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138화 (138/818)

제138화. 보물 털기

나씨 가문의 저택을 빠져 나온 준은 서둘러 동해가 기다리고 있는 숙소로 돌아갔다.

방에 도착하자, 동해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자연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었다.

‘괜히 투황이 아니군…별 다른 사고만 없다면 앞으로 최소 50년은 날아다니시겠어…’

그렇게 준이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 사이, 동해가 갑자기 눈을 떴다.

“잘 됐나?”

“나원승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나쁘더라구요. 일주일은 걸릴 것 같아요.”

준의 말을 듣는 동해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호오…천지의 불꽃을 사람 몸에 집어넣는게 정말 되긴 되는군…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웬만한 상급 연금술사들도 그 짓 못한다던데…동생이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한가보군. 매번 놀라워.”

“하하…운이 좋았지요 뭐.”

소년은 얼음왕의 칭찬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겸손하게 답한 뒤 침대 위에 올라가 자세를 잡고 서서히 눈을 감았다.

‘하아…각인 독이라는게 내 생각보다 훨씬 지독하군…대지의 불꽃으로도 다 태워 없앨 수가 없다니…과연 투황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만한 독이야.’

준은 자리에 앉자마자 정신을 집중해 대지의 불꽃을 끌어올려 나원승의 몸에서 불꽃을 거두어 들일 때 미약하게 흘러들어온 각인 독을 태워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무시무시한 열기와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까만 구슬 모양으로 변화했다.

바로 그 때, 준은 까만 구슬에서 무언가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것을 느끼고는 푸른 화염 속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검은 구슬을 유심히 바라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각인 독이 이런 에너지를 갖고 있을 리가…’

그 와중에도 검정 구슬은 푸른 화염에 달궈지며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진해졌다 연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 속에서 한참을 요동치던 검정 구슬은 이윽고 흰색 빛이 반짝 거리는 작은 공이 되었고, 구슬을 둘러싼 투명한 보호막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들끓고 있었다.

‘엄청나게 순수한 에너지야…독소가 이렇게 순수한 에너지를 갖고 있을 리가 없는데…’

그때 이준의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갔다.

‘나원승의 염력이군…!’

생각치도 못한 수확에 이준은 웃음을 지었다. 약로도 없는 지금 이 정도의 순수한 염력을 흡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준은 그것이 나원승의 염력이라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즉시 자신의 불꽃으로 새하얗게 변한 공을 건드려 그 에너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너지를 빨아들이기 시작한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준은 자신의 염력 회오리안에 20방울에 가까운 염력이 모여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도 안돼…이 정도면 얼마 지나지 않아 7성 무투사가 될 수 있겠는걸? 괜히 투왕이 아니군!’

그렇게 준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갑자기 동해가 말을 걸어왔다.

“동생, 갑자기 꽤나 강해진 것 같은데?”

준은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이내 서늘한 기운이 내려 앉았다. 자신의 손 끝이…까맣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헉…”

“왜 그러나?”

동해 역시 준의 얼굴이 갑자기 새파랗게 질린 것을 발견하고는 즉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건…각인 독 아닌가? 어쩌다 자네 몸에 전염 된 거야?”

“모르겠어요…나원승의 몸에 너무 오래 들어있어서 성질이 변하기라도 한걸까요? 어떻게…이게 내 몸에…”

“퍼지면 큰일이야. 당장 자네 몸을 살펴보게.”

동해의 한마디에 정신을 차린 준은 즉시 염력을 끌어냈고, 자신의 몸 밖으로 나온 염력을 보자마자 더욱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의 염력 표면에 검은 색 얼룩이 생겨나 있었기 때문이다.

“허허…자네 염력에 들러붙은 모양인데?”

“이상하네요…아프거나 불편하지는 않은데…”

준이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움직이자, 검정색의 얼룩도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군. 지금 상황으로 봐선 독성 반응도 없는 것 같고. 혹시…독을 다룰 수 있게 된 건 아닐지……”

동해의 조심스러운 추측에 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염력을 다시 한번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까만 문양이 한군데에 뭉치며 자신의 손가락을 까맣게 물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이게 뭐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문을 알 수 없는 변화였다. 준은 한참동안이나 검은 문양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보다가 갑자기 동해를 바라봤다.

“어이…동생, 그러지마.”

동해는 자신을 바라보는 준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느끼고는 즉시 인상을 쓰며 뒤로 물러났다. 나름대로 준과 붙어 다닌 시간이 꽤 됐으니, 이 소년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 정도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이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선배님.”

곧이어 소년이 싱글벙글 웃으며 뛰어오자, 동해는 재빨리 얼음 방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치이이이이익-

동해가 만들어 낸 두터운 얼음벽과 준의 손가락이 닿는 순간, 새하얀 얼음이 새까맣게 변하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어이 동생! 자네가 제 정신이 아닌건 진작부터 알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각인 독이라고 각인 독! 내가 투황이라고는 해도 그 물건은 감당하기 힘들어!”

하지만 동해가 역정을 내거나 말거나 준의 얼굴에는 기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위험한 물건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동해의 얼음 벽을 뚫어낼 정도의 공격력이라니…확실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나원승의 모습이 머리에 스치는 순간, 준은 온 몸의 털이 거꾸로 서는 듯한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 * *

몇 갈래로 갈라진 길거리 끝에 서있는 거대한 건축물의 끝에는 구름 모양의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고, 그 위로는 새 들이 ‘연금술사 총회’라고 적혀진 팻말을 입에 물고 날아다니고 있었다.

거대한 연금술사 총회 건물의 대문에는 평소에 얼굴 보기 힘들었던 연금술사들이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몸에는 각기 다른 색깔의 연금술사 복장이 그들의 계급을 과시하듯 자랑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동생, 저 총회에 참가할 생각인가?”

“일단 가보긴 해야죠.”

“흠…자네 마음대로 하게. 저 총회가 너희 연금술사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행사고, 각국에서 유명한 연금술사들이 오니까 말이야.”

동해는 준을 격려하듯 가볍게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혼자 다녀오게. 나는 밖에서 만날 사람이 있어서.”

“유씨 가문 사람인가요?”

하지만 그는 씨익 웃을 뿐 준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채 웃으며 등을 돌렸다.

준은 속으로 유씨 가문과 동해가 무언가 연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향긋한 음식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며 침샘을 자극했다.

건물의 내부는 매우 넓었는데, 대략적으로 동, 남, 서의 세 구역으로 나눌수 있었다. 그 중 동쪽에 마련된 장소에는 푸른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었고, 다시 그 위로 각종 약초와 두루마리, 약병이 가득했다.

남쪽에는 약 솥이 팔팔 끓고 있었고, 연금술사 몇 명이 진지한 모습으로 약 솥을 주시하며 약을 제조하고 있었다.

서쪽은 다른 구역과 달리 훨씬 조용한 곳으로 그곳은 극히 일부의 연금술사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아마도 등급이 높은 사람들만 입장 자격이 주어지는 듯 했다.

준이 흥미로운 얼굴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안으로 걸음을 옮기니 한쪽 구석에서는 연금술사들 간의 거래가 한창이었다.

다만 일반적인 시장이나 경매장과 달리 판매자는 물건을 늘어놓고 앉아있을 뿐 이었고, 그 물건이 필요한 사람들이 각각 찾아가 조용히 흥정을 하는 형태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연금술사들의 장터 곳곳을 거닐던 준은 그 사이에서 영혼을 회복하는 연금비약에 필요한 재료들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그러나 그것을 판매하는 연금술사는 약초의 대가로 4레벨의 연금비약을 요구했고, 준은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의 약초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자, 갑자기 주위에서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준은 흥미가 동해 열기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열기의 근원에는 허여멀건한 노인 하나가 유리병 안에 든 분홍색 불씨를 조용히 흔들고 있었다.

불씨의 이름은 ‘꽃불’로, 매우 희귀한 5급 나무 속성 요수의 몸 속에 있는 것이었는데, 준의 보라색 불꽃만은 못 했지만 보라색 불꽃보다 훨씬 온순해 다루기 쉽다는 장점이 있었다.

엄청난 물건의 등장에 몇 몇 연금술사들의 눈이 흥분으로 뒤집어질 지경이었지만, 누구도 선뜻 그 물건을 사지는 못 하고 있었다. 노인이 요구한 것이 연금술사라도 아무나 내놓을 수 없는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에게는 이미 대지의 불꽃과 하늘 사자의 불꽃이 있으니, 그 불꽃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8명의 연금술사가 거래에 실패하고 아쉬워 하고 있을 때 즈음…흰색 망토를 두른 익숙한 여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불씨에 홀린 듯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에 드시나요?”

“네. 뭘 원하시나요?”

“영혼의 흔적이 뚜렷한 4레벨 연금비약 조합표, 있으십니까?”

4레벨 연금비약도 귀한데, 영혼의 흔적이 뚜렷해야 하다니…해도 너무한 조건이었다. 일반적으로 연금비약의 조합표는 모두 영혼의 힘으로 적어야하고, 5번만 읽으면 흔적이 옅어지기 시작해 그 다음부터는 읽기가 어려워져 대단히 민감한 영혼탐지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영혼의 흔적이 뚜렷한’ 4레벨 연금비약의 조합표라니…순전히 바가지였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여인은 살짝 머뭇거리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잠시 침묵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멍청하긴…4레벨 연금비약 처방전을 꺼낸다고? 만석 회장이 알게 된다면 마음이 찢어 지겠군…’

준의 눈 앞에 있는 여인은 바로 검은 바위성 연금술사 공회의 회장인 만석의 제자, 설매였다.

“승낙 하신 거죠?”

노인의 재확인에 설매는 즉시 고개를 끄덕인 뒤 두루마리 하나를 내밀고는 불씨가 담긴 병을 건네 받았고, 노인은 황급히 두루마리를 펼쳐 쓱 훑어보고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뒤 자리를 떴다. 굳이 설매와 아는 척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준이 막 연금술사들의 장터를 빠져나가려던 순간, 삐쩍 마른 사내 하나가 준의 시선을 끌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무엇이 필요하신가요?”

“아직 연금술사 훈련생이시군요?”

사내의 가슴에 연금술사의 표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연금술사가 되지 못한자가 틀림이 없었다.

준의 질문에 사내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네…연금비약 제조에 재능이 없어서 몇 년을 수련했는데도 아직 훈련생 신분에 머물러 있습니다.”

중년의 남성을 준은 새삼스럽게 약로가 떠올라 마음이 아려왔다.

그 역시 약로를 만나지 못 했더라면 눈 앞의 사내 같은 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연금술사가 될 수 있다는 것 조차 몰랐을 것 이다. 그리고 수 많은 보물과 눈부신 성장까지…무엇하나 약로의 도움 없이 이루어진 것이 없었다.

준은 잠시 감회에 젖어 자신의 스승을 떠올리다가 무심코 탁자 위의 물건에 눈을 돌렸다.

과연 연금술사 훈련생답게 올려진 물건들을 하등 쓸모가 없는 것들 뿐 이었고, 그나마 귀하다고 올려놓은 물건도 2레벨 연금술사만 되어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정도의 물건이었다.

그러나…사내가 늘어놓은 물건들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준은 미친 듯이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