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화염쌍두사
“이제 어떻게 할거야? 저 녀석이 지키고 있는 한 안으로 들어가는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이정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자, 준은 아무 말없이 기력의 조각 한 알을 꺼내 삼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후…그러게…그래도 천지의 불꽃이야. 포기할 수는 없어.”
“또 들어가려고? 방금 그 공격력을 보니 최소 4급 마수는 될 것 같은데…그 정도면 투령급이라고…마그마까지 고려하면 투왕이 와도 쉽지 않을거야.”
“저 녀석이 기어이 막겠다면…죽이는 방법 밖에 없죠.”
하지만 걱정스러운 정의 표정과는 달리 이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용암 호수 속에서 난동을 부리는 쌍두사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눈을 감고 염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준을 보며 이정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미친 듯이 요동치던 마그마 호수가 다시 잠잠해지고, 허공을 가득채운 불꽃이 사라지자 쌍두사의 시야에 방금 전 놓쳐버린 사냥감의 모습이 들어왔다.
“캬아아아아아!”
“큰일 났어, 저 녀석이 우리를 발견했어!”
이정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의 몸통에 달린 커다란 두 개의 머리가 힘 있게 흔들리더니 뜨거운 마그마 불기둥 하나가 통로를 향해 날아왔다.
화아아악!
깜짝 놀란 이정이 동생의 손목을 잡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갑자기 그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거짓말처럼 뒤바꼈다.
“어어…?”
준이 예린과 정을 붙잡은 채 용암 호수를 벗어나 통로까지 날아온 것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속도에 이정은 어안이 벙벙해져 동생을 바라봤다. 지금 그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자신의 동생이 분명했지만, 자신의 동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정이 이 기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준의 주먹에서부터 신비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통로 밖 10미터 정도를 보호막으로 감싸버렸다.
‘이게 뭐야…투황? 아니 투종인가? 어떻게 준이가 이런 게 가능하지?’
곧이어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오던 불기둥이 보호막에 가로막혀 사라지자, 이정은 점점 더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거듭되는 실패에 쌍두뱀은 더욱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고, 커다란 꼬리를 번쩍 들더니 통로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몸을 날렸다.
쉭…!
그러나 등 뒤에 보라색 날개가 펄럭이자, 준의 몸이 한줄기 빛으로 변하며 괴물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결국 쌍두사의 커다란 꼬리는 허공을 가르고 암벽을 후려쳤고, 마수의 꼬리에 닿은 암벽에는 폭탄이라도 맞은 듯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하지만 준은 이 무시무시한 위력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허공에서 검은 송곳을 움켜잡았다.
쉭-
잠시 후, 다시 한 번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준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갑자기 쌍두사의 머리 위에 인영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쌍두사가 자신의 머리 위에 무언가가 올라섰다는 것을 느끼기도 전에 허공에서 신비한 보라색 불꽃이 휘몰아치며 유려한 곡선을 그려내고…곧이어 보라색 불꽃에 휩싸인 검은 송곳이 힘차게 바람을 갈랐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단단한 붉은 비늘이 깨지며 붉은 피가 비늘 사이에서 줄줄 흘러나오자, 쌍두사는 병든 개처럼 낑낑 거리며 기다란 꼬리를 힘없이 휘둘러댔다.
……
“키에에에!”
몇 초 후, 쌍두사는 정신이 돌아온 듯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세차게 온 몸을 흔들면서 꼬리로 자신의 머리 위에 찾아든 불청객을 내쫓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머리 위에 선 소년은 거센 파도에도 끄떡 않는 노련한 뱃사공처럼 여유롭게 균형을 잡아가며 미친 듯이 날아드는 쌍두사의 공격을 피해냈다.
“키에에에에!”
이윽고 쌍두사의 입에서 다시 한 번 날카로운 비명이 퍼져 나오자, 놈의 온 몸에서 짙은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통로에 선 이정과 예린은 온 땅굴을 가득 채운 불길을 보면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슈우웅!
잠시 후, 시뻘건 불꽃이 허공에서 회전을 하기 시작했고, 불꽃의 회전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주변의 불길들이 춤을 추듯 일렁이며 어떤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이 광경을 바라보던 이정은 너무 놀라 멍하니 입을 벌리고 주저 앉고 말았다.
쌍두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불기둥은 세찬 기세로 응집되어 화염으로 이루어 진 쌍두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화염 기둥으로 만들어 진 십 여 마리의 쌍두사의 몸집은 모두 불꽃을 뿜어낸 모체와 비슷한 크기였다.
그들은 서로 몸을 꼬며 잠시 기회를 엿보는 듯 머뭇거리다가 일제히 맹렬히 타오르며 무슨 신성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둥글게 모여 대형을 만들더니, 이윽고 지하 공간을 모두 불태워 버릴 듯한 기세로 준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십 여 마리의 마수를 바라보던 준은 놀랍게도 피식 웃으며 천천히 두 눈을 감을 뿐 이었다.
쿵-!
순식간에 하늘을 쪼갤 듯한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열 몇 마리의 화염으로 만들어 진 뱀이 한 점을 향해 몸을 날리고, 그와 동시에 용암 호수에 거대한 해일이 일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이정은 사색이 되어 자신의 동생이 펼친 염력 보호막 밖으로 몸을 날렸지만, 5성 무투사인 그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보호막을 뚫을 수 없었다.
“준아! 준아! 이준! 안 돼!”
그리고 정이 힘없이 염력 보호막에 기대 주저앉는 순간, 예린의 목소리가 그의 귀청을 꿰뚫었다.
“단장님……도련님이……아직 살아있어요!”
* * *
거대한 용암 호수 위는 온통 새빨간 불기둥과 마그마로 가득했다.
정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지옥과도 같은 불꽃 속에서는 작은 소년의 그림자 하나가 태연자연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불꽃이 모두 그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소년의 그림자는 마치 불을 먹는 마수처럼 끝도 없이 불꽃을 빨아들이며 거대한 불꽃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잠시 후, 모든 불꽃이 소년에게 빨려 들어가자 거짓말처럼 동굴 안에 평화가 찾아왔고, 그의 몸 표면에는 아름다운 백색 불꽃이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허허허…! 간만에 아주 몸보신을 제대로 하는구나.”
소년은 배불리 먹고 단잠에 빠졌다 일어난 아기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히죽히죽 웃음을 지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쌍두사의 얼굴에도 공포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도 방금 전 그 화염으로 만들어 낸 분신을 이용한 공격이 놈의 비장의 수인 듯 했다.
“이제 끝났어…”
소년은 웃으며 천천히 아래에 있는 괴물 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콰아앙!
그러자 이준의 손바닥에서 공포스러운 힘이 번개처럼 뿜어져 나와 쌍두사의 커다란 몸을 내리 쳤고, 일격에 놈의 몸에 뒤덮여있던 붉은색 비늘들이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잉…!”
처절하게 울부짖는 놈의 커다란 눈동자에는 핏줄이 터질 듯이 드러났고, 징그러운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할 때 마다 뜨거운 불기둥이 치솟았지만, 그 때 마다 소년의 몸을 뒤덮은 하얀색 불길이 더욱 거세게 불타오를 뿐 이었다.
한편 통로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이정과 예린은 너무나 충격을 받아 거의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곧이어 하얀색 불길로 뒤덮인 검은 송곳이 허공을 가르자, 그 때 마다 시뻘건 피가 치솟으며 쌍두사가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콰아앙! 쾅!
“끼이잉, 끼잉!”
시커먼 몽둥이가 춤을 출 때 마다 쌍두사의 꼬리는 무의미한 왕복 운동을 반복할 뿐 제대로 된 반항 한번 하지 못 했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며 용암 호수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사실 약로의 실력이라면 용암 속으로 달아난 쌍두사의 숨통을 끊는 것 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6레벨 마수급의 실력을 갖춘 쌍두사를 죽이려면 더욱 강력한 무투기를 사용해야 했고, 이는 타르 사막 주위에 숨어있는 강자들의 시선을 끌 것이 뻔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천지의 불꽃은 그 어떤 강자라도 군침을 흘리는 보물이었으니, 괜히 빈사 상태로 달아난 마수의 숨통을 끊는답시고 강한 무투기를 사용했다가는 일만 복잡하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결국 준의 몸에 깃든 약로는 쌍두사를 도망치게 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약로는 혹시라도 놈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까 싶어 곧바로 천지의 불꽃을 찾으러 가지 않고 그대로 공중에서 십 여분을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놈이 다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약로는 멀리서 넋을 잃고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든 뒤 유유히 동굴 안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스승님, 여기에 진짜 천지의 불꽃이 있을까요?”
“그래. 이곳의 환경과 기운, 게다가 마수까지…아마도 거의 확실할게다.”
“그런데…그 대가리 둘 달린 뱀은 대체 뭐에요? 하늘 사자 같은 6레벨 마수인가요?”
준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질문을 던지자, 약로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놈은 화염쌍두사라는 화염 속성의 마수로, 용암과 불꽃을 먹이로 하는 놈이다. 갓 태어났을 때는 1레벨 정도의 마수밖에 되지 않으니 하늘 사자와는 천지 차이지. 하지만…이곳처럼 용암이 가득하면 6레벨 마수까지도 진화할 수 있는 놈이야. 환경이 안 좋으면 1레벨, 환경만 갖춰지면 하늘 사자와 맞먹을 정도로 성장하는 놈이니, 아주 특이한 놈이기는 하지.”
약로의 답변을 들은 준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후 30분 정도 천지의 불꽃을 찾아 헤맸지만 단서가 묘연하자, 준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스승님, 이 땅굴을 거의 다 뒤진 것 같은데…왜 천지의 불꽃이 안보이죠?”
“글쎄…나도 그건 잘 모르지. 나라고 이 곳에 와본적이 있겠느냐?”
“에휴…”
그리고 준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 탐색을 시작하려는 순간, 예린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리자, 망할 놈의 뱀 새끼가 마그마에서 빠져나와 이정과 예린이 있는 방향으로 헤엄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기랄!”
이 광경을 바라보던 준은 신속하게 매의 날개를 꺼낸 뒤 몸을 날렸다.
“교활한 녀석!”
쾅!
매의 날개에 약로의 불꽃이 주입되자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함께 준의 몸이 허공을 갈랐고, 너무나 빠른 속도에 용암 호수가 갈라지며 파도가 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미 교활한 뱀의 아가리가 준의 형과 예린의 지척까지 닿아 있었다.
“빨리 가! 예린아!”
정은 예린을 먼저 보낸 뒤 염력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5성 무투사 따위가 감히 이 용암 호수의 주인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다. 놈이 커다란 입을 벌리자 무시무시한 흡입력이 발생해 예린은 물론이고 이정마저 놈의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곧이어 놈이 끔찍한 비명 소리와 함께 몸을 부르르 떨자, 폭풍이 일며 두 사람을 동굴 벽에 사정없이 날려버렸다.
“컥!”
이정은 그 와중에도 아직 어린 예린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꼭 끌어 안은채 벽에 처박혔고, 덕분에 그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지만 예린은 큰 부상을 입지 않을 수 있었다.
“가까이 오지 마……”
점점 가까워지는 뱀의 머리를 보며 예린은 새파랗게 질려 사지를 덜덜 떨었다. 하지만 놈은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겁에 질린 예린의 표정을 즐기듯 사악한 표정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뱀의 혀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에 예린은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고 쓰러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