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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50화 (150/818)

제150화. 두 번째 관문

“호오…”

해길의 눈동자가 반짝이자, 동해와 가철이 궁금증을 참지 못 하고 그를 바라봤다.

“뭔데 그러나 이 사람아, 같이 좀 즐기게.”

“허허…아니…저런 자가 어째서 내부 시험을 보지 못 했나 싶어서 말일세.”

“어떤점이 그런지 말을 하라고 이 노친네야!”

성질 급한 동해가 짜증을 내니, 해길이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허허, 자네들은 연금술사가 아니니 모르겠지만…내가 보기에 저 자의 영혼 에너지가 예전 단왕 고하보다 훨씬 대단하군. 월아나 유슬은 비할바도 못 되고…심지어 임현이라는 후배보다도 더 굉장해. 이거 참…놀랍군…”

그 순간, 해길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찬란한 녹색 불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강렬한 불빛은 단박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사람들은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정체 모를 연금술사의 탁자에서 뿜어져 나온 빛과 임현의 빛을 비교해보자마자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자신의 것 보다도 훨씬 더 밝은 빛을 발견하자, 준 역시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누구지…?’

그 순간 준은 유슬도, 월아도 아닌 회색 망토를 걸친 사내야말로 자신의 우승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최평, 저 자에 대한 자료 좀 갖고 오게나.”

최평은 해길의 표정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눈치채고는 재빨리 그의 좌석번호를 파악한 뒤 저장반지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빠르게 해길에게 넘겼다.

종이 위에는 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초상화에 그려진 것은 파란 눈에 흰 피부, 냉혈한처럼 보이는 인상의 사내로, 얼핏 봐도 16~17세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구름제국의 연금술사라고?”

구름제국은 가한제국과 교전이 잦은 국가 중 하나로, ‘독술’로 악명 높은 국가였다. 특히 ‘독술사’들은 정통 연금술사들의 가장 큰 적으로, 전쟁 시기에 온갖 비겁한 수단을 통해 가한제국의 수 많은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존재들이었다.

“왜 겨우 2레벨 연금술사라고 적혀 있지? 저 녀석은 4레벨 연금술사야.”

“17살에 4레벨 염금술사라니요…아무리 천재라도…그건 좀…”

“아냐,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을 게야.”

부회장인 최평조차 해길의 말을 믿지 못 했지만, 해길의 태도는 단호했다.

“아니야. 변신술이라도 해서 온 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네. 게다가 연금비약을 만드는 솜씨를 보니 절대 하루 이틀 연습해서 나올 수준이 아니야.”

“그럴 리가. 그랬다면 우리의 눈을 속이기 어렵겠지. 뭐 변장이야 사정에 따라 할 수도 있는 거고.”

옆에 있던 가철 역시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그는 ‘변장’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잠시 임현에게서 시선을 멈췄다가 이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눈길을 거뒀다.

“그래? 그럼 내가 저 녀석의 실력을 알아보지.”

“무슨 수로 알아내려고 하지? 자네는 연금술사도 아니지 않은가…”

자신감 넘치는 동해의 한 마디에 해길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6레벨 연금술사인 자신도 모르는 것을 일반 투사가 알 수 있다는 말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염력으로 녀석의 몸을 감싸면 대략적인 실력은 알아볼 수 있지.”

“오오, 그럼 자네가 한 번 알아봐주게.”

동해의 설명에 해길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얼음왕은 자신의 염력을 은밀히 감추어 회색 망토를 뒤집어 쓴 사내에게 쏘아 보냈다.

소년에게로 다가가는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의 곁을 스쳤지만, 그 누구도 동해의 염력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동해의 기운이 막 소년을 감싸려던 찰나, 소년이 갑자기 몸을 돌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염력을 피하더니 동해가 서 있는 곳을 바라봤다.

‘이 녀석 정말 보통이 아니야. 내 기운은 물론 위치까지 정확히 찾아내다니…’

회색 망토를 두른 소년은 망토를 열어젖히며 동해와 눈을 마주치더니 소리 없이 조용히 입술을 움찍거렸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할 겁니다?”

"어때? 변신술인가?"

해길은 반쯤 넋이 나간듯한 동해의 표정을 보고는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그를 채근했다.

"아니, 전혀 그런 기색이 없어. 그것보다…내 염력이 닿기도 전에 내 염력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 하네. 게다가 나를 쳐다보고 저렇게 말한다는 것은…이쪽의 의도까지 완벽히 꿰뚫어 본 듯 하군. 보통 영리한게 아니야."

"그렇다면 정말 저 나이가 맞단 말인가…? 17살에 4레벨 연금술사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그보다 어이없는 것은…나이답지 않은 영리함과 치밀함일세. 말도 안돼. 일부러 내부시험을 피하고 평범한 시험을 봐가면서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고? 그리고 내 염력을 파악하고, 그 의도까지 파악해낸단 말인가? 17살 짜리가?”

동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용모를 바꿔주는 연금비약이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하나?”

“음…하지만 그런 연금비약은…몹시 귀하고 특수해서 말이야…조합표도, 재료도 구하기 힘들고, 제조하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일 그런 보물을 구했다면 스스로 나이를 말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진짜 나이를 추측할 수 없네.”

"그렇다면 백발노인도 소년으로 위장해 대회에 참여할 수 있다는 소리인가?“

"가능성이 없다고 말은 못 하지만…그게 그렇게 만들기 쉬운 연금비약이 아니래도…"

해길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동해는 이미 심증을 굳힌 듯 했다.

“내가 장담하지. 절대 17살일 리가 없네.”

“그렇다고 자네 말만 믿고 다른 사람들 보는 앞에서 저 자를 끌어낼 수도 없지 않은가? 일단 대회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지. 구름 제국의 연금술사가 우승하더라도…할 수 없고.”

그러나 해길의 한마디에 동해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연금술사도 별 거 아니군. 내가 보기에는 임현이라는 친구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저 친구도 꽤 재미있는걸 가지고 있거든.”

“허허…임현이라는 친구도 재능이 넘치긴 하지…뭐 혹시 그 친구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해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말은 ‘임현 정도라면’ 하는 식으로 하고 있었지만, 그는 내심 회색 망토의 사내가 우승할 것 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뭐, 알아서 할 일이지."

해길의 말에 결국 동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뒤로 슬쩍 뒤로 몸을 뺄 수 밖에 없었다. 어찌됐든 이 대회를 책임지는 자는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돼! 저렇게 어리다고?’

사내가 망토를 걷어 젖히는 순간, 이준과 주위의 연금술사들은 하나 같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 했다.

“저 녀석 구름제국 사람인가보군요?”

월아 공주는 소년의 가슴팍에 달린 휘장을 바라보며 못마땅한 듯 이마를 찌푸렸다. 구름을 가르고 해가 떠오르는 형상은, 확실히 구름제국의 그것이었다.

“구름제국 사람이라니, 아주 재밌게 됐어…”

유슬은 구름 제국의 휘장을 보자마자 입술을 앙다물었다. 단왕고하의 제자인 그는 구름제국에 대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준은 구름제국에 대해 딱히 악감정이 없었으니,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장내가 충격에 휩싸여 있을 때, 해길이 몸을 일으켰다.

“좋습니다. 이제 두 번째 관문으로 넘어가지요. 탁자 왼쪽 구석의 빨간 단추를 눌러주세요.”

해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연금술사들이 붉은 단추를 누르자 방금 전까지 튀어나와있던 기둥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탁자 안에서 다양한 약재가 올라왔다.

“이번 관문은 정통 제조법을 그대로 따릅니다. 저희 협회 관계자들이 총 동원해서 수 개월동안 힘들게 만들어낸 처방전을 드릴 테니 연금비약을 만들어 내십시오. 여러분들 앞에 2회분의 재료가 놓여 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약재를 모두 소진했음에도 무언가를 만들지 못했다면 자동 탈락입니다.”

준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유슬과 공주 또한 갑자기 낮아진 난이도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무슨 소리야…정석대로 쓰인 처방전을 보고 약재를 만들라니…왜 굳이 1단계보다 쉬운 시험을…’

그러나 의문을 품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으니 준은 묵묵히 돌돌 말려 있는 두루마리를 서서히 펼쳐보았다.

‘바람의 파편, 3레벨 연금비약, 효능: 복용한 사람이 단시간 내에 천지의 바람 속성 에너지에 대한 민감도가 상승하며 이동 속도가 빨라진다라…꽤 유용한 연금비약이군…인심도 후하지. 이런 처방전이면 최소 10만 골드는 할텐데 말이야…’

준은 조합표를 다 읽자마자 곧바로 입 안에서 보라색 불꽃을 토해냈다.

처방전을 읽던 대부분의 연금술사들의 표정에는 의혹과 안도감이 뒤섞여 있었다.

자리에 있는 자들 중에는 갑작스럽게 낮아진 난이도에 의문을 가진 자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하나 둘 불을 지필 수 밖에 없었다.

준 역시 눈을 부릅뜨고 화로 속에서 피어오르는 보라빛 화염을 응시하다가 화염의 온도가 올라가자 서서히 약재 하나를 그 안에 넣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준이 제련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유슬과 월아도 불을 피워 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상세한 정통 처방전이 있으니 그들의 실력이라면 ‘바람의 파편’ 따위를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한편 귀빈석 앞쪽에 있던 해길의 눈은 구름 제국의 소년에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흠… 이런 능숙한 손놀림은 몇 십 년 간의 단련 없이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인데 정말 이상하군…”

* * *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력이 있는 참가자들은 이미 필요한 약재 성분을 다 제련해낸 상태였다.

하지만 일이 너무 쉽자 오히려 불안에 휩싸였는지, 그들은 잠시 주저하다가 정제된 약재를 약 솥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준은 찝찝한 마음에 불덩이에서 솟아오르는 약재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매우 조심스럽게 약재를 제련하고 있었다.

그는 너무 쉬워진 과제에 무언가 함정이 있을거라 생각하는 동시에 다른 참가자들을 보고 약간의 정보라도 얻기 위해 아주 천천히 약재를 제련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천히 약재를 제련하는 동안 아무런 이상징후도 발견하지 못 했고, 이는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준은 아홉 개의 약병에 제련된 약재가 가득 찰 때까지 아무런 이상을 찾지 못 하고 마지막 단계를 맞이하게 됐다.

그러나 준이 막 약솥에 재료를 넣으려는 순간, 왼쪽 방향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조합표대로 했는데…?”

융합에 실패한 연금술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작업에 들어갔고, 준은 잠시 약병을 든 손을 멈춘 뒤 그를 유심히 바라봤다.

‘저 사람… 3레벨이었지? 실력도 좋았어. 절대 온도 조절 같은데서 실수를 할 실력은 아니었는데…’

곧이어 광장 여기저기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약 솥안에 검은 재가 들어차기 시작하자, 준은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가졌다.

펑, 펑…

바로 그 때, 유슬과 월아의 약솥에서도 실패를 의미하는 ‘펑’ 소리가 울려퍼졌다.

……

"뭔가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귀빈석에 있던 주희는 멍한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연금술사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것 같긴 해…나도 연금술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처방대로만 했다면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 특히 유슬이나 내 동생 정도 되면 완벽한 조합표를 들고 3레벨 연금비약 제조에 실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되지…그런데 너나 할 것 없이 실패하고 있네.”

초아 역시 주희와 같은 생각인 듯 했다.

잠시 후, 하나 둘 탈락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자 거의 모든 연금술사들이 선뜻 두 번째 재료를 약솥에 집어넣지 못 하게 되고 말았다.

한 번의 기회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왜 실패했는지도 모르고 마지막 기회를 날릴 수 없다는 분위기가 광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 이르자,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준이 약솥에 제련된 약재를 쏟아 넣기 시작했다.

‘난 아직 기회가 있어. 그렇다면 이번 한 번의 시도로 뭐가 문제인지를 찾아야 해. 다른 사람들의 실패는 여러 번 봤으니까…뭔가 찾아낼 가능성도 그만큼 높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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