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용암 호수의 주인
붉은색 빛이 나오는 곳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자 시뻘건 용암이 흐르는 공간이 나타났다.
작은 통로 끝에 선 세 사람은 끝없이 펼쳐진 용암의 강을 바라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이럴 수가…성 밖의 지하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정은 미칠듯한 열기에서 몸을 지키기 위해 녹색 염력 보호막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었고, 준 역시 보라색 방어막으로 자신의 몸을 지켜내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가지? 다른 길은 없는데…형은 나무 속성이라 더 이상은 못가겠구나. 불은 나랑 상극이니까.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올 수 있었지만, 이 앞으로는 무리야.”
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5성 무투사나 되니까 불 속성에 약한 나무 속성의 염력으로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이었다. 자신도 불 속성이 아니었다면 약로의 도움 없이는 이곳까지 오지 못 했을 것 이다.
“후-”
숨을 내 뱉은 이준은 머리를 숙여 그의 뒤를 바짝 따르고 있는 예린을 내려다 보았다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정과 자신은 염력 보호막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데도 땀을 비처럼 흘리고 있건만, 투사도 되지 못하는 예린이 마치 산들바람이 부는 숲속에 앉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땀 한방울 조차 흘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왜 이걸 이상하다고 생각 못했지? 5성 무투사인 형님도 속성이 맞지 않아 힘들어 하는데…’
마음을 가라 앉힌 후 예린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이준은 그녀의 몸속에서 차가운 기운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그 기운 덕분에 그녀는 이 고온 속에서도 무사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이 녀석…보면 볼수록 신기하네. 이 아이 몸속에서 흐르는 뱀 인간의 피와 관련이 있는 걸까? 하지만 뱀 인간이 여기에 왔다고 해도 참지 못하고 도망을 갔을 텐데…?’
준이 예린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사이, 그의 형이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들어가 봐야겠지…?”
동생의 대답에 형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들어간다고? 마그마 속으로? 길이 없잖아. 헤엄이라도 칠 생각이야?”
“하하…형, 그건 안 되지. 강철도 녹일만한 온도인데…미치지 않고서야…”
잠시 후, 이준이 고개를 저으며 검은 송곳을 저장반지에 넣은 뒤 몸을 부르르 떨자 그의 등 뒤에서 은은한 보라색을 띤 날개가 나타났다.
“이건…?”
동생의 등 뒤에서 나타난 날개를 본 이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쳤다.
“말도 안 돼! 염력 날개?”
가한제국 전체에 염력으로 날개를 만들 수 있는 자는 채 20명도 되지 않는다. 준이 아무리 천재라 해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이준 역시 형이 왜 놀라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날개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매의 날개에 대해 설명했다.
“아니야 형, 이건 비행 무투기야. 비행 속도는 진짜 염력 날개와 비교도 안돼. 근데 어찌됐든 날 수는 있으니까.”
하지만 진짜 염력 날개가 아니더라도 비행 무투기도 여간 귀한 것이 아니었다.
‘너 이 녀석, 대체 얼마나 많은 비밀을 품고 있는 거야?’
“형, 예린이를 데리고 돌아가줘. 나 혼자 들어가볼게.”
“잠깐, 준아. 날개가 있다고 해도 여긴 너무 온도가 높아. 오래 견딜 수 없을거야.”
정의 말대로였다. 고작 1성 무투사의 실력으로는 날개가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었던 것 이었다.
그러나 준의 표정은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형, 내가 그렇게 무모한 사람으로 보여?”
확신에 찬 동생의 표정에 형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심해.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바로 나와야해. 무리하지마. 알았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날개를 펄럭이는 순간, 갑자기 차가운 손이 그를 붙잡았다.
“도련님, 잠시만요. 용암 속에 뭔가가 숨어 있는 것 같아요!”
예린은 이준을 꽉 잡은 채, 공포스러운 열기를 내뿜으면서 흐르고 있는 강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뭐?”
두 형제는 급히 용암 호수를 훑어보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커다란 바위 외에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예린아, 정말이야?”
“네…저 속에 뭔가가 있어요… 살아있어요. 그리고…아주, 아주 강해요.”
“살아있는 거야?”
이준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네.”
“설마…그게 반 년 전에 네가 느낀 그 기운이야?”
“아니에요…그 기운은 지금 이 생물보다 더 강해요. 사라보다 강해요.”
예린은 손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안에 있는 생물의 힘을 설명하려 애썼다. 그녀가 모래바람성에서 본 가장 강한 사람은 사라였으니, 비교 대상도 사라일 수밖에 없었다.
“사라보다 더 강하다고…?”
처음에 그녀가 느낀 메두사의 기운이 투왕급이었고, 사라의 힘이 무투사의 정상급이었으니, 용암 속에 있는 생물은 최소 대투사 상위 레벨이거나 투령급의 레벨인 것 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이준의 추측일 뿐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용암속에서 살 수 있을 정도의 생물이라면 무언가 특수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테고, 그렇다면 최악의 경우 투왕급의 마수일지도 몰랐다.
“후…”
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 속에 어떤 생물이 숨어있던 나는 반드시 들어가야 해. 형, 예린이를 부탁할게! 꼭 지켜줘!”
이준은 정에게 예린을 부탁한 뒤 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몸을 날렸고, 마그마와 십 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공중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정은 준의 표정을 보고 말릴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준은 하늘 사자의 불꽃으로 몸을 보호하며 앞으로 서서히 나아갔다.
예린이 말한 생물이 어느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속도를 내기는 어려웠으니, 결국 준은 영혼 탐지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천천히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때때로 거대한 용암강에서 종종 파도가 일거나 시뻘건 불기둥이 솟아올랐기 때문에 속력을 내기가 더욱 어려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기가 몸속으로 스며들어 준의 피부는 어느새 벌겋게 익어가고 있었다. 염력이 떨어져서 자신의 몸을 감싼 보호막이 옅어지는 장면을 상상하자, 준은 온 몸에서 식은땀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식은땀이 나기에는 너무 뜨거운 온도였으니, 아마 그의 착각이거나, 땀이 났더라도 즉시 말라버려 몸이 젖을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렇게 준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는 사이, 갑자기 예린의 목소리가 용암으로 가득한 호수 위를 가로질러 준의 귀에 날아들었다.
“도련님, 그 생물이 지금 도련님을 따라 가고 있어요! 빨리 돌아와요!”
‘젠장!’
하지만 이준의 몸이 움직이는 순간, 조용하던 용암 호수에서 갑자기 묵직한 굉음이 울리면서 뜨거운 마그마가 위로 뿜어져 오르고…그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꾸아악! 꾸아악!”
신비한 생물이 용암을 뚫고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준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드는 순간, 잔잔하던 용암 호수가 세차게 요동치며 여기저기서 불기둥이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퍼어엉!! 퍼엉!
이준은 이를 악문 채 온 힘을 다해 밖으로 날아가려 했지만, 무시무시한 그림자는 이미 준의 발치까지 도달해 있었다.
곧이어 정체불명의 생물이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 커다란 입속에서 세 갈레로 갈라진 징그러운 혓바닥이 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도련님, 조심해요! 뒤에 따라오고 있어요!”
예린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속수무책인 것은 5성 무투사인 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젠장…!”
준은 전력으로 벽면을 향해 날아간 뒤 염력을 끌어올려 전력으로 벽면을 박차며 폭풍걸음을 사용했다. 덕분에 준의 몸이 화살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가 등 뒤 생물과의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스읍-!”
하지만 입 안에 거의 다 들어온 사냥감을 놓친 생물은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커다란 꼬리를 들어 마그마 호수 면을 철썩 후려쳤고, 그 바람에 뜨거운 마그마가 파도치며 주위의 돌들을 녹여버렸다.
쿠르릉. 쿠릉. 쿠르르릉.
굉음과 함께 통로 이곳저곳에서 돌무더기가 쏟아지자, 용암속에 사는 기묘한 생물은 꼬리로 떨어지는 돌들을 후려쳐 사냥감에게 날렸다.
슉-슉-!
준은 사력을 다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돌맹이를 피했다.
펑-!
그는 자신이 피한 돌멩이들이 오싹한 소리를 내며 터져나가는 것을 보자 정신이 아찔해졌다.
‘빌어먹을…다른 물체를 사용해서 공격을 하다니! 머리가 좋잖아!’
준은 다시 한번 벽면을 세차게 걷어차며 고개를 돌려 적의 정체를 확인했다.
‘젠장…! 저게 뭐야!’
마그마 속에서 갑자기 튀어 나온 신비한 생물은 뱀 형태의 마수로, 크기는 약 15미터 정도에 붉은 몸 위에는 손바닥만한 붉은 색 비늘들이 겹겹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긴 목이 갈라진 곳에는 험상궂게 생긴 머리 두 개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쌍두사는 사냥감과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속도를 늦췄다.
‘뭐야…포기한건가?’
준은 갑자기 추격을 멈춘 듯 멈춰서는 놈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하지만 놈의 눈빛은 절대로 사냥감을 포기한 눈이 아니었다.
이윽고 놈이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리는 순간…준은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젠장!”
바로 그 때, 거대한 불기둥이 놈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화아아악!
펑-!!
……
“헉…헉…이런 미친…”
준은 뱀의 아가리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위로 몸을 날려 불꽃을 피해냈다. 하지만 불꽃이 스치지도 않았음에도 그 열기만으로 준의 옷과 바지가 너덜너덜하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하늘 사자의 화염으로 감싼 그의 피부는 불꽃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음에도 화상이라도 입은 듯 고통스럽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화아아악-!
그리고 준이 숨을 고르기도 전에 쌍두사의 두 번째 대가리에서 또 다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먼 통로 끝에서 이준을 당장이라도 삼킬 듯한 기세로 달려드는 불기둥을 보며 이정과 예린의 얼굴은 이미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제기랄!”
온 힘을 다해 날개를 퍼덕이며 뒤쪽을 힐끔 본 이준은 커다란 마그마 기둥이 자신의 주위를 온통 둘러싸고 있음을 발견하고 다급하게 약로를 불렀다.
‘스승님, 빨리 안 도와주시면 저 죽어요! 살려줘요!’
‘하하, 녀석. 빨리도 부탁하는구나.’
약로의 장난스런 웃음 소리가 이준의 마음 속에서 울려퍼지는 순간…신비한 기운이 전신을 감싸며 준의 등에 펼쳐진 매의 날개가 더욱 짙은 보라색을 뿜어내기 시작하고,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몸이 번개처럼 불기둥을 뚫고 지나갔다.
불기둥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 생물은 다시 마그마 호수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잠시 후… 조용하던 호수가 미친 듯이 끓어오르며 여기저기서 불기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펑-!!!
용암 호수 여기저기서 불기둥이 치솟기 시작하자, 이정은 황급히 예린을 끌어안고 뒤로 물러섰다.
작렬하는 불기둥으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기 시작하자 이정은 초조해 미칠 지경이었다.
“준아!”
예린은 이미 거의 실신하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발을 동동구르고 있을 때, 마그마 호수 속에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튕겨져 나왔다.
보라색 투기로 온 몸을 감싼 준이 마지막 불기둥을 헤치고 통로로 돌아오자, 정은 놀람과 기쁨이 섞인 얼굴로 말을 잇지 못 했다.
“젠장, 완전 괴물이잖아.”
준의 옷은 이미 뜨거운 불에 타올라서 거의 형체조차 알아 볼 수 없었고, 검은색 머리카락도 누렇게 타버린 상태였다.
“괜찮아?”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 하던 정의 목구멍에서 드디어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준은 쓴 웃음을 지으며 통로 벽에 기대어 털썩 주저 앉았다.
용암 호수의 주인은 시뻘건 화염속을 유유히 헤엄치며 네 개의 눈을 번쩍거렸지만, 자신이 사방으로 내뿜어댄 불꽃과 용암 기둥으로 인해 준을 찾지 못 하고 있었다.