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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41화 (141/818)

제141화. 숨겨진 상대

나원승도 유슬이라는 청년이 대단한 천재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3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준의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 유슬과 자신의 손녀가 가깝게 지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대회 개최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선생님께서 먼저 가서 어떤 강자들이 있는지 미리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르신께도 꼭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유슬은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나원승의 말을 받아넘긴 뒤 다시 ‘임현’을 바라봤다.

“임현 선생님! 정말 대단하시더군요. 이렇게 어린 나이에 어르신을 도와 각인 독을 제거하시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저희 선생님께서도 가지고 있지 못한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계시다니…역시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군요!”

“당신 선생님이 누구시죠?”

“아! 단왕 고하께서 제 스승 되십니다!”

“아, 고하님의 제자군요.”

유슬은 상대가 고하의 이름을 듣고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적잖이 당황했다. 굳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고하의 이름을 듣고도 놀라지 않는 연금술사는 눈 앞에 있는 사내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사내의 그런 태도는 유슬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혹시 임현 선생님의 스승이 어떤분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산에서 은거하시는 분입니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알려지기를 원하시지도 않는 분이라서 말씀드리기가 어렵군요.”

“굉장히 겸손하시군요. 이렇게 어린 나이에 2레벨 연금술사가 되시고 천지의 불꽃까지 다루시는데…배울 점이 많습니다. 제자가 이리 훌륭하니 스승님이 얼마나 대단하실지는 안 봐도 알 것 같습니다.”

유슬이 너무 친근하게 굴자 다소 불편해진 준은 대문이 가까워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할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뵙죠.”

준이 사라지자 유슬은 즉시 눈을 빛내며 나설아를 바라봤다.

“설아야 저 사람 진짜 이화를 갖고 있는 거 맞아?”

“응. 임현 선생님도 실력이 뛰어난 분이셔. 불꽃 제어 능력도 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더라구…어쩌면 너보다 뛰어날 수 있겠다.”

* * *

한편, 방안에서 수련을 마친 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뜨고 있었다.

‘하아…나원승의 염력이 대단한건 좋은데…이 독을 어떻게 해야 하지?’

준은 갈수록 새카맣게 변해가는 손가락을 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단단히 닫힌 방문이 열리며 동해가 걸어 들어왔다.

“표정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데. 혹시 나씨 가문 쪽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아닙니다. 이 독 때문에요…아무래도 나원승의 독을 제거할 마다 제 몸 속 독의 농도가 점점 짙어지는 것 같습니다.”

“농도가 짙어진다고?”

준의 대답에 동해는 한쪽 눈을 치켜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굳이 그 독을 제거해줄 필요가 있나? 누구 좋으라고 그런 일을 해.”

“어쩔 수 없습니다. 정령의 꽃이 꼭 필요해요.”

“흐음…뭐 자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만…”

“걱정마세요 선배님,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드린 소생의 비약은 반드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준이 싱긋 웃으며 소생의 비약 얘기를 꺼내자, 동해는 머쓱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흠흠…아니…그것 때문이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지만…꼭 그것 때문에 걱정하는건 아니야. 자네 내가 그렇게 밖에 안보이나?”

동해의 반응에 준 역시 피식 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하, 아닙니다 선배님. 그냥 확실히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보다…제가 방안에서 혼자 해야 할 일이 좀 있는데, 죄송하지만 잠시 자리를 비워주실 수 있을까요?”

준이 반지에서 약재를 늘어놓으며 말을 꺼내자, 동해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연금술사들이란 자신이 약을 만드는 과정을 절대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법이니 이해하지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래, 알겠네. 난 산책이나 좀 하다오지.”

문이 닫히자마자 준은 약솥으로 시선을 옮긴 뒤 약재들을 어루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지금의 그라면 3레벨 연금술사 시험정도는 반드시 합격할 자신이 있었다. 불꽃의 씨앗을 흡수한 이후로 그는 이미 자신의 불꽃 제어 능력이 4레벨 연금술사에 가깝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래 봤자 연금술사 총회에서 우승 하기는 힘들어. 상대가 그렇게 만만할 리도 없고 말이야.’

그러나 오늘 만난 ‘유슬’이라는 고하의 제자를 떠올리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비록 그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마을을 떠난 이후로 그렇게 강렬한 느낌을 주는 사내는 처음이었다.

‘흥…그래도 질 수는 없지. 스승님이 고하보다 나은데, 고하의 제자에게 내가 지면 뭐가 돼!’

준은 결의를 다지며 대지의 불꽃을 끌어올려 약 솥에 불을 당겼다.

<별의 파편. 3레벨 연금비약. 복용하는 사람이 수련 상태일 때 외부 에너지에 대한 민감도를 증가시키고 염력 흡수 속도를 증가시킨다. 제약 재료: 30년 산 푸른 세잎초, 잘 익은 복심과, 10년산 영혼의 잎사귀… 3급 요수의 핵.>

그는 조용히 머릿속으로 3레벨 연금 비약의 조합표를 떠올리며 불꽃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첫 번째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고, 약재도 모두 버려야 했다.

‘흥, 연금술사에게 실패는 당연한거야. 스승님도 그렇다고 하셨는걸.’

그는 실패의 경험을 토대로 두 번째, 세 번째 시도를 거듭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자 광택이 나는 별의 파편이 드디어 솥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준은 약병 안에 별의 파편을 집어넣고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다시 연습에 돌입했다.

오후 내내 연습한 결과 이준의 제약 성공률은 놀라운 속도로 향상되었고, 준은 만들어낸 별의 파편을 모두 약병에 담아 저장반지 속에 넣은 뒤 침대로 돌아갔다.

……

이준이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날이 밝은 상태였다. 그는 멍하니 텅텅 빈 방 안을 바라보다가 간단하게 세수를 한 뒤 다시 나씨 가문의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해독도 지난 번과 비슷하게 진행됐다. 조금 다른 것이라고 하면 그의 뒤에서 유슬이 지켜보고 있다는 정도였다.

그렇게 유슬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해독을 마친 준은 작업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떴고, ‘임현 선생’이 사라지자마자 유슬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원승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르신, 혹시 저 임현이라는 연금술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왜 그러지? 임현 선생은 우리 나씨 가문의 귀빈이고, 내 독을 제거해주신분이다. 그게 끝이야. 그 이상은 궁금하지도 않고 궁금해 할 필요도 없지. 그게 왜 궁금하지?”

경험 많은 나원승은 임현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느끼고는 즉시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하하, 아닙니다, 그저 궁금해서…너무 대단하신 분이라서요.”

유슬 역시 나원승의 눈빛에서 묘한 기척을 읽었는지 즉시 표정을 풀고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행이군. 우리 나씨 가문은 앞으로도 그 분과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으니까.”

나원승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떴고, 유슬은 그가 사라지자마자 갑자기 나설아를 바라보며 달콤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설아야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알지?”

하지만 나설아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

“갑자기…? 아직 너랑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 지금은 그냥 친구로 지내자. 네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나도 잘 알지만 별로 마음이 끌리지 않아서 말이야. 아직까지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지도 않는 것 같고. 난 평범한 사람은 싫어.”

나설아는 제 할 말만 하고 방밖으로 나가버렸고, 유슬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래…네가 눈이 높다는 건 나도 아주 잘 알고 있어. 그러니 이번에 보여주지…! 내가 가한제국 최고의 천재라는 걸.’

* * *

침대 위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준의 몸 주변에 격렬한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주위를 둘러 싼 푸른 불꽃의 색이 점점 더 진해졌다.

곧이어 에너지의 수준이 최고조까지 달하자 주변의 에너지 파동이 급격하게 조용해지더니 준이 한숨을 내쉬는 순간 검정색의 기체가 뿜어져 나오며 자신에게 닿는 모든 것을 녹여버렸다.

“7성 무투사가 된 건가…”

준은 체내에서 넘실거리는 염력을 느끼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원수의 몸에서 뽑아낸 기운은 자신을 성장시켰고, 원수의 몸에서 옮겨온 독은…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었다. 7성 무투사가 되었건만 마음이 복잡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왜 아직도 안 돌아오지?”

승급을 마친 준은 아직도 동해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며 방문을 열고 일단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실력으로 동해를 걱정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 이었다.

지금은 그런 것 보다는 코 앞으로 다가온 대회를 준비하는 것이 시급했다.

밖으로 나온 이준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며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거리 곳곳에는 완전 무장을 한 병사들이 말 위에 올라 순찰을 돌고 있었다.

‘역시…큰 행사이긴 한 모양이네.’

넓은 길거리를 통과해 한참을 이동하자 비로소 연금술사 협회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안에는 엊그제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준이 막 인파를 뚫고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장내에 소란이 일며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소란이 일어난 곳에는 귀족풍 마차가 서 있었고, 그 앞에는 눈처럼 하얀 백마가 조용히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마차는 온통 황금색 장식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마차의 좌우로는 파란 화염을 내뿜는 괴물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황실의 문장이군…’

마차 주위로는 십 여명의 검은 망토를 입은 투사들이 둘러서 있었고, 그들하나하나가 만만찮은 실력자들이었다.

곧이어 그 중 하나가 마차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자, 보라색 천 위에 아름다운 은색 자수가 새겨진 옷을 입은 여자 하나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의 조막만한 얼굴에는 또렷한 이목구비가 절묘하게 제 위치를 지키고 있었고, 온 몸에서는 황족의 여자다운 고고한 기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가한 황실의 공주님이시잖아! 당연히 연금술사 총회 때문이겠지?”

“공주님의 천재성은 협회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수준이라던데. 나이는 어려도 실력이 엄청나대. 반년 전에 3레벨 연금술사로 승급 하셨다더라.”

“허…”

누군가가 그녀의 신상 정보에 대해 읊어대자, 장내의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이도 어려보이는데 3레벨 연금술사라니…대단하네.’

하지만 3레벨 연금술사라는 말을 듣고도 준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황실의 끝도 없는 지원을 받는다는 조건을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3레벨 연금술사가 되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잠시 후 보라색 옷을 입은 아가씨는 검은 망토들의 호위 아래 인파속을 통과해 그대로 사라졌고, 준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협회 건물의 서쪽 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도 서쪽 구역에는 두 명의 호위병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준을 보더니 즉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문을 열었다.

‘흠…부회장님의 지시가 있었나보네.’

준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호위병들에게 감사를 표한 뒤 지난번 오탁과 함께 갔던 방까지 서둘러 이동했다.

오늘 방 안에는 오탁이 홀로 앉아 있었다.

“녀석, 마침 잘 왔다.”

“하하, 오기로 했으면 약속을 지켜야죠. 이번에는 대회가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지 좀 여쭤보고 싶어서 왔어요. 제비뽑기 형식인가요? 아니면 다른 방식이 또 있나요?”

“참가하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데 일일이 제비뽑기를 하려면 어느 세월에 다 하겠니.”

오탁은 말을 하면서 탁자 위에서 종이 두루마리 한 장을 집어 이준에게 건넸다.

“내부 문서다. 규정상 외부로 유출해서는 안 되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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