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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13화 (113/818)

제113화. 천지의 불꽃을 삼키다.

“모름지기 일을 할 때는 작은 불씨라도 깔끔히 밟아끄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은지는 사내의 한 마디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냉정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눈 앞에 있는 사내는 그야말로 비정하기 이를데 없었다.

하지만 작은 뱀들은 이미 모래 구덩이 아래로 신속하게 모습을 감춘 뒤였고, 그대로 다시는 그들의 시야에 나타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것들…”

사내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한마디를 내뱉고는 즉시 몸을 돌렸다.

“아, 방금 전까지 여기 있던 꼬맹이 녀석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군.”

“뭐라고요…?”

정체불명의 투황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지만, 사내의 마지막 말은 은지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이래서 운남종으로 오지 않겠다고 한거였군…”

은지는 고개를 돌려 시야에서 점차 멀어지는 화염인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님, 아까는… 어떻게 된 거죠?”

“네 소매에 숨은 녀석이 한 짓이다. 뱀 인간놈들이 순순히 물러난 것도 메두사의 기운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네?”

스승의 설명에 깜짝 놀란 준은 황급히 자신의 소매에 있는 칠색 이무기를 꺼내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칠색 이무기는 준과 눈이 마주치자 보라색 눈동자를 꿈뻑이며 혀를 날름거렸다.

“스승님, 설마 메두사 여왕이 이전의 기억을 되찾은 건 아니겠죠?”

“아마 아닐 거야. 기억을 되찾았다면 네 옆에 계속 머무르지 않을 테지. 아무래도 스네이크족을 만나며 봉인 되어 있던 메두사 여왕의 영혼이 잠깐 속박에서 벗어날지도 모르겠다.”

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무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 쪼끄만 녀석이 그렇게 위험하다니…”

“허허, 그럼 지금이라도 이곳에 두고 가든가.”

약로가 여유롭게 웃으며 아기 뱀을 버리라고 말하자, 제자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기잖아요! 매정하시긴…메두사의 영혼이 영원히 봉인되면 좋을텐데…”

준은 아기를 만지듯 조심스럽게 칠색 이무기를 어루만지며 다시 기력의 조각 한 알을 입에 넣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 * *

반나절에 걸쳐 쉬지 않고 이동하자, 타르 사막의 변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가 13알이나 되는 기력의 조각을 먹어가면서 그곳까지 이동한 것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인적이 드문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모습을 감출 때 즈음…준은 드디어 날개짓을 멈추고 금빛 모래 위로 내려설 수 있었다.

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푸른 연화대를 땅에 내려놓고 또 다시 기력의 조각을 입안에 우겨 넣은 뒤 자리에 주저 앉아 염력을 회복했다.

기력의 조각은 얼핏 편리한 도구로 보이지만, 아무리 편리하다해도 부작용이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처럼 가끔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이번처럼 과도한 양을 계속해서 복용할 경우 내성이 생겨 염력 회복력이 점차 떨어지게 되고, 최악의 경우 염력을 잃게 될지도 몰랐으니 오늘 같은 일이 자주 있어서는 안 됐다.

하지만…천지의 불꽃을 손에 넣기 위한 위험부담치고는 그닥 대단하지 않은 부작용인것도 사실이었다. 대지의 불꽃을 손에 넣기 위해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았던가.

준은 염력이 회복되는 동안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

마침내 염력이 거의 다 회복되고, 눈 앞에 놓인 보물을 바라보자 준의 머릿속에는 지난 몇 년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모든 것의 시작은 자신의 반지에 숨어있던 기묘한 노인이었다.

그 이후 ‘불개’라는 기이한 염력 수련법을 손에 넣고 천지의 불꽃을 찾아 헤맸고, 천둥산을 거쳐 타르사막으로, 타르 사막에서는 거대한 화염쌍두사부터 시작해 무시무시한 용암 호수, 그리고 뱀인간족들과의 사투와 고하 일행과의 추격전까지…

그리고 지금 자신의 눈 앞에 그 고행의 결과물이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 이다.

“먼저 안전한 장소를 찾아보거라. 천지의 불꽃을 삼킬 때는 절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아서는 안 된다.”

“하하, 네.”

약로의 충고에 준은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시작인 것 이다. 이제 자신은 모든 연금술사들이 탐내는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이다.

고개를 돌리자 어두운 사막 위로 드문 드문 자란 풀들이 보였고, 그 너머로 야트막한 산등성이가 보였다.

이곳은 타르 사막에서 가장 외진 곳인 동시에, 타르 사막에서 거의 유일하게 산이 있는 지역이었다.

게다가 산속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산짐승들의 울음소리 말고는 그 어떤 기척도 느낄 수 없었으니, 그야말로 누구의 방해도 없이 무언가를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준은 주위를 모두 둘러본 뒤 푸른 연화대를 손에 든채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

그렇게 나지막한 산들을 구석구석 둘러본 끝에 준이 선택한 곳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작은 산굴이었다.

그 곳은 마치 준을 위해 마련된 공간인 듯 타르 사막의 가장 외진 곳에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위치한 산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고, 주위는 온통 험준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준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매의 날개를 펼친 뒤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동굴은 조금 작은 편이었지만 천지의 불꽃을 삼키기 위해 필요한 공간으로는 충분했다.

그는 천지의 불꽃을 굴안의 큰 바위 위에 올려둔 채 월광석 몇 개를 꺼내 돌 벽 위에 박아 넣었다.

곧이어 희미한 빛이 동굴 안을 비추자 그는 꼼꼼히 산굴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는 혹시라도 이곳을 거처로 삼고 있는 마수나 산짐승이 있지는 않나 그 흔적을 찾는데만 꼬박 1시간을 소모했다. 절대로 그 어떠한 변수도 있어서는 안됐다.

동굴안에서 어떤 짐승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자, 준은 그제서야 바위를 하나 옮겨 공기가 들어올 약간의 공간만을 남겨두고 동굴 입구를 틀어막았다.

“스승님, 이제 뭐 하면 될까요…”

준은 흥분으로 바짝 타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꺼내거라.”

소년은 고개를 끄덕인 뒤 저장반지 안에서 투명한 약병들을 주르륵 늘어 놓았다.

그가 첫 번째로 꺼내든 것은 바로 콩알보다 조금 큰 크기의 붉은색을 띤 피의 결정이었다.

다음은 얼음의 심장을 보관해둔 작은 상자였다.

상자를 꺼내들자 옅은 냉기가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며 주위에 살얼음이 끼었다.

두 개의 준비물이 모습을 드러내자 이번에는 약로가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돌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 돌은 옅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으며, 수 천번은 다듬고 또 다듬은 듯 작은 흠 하나 없이 매끄러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게 그 납령이라는 건가요?”

“그래, 이게 바로 그 납령이다. 생긴 것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피의 결정이나 얼음의 심장보다도 더 귀한 물건이지.”

드디어 모든 준비물이 갖춰지자, 약로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준을 바라봤다. 때가 된 것 이다.

준은 마른 침을 삼키며 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있는 연화대를 잡았다.

“천지의 불꽃을 삼킬 때 엄청난 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힘이 방출될게다. 그건 내가 보호막을 펴서 막아주마. 너는 우선 피의 결정을 복용하거라. 그 물건이 없다면 네 실력으로는 천지의 불꽃 가까이에도 가지 못 한다. 그리고 절대 연화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럼 최악의 경우 천지의 불꽃을 삼키는데 실패하더라도 목숨을 건질 수 있을게야.”

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푸른 연화대 위에 올라가 앉아 석류처럼 붉은 연금비약을 입 안에 넣었다.

그러자 그의 혈관이 모두 부풀어 오르고, 온 몸이 격렬하게 떨리면서 붉은 기운이 모공을 통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이윽고 붉은 기운이 굳어 단단한 껍데기를 만들어냈는데, 그 껍데기는 준의 사지는 물론이고 눈꺼풀 위까지 완벽하게 덮어 그를 보호했다.

잠시 후, 붉은 조각상이 된 듯한 준이 손을 뻗자 천지의 불꽃이 조용히 일렁이며 그에게 날아왔다.

* * *

밝게 빛나는 동굴 안에서 푸른 화염이 격렬히 요동치며 주변의 공기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하자, 약로가 신속하게 동굴 주위에 결계를 형성했다.

곧이어 허공에 떠 있던 작은 불꽃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불어나면서 더욱 더 뜨겁고 격렬하게 타올랐다.

스승이 소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은 그제서야 뜨거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손을 뻗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대지의 불꽃을 끌어당기는 준의 몸에서는 빨간 껍질이 녹아내려 마치 피를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약로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강력한 대지의 불꽃에 힘을 느끼고는 서둘러 자신의 백색 화염을 끌어내 준을 감쌌다.

“대지의 불꽃이 더 가까워지면 손을 화염 안으로 뻗어 불꽃의 중심부를 잡고 불씨를 뽑아내거라!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저 끔찍한 불꽃에 손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말에 준은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그는 천지의 불꽃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준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푸른 불꽃과 그의 거리가 1미터까지 좁혀진 순간, 그는 이를 악물고 푸른 불꽃의 중심부를 향해 손을 뻗었다.

……

치이이익-

푸른 불꽃을 향해 손을 뻗자마자 섬칫한 소리와 함께 준의 피부를 뒤덮은 붉은 껍데기가 녹아내리다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피의 결정이 아직 준의 피부를 보호해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을 초월한 고통이 전해져왔다.

준은 자신의 팔을 타고 드는 끔찍한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입에서 피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자그마했던 동굴은 대지의 불꽃에 의해 불타 어느새 두 배 가까이 넓어져있었다.

“으으으윽…”

준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손을 휘저었고…마침내 그의 손끝에 무언가가 붙잡혔다.

“크윽…”

준은 나지막한 신음소리와 함께 손에 잡힌 물건을 낚아챘다.

푸른 불꽃 밖으로 빠져 나온 것은 손바닥만한 푸른색의 마그마 덩어리였다.

마그마 덩어리가 빠져나가자 푸른 불꽃은 천천히 작아지며 마그마 안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대지의 불꽃의 심장이다. 본래는 산만한 크기이지만…시간이 지나면서 에너지가 응축되어 손바닥만한 크기가 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천지의 불꽃이라고 할 수 있지.”

약로의 말을 듣던 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푸른 마그마를 손에 쥐었다. 그러자 푸른 마그마가 뿜어내는 폭발적인 고온이 새빨간 각질층을 순식간에 증발시켜버렸다.

“이제 어떻게 해요…?”

“삼키거라.”

짧은 한마디였지만, 약로의 목소리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천지의 불꽃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 바로 이 단계였기 때문이다.

신체를 아무리 강하게 단련한다해도 인간의 내장은 한없이 연약한 부위이니, 투황급 이상의 강자조차 감당하기 힘든 천지의 불꽃이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의 위험성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준은 자기도 모르게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자신의 손 위에 놓인 푸른 마그마 덩어리를 바라봤다.

그의 머릿속에는 순간적으로 그 물건을 삼키자마자 자신의 몸이 폭발해 사라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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