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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49화 (149/818)

제149화. 심장이 뛰다.

준은 다른 연금술사들처럼 곧바로 불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종이를 읽어내려 갔다. 단 두 번뿐인 기회를 성급하게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시험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연금비약의 이름은 ‘생명과 뼈’로, 2레벨 단약이었으며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다친 상처를 치유해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생명과 뼈’는 시장에서 대략 몇 백 골드에서 많으면 천 골드 정도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물건이었으니, 염력을 올려주는 다른 연금비약보다는 조금 저렴한 편이었다.

‘생명과 뼈’를 만들기 위해서는 총 6가지 약재가 필요했는데, 세부적인 사항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준이 만들어 온 상처 치유제와 대략적인 제조 방법은 비슷한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기회는 두 번 뿐이니, 신중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게다가 준은 다른 참가자들보다 더 강한 불꽃을, 더 정교하게 조절할 자신이 있었으니, 조금 늦게 시작하더라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준은 모든 내용을 차분히 되새기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유슬과 월아를 바라봤다.

사실 그는 연금술을 배운지 3년 밖에 되지 않았으니, 어릴 때부터 훌륭한 선생님과 가문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두 천재의 연금술 지식에 비하면 연금술에 대한 자신의 지식은 얄팍하기 짝이 없었다.

‘후…불꽃 조절능력이나 화력이야 스승님 덕에 어떻게 해결이 됐지만…이 부분만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군.’

그리고 경기 시작으로부터 약 10분…광장에서 하나 둘 실패한 연금술사들이 창피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지만, 준은 그제서야 약 솥을 꺼내들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 사자의 불꽃이 담긴 알약을 천천히 씹어 보라색 불꽃을 쏟아내자, 순식간에 장내의 시선이 모두 한곳으로 쏠렸다.

물론 광장 안에는 다른 특이한 화염도 드물게 보였지만, 확실히 입에서 뿜어진 보라색 화염만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없었다.

보라색 화염은 준의 손 위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춤을 추다가 약 솥 안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순간 엄청난 불꽃이 약 솥에서 치솟으며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곧이어 준의 손끝을 따라 약솥 안에서 보라색 불꽃이 춤을 추기 시작하고, 약재가 투입되자 보라색 불꽃이 은은하게 불타며 약재를 감쌌다.

준은 재료 하나를 제련하는 데에만 10분을 사용한 뒤에야 두 번째 재료를 조심스레 약 솥에 투하했다.

곁에서는 공주와 유슬 역시 평온한 표정으로 연금술을 이어가고 있었다.

펑—!

바로 그 때, 멀지 않은 곳에서 굉음과 함께 약 솥이 터지며 갈라졌다. 지나치게 뜨거운 불로 가열 된 약 솥이 그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고 만 것이었다.

‘불쌍한 녀석…’

실패한 사람은 3레벨 연금술사였다.

* * *

시간이 흐르며 커다란 광장 안에선 끊임없이 탈락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그 때 마다 연금술사들이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절반이 넘는 연금술사들은 여전히 침착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준과 마찬가지로 처방전을 꼼꼼히 읽으며 약재를 제련하기 시작한 자들이었다.

한편 벽 쪽에 놓인 거대한 모래시계는 벌써 반이나 떨어져 있었다.

이제부터는 약재를 융합해 진정한 생명의 뼈를 만들어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 절차는 이전의 제련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운 단계로,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게 된다면 약재가 몽땅 불타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일쑤였다.

준은 조금 더 연금비약 제조에 집중하기 위해 염력으로 보호막을 만들어 외부 소음들을 모두 차단하고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자, 확실히 약을 만드는데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준은 조심스럽게 눈을 감고 약병을 들어 그 안의 내용물을 약솥에 쏟아부었다. 병안에 들어있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정성껏 제련한 약재가 들어 있었다.

준은 영혼의 힘을 이용해 신중하게 보라색 불꽃를 조절하며 약재의 분말을 이리 저리 가열해 서로 융합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방금 전까지만 해도 활활 타오르던 그의 보라색 불꽃이 갑자기 거짓말처럼 사그러들자, 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아차…’

이준은 잿더미가 된 약재를 보며 이마에 손을 올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몰두한 나머지 보라색 불꽃의 지속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 이다.

‘후…이제 한 번 남았군. 시간도 얼마 없고…’

한편 유슬과 월아 공주는 이미 연금비약을 거의 다 완성한 것 같아보였고, 이 사실이 준의 마음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실수를 했지만 ‘생명과 뼈’를 제조하는 방법은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 두 번째 시도에서는 더욱 물 흐르듯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할 자신이 있었다.

“후…”

그는 저장반지에서 자신이 만들어둔 알약을 꺼내 보라색 불꽃을 토해낸 뒤 다시 한번 작업을 시작했다.

곧이어 준이 6개의 약병에 담긴 약재를 동시에 쏟아 넣는 순간, 해길과 오탁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6개 약재를 동시에 융합할 셈인가? 아무리 시간을 절약한다고 해도 그렇게 하면 영혼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클 텐데…”

……

땡—

잠시 후 약 솥을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약솥을 가장 먼저 친 사람은 유슬이었다. 그의 손에는 반들반들한 형태를 자랑하는 붉은 색 알약이 쥐어져 있었다.

땡—

땡, 땡, 땡……

곧이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온 광장이 약 솥이 울리는 소리로 가득 차고, 약 솥에 있던 연금비약들이 각자의 주인의 손바닥 위에서 그 신비한 자태를 뽐냈다.

“시간이 거의 다 됐군……”

오탁은 누구보다 초조한 심정으로 손에 땀을 가득 쥐고 있었다.

‘에이이잉…! 왜 이 녀석은 매번 이렇게 사람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게야!’

그 때, 광장 안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중앙에 자리 잡은 ‘임현’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다들 입에서 보라색 불꽃을 뿜어내던 소년이 연금비약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땡—

그리고 제한 시간이 끝나기 직전, 혼탁한 색깔의 연금비약이 하늘로 튀어올랐다.

준이 평온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아래로 떨어지는 연금비약을 잡는 순간, 마지막 모래가 떨어지며 곳곳에서 탈락 신호가 울려 퍼졌고, 탈락된 연금술사들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약 솥을 챙겨서는 광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힘 없이 터벅터벅 퇴장하는 참가자들을 보며 준은 이 대회가 만만치 않음을 실감했다. 첫 번째 관문에서만 1/3 정도 되는 탈락자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준이 고개를 돌리는 찰나, 옆에 있던 유슬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임현 선생, 아슬아슬했군요. 다행입니다.”

“그러게요.”

준은 은연중에 자신에게 경쟁심을 드러내면서도 시종일관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하는 유슬이 영 고깝게 여겨져 또 다시 짤막한 대답만을 한 뒤 입을 다물어 버렸고, 유슬은 반복되는 준의 차가운 태도에 마음이 다시 한번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 자식, 항상 사람 심장을 떨리게 하는 뭔가가 있다니까. 노인네들 생각은 하나 안 하는 놈일세 정말.”

한편, 귀빈석에 앉은 오탁은 준이 간신히 시간을 맞추는 장면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군. 어쨌든 마지막 순간에 잘 완성해 시험을 무사히 통과 해줬으니 말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내부 시험 1등이 첫 번째 관문에서 바로 낙제가 될 뻔했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그게…”

만석의 말에 오탁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만석의 말대로 되었더라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을 것 이다.

곧이어 해길이 다시 무대 앞으로 나오자 어수선했던 광장에 다시 한번 정적이 찾아들었다.

“광장에 남아있는 여러분, 첫 번째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간혹 가다 잔머리가 비상한 참가자들이 모양만 비슷한 연금비약을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과 뼈’에는 아무런 치유효과가 없겠죠. 그걸 과연 연금비약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여러분들께서 만드신 ‘생명과 뼈’의 효능을 확인해보겠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각자의 탁자 오른쪽 하단에 있는 초록색 단추를 눌러주십시오”

이준이 탁자를 자세히 살피자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초록색 버튼이 마련 되어 있었다. 그가 버튼을 누르자 작은 구멍이 뚫린 기둥이 올라왔다.

“지금 그 기둥이 바로 측정기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만드신 ‘생명과 뼈’를 넣으시면 자동 측정이 시작되며, 기준에 부합하는 약이라면 초록불이 들어올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빨간불이 들어올 것입니다. 빨간불이 들어오면 실패이니 그 분은 곧바로 퇴장해주시면 됩니다. 참고로 초록불이 밝을수록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빨간불이 밝게 빛나면…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껍데기라는 의미가 되겠죠.”

일부 연금술사들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연금비약을 구멍 안에 밀어 넣었고, 곧바로 2레벨 연금술사 하나가 얼굴을 붉히며 탁자를 내리쳤다.

“제기랄! 무슨 이딴 게 다 있어? 제대로 된 방식으로 연금술을 시키면 어디 덧나나. 노인네들이 머리가 어떻게 됐나보군. 그 약재들을 한 데 섞는 것만 해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제대로 된 처방전을 주는 것도 아니고, 뭘 만들라는 거야? 망할 놈들…”

바로 그 때, 월아 공주가 그 사내를 무시하듯 피식 웃음을 지으며 준에게 말을 걸어왔다.

“하하, 임현 선생님, 같이 하시죠…”

“뭐 그러죠.”

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유슬 역시 두 사람을 따라 거의 동시에 자신이 만든 연금비약을 기둥 안의 작은 구멍에 밀어넣었다.

세 사람이 연금비약을 투입하는 순간, 무수히 많은 갈래의 빛이 사방으로 발산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람들은 가장 빛이 밝게 나는 곳이 어느 쪽인지 확인하고자 눈을 찌푸린 채로 유심히 세 사람의 측정기를 바라봤다.

“와! 어떻게 저런 색이 나오지!”

그리고 다음 순간, 관객석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세 사람의 기둥은 모두 대단한 빛을 뿜고 있었지만, 누가 보기에도 준의 그것이 가장 밝았다.

“흐음. 임현 선생님…역시 엄청나네요.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어도 이 정도의 약효를 지닌 연금비약을 만들 수 있다니. 아주 놀라워요. 저는 상대도 안 되겠는 걸요?”

월아는 임현과 좋은 관계를 만들기로 작정했는지 아주 대놓고 아첨을 하고 있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준이 예의 그 짤막한 대답과 함께 고개를 젓는 순간…유슬은 자기도 모르게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하하, 역시 임현 쪽이 조금 더 낫군.”

해길은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 있던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영혼 탐지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유슬과 월아, 임현 세 사람 중 누가 가장 뛰어난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해길은 광장 구석에서 조용히 자신의 비약을 구멍 안에 밀어 넣는 회색 망토의 사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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