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수련과 강화
약로 역시 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 역시 과거에 천지의 불꽃을 입안에 넣을 때 까지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결국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야 입안에 그 백색 불꽃을 털어 넣을 수 있었다.
그렇게 10분…20분…동굴 안에는 두려움에 휩싸인 소년의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
그렇게 말 없이 30분이 흐르고 난 뒤, 준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어색한 표정으로 약로를 향해 웃어보였다. 결심이 선 것 이다.
“스승님…시작할게요!”
준의 고민이 생각보다 길지 않자, 약로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꼭 성공하기를 빌어주마. 자신을 가지거라. 언제나 가장 위험한 순간에는 네 자신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하하, 자신감이야 항상 넘치죠.”
약로의 격려에 힘을 얻은 준은 눈을 질끈 감은 뒤 자신의 입속으로 푸른 마그마 덩어리를 냅다 집어 던졌다.
“컥…!”
그리고 다음 순간, 준의 사지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준은 온 몸을 엄습하는 고통에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푸른 마그마는 그의 체내에 들어가자마자 작고 가느다란 불꽃으로 나뉘어 전신의 혈관을 파고들었다.
곧이어 그의 근육이 불뚝거리면서 온 몸의 혈관이 피부 위로 드러나고, 그의 얼굴은 죽은 사람의 그것처럼 핏기가 가셨다.
“아아아악…!”
혈관에 들어간 푸른 불꽃이 미친 듯이 춤을 추자 준은 전신의 혈관 하나하나가 갈가리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바로 그 때, 준의 손바닥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얼음의 심장을 삼켜라! 그 다음 혈관을 돌아다니는 대지의 불꽃을 너의 염력으로 감싸거라! 어서!”
고통으로 인해 반쯤 정신을 잃어가던 준은 약로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려 얼음의 심장을 집어 삼켰다. 그러자 온 몸을 얼릴듯한 무시무시한 냉기가 전신을 파고들며 고통을 조금 완화시켜 주었다.
“후우…”
통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얼음의 심장이 가진 냉기의 도움을 받아 준은 가까스로 염력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집중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천지의 불꽃을 조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한 번…두 번…세 번…아무리 노력해도 푸른 불꽃은 미쳐 날뛰는 야생마처럼 준의 말을 듣기를 거부했다.
그렇게 또 다시 10분…마침내 푸른 불꽃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혈관을 타고 흐르는 순간, 대지의 불꽃이 가진 열기가 얼음의 심장이 가지고 있던 냉기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열기와 모든 것을 얼려버릴듯한 냉기가 서로 중화되며 준의 몸이 한결 편안해지자, 삽시간에 온 몸에 뿌려져있던 푸른 불꽃이 한군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지의 불꽃이 가진 에너지가 한군데로 모여드는 순간 더욱 공포스러운 에너지가 퍼져 나오며 준의 온 몸에 다시 고통이 찾아왔다.
그리고…얼마 지나지 않아 준의 몸에서 백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얼음의 심장이 가진 냉기가 대지의 불꽃이 가진 열기에 모두 증발되어 버린 것이다.
얼음의 심장 효능이 점차 떨어지자 푸른 불꽃이 다시 무방비 상태의 혈관 속을 타고 흘렀고, 준의 입에서는 검붉은 핏덩이가 흘러나왔다.
준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푸른 마그마를 조종했다.
희미해져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으며 푸른 마그마를 조종하자 뜨거운 열기가 혈관을 관통해 피부 위까지 타고 올라왔고, 그의 온 몸에 화상을 입은 듯 물집이 잡혔다가 터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대지의 불꽃이 가진 에너지가 원활하게 순환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준의 몸 안에서 통제를 벗어난 불꽃이 그 열기를 폭발시킬 때 마다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격통과 함께 물집이 생겨나기를 반복했다.
“우욱…”
준은 끝내 참지 못 하고 얕은 신음을 내뱉었고, 그 순간 체내에 돌고 있던 열기가 다시 용솟음치며 준의 오른 팔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약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준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삼킬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대단한 스승이라도, 이번만큼은 오로지 제자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던 것 이다.
준은 몇 번이나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 때 마다 이를 악물고 자신의 보라색 염력으로 푸른 마그마를 감싸 혈관으로 흘려보냈다.
사실 외상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준의 내장과 혈관의 상태로, 그의 몸 안쪽은 이미 너덜너덜하다 못해 걸레짝이 된 상태였고, 제 아무리 연금비약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최소 몇 달은 병상에 누워있어야 할 상태였다.
게다가 그의 몸속에 자리 잡고 있던 보라색 불꽃은 푸른 불꽃의 길잡이 노릇을 할 때마다 착실히 소진되고 있었고, 얼음의 심장으로 인해 형성된 냉기 역시 모두 사라진지 오래였다.
“으윽…”
또 다시 그의 얼굴에서 혈관이 터지며 피가 새어나오자, 이제 정말로 그의 몸에서는 멀쩡한 곳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 그의 몸은 한계를 넘어섰고 더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준은 아직도 의식을 잃지 않고 대지의 불꽃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준의 보라색 염력이 한줌도 남지 않게 되는 순간…
극적으로 대지의 불꽃이 그의 온 몸의 혈관 전체에 흘러들어갔다.
……
준의 얼굴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이 잦아들기 시작하자, 약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성공인가…”
다음 순간 동굴 안에 놓여있던 납령이 휘황찬란한 빛을 내며 준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순식간에 눈부신 푸른 화염이 솟구치며 그의 몸을 감쌌다.
푸른 화염에 둘러싸인 소년의 모습은 마치 번데기에 싸여 변태를 준비하는 나비 같았다.
산굴 속에서는 또 다시 푸른 불꽃이 미칠듯한 열기를 내뿜기 시작했지만, 약로의 결계로 인해 밖에 있는 자들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준의 몸에서 나온 난폭한 푸른 불꽃을 저장반지에 넣는 것 뿐 이었다. 그래야만 뜨거운 불꽃이 사라지고 오로지 불씨만 남길 수 있었다.
“불씨를 만들기만 한다면 대지의 불꽃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 질 것이야. 그리고…불개 역시 몇 단계는 뛰어오르겠지.”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혼수상태에 놓인 제자를 눈앞에 둔 채 대지의 불꽃의 심장부인 푸른 마그마는 온전하게 두고, 사방으로 뻗어 나오는 푸른 불꽃만을 거두어들였다.
이 때 준의 몸에서 새어나와 납령으로 몰려든 불꽃들은 이전보다 한층 그 기세가 약해져 있었다.
약로의 손길에 따라 불꽃들이 푸른 마그마와 분리되자, 온화한 기운을 가진 푸른 마그마가 준의 혈관에 물 속성의 기운을 불어 넣으며 말라 화염으로 인해 타들어가 말라비틀어진 그의 온 몸을 구석구석 채우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졌던 뼈와 피부 역시 놀라운 속도로 아물면서 더욱 단단해지고, 불과 일 이십분 사이에 그의 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의 그것처럼 변화하고 있었다.
곧이어 대지의 불꽃이 준의 마지막 혈관을 통과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지며 그의 염력 회오리에 파란 불꽃이 자리를 잡았다.
대지의 불꽃이 섞이기 시작하자 잠잠하던 그의 염력 회오리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폭발적인 속도로 염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늘어난 것은 염력의 양 뿐 만이 아니었다. 지금 그의 회오리에 생겨나기 시작한 염력 결정의 농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농밀한 것 이었다.
……
2성 무투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염력 회오리 안에 열다섯 방울의 응축된 염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준의 몸에는 수 백 방울의 응축된 염력이 생성되었으니, 감히 그 위력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실 이런 변화는 준이 혼수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로, 만일 그가 억지로 대지의 불꽃을 조종하려고 했다면 이런 놀라운 발전은 불가능 했을 것 이다.
지금 그의 염력 회오리에는 조그마한 회색빛이 그 안을 떠다니고 있었는데, 그 빛 안의 중심부에는 끝없는 어둠을 품고 있는 작은 점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대지의 불꽃은 회색빛의 중심부에 있는 작은 점을 발견하고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그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는데, 그 안에서 느껴지는 무언가에 겁을 먹었는지 차마 더 이상 가까이 가지는 못 하고 있었다.
푸른 마그마는 아쉬운 듯 그 주변을 몇 번인가 더 맴돌다가 다시 준의 몸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준의 의식이 돌아왔고, 그는 정신이 들자마자 영혼 탐지 능력을 활용해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헉…”
그는 탐색을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몸이 깨끗이 회복되었음은 물론이고, 이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수준으로 자신의 몸이 강해져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신이 나서 염력을 끌어올리는 순간…뒷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끔찍한 두통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염력 회오리에 있던 검은 점이 무시무시한 흡입력으로 푸른 불꽃을 빨아들였고, 청색 화염이 모두 빨려 들어가는 순간 그의 온 몸에 완전한 평화가 찾아왔다.
그 검은 점은 바로 약로가 이준의 몸 안으로 주입했던 작은 납령이 만들어낸 것으로, 천지의 불꽃을 흡수하는 가장 마지막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가 바로 천지의 불꽃을 그 공간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이었다.
“이 느낌은 뭐지? 어떻게 갑자기 이런 기운이…… 수련을 거친 이화가 전투력을 끌어올려준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승급까지 가능하다니…”
약로는 자신도 예상하지 못 한 준의 변화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이상하군…어쨌든 무사히 끝냈으니 다행이야.”
‘타닥—’
바로 그 때, 약로가 쳐둔 결계에 금이 가며 경쾌한 소리가 퍼져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일었다.
약로는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염력의 파편을 피해 몸을 날리며 안쪽을 주시했다.
염력 보호막이 부서지며 생긴 푸른 연기가 한동안 그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가 바람에 날려 흩어지자, 푸른 연화대가 허공에 뜬 채로 약로에게 다가섰다.
연화대 위에는 자랑스러운 그의 제자가 알몸으로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염력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잠시 후, 소년이 눈을 뜨자 그의 눈동자에 잠시 동안 푸른 불꽃이 일렁이다 사라졌고, 검게 돌아온 눈동자에서는 이전까지 볼 수 없던 신비한 기운이 느껴졌다.
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쥐었다 펴보면서 자신의 몸에 깃든 새로운 힘을 만끽했다.
지금 자신의 몸에서 흘러넘치는 강대한 기운은 막 무투사가 되었을 때의 그것보다도 수백 배는 더 대단한 것 같았다.
“녀석…옷이나 주워 입거라. 어디 스승 앞에서 홀딱 벗고…쯧쯧.”
“크흠…”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준은 민망한듯 헛기침을 하고는 곧바로 저장반지에서 옷을 꺼내 정신없이 입기 시작했다.
“허허… 어떠냐, 겉보기에는 아주 좋아 보인다만.”
약로는 흐뭇한 표정으로 제자의 주위를 돌며 상태를 물었다.
“정말이지…새로 태어난 기분이에요.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힘이 온 몸에서 흘러넘치고 있는 게 느껴져요.”
“끌끌…좋아. 한번 염력을 끌어올려 보거라.”
스승의 지시에 따라 숨을 고르고 염력을 끌어올리자, 소년의 몸에서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왔다.
“허허허…4성 무투사 정도는 되겠구나. 생각이상이야. 아주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