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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10화 (110/818)

제110화. 대혼란

생각보다 훨씬 쉽게 천지의 불꽃을 손에 넣은 준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춤을 출 뻔 했다.

“진정해라. 고하가 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절대 천지의 불꽃을 저장 반지에 넣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그 안에 있는 물건은 물론이고 저장 반지까지 불태워 버리고 말게다.”

약로는 흡족한 표정으로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는 제자를 진정시켰지만, 준은 여전히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 했다.

“어서! 서둘러야 한다!”

약로가 다시 그를 재촉하자, 준은 그제서야 날개를 펴고 기력의 조각을 삼켰다.

쾅!

이윽고 그의 발치에서 보라색 불꽃이 폭발하고, 소년의 몸이 바람처럼 도시 밖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진화에 성공한 걸까요? 어떻게 된 거죠?”

고하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화에 문제가 생긴 것 같군요. 아까 전에 느껴진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실패한 건가요?”

고하는 한숨을 내뱉으며 신전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를 넋놓고 바라보았다.

“천지의 불꽃이 어떻게 사라질 수 있지…”

“글쎄요…어찌 됐든 내부에서 미친 듯이 날뛰던 기운이 잦아든 것만은 사실이에요. 어쩌면 메두사에 의해 천지의 불꽃이 파괴된 걸지도 모르죠. 확실한 것은 모르겠어요. 저도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니까요.”

“그럴 리 없어요. 메두사의 힘이 아무리 강력하다 할지라도 천지의 불꽃을 꺼뜨릴 수는 없습니다.”

고하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있었다. 평생을 쫓아온 천지의 불꽃이었으니, 그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그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흠…연기가 사라지면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도록 하죠.”

“스승님, 어떻게 됐나요? 아까 그 기운 말이에요.”

그 때, 태원이 아래의 신전을 훑어보며 둘에게 다가왔다.

“메두사 여왕의 기운이었지만…진화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이미 가루가 되어 사라졌을 수도 있지.”

“후우…”

고하의 답을 들은 태원과 제논이 기나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 아까 느낀 기운의 주인이 멀쩡하다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 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어쩌죠?”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이미 주위에는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뱀 인간들이 수백이나 있었고, 그들의 머리 위에는 투왕급의 두 뱀 인간이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곧 있으면 다른 강자들도 나타날 것 이다.

뱀 인간들은 인간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투왕을 데리고 있었다. 다만 그 이상의 존재들이 많지 않았을 뿐…지금 이 자리에서도 검은 망토를 입은 여인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승부가 났을 것 이다.

월녀와 헤파스는 섣불리 공격을 감행하지 않고 뱀인간들을 지휘해 차분하게 포위망을 좁혀들고 있었다.

“지금 저들은 다른 부락의 수장들이 오기까지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8명이 모두 모이면 이쪽에 종주님이 있다해도…그들을 온전히 막아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상황이 잘 풀린다고 해도 이곳은 그들의 근거지이니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태원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고하 또한 상대의 계획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천지의 불꽃을 포기하기가 너무나 아쉬웠던 것 이다.

“일단 기다려보자. 저 연기가 흩어지면 곧장 안으로 들어가 수색을 시작하고 천지의 불꽃을 발견하면 곧장 이곳을 떠나도록 하자…만일 발견하지 못한다면…할 수 없지. 바로 떠난다.”

고하의 말에 검은 망토를 입은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머지 역시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의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모든 이의 시선이 메두사의 진화가 이루어진 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고정되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난 뒤, 검은 망토의 여인이 서쪽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뱀인간족의 강자 한 명이 오고 있군요. 8대 부락의 수장인 듯합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고하 일행의 얼굴에 더욱 어두운 빛이 떠올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뱀 인간족 사내 하나가 몸에서 붉은 기운을 내뿜으며 날아오고 있었다.

“죽일 놈의 인간들, 감히 우리 종족의 성스러운 도시에 멋대로 발을 들여?”

“화염 부락의 수장 유타군요. 성질머리는 불같지만 그 실력은 8대 부락 수장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입니다. 스네이크족과 가한제국의 전쟁 당시 많은 제국의 강자들이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지요.”

제논이 한숨을 내쉬며 방금 나타난 강자에 대해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벌써 세 명의 투왕이 모인 셈이군.”

“광선이 곧 사라질 듯하다.”

하지만 검은 망토의 여인은 차분한 태도로 보라색 빛기둥을 바라볼 뿐, 조금도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한편 하늘 위에서는 월녀와 헤파스가 유타를 보며 환히 웃고 있었다.

유타는 그들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듣자마자 더욱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고하 일행을 노려봤다.

“더러운 인간 놈들! 오늘의 치욕은 너희들의 피로 씻어내겠다!”

그러나 고하 일행은 여전히 보랏빛 기둥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보랏빛 기둥이 서서히 옅어지다가 사라지는 순간…고하 일행은 기다렸다는 듯 번개처럼 신전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던 뱀인간들 역시 분노로 포효하며 신전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

고하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준이 발견했던 작은 섬에 도달했지만, 그곳에는 이미 메두사 여왕을 비롯해 모든 것이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메두사 여왕은 물론이고 천지의 불꽃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런…정말로 메두사가 천지의 불꽃에 불타 사라졌나…”

검은 망토의 여인은 새까맣게 재만 남은 비늘을 집어 올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빌어먹을, 이화는 어디 있는 거지?”

고하는 자신의 영혼 탐지 능력을 총동원해도 천지의 불꽃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자, 주먹에서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바로 그 때, 갑자기 제논이 몸을 돌려 손에서 작은 바람 칼날을 쏟아냈다.

“지금 가셔야 합니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시간이 없습니다!”

“크윽…!”

고하는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이를 악물고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가자!”

마침내 고하의 입에서 철수 명령이 떨어지자, 태원과 제논은 황급히 염력을 끌어올리며 날개를 펼쳤다.

하지만 그 때…고하의 눈에 푸른 연화대를 든 소년 하나가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연화대 위에는…그가 꿈에도 그리던 천지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천지의 불꽃이다!”

“죽일 놈의 자식! 감히 우리를 이용하다니!”

“쫓아가자!”

하지만 고하 일행이 소년을 추격하려는 순간, 그들의 앞에 세 갈래의 섬광이 날아들었다. 월녀를 포함한 세 명의 뱀 인간족 수장이었다.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고, 언제부터 뱀인간의 성지가 인간들의 놀이터가 됐지?”

“비켜!”

고하는 분노에 찬 유타의 질문을 무시한 채 손바닥을 흔들어 새빨간 불꽃을 쏘아댔고, 곧이어 주위가 무시무시한 열기로 가득 찼다.

“흥, 빌어먹을 인간족의 쓰레기! 이거나 먹어라!”

유타도 마찬가지로 손바닥에서 붉은 화염을 끄집어냈고, 이윽고 그의 손에서 나온 화염이 고하의 화염을 집어삼켰다.

고하는 유타가 자신의 불꽃을 가볍게 제압하는 것을 발견한 순간, 적의 실력이 자기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이마를 찌푸렸다.

한편 월녀는 무언가를 들고 황급히 달아나는 소년의 뒷모습이 어딘가 낯이 익었다고 느꼈지만,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빌어먹을 인간족의 침입자들을 찢어 죽이는 일 이었다.

“내가 저들을 막을 테니 어서 앞서간 저 사람을 쫒아가세요! 늦으면 저 불꽃은 그의 차지가 됩니다!”

바로 그 때, 검은 망토를 걸친 투황이 손가락을 들어 달아나는 소년의 뒷모습을 가리켰다.

뱀 인간족의 세 투왕은 갑자기 자신들 앞에 나타난 강자를 뿌리치고 고하를 뒤쫓으려 했지만, 그녀가 소매를 휘두르자 격렬한 돌풍이 일며 셋을 막아섰다.

“건방진 것들…누굴 무시하고 지나가려는 거야?”

“죽여버려!”

유타의 고함 소리와 함께 세 투왕의 그림자가 어지러이 춤을 추며 투황을 향해 염력을 쏘아댔고, 고하는 그 틈을 타 더욱 속력을 높였다.

……

검은 도포를 입은 여인은 공중에서 뱀 인간족의 세 투왕과 맞섰고, 아래쪽에서 수 백 개의 독창이 날아들 때마다 바람을 이용해 그 공격을 뱀인간들에게 되돌려 주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발아래를 신경 쓰는 동시에 세 명의 투왕을 완전히 제압하기는 어려웠는지, 전황은 꽤나 오랫동안 교착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고하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녀는 갑자기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아들었다.

“폭풍의 감옥!”

이윽고 푸른 바람이 미친 듯이 몰아치며 거대한 바람기둥을 만들어내자, 투왕족의 세 강자가 모두 푸른 바람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또 두 명이 오고 있어…후퇴할 때가 됐군.”

그녀는 세 투왕을 제압하자마자 새하얀 손을 망토 안으로 거두어 들인 뒤 지체 없이 날개를 펼쳐 고하 무리가 날아간 방향으로 사라졌다.

“쫓아!”

잠시 후, 그녀의 무투기를 깨고 나온 세 사람은 막 도착한 두 명의 투왕을 향해 고함을 질렀고, 방금 가세한 두 명의 뱀인간족은 영문도 모른 체 날개를 펼쳤다.

* * *

금빛 모르게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상공 위, 소년 하나가 푸른 연화대를 들고 날갯짓을 반복하고, 그 뒤를 따라 몇 개의 인영이 맹렬한 기세로 그를 따라가고 있다.

이준은 또 다시 기력의 조각은 쑤셔 넣으며 한껏 염력을 끌어올렸지만,

이미 그의 시야에 비치던 세 개의 그림자가 점차 뚜렷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저는 가한제국의 고하입니다! 지금 가지고 계신 천지의 불꽃을 돌려주십시오! 그 물건이 무사하기만 하다면, 절대 섭섭지 않게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준은 고하의 말을 완전히 무시한 채 더욱 속력을 올려보았지만, 세 개의 그림자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올 뿐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세 사람의 뒤에서는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젠장, 투황이 쫒아오는군. 저 말도 안되는 속도는 대체 뭐야!”

준은 뱀 인간들의 방해공작을 뚫고 자신을 쫓아오는 검은 형체를 보며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스승님!”

“걱정 말거라. 이제부터는 내가 맡도록 하마.”

투황 하나에 투왕 셋, 이번만큼 약로라고 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잡힌다면 운이 좋아도 천지의 불꽃을 빼앗길 것이 분명했고, 목숨을 빼앗길 가능성도 높았다.

“절대로 천지의 불꽃을 빼앗길 수는 없어요!”

“하하하, 그래! 그 정도 결의는 있어야지!”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막대한 염력이 체내에서 용솟음치며 준의 등 뒤에 달린 매의 날개에 선명한 보라색 문양이 떠올랐다.

쉬이이익-!

곧이어 준의 비행 속도가 두 배 이상 빨라지며 그의 뒤를 무리들과의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하자, 고하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설마 저 녀석도 투황인가?”

상대가 투황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천지의 불꽃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애시당초에 투황이 나타났다고 포기할 정도였다면, 이 정도의 강자들을 모아 뱀인간의 성지로 기어들어가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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