추호만큼의 반항도 없이 순조롭게 잘 융합이 되었다.

“모래 깨소금…”

하지만 모래 깨소금을 융합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준의 눈썹이 크게 요동쳤다. 아니나 다를까, 약솥 안에서 끓어오르는 화염이 한 바탕 난리를 치더니 약간의 까만 잿더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효……”

주위 사람들은 실망한 듯 탄식을 했지만, 준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까만 재를 꺼내들어 가볍게 손끝으로 문질러볼 뿐 이었다.

준은 한참이나 조용히 손 끝으로 융합에 실패한 잿더미를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느끼려 애쓰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고개를 돌리니 다른 연금술사들도 비슷한 상태였고, 유슬과 월아를 비롯한 소수의 인원만이 무언가 확신한 듯한 표정으로 두 번째 작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후…어렴풋이 알 것 같긴한데…’

하지만 준은 아직 어렴풋하게 어떤 종류의 가설을 세웠을 뿐,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얻지 못 하고 있었다. 게다가 확신 없이 시작하기에는 기회가 너무 적었다.

그렇게 준이 망설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문제의 소년이 한심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멍청한 놈들…조합표가 틀렸잖아.”

“뭐라고?”

반사적으로 소년의 약솥을 바라보니, 그의 약솥 안에도 까만 재가 들어있었다. 다만 자신과 다른 점은, 그 역시 무엇이 실패의 원인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듯 하다는 점 이었다.

소년의 말에서 무언가 단서를 얻은 준은 잠시 후 마음을 결정하고 약병을 향해 손을 뻗다가 남은 모래의 양을 보고는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너무 적어…’

아무리 계산해봐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이는 준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자명해 보였다.

그러나 준의 약솥에 약재가 들어가고 약 1분 뒤…관객석의 사람들이 하나 둘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푸른 색 화염?”

“뭐라고?”

“아까는 보라색 아니었어?”

두 개의 불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투기 대륙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연금술사가 아니더라도 천지의 불꽃이 신기한 물건이라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두 가지의 불꽃이 섞이면 그 주인을 태워죽인다는 둥, 대폭발이 벌어진다는 둥 형태는 다양했지만, 적어도 두 가지의 불꽃을 융합하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위험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뭐라고?”

한편, 귀빈석에서는 더 큰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연금술사들은 천지의 불꽃이나 다양한 불꽃들에 대해 일반적인 사람들이나 투사들보다 훨씬 세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니, 준이 두 개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더욱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어어…”

푸른 화염의 등장과 동시에 장내의 기온이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하자, 해길 역시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이…이게 뭐야…어째서 저런 젊은이가…”

해길의 반응을 지켜보던 동해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큭큭…그러니까 내가 재미있는 걸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천지의 불꽃에 놀란 것은 가철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는 천지의 불꽃을 가진 상대와 싸워 본 적이 있기에 그 위력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

대지의 불꽃으로 인해 주위의 시선이 온통 자신에게 집중되었건만, 준은 눈썹 하나 까딱 않고 세상에 자신 밖에 없는 양 온 정신을 약솥 안에 쏟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융합 과정에서 그는 ‘모래 깨소금’을 넣지 않고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연금술사는 조합표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이었다.

누가 아까운 영혼 에너지를 써가며 잘못된 조합표를 만들어낸단 말인가. 그러다보니 연금술사들은 일이 잘못 되더라도 결코 조합표를 의심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번 시험에서 심사위원들이 노린 것은 바로 그런 연금술사들의 상식이던 것 이다. 무작정 조합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가, 그리고 두 번 뿐인 기회에서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한 관찰력과 영혼 탐지력을 가지고 있는가, 마지막으로…두 번째 기회에서 그것을 시험해볼 용기가 있는가. 바로 그것이 시험관들의 의도였던 것 이다.

……

준은 열 손가락을 바삐 움직여 아름다운 푸른 불꽃을 조종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고,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준의 손끝에서 춤을 추는 푸른 불꽃을 홀린 듯이 바라봤다.

그렇게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긴장감 속에서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회색 망토의 소년이 먼저 약 솥에서 손을 뗐다.

회색 망토의 소년은 아직도 약솥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는 준과 모래 시계를 바라보며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듯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제한 시간을 알리는 모래 시계의 모래가 거의 다 떨어져 갈 무렵, 장내에 은은한 향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준의 연금비약은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아무리 천지의 불꽃이라 하더라도 도저히 그 시간 내에는 연금비약을 완성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해길은 임현의 패배를 직감한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준의 연금비약이 찬란한 빛을 발하며 급속도로 굳어가기 시작했다.

“미친놈……”

동시에 자신의 자리에서 여유로은 표정으로 준의 작업을 바라보던 소년의 얼굴에 순간 긴장한 기색이 감돌았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저런 식으로 급격하게 온도를 올리면 불과 1~2 도의 온도차이로 성패가 결정되는 연금비약의 제조가 성공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준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와 정확도로 단번에 온도를 맞춰내고 있었다.

……

“하하. 이 자식, 잘 했어!”

해길은 마지막 모래가 떨어져 내리는 순간 준의 연금비약이 완성되는 것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8년에 한번 찾아오는 연금술사 경연대회에서 정체 모를 적국의 연금술사에게 우승을 빼앗기는 것은 회장으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불명예였기 때문이다.

물론 월아와 유슬도 연금 비약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상태였지만, 해길이 보기에 그 둘은 정체불명의 소년에 비할 바가 못 됐으니 임현이 여기서 탈락한다면 우승자가 누가 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리고 또 다시 아슬아슬하게 과제를 마치는데 성공한 준의 모습에 관객석에서도 함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보라색 불꽃에 이어 아름다운 푸른 불꽃이 춤추는 그 광경은 관객들을 달아오르게 만들기에 충분한 볼거리였다.

“정말로 정신 나간 자식이야…”

주희와 초아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쓴 웃음을 지었다.

“미쳤지만 그 순간 만큼은 그도 자신이 있으니까 이런 행동을 감히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한편 경기장 안에서는 월아와 유슬이 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임현 선생, 축하해요. 그런데 앞으로는 이제 그런 미친 행동은 하지 말아주세요, 만에 하나 실수라도 하면…”

“하하, 선생, 정말 대단하군요. 매번 감탄하게 됩니다. 매번 뭔가 시선을 끄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저도 보는 내내 손바닥에 땀이 다 나더라구요.”

이번만큼은 자신이 생각해도 제법 아슬아슬했기 때문에 준은 두 사람에 대한 껄끄러운 감정조차 잊고 진심으로 웃음을 지었고, 가한제국의 세 사람은 그렇게 제법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다만…준이 실패할 것을 확신하고 있던 구름제국의 소년만큼은 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노기 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

시간이 지나고 고막을 찢을 듯 울려퍼지던 환호 소리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2차 경연에서 연금비약 제조에 성공한 것은 정체불명의 소년과 유슬, 월아, 준 넷을 비롯해 십 수명에 불과했고, 경연이 끝날 무렵에는 이미 해가 서산을 지나 그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여러분, 오늘의 대회는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내일은 우리 대회의 마지막 경연이자 우승자가 결정나는 아주 중요한 한 판이니 오늘 밤은 편히 쉬고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해길의 폐회사를 끝으로 경연대회의 첫 날이 막을 내리고, 준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모두 피곤에 절은 표정으로 약솥을 챙겨 자리를 떴다.

* * *

준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고개를 들고 신선한 바깥 공기를 들이마셨다. 팽팽해있던 긴장의 끈이 풀리며 온 몸이 노곤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나설아를 비롯해 주희와 초아, 월아 등이 그에게 다가오자, 준은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에게서 무슨 말이 나올지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다.

“초아 공주님이 오늘 밤 유슬, 월아 공주님과 함께 연회를 열자는데?”

그리고 주희가 다가와 슬며시 연회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준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가뜩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설아에 월아, 거기에 유슬까지 낀 연회에 참석했다가는 몸보다 먼저 정신이 무너질 것 같았다.

“죄송해요, 초아공주님, 오늘은 도저히 힘들 것 같아요. 내일 마지막 심사가 남아있으니 대회에 집중하고 싶네요. 공주님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만…정말 죄송합니다.”

준은 그렇게 자기 할 말만을 마친 뒤 손을 흔들며 부리나케 달아났다.

준은 대회장을 나오고 나서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자신에게 존경한다며 고개를 숙이는 통에 더욱 피로감을 느꼈다.

정말이지 대회보다도 더 피곤한건 사람들의 쏟아지는 관심과 찬사, 그리고 어떻게든 친분을 쌓아보려 하는 그 태도였다.

건성건성 사람들의 인사를 받아주며 숙소로 달려간 준은 문을 열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피곤한 표정으로 이마를 문질러 댔다.

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얼굴에 몇 번이나 찬물을 뿌려댄 뒤 침대 위에 앉아 정신을 집중했다.

……

그렇게 두 시간 가량 지났을까, 이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며 그의 눈꺼풀이 올라가고, 칠흑 같던 시야가 밝게 트였다.

준은 자신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새까만 연기에서 느껴지는 역한 냄새에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버럭 짜증을 냈다.

“염병할…각인 독을 해독하지 말았어야 하는건가.”

그러나 약로의 부활이 걸린 문제일뿐 아니라, 나설아와의 대결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도저히 나원승의 염력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쳇…어찌보면 그 계집애 덕분에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네.’

준은 문득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수련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 이 순간 목숨을 걸고 수련에 정진하는 것도 모두 증오해 마지 않던 나설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묘한 감정이 일었다.

“휴…”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준을 급격하게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다.

달그락.

바로 그 때, 창문 밖에서 인기척이 난 것을 느낀 준은 재빨리 창문을 열고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그러나 그 곳엔 이미 사람의 형상이 보이지 않았고, 지붕 위에 사람이 발을 디뎌 부서진 기와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빨리 도망갈 수 있는 걸 보면 최소 투왕 레벨의 투사라는 소리인데…가한 제국내에 투왕급 강자를 보유하고 있는 세력이라면…나씨 가문, 무씨 가문, 유씨 가문, 황실…어디지? 그리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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