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117화 (117/818)

제117화. 천재 연금술사

‘어휴…얼음 속성의 염력을 쓰면 성격까지 저렇게 되는 건가…’

준은 그 여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그렁일 뿐 말대꾸 한 번 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자 영 마음이 불편했다.

“저기…선배님…아무리 그래도 좀 너무 냉정하신 게 아닌지…”

소년이 조심스레 입을 열자, 동해도 조금 민망했는지 자신의 저장반지에서 몇 개의 두루마리를 꺼내 그 중 하나를 그 여인에게 건넸다.

“3격의 무투기가 담긴 두루마리다. 그간 날 열심히 도왔으니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라. 난 본래 제자 같은 걸 거두지 않는 성격이야. 이걸로 성에 차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내 딴에는 이 정도도 이례적인 일이니까.”

결국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는 이준을 향해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문 밖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하하, 내가 좀 자유로운 영혼이라서 말이지…제자 같은 건 도무지…”

동해는 여전히 멋쩍은지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해댔다.

“뭐…그거야 선배님 성격이니까요. 그보다, 재료도 구해왔겠다 이제 지도 조각을 넘겨주시죠.”

준은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동해의 성격이나 취향 따위가 아니었다.

“크흠…아니지…내 봉인을 풀 연금비약을 만들어주면 지도 조각을 준다 하지 않았었나?”

“아니 선배님…”

준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 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연금비약 제조에 성공하면, 바로 지도를 주셔야 합니다. 그 때 가서 또 다른 이유를 대며 빠져나가시지 않는다고 약속을 해주세요.”

”하하, 무슨 말을 그렇게 섭하게 하나…내가 누군지 모르나? 내 성격이 좀 괴팍하긴 해도 한입으로 두말하는 사내가 아니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

동해의 시원스런 답변에 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어르신, 그럼 지금 시작해도 될까요?”

“지금?”

동해는 당장 연금비약을 제조해주겠다는 준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뒷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좋아, 좋아, 어서가세.”

……

방에 들어간 준은 의자에 앉아 동해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 선배님, 조합표와 재료를…”

“허허…연금술사들을 만나면 참 속이 쓰리단 말이야. 이 조합표를 구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데…가지고 있어봤자 써먹지를 못 하니까 말이지.”

동해는 자신의 저장반지에서 오래된 양피지 하나를 꺼내들며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준의 얼굴에는 화색이 만연했다. 6레벨의 연금 비약을 만들 수 있는 조합표라면 오로지 물물 교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고, 어지간한 보물 가지고는 꿈도 못 꿀 물건을 공짜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투사들이 연금술사에게 약의 제조를 부탁할 때는 반드시 그 조합표와 재료를 함께 넘기는 것이 암묵적인 룰 이었고, 한번 연금술사의 손에 넘어간 재료와 조합표는 다시 돌려받을 수 없었다.

이 때 연금술사에게 재료를 넘기는 이들이 가장 배 아파 하는 부분은 바로 재료의 ‘양’이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연금술사라 해도 연금비약을 만들 때는 실패할 확률이 존재했으니, 기본적으로 연금술사에게 비약의 제조를 의뢰 할 때는 자신이 원하는 물건의 제조에 필요한 것보다 많은 재료를 준비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심지어 남은 재료는 고스란히 연금술사의 목이었다.

하지만 연금술사라고 그 약을 모두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합표를 만들 때도, 읽을 때도 조합표의 레벨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의 영혼 탐지능력이 필요했으니, 높은 레벨의 조합표를 구한 투사들은 모두 큰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연금 비약을 얻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다.

결국 6레벨 연금비약의 조합표 정도되는 물건이라면, 구하기도 어렵지만 쓸 수 있는 자도 그만큼 귀한 것 이니 동해는 준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것 이다.

……

동해가 건넨 양피지 위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오래된 글씨로 ‘주술사의 비약’ 이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준은 양피지를 들어 그 위에 기록 된 연금 비약의 효능을 읽어 내려갔다.

<이 연금비약은 6레벨에 해당되며 대부분의 봉인을 풀어내는 효능이 있다. 복용 후에는 체내에 봉인에 대한 저항력이 발생하며 차후 유사한 종류의 봉인과 마주했을 때 일정 확률로 봉인 자체를 막아낼 수 있다.>

“오오…굉장하군요…!”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고, 반면 동해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좋은 물건이지…그만큼 이 물건을 구하기 위해 쏟아 부은 노력을 생각하면…끌끌…”

준은 행여 동해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까 싶어 조합표를 저장반지 속으로 냉큼 집어넣었다.

“그래도 투황의 힘을 되찾을 수 있으니,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선배님.”

귀한 6레벨 연금비약인 ‘주술사의 비약’의 조합표를 저장반지에 집어넣은 준은 곧이어 동해가 구해온 약재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과연 과거 가한제국 10대 강자답게 그가 구해온 약재들은 하나같이 돈 주고 살 수 없는 귀한 것들 뿐 이었다.

준은 테이블 가득 놓인 재료들에 문제가 없음을 살피고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흠…선배님도 아시겠지만…지금 제 수준에서는 이 약을 반드시 제조해낸다고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점에 대해서 전에도 말씀을 드렸고…그러니 이번…”

동해는 준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즉시 그 제안에 응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천지의 불꽃을 가진 연금술사가 어디 흔한가? 결국 맡길 사람이 자네 밖에 없으니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저야 고맙지요. 다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만큼은 약속드리지요. 그럼…깨끗한 방으로 안내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선배님을 포함해 그 누구도 연금비약의 제조 과정을 보거나,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6레벨의 연금비약 제조는 아무리 집중해도 실패할 확률이 있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니까요. 방해를 받으면 절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준이 약재를 쓸어 담으며 마지막 조건을 내걸자, 동해는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이지. 따라오게.”

……

“어떤가?”

그가 데려간 곳은 복도 측면에 자리한 작은 방이었다.

“여기서 연금비약을 만들동안 내가 복도에서 지키고 있도록 하지.”

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고, 동해가 나가자마자 방문을 걸어 잠궜다.

그는 잠시 방안을 느긋하게 걸어 다니며 수상한 점은 없는지 살핀 뒤 조용히 약로에게 말을 걸었다.

“스승님, 어떤가요?”

“괜찮은 것 같구나. 동해라는 놈에게 별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그럼…부탁드릴게요. 헤헤…”

준이 머쓱하게 웃으며 자신의 저장반지에 있던 재료들을 꺼내놓자, 약로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농을 던졌다.

“요놈이…다 늙은 노인네를 아주 종 부려먹듯 하는구나.”

“헤헤, 저도 직접 하고 싶긴 하지만…역시 6레벨 연금비약 정도 되면 스승님 정도의 대연금술사 정도는 되야 만들 수 있는 물건이니까요.”

제자의 능글맞은 아첨에 약로는 헛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둘러 검푸른 약솥을 불러냈다.

약로는 항상 맨손으로 비약을 만들었으니, 약솥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가 꺼내든 약솥에서는 묵직한 기운이 풍겨 나오고 있었고, 겉면에는 불꽃 모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약솥이 천천히 회전하며 불꽃 문양에서 은은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와…!”

준은 약로의 약솥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약로의 물건에 비교하자면 자신의 약솥은 거의 고물 주전자나 다름없어 보였다.

“약솥이야 말로 연금술사에게 가장 중요한 물건이다. 좋은 약솥은 연금비약의 성공률을 높여주니까 말이야. 내가 사용하는 이 약솥을 남들은 ‘검은 악마’라고 부르더군, 하하. 예전에 이걸 손에 넣겠다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지…”

“검은 악마요? 이름만 들어도 뭔가 무시무시하네요. 그나저나…스승님의 약솥을 보는 건 처음이에요.”

“허허…6레벨 연금비약은 그리 만만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아직 영혼 상태라 약솥의 도움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을게야.”

약로는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도 손으로는 바삐 약솥에 불꽃을 불어넣고 있었다.

잠시 후, 약솥에 들어간 백색 불꽃이 열 갈래로 나뉘며 본격적인 제조가 시작되자, 이준은 눈을 반짝이며 약솥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주술사의 비약’의 제조가 처음이었던 탓인지, 그 대단한 약로조차 한 번에 제조에 성공하지는 못 했다.

그러나 약로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뛰어난 연금술사는 모두 수 천, 수 만 번의 실패 끝에 탄생하는 법이고, 이는 약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는 처음부터 실패를 예상하기라도 한 듯 아주 소량의 약재로 화력을 시험해보았기 때문에, 다시 약을 만드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시 깨끗한 방의 허공에서 새까만 약솥이 돌아가기 시작하고, 백색 화염이 그 안에서 격렬하게 들끓었다.

……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연한 보라색의 연금비약이 서서히 형태를 갖춰나가기 시작하면서 달콤한 약향이 코끝을 간질였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준은 연금비약이 내뿜은 은은한 향기에 눈을 떴다.

“성공인가요?”

“그런 것 같구나. 6레벨의 연금비약이라고는 해도 조합이 그리 복잡하지 않은데다가, 검은 악마의 도움을 받으니 생각보다도 시간이 덜 걸렸어.”

약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5레벨인 피의 결정을 만들 때도 이틀이 걸렸는데 6레벨 연금비약을 만드는데 하루 밖에 걸리지 않아서 깜짝 놀랐어요. 스승님의 약솥이 정말 대단하긴 한가봐요.”

약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 손으로는 약솥을 젓고, 왼손으로는 화염을 뿜어 엄지 손톱만한 크기로 그 화염을 압축시켰다.

그 상태로 시간이 조금 지나자 노인의 손에서 압축된 얼음 불꽃의 정수는 작은 보석처럼 하얀 결정체가 되어 있었다.

약로는 작은 결정체로 변화한 백색 화염을 약솥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가느다란 빛이 뻗어 나오며 연금비약 안으로 하얀 불꽃의 열기가 스며들었고, 약로가 손을 한 번 휘저으니 백색화염이 소용돌이치며 보라색 연금 비약을 감쌌다.

곧이어 불꽃에 휩싸인 연금 비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약솥 안을 이리저리 튕겨 다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너지가 파도처럼 요동치며 ‘검은 악마’의 입을 지나 신비한 빛을 내뿜는 보라색 연금 비약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흠…괜찮구나.”

약로는 완성된 주술사의 비약을 손바닥 위에서 이리저리 굴려본 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것을 제자에게 넘겨주었다.

준은 생전 처음 보는 6레벨의 연금 비약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그동안 자신이 보아왔던 연금비약들은 매끄러운 표면에 매끈한 광택이 감도는 형태였는데, 지금 약로가 만든 연금비약 위로는 마치 바늘로 새긴 듯 촘촘하고 정교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혹시 몰라 그 안에 얼음 불꽃의 정수의 결정체를 넣어 두었다. 그걸 먹는다고 무슨 이상이 생기진 않지만…내가 손을 쓰면 얼음 불꽃의 정수가 몸 안에서 폭발하게 되지.”

“혹시…들키진 않을까요?”

“아마 그럴 일은 없을게다. 뭐… 절대로 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얼음왕 정도의 수준이라면 눈치 챌 수 없을게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