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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102화 (102/818)

제102화. 대지의 불꽃

쌍두사는 천지의 불꽃이 두려운지 더 이상 앞으로 가려 하지 않고 있었다.

준은 마수를 뒤로 한 채 빠르게 천지의 불꽃을 향해 나아갔다.

푸른빛에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온도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준은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발을 힘껏 찼다.

그리고 드디어 푸른빛으로 물든 공간에 머리를 들이밀자…거짓말처럼 시원한 느낌이 온 몸을 감쌌다.

푸른색 연꽃에 가까이 다가서자, 거짓말처럼 완벽한 균형을 자랑하는 여덟 개의 연잎이 우아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는데, 꽃잎 아래로는 1미터 가량의 은은한 빛을 내는 줄기가 뻗어 있었다.

시선을 더욱 아래로 내리자 푸른 연꽃의 아래에는 십 미터 정도의 가느다란 뿌리가 있었고, 뿌리에 달린 줄기들에는 작은 돌기들이 아름답게 반짝이며 탐욕스럽게 주위의 마그마에 담긴 불 속성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푸른 연꽃은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마그마 속에 덩그러니 놓인 채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었다.

‘뿌리 부위에 있는 돌기에 닿으면 끝이다. 닿는 순간 네 몸속의 염력을 모두 흡수당할게야.’

준은 약로의 말을 따라 반딧불처럼 빛을 발하는 돌기들을 피해 연꽃 가까이로 다가섰다.

하지만 연꽃의 중심을 바라보던 준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아름다운 천지의 불꽃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할 곳이 휑하니 비어있었던 것 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없을 수가 있지?’

준은 연꽃의 중심을 몇 번이나 재확인하며 거의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이었다.

‘진정해라 요놈아! 진정하라고!’

‘말도 안돼! 스승님! 진정하게 생겼어요? 목숨을 걸고 왔다구요! 그런데…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요놈아, 지금 이 순간에도 투기 대륙 전체에 천지의 불꽃을 찾는 연금술사가 수천은 될게다. 내 시대에도 수 천, 수만의 연금술사들이 천지의 불꽃을 찾아다녔지만 그들 중 백에 구십구는 천지의 불꽃을 구경도 하지 못 하고 죽었다.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게야.’

하지만 씁쓸하기는 약로도 마찬가지였는지, 그 역시 몇 번이나 연꽃을 돌아보고 있었다.

“어? 이게 뭐지?”

연화대를 자세히 관찰하던 약로가 갑자기 손을 흔들어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뭐에요?”

풀이 죽은 이준은 머리를 돌려 약로 손에 놓인 물건을 힐끔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비늘?”

약로의 손에 들린 물건은 손바닥 절반을 가릴 정도의 크기의 비늘로, 일곱가지 색으로 기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끌끌…왜 대지의 불꽃이 없나 했더니…먼저 다녀간 손님이 있었구만.”

“네? 그럼 이 비늘조각의 주인이 이 불꽃을 먼저 채간 거에요?”

“허허…칠색 뱀 비늘…이 타르 사막에서 이 비늘을 가지고 있는 자는 오직 뱀인간의 여왕인 메두사 하나뿐이다. 보아하니 예린이가 느꼈다던 그 기운이 메두사의 기운이 틀림없는 것 같구나.”

하지만 준은 이미 풀이 죽을 대로 죽은 상태였다.

“에이, 이제 알면 뭐 해요? 이미 반년이나 지났잖아요. 이미 대지의 불꽃은 그 뱀 여왕인지 도롱뇽 여왕인지 하는 빌어먹을 여자 차지겠죠…”

“이놈아, 뱀 인간의 피는 천성적으로 냉기를 띈단 말이다. 뱀 인간이 천지의 불꽃을 흡수하면 바로 죽음이야.”

“네? 그럼 이걸 뭐하러 가져가요. 쓰지도 못 할걸…게다가 예린이가 그랬잖아요. 이걸 가져가다가 부상을 당했다면서요. 누가 쓰지도 못할걸 얻으려고 목숨을 걸어요?”

“글쎄…아무래도 타르 사막 깊은 곳에 가보아야겠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메두사는 절대 이 불꽃을 흡수하지 못해. 그러니 그녀에게서 천지의 불꽃을 뺏어올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약로의 말에 준은 말도 안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 메두사에요 메두사. 얼음 왕도 이 여자에게 개박살이 났다구요.”

“에잉…못난놈아. 용암 호수에 몸도 던지는 놈이 그깟 투황을 무서워 하느냐. 걱정하지 말거라.”

“알았어요. 대신 메두사를 만나면 바로 스승님이 나서주세요.”

준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리자, 약로가 갑자기 버럭 호통을 쳤다.

“이놈아! 지금 뭐 하는게야?”

“돌아가야죠. 여기에 그냥 있어요?”

“이런……이런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약로는 준의 행동에 화가 났는지 영혼 상태로 나타나 이준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는 푸른 연꽃을 가리켰다.

“이 물건은 천 년을 기다려야 만들어지는 보물이란 말이야. 이런 멍청한 녀석, 이걸 그냥 두고 가려고?”

“네?”

이준은 몸을 돌려 그 연꽃을 바라보더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했다.

“이 물건이 어디에 쓰이는데요?”

“이 푸른색 연화대도 천 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보물이란 말이다. 이것을 뜯어 수련할 때 그 위에 앉아서 하게 되면 수련 속도가 3, 4 배는 빨라지게 된단 말이야! 게다가 이 연화대 속에 들어있는 연밥에는 불의 영혼이 들어있다. 그것도 백년에 한번 생겨나는 것이야. 지금 네가 밖에 나가서 너에게 이 연밥이 있다고 소리를 지르면 투황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걸? 그 정도의 물건이란 말이다! 에잉, 무식한 놈! 연대고 연밥이고 천하에 둘도 없는 보배…”

준은 약로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즉시 손을 뻗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마냥 풀이 죽어있던 그의 눈에는 어느 새 생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준이 쏜살같이 연대를 향해 몸을 날리자 약로가 손을 흔들어 무형의 기운으로 준을 막아섰다.

이윽고 그가 다시 손을 움직이자 준은 끈에 묶인 연처럼 약로에게로 날아갔다.

“쯧쯧, 조심성 없긴……!”

약로는 혀를 끌끌 차며 저장반지에서 단단한 검을 하나 꺼내 연꽃을 향해 집어던졌다. 그러자 검이 연꽃 위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꽃에서 연한 청색 불길이 일어나 칼을 통째로 녹여버렸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준은 뻘쭘한 표정으로 쭈뼛대며 약로의 눈치를 봤다.

“이 연꽃은 천지의 영물이다. 오로지 아주 깨끗한 옥으로 된 것들만이 그 순수한 기운을 받아낼 수 있지.”

약로는 설명과 동시에 준의 저장반지에서 가장 깨끗한 옥으로 제련된 약병 몇 개를 꺼낸 뒤 하얀 불꽃으로 그 약병들을 깨끗이 녹여냈다.

잠시 후…녹아내린 약병들이 옥으로 된 검으로 변화했고, 약로는 온 정신을 집중해 검속에 깃든 잡물질을 모두 솎아냈다. 그러자 약로의 손에 들린 검은 마치 방금 피어난 연꽃처럼 아름답고 영롱한 빛을 발했다.

“이 옥 검으로 연꽃과 뿌리줄기가 연결된 부분을 잘라 내거라.”

준은 스승의 손에서 검을 건네받은 뒤 조심스럽게 연꽃과 줄기가 연결된 부분을 잘라냈다.

그러자 연꽃이 사라진 줄기가 미친 듯이 주위의 불속성 에너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스승님, 이 줄기가 이렇게 기운을 빨아들이는 걸 보니 이것도 범상치 않은 물건인 것 같은데…이것도 가지고 갈 거죠?”

“아니.”

“네? 왜요?”

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스승과 연꽃 줄기를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요놈아…무려 1100년에 걸쳐 만들어진 자연의 보물이다. 남겨두고 가거라. 그럼 시간이 지나서 이곳에서 다시 새로운 연꽃이 자라날게야. 허허…연밥이 열 한 개라…네 놈은 역시 운이 좋구나. 평생에 걸쳐서 이 연밥 하나조차 구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산처럼 쌓였는데, 열 한 개라니.”

“그 뱀 여왕은 왜 이런 보물을 남겨놓고 갔을 까요? 설마 이 정도는 성에 안 찬다는 걸까요?”

준은 문득 메두사가 이런 귀한 보물들을 그대로 남겨두고 쓰지도 못할 천지의 불꽃만을 가져갔다는 것에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부상이 심했을게다. 게다가 주위의 열기 때문에 다른데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었을 거고. 옥으로 된 물건을 준비하지 못 했을 수도 있지. 뭐, 사정이야 어찌됐건 덕분에 귀한 보물을 얻지 않았느냐.”

약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열 한 알의 연밥을 차례로 약병에 집어넣었다.

“이 물건들은 절대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말거라. 그리고 이 연꽃 역시 수련할 때를 빼고는 절대 사용하거나 누군가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연밥 한 알에 목숨을 걸 강자들이 득실거리니, 네가 이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는 즉시 가한제국 곳곳에서 널 죽이고 이 보물들을 빼앗아갈 놈들이 찾아올게다.”

약로의 경고에 준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도 이제 돌아가자꾸나.”

“네!”

* * *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지……?”

한편, 용암 호수밖에 있는 이정은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

“단장님, 걱정 마세요. 그 아이에게서 신호를 받았어요. 도련님은 지금 돌아오고 있는 중이라고 해요. 절대 다른 일이 생긴 게 아니에요.”

“그래.”

예린의 말을 들은 이정은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촤악!

그 때, 용암 호수의 수면 위로 무언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하얀색 불로 온 몸을 감싼 동생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후우-”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울렁이는 마그마를 뚫고 나온 준은 긴 한숨을 내쉬며 통로로 날아왔다.

잠시 후, 준의 몸에서 하얀색 불꽃이 사라지고, 보라색으로 빛나던 매의 날개가 문신으로 돌아갔다.

“괜찮아?”

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형을 보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하하, 걱정 마. 괜찮아.”

“물건은 찾았어?”

“아니…내가 한 발 늦었어.”

“뭐…?”

준은 말없이 저장반지에서 약로가 발견한 뱀 비늘을 꺼내들어 이정에게 내밀었다.

“칠색 뱀 비늘이라…그렇다면…”

형의 심각한 표정을 바라보던 준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괜찮아. 이제 타르 사막 깊은 곳에 가서 그녀에게 천지의 불꽃을 뺏어올 테니까.”

“뭐? 너 미쳤어?”

이정의 낯빛은 동생이 용암 호수에 몸을 던지는 것을 볼 때보다 더욱 나빠져 있었다.

“하하, 형, 걱정 마. 그냥 가보는 거야. 안 되면 도망치면 되지. 목숨을 걸 마음 같은 건 없어.”

“너도, 참……”

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자 준은 씩씩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하, 얼른 가자 형, 오늘은 쉬고 내일 출발할거야.”

두 형제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고, 예린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급히 용암 호수를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용암 호수의 주인의 이마 위에 있던 푸른 꽃 문양이 밝게 빛나며 마수가 한줄기 푸른빛으로 변해 예린의 옷소매로 날아들었다.

“장난치면 안 돼. 도련님을 화나게 하면 너를 버려 버릴 거야.”

예린이 작게 속삭이자, 그녀의 옷소매 속이 덜렁거렸다.

“히히.”

예린은 작은 입을 가리고 키득거리며 폴짝폴짝 뛰어 이준과 이정의 뒤를 따라 갔다.

* * *

삐그덕-

방문이 천천히 열리고, 술에 절은 준은 취기를 떨쳐내기 위해 머리를 흔들며 방문을 걸어 잠궜다.

“후우-”

준은 비틀거리며 침대에 올라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호흡이 일정해지며 술기운이 조금씩 그의 몸에서 빠져나갔다.

곧이어 준이 손가락을 살짝 튕기자, 온 방안에 은은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준은 잠시 푸른 연화대를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가 그 위에 올라 앉았다.

“읏챠.”

연화대에 오르자마자 부드러운 기운이 준의 전신을 부드럽게 감쌌다.

정신을 집중하고 천천히 눈을 감은 준은 자신의 염력 회오리에 물방울이 또 하나 늘어난 것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요 며칠사이는 수련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신기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준이 수련을 시작하자, 주위에 가득하던 불 속성의 에너지들이 연화대의 푸른빛을 지나는 순간 눈에 띄게 작아지며 약간의 푸른빛을 머금는 것이 아닌가.

‘이 푸른색 기운은 뭐지? 설마…연꽃이 가지고 있는 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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